念佛禪 修行法
대 주 강의
차 례
Ⅰ. 序 論 1
Ⅱ. 禪淨一如의 念佛禪 3
1. 自力修行과 他力修行 3
2. 禪의 意味 ...................................................................................... 4
3. 念佛禪의 根據 4
4. 念佛禪의 定義 8
5. 念佛禪의 修行方法 9
1) 稱名念佛法 9
2) 參究念佛法 11
3) 觀念念佛法 12
4) 耳根圓通稱名念佛法 12
Ⅲ. 中國 禪師들의 念佛禪 17
1. 道信의 一行三昧와 念佛方便 17
2. 永明延壽의 參禪念佛四料揀 19
Ⅳ. 韓國 禪師들의 念佛禪 22
1. 懶翁의 念佛禪 22
2. 西山의 念佛禪 23
3. 金陀의 「菩提方便門」에 나타난 念佛禪 24
Ⅴ. 結論 26
Ⅰ. 序 論
부처님의 八萬四千 가르침은 우주와 인생에 대한 진리를 올바로 깨달아 모든 고통과 죄악, 슬픔 등의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해탈법문이다.
부처님께서는 解脫涅槃의 實踐法으로 戒定慧라는 三學의 수행을 제시하셨는데, 根本佛敎에서는 五停心觀과 三十七助道品이 그 實踐修行說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각 시대마다 敎法이 발달하고 여러 종파로 나눠지면서 각 종파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수행체계가 발달하여 왔다.
이 가운데서 念佛思想은 근본불교에서는 「雜阿含經」三十三에 念佛, 念法, 念僧, 念戒, 念施, 念天이라는 여섯가지 법[六隨念處]이 말씀되어 있고, 대승불교가 일어난 후 阿彌陀佛과 極樂世界를 말씀하신 경전은 「般舟三昧經」, 「阿彌陀經」, 「無量壽經」, 「觀無量壽經」, 「華嚴經」, 「法華經」, 「涅槃經」, 「楞嚴經」, 「寶積經」, 馬鳴菩薩의 「起信論」, 龍樹菩薩의 「十住毘婆娑論」, 「智度論」, 世親菩薩의 「往生論」 등 수많은 經典과 論書, 그리고 역대 祖師들의 법문 속에 염불에 관한 기록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참선하는 이들은 看話禪을 위주로 禪修行을 하고 있으나, 이런 수행풍토 속에는 念佛禪 修行도 함께 있어 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禪을 분류할 때, 外道禪, 凡夫禪, 小乘禪, 大乘禪, 最上乘禪, 如來禪, 祖師禪 등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다. 그 중에서 祖師禪이란 六祖慧能 계통의 南宗禪을 의미하는데, 南宗禪에서는 潙仰宗(表相現法1)), 臨濟宗(看話禪2)), 曹洞宗(黙照禪3)), 雲門宗(一字觀4)), 法眼宗(念佛禪5)) 등 五宗의 修行家風이 형성된 후에 臨濟宗에서 파생한 黃龍宗과 楊岐宗의 二宗을 더하여 五家七宗에서 수행한 參禪法을 총칭한다. 따라서 祖師禪이라고 한다면 위의 다섯 가지 수행법이 모두 포함되고 있기 때문에 念佛禪도 祖師禪의 한 修行法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종래 중국의 淨土宗에서 행하는 염불수행은 阿彌陀佛의 本願에 의해 往生極樂하려는 他方淨土信仰 위주였지만 唐末이후 佛敎思潮가 禪淨一如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역대 祖師들의 어록에도 禪淨一如의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
오늘날 禪淨一如의 念佛禪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은 만큼 현대학문으로 치밀한 연구가 행해질 필요가 있고, 또한 念佛禪에 대한 합리적이며 정확한 定義를 내려 어떻게 닦아야 진정한 念佛禪이라 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먼저 禪宗에서는 四祖 道信의 「入道安心要方便法門」이 念佛禪의 효시임을 밝히고, 이어서 禪淨一如의 念佛禪에 대한 定義를 내려 그 수행방법들을 제시하며, 그리고 중국의 禪師들 가운데서 念佛禪을 주장한 道信, 永明延壽에게서 나타난 念佛禪을 살펴본 다음, 한국에서 念佛禪을 주장한 禪師들 가운데 懶翁, 西山, 그리고 近代 金陀(1898~1948)의 「菩提方便門」에 나타난 念佛禪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수행을 해야 효과적인 念佛禪이 되는지를 考察하려 한다.
Ⅱ. 禪淨一如의 念佛禪
淨土宗의 염불수행은 阿彌陀佛에 의지하여 현세에서는 평안을 찾고, 내세에서는 그 本願에 의해 極樂淨土에 왕생하여 그곳의 훌륭한 여건에서 수행하여 成佛함을 목표로 하는 他力修行의 대표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서 나를 찾기보다는 다분히 신비적인 경향으로 흐르기 쉽다. 이에 반해 禪宗에서는 마음이 바로 부처다[心卽是佛], 문자를 내세우지 않고[不立文字], 마음을 곧 바로 가리켜[直指人心], 성품을 보아 성불[見性成佛]하는 이론을 앞세워 수행을 하게 되는데, 이 수행법은 현세에 成佛함을 목표로 하지만 사실 눈 밝은 善知識의 가르침을 받아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 得力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淨土宗과 禪宗 수행의 장점을 취하면서 그 한계성을 보안하고 극복하여 현생과 내생에 성불함을 목표로 하는 自力과 他力을 겸한 禪淨一如의 수행법으로 새롭게 주창된 것이 바로 念佛禪이라고 할 수 있다.
1. 自力修行과 他力修行
淨土에는 唯心淨土와 他方淨土로 나눠서 설명한다. 唯心淨土는 他方淨土와 같이 각 방위에 따라 정토가 있다고 주장하는 指方立相6)적인 입장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現世가 淨土라는 說로서, 이러한 說의 경전으로는 「維摩經」이 대표적인 경전이며 「唯識論」에서도 唯識所變의 淨土를 설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禪家에서도 이 설을 인용하여 彌陀公案을 參究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흔히 접하게 되는 불교 경전으로서 自力修行을 대표하는 禪佛敎의 所依經典으로는 「金剛經」을 들 수 있고, 他力修行을 대표하는 淨土敎의 所依經典으로는 「阿彌陀經」을 들 수가 있다.
하지만 불교의 목적은 자신 스스로 붓다가 되는 成佛에 있으며, 그러한 결과에 도달하는 방법은 그것이 自力的인 수행에 의한 것이거나 他力的인 수행에 의한 것이거나 결국에 성불이라는 結果論的인 입장에서는 그러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이므로 自力修行이든 他力修行이든 근본적으로 先後의 우열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7)
2. 禪의 意味
禪 이란 무엇인가? 宗密은 「禪源諸詮集都序」에서 禪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禪이란 산스크리트어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禪那(dhyāna)인데 中國에서 번역하여 思惟修라 하고 또한 靜慮라고도 했다.”8) 그런데 여기에서 禪那라는 것은 빨리어 Jhāna의 音譯이고, 이 Jhāna에서 後部의 母音 a가 떨어져 나가 音寫된 것이 禪이다.9) 그러면 思惟修와 靜慮란 무슨 뜻인가? 하면 思惟修라는 것은 마음을 어느 한 대상에 오롯하게 集中하여 細審하게 思慮하는 것을 思惟, 이와 같은 心理로 漸進하는 것을 修라 한다. 그리고 靜慮라는 것의 靜은 寂靜의 뜻인데 思慮는 觀의 뜻으로서 慧를 의미하므로, 靜慮라는 것은 定과 慮의 뜻을 구비한 것이 된다.10) 그리고 samādhi는 梵語인데 中國에서 번역하여 定이라 하였고 音譯하여 三昧라고 하였다. 그 뜻은 마음을 하나의 목표물에 집중시켜 산란하지 않은 상태[心一境性]를 말한다.11)
3. 念佛禪의 根據
전통적인 淨土宗은 西方淨土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念佛의 목적이 往生極樂淨土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禪宗에서 수용된 淨土는 來生이 아닌 지금 現世에서 도달한다는 것이고, 他力에 의한 성취가 아니라 自力에 의한 自覺이란 점을 들고 있다. 그래서 淨土란 곧 자기 마음의 淸淨을 의미한다. 이러한 唯心淨土의 思想은 淨土의 개념을 禪에서 수용하여 禪淨一如의 念佛禪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2) 이러한 念佛禪 사상의 經典 根據로는 「文殊說般若經」에서 다음과 같이 念佛禪을 說하고 있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길. “세존이시여, 마땅히 어떻게 행하여야 속히 無上正等覺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문수사리여, 반야바라밀경의 說하는 바와 같이 닦아 행하면 속히 無上正等覺을 얻을 수 있다. 다시 一行三昧가 있으니, 만약 善男子 善女人이 이 삼매를 닦는 이는 또한 속히 無上正等覺을 얻을 것이다.” 문수사리가 아뢰길, “世尊이시여, 어떠한 것을 一行三昧라 합니까?”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法界[眞如․法身]는 一相이니 생각을 法界에 붙들어 매는 것[繫緣法界]을 一行三昧라 한다. 만약 善男子 善女人이 一行三昧에 들어가고자 하면 마땅히 먼저 반야바라밀을 듣고 說한대로 修學한 뒤에야 一行三昧에 들어갈 수가 있는데, 法界와 같아짐을 인연하여[法界緣] 물러나지 않고[不退], 무너지지 않으며[不壞], 不思議하며, 걸림이 없고[無礙], 無相이 된다. 善男子 善女人이 一行三昧에 들어가고자 하면 마땅히 비고 한적한 곳을 선택하여 모든 어지러운 뜻을 버리고 형상이나 모양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一佛에 붙들어 매어 오로지 名號를 부르며, 부처님 계신 방향을 따라 몸을 바로 향하여 한 부처님에 대해 생각생각 서로 이어가면[念念相續] 곧 이 念하는 가운데 능히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親見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一佛을 念하는 공덕은 無量無邊하며, 또한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功德과 다름없고, 不思議하며, 佛法과 평등하여 분별이 없으니, 모두 한결같음[一如]을 힘입어서 無上正等覺을 성취하고, 모두 한량없는 공덕과 한량없는 辯才를 갖추기 때문이다.”13)
라고 하여, 一行三昧로써 無上正等覺을 성취하는 三昧 자체로 보이고, 다시 一行三昧의 實踐法으로는 念佛方便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初期 禪宗에서 淨土를 一心에서 통합하여 禪淨一如의 念佛禪을 언급한 것은 四祖 道信(580~651)의 「入道安心要方便法門」에서 찾아볼 수 있다.
善男子 善女人이 一行三昧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땅히 여유 있고 한가로운 곳을 선택하여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형상이나 모양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一佛에 붙들어 매어 오로지 부처님 名號를 부르며, 부처님계신 방향을 따라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향하여 한 부처님을 생각생각 서로 이어가면[念念相續] 곧 이 念하는 가운데 능히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게 된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一佛을 念하는 功德은 無量無邊하며, 또한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功德과 다름없고, 不思議하며, 佛法과 평등하여 분별이 없으니, 모두 한결같음[一如]을 힘입어서 無上正等覺을 성취하고, 모두 한량없는 공덕과 한량없는 辯才를 갖추기 때문이다.14)
라고 하여, 道信은 一行三昧의 구체적인 行法으로 앞에서 인용한 「文殊說般若經」의 念佛方便을 들어 說하고 있다. 이것은 四祖 道信 때에 이미 禪淨一如의 念佛禪이 行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入道安心要方便法門」은 禪宗에서 念佛禪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초로 念佛禪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람으로는 五祖 弘忍 門下의 果閬宣什(연대 미상)이다. 여기에 대한 기록으로는 宗密의 「圓覺經大疏釋義鈔」 卷三之下에서 ‘南山念佛門禪宗’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15)
한편 念佛과 禪을 융합하려는 노력은 淨衆宗을 대표하는 無相和尙(684~762)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歷代法寶記」에 의하면, 無相和尙은 新羅出身으로 引聲念佛16)을 하면서 定慧, 곧 禪을 닦도록 이끌었다고 되어 있다.
金和尙은 每年 12월, 정월 四部大衆의 百千萬人과 인연을 맞이하여 道場을 엄정하게 설치하고 高座에 올라 說法하였다. 먼저 引聲念佛을 가르치고 숨 한 번[一氣]의 念佛이 다하면, 소리내는 것을 그치고 조용히 念佛을 마친 다음, 無憶․無念․莫忘을 說하시길, 無憶, 이것이 戒이다. 無念, 이것이 바로 定이다. 莫忘, 이것은 智慧라고 하였다.17)
또한 念佛禪은 法眼文益(885~958)에 의해서 행해졌고 永明延壽(904~975)에 의해서 강조된 수행방법으로 南宗禪의 일파인 法眼宗의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기는 당나라가 멸망하고 송나라가 건립되기 이전인 五代에 속하는 때이다. 당나라 禪宗이 분파를 이루면서 자신들의 수행방법만이 최고라고 주창함에 따라 많은 폐단을 낳았기 때문에 法眼文益은 불교의 수행방법을 총망라하여 자신의 근기에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禪淨一如의 사상이 강조된 것은 永明에 의해서인데, 그의 「參禪念佛四料揀」18)은 禪淨雙修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19) 이러한 禪淨一如의 사상은 宋代의 일반적인 분위기로 曹洞宗의 眞歇淸了(1088~1151)에게서 유사한 경향이 보인다.20) 元代에 들어서면서 高峰原妙(1238~1295) 계통인 中峰明本은 永明의 禪淨雙修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21) 中峰明本에게 있어 禪定一如는 禪의 곁가지가 아니라, 중심된 思想의 하나이다. 이를 계승한 이는 그의 제자인 天如惟則이고 明代에 와서는 雲棲에게로 계승되고 있다.22)
이상에서 이러한 禪淨一如의 念佛禪 思想을 經典의 根據와 역사적으로 살펴본 것을 정리해보면, 經典에서는 「文殊說般若經」을 들 수가 있고, 語錄에서 최초로 禪淨一如 念佛禪 사상의 근거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은 道信의 「入道安心要方便法門」이다. 그 사상의 흐름은 五祖 弘忍의 제자 宣什과 淨衆宗의 無相, 그리고 宋代의 法眼을 거쳐 永明에게서 강조되었으며, 元代에 와서는 中峰이 계승하여 그의 제자 天如로 이어져 明代에 와서 雲棲에게로 계승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光宗朝에 이르러 法眼宗의 永明延壽 門下에서 수학한 승려들에 의해 도입되어 대각국사의 天台宗 開倉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보조의 定慧結社 성립에도 많은 역할을 하였다.
4. 念佛禪의 定義
念佛禪이란, 말 그대로 염불과 禪이 합치된 복합명사이고, 이는 염불의 他力的인 신앙과 禪의 自力的인 수행을 하나로 합치시켜서 解脫涅槃을 이루고자 하는 수행법이다.
淸華(1923~2003)는 念佛禪에 대한 定義를 내릴 때 「觀無量壽經」을 인용하여 念佛禪의 근거를 두고, 자신이 번역한 「淨土三部經」의 「解題」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극락세계를 念願하고 아미타불을 생각하며 그 名號를 부르는 염불 공부는 眞如自性을 여의지 않는 참선 공부와 본래 優劣이 없으니, 염불과 禪은 일치한 것이다. 그리고 念佛과 參禪이 둘이 아닌 禪淨一如의 뜻이 담긴 대표적인 법문은 「觀無量壽經」의 다음 구절을 들 수 있다. “모든 부처님은 바로 法界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이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할 때 이 마음이 바로 三十二相과 八十隨形好를 갖춘 원만 德相이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루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니라”.23)
이것으로 볼 때 淸華의 念佛禪은 自性을 여의지 않는 實相念佛을 하는 것을 念佛禪이라고 정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懶翁慧勤(1320~1367)의 唯心淨土 自性彌陀에 해당하는 偈頌에는 다음과 같이 念佛禪을 표현하고 있다.
阿彌陀佛 어느 곳에 계시는가?
마음에 붙들고서 간절히 잊지 않는다면,
念佛하는 一念은 一念마져 끊어진 無念處24)에 도달하여
六根門에 항상 紫磨金色光明을 놓으리.25)
라고 되어 있다. 이 게송에서는 ‘阿彌陀佛’이라는 名號를 一心不亂하게 부르다보면 염불하는 그 一念마져 끊어져 無念의 境地에 도달하고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표현하는 六根門에 항상 紫磨金色光明(부처님 몸에서 나는 자줏빛 광명)을 놓는다. 즉 이 몸 이대로 阿彌陀佛을 이루게 됨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게송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염불을 하느냐보다는 一心不亂으로 염불하여 念佛三昧를 성취하는 無念의 境地에 들어감을 더욱 더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禪’을 禪定 혹은 定(三昧), 心一境性, 一心不亂 등의 뜻으로 본다면 稱名念佛, 觀像念佛, 觀想念佛, 實相念佛, 參究念佛 등 어떠한 종류의 염불이든 다만 마음을 念佛에 집중하여 一心不亂이 되게 하거나, 三昧에 들거나 無念의 境地에 이른다면 그것을 念佛禪이라고 해야될 것 같다. 따라서 念佛禪이란 자신의 여건과 취향에 맞는 念佛法을 선택한 다음 “마음을 念佛에 집중하여 一心不亂이 되게 하고서 無念의 境地에 도달하여 解脫涅槃을 성취하는 禪修行法이다.”라고 定義할 수 있다.
5. 念佛禪의 修行方法
앞에서 念佛禪의 定義를 “念佛禪이란 자신의 여건과 취향에 맞는 염불법을 선택한 다음 마음을 念佛에 집중하여 一心不亂이 되게 하고서 無念의 境地에 도달하여 解脫涅槃을 성취하는 禪修行法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念佛禪의 修行方法도 이러한 見解에 입각해서 전개해나가려 한다.
1) 稱名念佛法
‘稱名念佛’이 왜 念佛禪이 되는가? 稱名念佛은 입으로 부처님의 名號를 부르는 念佛法을 말하는데, 或者는 그것이 방편염불이지 어떻게 念佛禪이 되겠는가 하고 의심할 수가 있다. 그러나 「阿彌陀經」에서는 往生要訣로 다음과 같이 說하고 있다.
사리불아, 만약 착한 사람들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그 명호를 굳게 지니어[執持名號], 하루나 이틀이나, 혹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혹은 이레 동안을 두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흐트러지지 않으면[一心不亂], 그 사람의 수명이 다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聖人 대중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투시느니라. 그래서 그는 끝내 마음이 뒤바뀌지 않고, 바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되느니라.26)
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往生要訣로 염불행자가 往生하기 위해서는 “執持名號 一心不亂”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鏡虛(1875~1939)는 “一切法을 根源에서 了達한다면 어찌 禪敎를 분별할 것인가?”라고 하면서 이러한 뜻에서 鏡虛는 「與藤岩和尙」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看話門에서는 惺寂等持하면 반드시 見性한다하고, 念佛門에서는 一心不亂하면 결정코 往生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一心不亂이 어찌 惺寂等持가 아니겠는가? 만약 一心不亂을 他力이라 한다면 惺寂等持가 어찌 他力이 아니며, 만약 惺寂等持를 自力이라 한다면 一心不亂이 어찌 自力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一心不亂과 惺寂等持는 과연 어떤 사람이 더디고 빠르며, 어떤 사람이 어렵고 쉬운가.…27)
이와 같이 鏡虛는 看話門의 惺寂等持(밝게 깨어 있음과 고요한 상태로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평등하게 유지함)와 念佛門의 一心不亂(한결같은 마음으로 산란하지 않음)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이상에서 稱名念佛과 관계되는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稱名念佛이 念佛禪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一心不亂으로 염불을 해야하며, 念佛行者는 이와 같이 一心不亂으로 염불을 행하여 念佛三昧를 성취하고, 阿彌陀佛을 親見하거나 또는 往生을 하게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稱名念佛도 一心不亂으로 행하여 念佛三昧에 도달한다면 念佛禪이 됨을 알 수 있다.
2) 參究念佛法
「參究念佛」이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念佛을 參究한다’는 말인데, 이는 염불하면서 “지금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念佛者是誰?]”를 參究해가는 수행법이다.
禪淨一如의 參究念佛法의 최초 근거는 허흥식교수에 의해 발표된 것으로 「蒙山和尙의 念佛話頭法」과 「蒙山和尙念佛法語」를 들고 있는데 여기서는 「蒙山和尙의 念佛話頭法」을 소개한다.
「蒙山和尙念佛話頭法」
‘나무아미타불’하는 十二時중 四威儀28)에서 혀는 움직이지 말고 또한 마음도 昧하지 말며 ‘이 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를 때때로 점검하여 스스로를 返照하여 보라. 이 몸은 허망하여 잠시 빌린 것이라 오래지 않아 죽어서 썩어지면 염불하는 자는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이와 같이 열심히 닦아 오랜 세월이 지나면 자연히 이 육신을 떠나지 않았을 때 곧 西方에 도달하여 아미타불을 친견하게 된다. 이때 천만번 다시 아름답고 빛나는 광채[精彩]를 붙들고서 勇猛心을 발휘하여 間斷없이 공부하라. 그러면 자연히 고향집에 도착하는 時節이 있으리니 소홀히 하지 말라.29)
이 念佛話頭法에서는 南無阿彌陀佛이라는 염불을 話頭公案의 입장에서 수용한 것으로, 그 염불하는 방법은 한편으로는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念者是誰]’를 參究하는 것이다. 參究하는 방법 또한 다른 話頭를 參究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 법문에서도 강조되는 것은 온종일[十二時中] 行住坐臥에 있어서 勇猛心을 발휘하여 間斷없이 즉 一心不亂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닦으면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이 육신을 떠나지 않고서도 阿彌陀佛을 친견한다 했으니, 내 自性이 바로 阿彌陀佛이며 唯心淨土임을 일러주는 가르침이라 하겠다.
이것은 南宋에서 발전된 看話禪法이 念佛에 그대로 적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淨土宗의 念佛法으로 분류한다면 소리를 중시하는 稱名念佛이 아니라 마음을 觀하고 念하는 觀念念佛에 해당되며, “色身을 떠나지 않고서 아미타불을 친견한다”했으니 名號不思議에서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는 他力的인 요소와 自性에서 今生에 阿彌陀佛을 친견하는 自力的인 요소가 융합된 禪淨一如의 念佛禪 修行法이라 하겠다.
3) 觀念念佛法
‘念佛’이란 부처님을 念하는 것이다. 여기서 念한다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는 smṛti이며, 빨리어로는 sati를 말한다. 그 의미는 알아차림, 깨어 있음, 想起[생각해냄], 記憶[대상을 기억하는 것], 憶念[대상을 기억하여 잊지 않음]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佛’이란 말은 빨리어 buddha의 音譯인데, 覺者[진리를 깨달은 사람]라고 漢譯하는데, 여기서는 佛身, 佛名, 覺, 眞如, 實相을 뜻하므로 부처님의 깨달음일 수도 있으며, 佛身이나 名號 자체일 수도 있다.30)
念佛法에 대한 분류로는 圭奉宗密(780~841)의 「華嚴經行願品別行疎鈔」에서는 稱名念佛, 觀像念佛, 觀相念佛, 實相念佛로 구분하고 있는데, 稱名念佛은 佛名號를 입으로 소리내어 부르면서 하는 염불이고, 觀像念佛은 佛像을 관하면서 하는 염불이며, 觀相念佛 혹은 觀想念佛은 부처님의 相好․功德․莊嚴 등을 觀하면서 하는 염불이며, 實相念佛은 자신과 아울러 一切 諸法의 眞如自性인 法身을 관하면서 하는 염불을 말하기 때문에 稱名念佛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는 觀念念佛에 해당된다.
觀念念佛이 念佛禪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 一心不亂으로 佛身․相好․佛像․光明․眞如․自性․法身․實相 등을 觀하고 念하여 三昧를 이룰 때 비로소 念佛禪이라고 할 수 있다.
4) 耳根圓通稱名念佛法
‘耳根圓通稱名念佛法’31)이라는 말은 “단지 부처님의 名號를 부르는 稱名念佛에다 念佛하는 소리를 觀하는 耳根圓通32) 원리를 겸하여 無念의 境地에 이르러 涅槃을 성취하는 禪淨雙修의 수행법”을 말한다.
소리를 觀하면서 수행한다는 것은 耳根(귀의 감각기관)을 활용한다는 것인데, 耳根이란 六根 가운데 가장 靈敏한 것으로, 이 耳根을 활용하여 三昧에 들어 成道하는 수행방법은 「楞嚴經」의 「二十五圓通章」에 다음과 같이 說해져 있다.
부처님께서 文殊菩薩에게 묻기를, “스물 다섯 분의 大菩薩들과 阿羅漢들이 제각기 처음에 成道하던 方便을 말하면서 나름대로의 修行法을 제시했지만, 阿難과 末法時代의 중생들이 菩薩乘에 들어가고 無上道를 구하려면 무슨 方便을 써야 쉽게 성취하겠는가?”라고 묻고 있다. 이에 文殊菩薩이 대답하길, “스물 다섯 분의 善知識들 가운데 觀世音菩薩의 耳根圓通法이 가장 殊勝합니다.”라고 찬탄하고 있다. 이와 같이 「楞嚴經」에서 阿難과 末法時代의 衆生들을 救援하고 涅槃妙心을 성취하는 가장 殊勝한 方便으로 제시한 修行法이 바로 耳根圓通法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筆者가 稱名念佛에다 耳根圓通 原理를 겸하여 수행하는 「耳根圓通稱名念佛法」을 행하게 된 세 차례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맨 처음엔 출가하기 전에 1988년 冬安居때 경상북도 영풍군 순흥면 小白山 聖穴寺에서 百日觀音祈禱를 봉행하면서 峰徹禪師(주지스님)께서 高聲念佛을 권하여 高聲으로 觀世音菩薩을 부르면서 단지 내 염불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서 五體投地의 절을 하다보니 주변의 스님이나 불자들이 전혀 의식이 되지 않고 一心不亂하게 念佛이 되었다. 이렇게 백일간 하면서 자신의 염불소리를 들으면서 염불을 할 때 쉽게 몰입이 되고, 一心不亂하게 염불을 할 수 있음을 체험하였지만, 어떠한 원리에 의해서 잡념망상이 쉽게 사라지고 몰입이 쉽게 되는지를 잘 몰랐었다. 그렇지만 그 때 약간의 종교적인 체험이 있었기에 그 이듬해에 곧바로 전남 곡성군 죽곡면 桐裡山 泰安寺에 가서 淸華禪師를 恩師로 출가를 하게 되었었다.
두 번째는 앞의 경험을 가진 뒤 10년째 되던 해(1998년)에 전남 장흥군 대덕읍 天冠山 般若臺 土窟에서 3년간33) 정진을 하면서 처음 1년간 大悲呪를 하루 천 번 이상 외우는 기도를 할 때의 일이다. 그 때는 낮 동안엔 혼자서 토굴을 지어가면서 공부를 해야 했으므로 좌선을 위주로 수행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부도 하면서 일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보니 예전의 禪師들은 본철 安居에는 좌선을 위주로 하고 산철에는 3개월 동안에 大悲呪34) 10만 번을 외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大悲呪 呪力修行을 하게 되었다.
처음 4개월 보름 동안에 大悲呪 십만 번을 마치고, 두 번째로 3개월 보름동안에 다시 십만 번을 해나가던 어느 날 大悲呪 呪力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達磨大師를 친견하게 되었다. 그 때 달마대사께서 筆者에게 이르시길, “그런데 너는 念佛할 때 입으로만 하지 말고 소리를 觀하면서 염불을 해라.” 하시면서 2층 종각으로 데려갔는데, 가서 보니 거기엔 우리가 초등학교 때 보았던 학교에 매달린 작은 鐘 정도 되는 것들이 두 줄로 14개가 매달려 있었다.35) 달마대사는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종채로 종을 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소리를 들으라”고 하시면서 시범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나서 꿈을 깨었는데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나서 메모를 해두었다. 메모를 하면서 보니, “소리를 觀하라”는 말을 한자로 쓰니까 ‘觀音’이 되었다. ‘觀世音菩薩’을 약해서 ‘觀音菩薩’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보통 이해하기로는 ‘觀世音菩薩’은 慈悲化身으로서 중생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觀하여 서른 두 가지 應身을 나투어 그 苦難을 구제해주는 보살이라고 「楞嚴經」을 통해 익히 알고 있지만, 자신이 염불을 하면서 그 소리를 들으면서 수행을 하면 쉽게 一心不亂이 되어 스스로 觀音菩薩이 되어 감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부터 입으로는 대비주를 외우고 귀로는 그 소리를 들어가면서 수행을 하다보니 잡념망상이 덜하여 공부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는 2,000년 5월에 전남 강진군 도암면 萬德山 白蓮寺에서 중국의 寬淨禪師(이후 寬淨이라고 약칭함)36)와 인연이 되어 30여 차례의 法門 통역을 맡으면서 ‘淨土禪’37)을 배우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 수행법도 예전에 達磨大師에게서 꿈을 통해 전해 받은 “소리를 觀하면서 念佛하는 수행법”과 契合이 되었다.
이번엔 寬淨의 語錄에 해당되는 拙譯, 「극락은 있다」에 실려 있는 “淨土禪이란 무엇인가?”관한 「阿彌陀佛의 說法」과 「觀世音菩薩의 說法」의 내용을 소개하려 한다.
「阿彌陀佛의 설법」
九品蓮花를 다 돌아본 뒤에, 우리들은 또 아미타불 앞에 五體投地로 三拜를 올리고 가르침을 주시길 간절하게 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미타불께서 金口로써 매우 신중하게 한 구절 한 구절씩 말씀해 주시길, “衆生의 佛性은 한결같이 평등한데, 意識이 뒤바뀌어 환상을 진실로 여기고, 因緣果報로 인하여 六道에 生死輪廻가 끊이지 않아서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四十八願 가운데는 중생을 제도하는 誓願이 있으니 男女老少가 信[신심]․願[발원]․行[실천]을 一心不亂하게 하면 그것이 곧 淨土禪이며, 이것이 곧 十念이며, 결정코 왕생하게 되는 것이다.38)
“耳根圓通稱名念佛法이란, 여타 수행법들의 번쇄함을 다 떨쳐버리고 간소화하여 다만 ‘나무아미타불’ 한마디 名號만 사용하면서 耳根圓通法을 곁들여서 一心不亂으로 無念의 境地에 도달하여 解脫涅槃을 성취한다”고 하는 수행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耳根圓通稱名念佛法’에서도 기본적으로 一心으로 염불하여 無念의 境地라는 念佛三昧를 갖추어야 念佛禪이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念佛禪 수행법으로 稱名念佛法, 參究念佛法, 觀念念佛法, 耳根圓通稱名念佛法 등의 念佛禪 修行法을 살펴보았다. 이들 각각의 수행법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것은 마음을 一心不亂하게 하여 念佛三昧에 들어가야 念佛禪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一心不亂과 三昧를 갖추지 못한 염불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善業을 짓는 정도의 念佛修行에 불과한 것이지 念佛禪이라고 말하기엔 곤란하다. 따라서 단지 염불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念佛禪이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고 주장하면 그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설사 觀念念佛이나 參究念佛을 택하여 가부좌 자세로 앉아 阿彌陀佛을 觀念하거나 參究하면서도 온갖 번뇌 망상과 昏沈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念佛禪을 닦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란한 마음으로 단지 善業을 닦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念佛禪」이란 위에서 제시한 여러 가지 念佛修行法 중에서 자신의 여건과 취향에 맞는 念佛法을 선택한 다음 “마음을 念佛에 집중하여 一心不亂이 되게 하고서 無念의 경지에 도달하여 解脫涅槃을 성취하는 禪修行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Ⅲ. 中國 禪師들의 念佛禪
위에서 禪淨一如의 念佛禪의 효시와 定義 그리고 修行方法 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中國佛敎史에 있어서 念佛禪을 수행한 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初期 禪宗에서 四祖 道信의 一行三昧와 念佛方便에 대해서 살펴보고, 永明延壽(904~975)의 念佛禪 에 대해 고찰하려 한다.
1. 道信의 一行三昧와 念佛方便
중국에서 禪宗의 역사가 명확해지고, 禪宗의 사상적인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은 初祖 達磨(?~528)로부터 계산하여 4대째 祖師가 되는 道信(580~651)과 그 제자 弘忍(601~674)의 시기부터이다. 이 때를 東山法門이라 한다. 達磨․慧可․僧璨은 禪의 불씨를 품에 안고, 시절인연을 기다렸다면 道信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그가 雙峰山에 30년 동안이나 주석한 결과 오백의 대중들이 모였으며, 비로소 叢林을 이루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대개 修禪 납자들도 律宗의 사원에 더부살이를 하거나 혼자 深山에 은거하였던 것이다. 東山法門의 시기부터 한 스승을 중심으로 많은 수행자들이 한 장소에 머물면서 참선수행을 하였다.
道信은 俗姓이 司馬였다. 원래 河內에서 살았으나 蘄州 廣濟縣으로 옮겨 살았다. 「傳燈錄」의 기록에 의하면, “어릴 적부터 영특했고 전생에 익힌 듯 空宗의 解脫門을 흠모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대단한 정진력을 가졌던 善知識으로 전해온다. 「歷代法寶記」에는 그가 마음 챙김을 잘하여 寐함이 없이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고[長坐不臥] 60년 동안이나 禪수행을 하였다고 한다.39) 당시 沙彌였던 道信이 僧璨을 만난 것은 14세 때의 일이다. 「傳燈錄」에 보면 菩提達摩와 慧可(487~593), 慧可와 僧璨(?~606)의 경우와 같은 安心法門이 僧璨과 道信 사이에도 교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道信이 법을 청하길, “원컨대 慈悲를 베푸시어 해탈하는 法門을 일러 주십시오.” 僧璨이 이르길, “누가 너를 속박했느냐?” 道信이 대답하길, “아무도 결박하지 않았습니다.” 僧璨이 이르길, “그렇다면 무슨 해탈을 구하는가?” 이에 道信이 言下에 大悟하고서 9년을 侍奉하였다.40)
僧璨이 雲水行脚을 떠날 때, 道信은 잠시 吉州에 머물다가 廬山의 大林寺에서 10년 동안 머문다. 그 때 大林寺에는 智錯法師가 주석하고 있었다. 智錯은 三論宗의 棲霞山 法郞의 제자로서 天台의 止觀을 닦고 있었다. 이에 道信은 智錯으로부터 三論과 天台를 배움으로써 般若思想을 깊이 체득하게 된다. 왜냐하면 三論과 天台는 그 근저에 般若思想을 깔고 있다. 三論宗은 般若思想을 宣揚한 「中論」, 「十二門論」, 「百論」 등을 所依로 하고 있으며, 天台宗도 역시 그 같은 般若․空觀의 논리 위에서 성립했기 때문이다.
이 一行三昧는 安心과 함께 道信의 주된 思想인데, 「楞伽師資記」의 「道信章」에서는 道信이 一行三昧에 依據해서 수행하고 一行三昧로 大衆을 敎化했음을 다음과 같이 보이고 있다.
“나의 이 法要는 「楞伽經」에서 말한 ‘諸佛의 心이 第一이다’라고 한 法門에 依據하며, 또한 「文殊說般若經」의 ‘一行三昧’에 依據한 것이다. 즉 부처를 念(sati)하는 마음[念佛心]이 부처이고, 妄念이 凡夫이다.” 「文殊說般若經」에 이르길, ‘文殊師利菩薩께서 여쭙기를,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을 이름하여 一行三昧라 합니까”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法界[眞如․法身]는 一相이니 法界를 直觀하는 것[繫緣法界]을 一行三昧라 한다. 만약 善男子 善女人이 一行三昧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땅히 먼저 般若波羅蜜을 듣고 說한대로 修學한 뒤에 一行三昧에 들어갈 수가 있는데, 法界와 같아짐을 인연하여 물러나지 않고[不退], 무너지지 않으며[不壞], 不思議하며, 걸림이 없고[無礙], 無相이 된다. 善男子 善女人이 一行三昧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땅히 여유 있고 한가로운 곳을 선택하여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형상이나 모양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一佛에 붙들어 매어 오로지 부처님 名號를 부르며, 부처님계신 방향을 따라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향하여 한 부처님이 생각생각 서로 이어지면[念念相續] 곧 이 念하는 가운데 능히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게 된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一佛을 念하는 功德은 無量無邊하며, 또한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功德과 다름없고, 不思議하며, 佛法과 평등하여 분별이 없으니, 모두 한결같음[一如]을 힘입어서 無上正等覺을 성취하고, 모두 한량없는 공덕과 한량없는 辯才를 갖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一行三昧에 들어가는 사람은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諸佛法界가 差別相이 없음을 모두 다 아느니라. 무릇 몸과 마음 그 어디나 발을 들고 내림이 항상 道場에 있으며, 베풀고 행하여 움직이는 것이 모두 다 깨달음[菩提]이다.”41)
위의 引用文에서 나타난 것처럼 道信의 禪思想은 “나의 法要는 「楞伽經」에서 말한 ‘諸佛의 心이 第一이다’라고 한 法門과 「文殊說般若經」의 ‘一行三昧’에 의거하여 ‘부처를 念하는 마음[念佛心]이 부처이고, 妄念이 凡夫이다’라는 見解를 가지고 一行三昧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念佛方便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一行三昧란 法界一相을 直觀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만약 一行三昧에 들어가고자 하면 먼저 般若波羅蜜을 修學한 뒤에 寂靜閑處를 선택하여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형상이나 모양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一佛에 붙들어 매어 오로지 부처님 名號를 부르면서 생각생각에 지속시켜 나가다보면 이와 같이 부처를 念하는 가운데 능히 과거․미래․현재의 諸佛을 친견하게 되고 一行三昧를 성취하게 된다고 說하고 있다. 그리고 一行三昧에 들어간 사람은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諸佛法界가 差別相이 없음을 모두 알게되고 무릇 몸과 마음 그 어디나 행동하는 모든 것이 菩提(깨달음․진리)임을 證得하게 된다고 說하고 있다. 이처럼 道信은 「文殊說般若經」을 그대로 인용하여 一行三昧가 禪의 要諦임을 보이고, 念佛方便이 一行三昧의 구체적인 行法임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道信의 一行三昧와 念佛方便은 初期 禪宗의 修行法 가운데 念佛禪의 근거가 되는 최초의 法門이라 할 수 있다.
2. 永明延壽의 參禪念佛四料揀
禪宗이 達磨大師를 開宗祖로 하여 오늘에 이르는 동안 시간과 공간을 통하여 많은 變化를 가져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慧能(638~713) 이후 발전된 唐 時代의 禪宗은 스스로 淨土宗에 대해서 우월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독자적인 禪思想을 五家宗風으로 발전시켰다. 반면에 淨土宗도 唯識, 華嚴, 天台 등의 敎學體系와 긴밀한 교섭 관계를 가지면서 독자적인 전통을 확립하였다. 그런데 唐 武宗의 破佛(845년)과 五代의 戰亂에 이어서 後周의 世宗이 다시 955년에 破佛을 단행함으로써 불교는 쇠약해졌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 아래 永明延壽(904~975)는 法眼宗의 第3祖에 속하는 有名한 禪匠이지만, 禪一邊倒로 치우치지 않고, 天台, 賢首, 慈恩, 淨土 등 宗旨에도 깊히 통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새롭게 다시 불교의 재건을 위한 禪淨一如의 사상을 강조하여 唐末 宋初의 禪宗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42) 그의 念佛禪 사상에 관한 내용은 「參禪念佛四料揀」에 잘 나타나 있다.
參禪念佛四料揀
① 禪만 있고 淨土가 없는 경우, 열 사람 가운데 아홉이 길에서 어긋나 만약 陰境이 現前하면 순간 그것을 따라간다.
② 禪은 없고 오직 淨土만 있는 경우는, 萬사람이 닦으면 萬사람이 阿彌陀佛을 친견할 수가 있으니 어찌 깨닫지 못할까 걱정하겠는가?
③ 禪이 있고 淨土도 있으면, 마치 호랑이가 뿔을 단 것처럼 現世에서 인간의 스승이 되고 來生에서는 부처와 祖師가 된다.
④ 禪과 淨土가 모두 없는 경우는 鐵로 된 平床과 銅으로 된 기둥과 같아서 만 겁에 몇 천 생을 태어나더라도 의지하고 믿을 데가 없다.43)
위의 첫 번째 ‘禪만 있고 淨土가 없는 경우’는 당시의 禪宗界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다. ‘열 사람 가운데 아홉 사람까지는 잘못된 길에 떨어질 확률이 있다는 것’은 禪의 限界를 지적한 것으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만일 坐禪 중에 무엇이 나타나면 거기에 정신을 빼앗겨 禪定에 들 수가 없고 순식간에 魔群의 길로 빠져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淨土만 있는 경우’는 念佛하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말이다. ‘오직 淨土만 수행하는 이들은 만에 하나라도 잘못됨이 없이 阿彌陀佛을 親見하여 깨달을 수 있으니, 만약 현세에서 깨닫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加被力에 의해 往生하여 不退位에 이르게 되니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이로 미루어 보면 永明은 禪보다는 念佛을 더욱 重視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의 ‘禪도 있고 淨土도 있는 경우’는 禪淨雙修의 입장을 가장 이상적인 수행의 형태로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뿔 달린 호랑이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强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현세에서 사람들의 스승이 될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는 佛祖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네 번째의 ‘禪도 없고 淨土도 없는 경우’는 暗中摸索44)하듯 수행하고 있는 수행자거나, 수행을 하지 않는 범부 또는 外道수행자를 두고 하는 말인 듯 싶다. ‘이들은 철로 된 平床이나 구리로 된 기둥 같기 때문에 萬劫 千生이 지나더라도 그 자체는 변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그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이미 佛理에 어둡고 또한 往生을 원하지 않으므로 영겁토록 沈淪에 빠져 어찌 여기를 벗어나 生死를 초월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속히 不退位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은 이 네 가지 중에 가장 올바른 것을 택하여 잘 수행할지어다’라고 하였다.45)
이와 같은 永明의 「參禪念佛四料揀」은 禪淨一如의 念佛禪이 다른 수행과 비교하여 그 優劣을 論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무거운 業障을 제거하고 身心을 채찍질하는데는 一門만을 究竟으로 고집해서는 안된다”46)는 시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주장은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禪淨雙修를 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念佛禪의 發展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Ⅳ. 韓國 禪師들의 念佛禪
우리나라에서는 高麗 光宗이 永明延壽가 지은 「宗鏡錄」47) 등의 著書를 보고 크게 감화를 받아 弟子의 禮를 갖추어 편지와 함께 金襴袈裟, 紫水精數珠, 金澡罐 등의 선물을 보내었고, 이때 法眼宗 永明延壽 門下에서 入宋遊學한 道峰, 慧炬 등 36名이 귀국하여 이러한 禪淨一如의 念佛禪 가풍을 형성하였다.48) 이러한 사상은 太古, 懶翁, 涵虛, 西山, 四溟 등의 法語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本章에서는 高麗時代 懶翁의 念佛禪과 朝鮮時代 西山의 念佛禪을 살펴보고, 近代에 와서는 金陀의 “菩提方便門”에 나타난 念佛禪에 대하여 考察하고자 한다.
1. 懶翁의 念佛禪
懶翁慧勤(1320~1376)은 太古普愚와 더불어 고려말의 禪風을 진작한 禪師이다. 그는 元나라에 들어가 10년간 있으면서, 平山處林(1279~1361)과 指空和尙(?~1363)에게서 修學하였다.49) 종래의 한국의 禪宗思想에서는 唯心淨土만을 주장하여 念佛을 公案化한 것만을 受用하여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懶翁에 있어서의 淨土思想은 순수한 淨土敎의 주장인 西方淨土의 稱名念佛과 唯心淨土의 無念念佛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이는 懶翁의 淨土觀이 二重的 구조를 띠고 있는 것으로 그의 淨土思想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으며,50) 그의 敎化 방법이 敎와 禪 그리고 淨土의 한편만을 국집하지 않고 根機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쓰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懶翁의 다음의 게송에서는 自性彌陀인 唯心淨土를 설하고 있슴을 알 수 있다.
阿彌陀佛 어느 곳에 계시는가?
마음에 붙들고서 간절히 잊지 않는다면,
念佛하는 一念은 一念마져 끊어진 無念處에 도달하여
六根門에 항상 紫磨金色光明을 놓으리.”51)
이 게송에서는 ‘阿彌陀佛’이라는 名號를 붙잡고 간절하게 부르다보면 염불하는 그 一念마져 끊어져 無念의 境地에 도달하고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표현하는 六根門에 항상 紫磨金色光明을 놓는다. 즉 이 몸 이대로 阿彌陀佛을 이루게 됨을 표현하여 西方淨土의 阿彌陀佛이 아니라 自性彌陀인 唯心淨土를 說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西山의 念佛禪
西山(淸虛休靜, 1520~1604)은 崇儒抑佛의 受難期에 불교의 학문적 中興을 이룩한 朝鮮朝의 禪僧이다. 특히 西山은 禪法에 입각한 불교의 전체적 이해와 調和라는 측면에서도 크게 주목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西山의 禪淨一如 念佛禪 사상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내용은 「心法要抄」의 「念頌」에서 “參禪과 念佛이 둘이 아니며, 參禪이 곧 念佛이요 念佛이 곧 參禪이다.”라고 다음과 같이 說하고 있다.
西方의 念佛法은 반드시 生死를 초월할 수 있다. 만약에 心口가 相應한다면 손가락을 한 번 퉁기는 동안에 往生할 것이다. 一念에 연꽃을 밟을 것인데 누가 八千里라고 말하겠는가? 功을 이뤄 목숨을 마칠 때를 기다린다면 大聖께서 오셔서 그대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므로 參禪이 곧 念佛이고, 念佛이 곧 參禪인 것이며, 根本 性品은 方便을 떠나 밝고 밝으며[昭昭] 고요하고 고요할[寂寂] 뿐이다.52)
念佛과 參禪法은 成功하면 이치에는 차이가 없다. 몸과 마음을 놓아버리면 반드시 마른 나무에 꽃이 필 것이다.53)
위의 첫 번째 引用文에서는 念佛로서 往生함을 說하면서 동시에 參禪이 곧 念佛이요, 念佛이 곧 參禪이라고 하여 禪淨一如의 念佛禪 思想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인용문에서도 역시 念佛과 參禪이 수행을 성취했을 때는 이치에 차이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3. 金陀의 「菩提方便門」에 나타난 念佛禪
「菩提方便門」은 金陀가 禪定 중에 感得한 碑銘의 金石文으로, 「菩提方便門」의 碑尾文에 ‘龍樹菩薩(B.C. 2~3세기)’이라 쓰여 있었으며, 「菩提方便門」을 得持한지 三十二日만에 得見本性하였던 珍本이다.54) 따라서 이것은 龍樹菩薩이 著述한 論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으며, 見性悟道의 方便이 되는 가르침인데,55) 그 原文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菩提方便門」
위의 菩提란 覺의 義로서 菩提方便門은 見性悟道의 方便이라. 定慧均持의 心을 一境에 住하는 妙訣이니 熟讀了義한 후 寂靜에 處하고 第一節만 寫하야 端坐正視의 壁面에 付하야 觀而念之하되 觀의 一相三昧로 見性하고 念의 一行三昧로 悟道함.
心은 虛空과 等할새 片雲隻影이 無한 廣大無邊의 虛空的 心界를 觀하면서 淸淨法身인달하야 毘盧遮那佛을 念하고, 此虛空的 心界에 超日月의 金色光明을 帶한 無垢의 淨水가 充滿한 海象的 性海를 觀하면서 圓滿報身인달하야 盧舍那佛을 念하고, 內로 念起念滅의 無色衆生과 外로 日月星宿 山河大地 森羅萬象의 無情衆生과 人畜乃至蠢動含靈의 有情衆生과의 一切衆生을 性海無風 金波自湧인 海中漚로 觀하면서 千百億化身인달하야 釋迦牟尼佛을 念하고, 다시 彼無量無邊의 淸空心界와 淨滿性海와 漚相衆生을 空·性·相 一如의 一合相으로 通觀하면서 三身一佛인달하야 阿(化)彌(報)陀(法)佛을 常念하고, 內外生滅相인 無數衆生의 無常諸行을 心隨萬境轉인달하야 彌陀의 一大行相으로 思惟觀察할지니라.
위의 「菩提方便門」의 序頭 부분을 살펴보면, 여기에서는 「菩提方便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제목 설명과 그리고 見性悟道의 方便門인 이것을 어떻게 觀하고 念하는지에 대해 觀의 一相三昧로 見性하고 念의 一行三昧로 悟道한다고 하여 見性悟道의 方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菩提方便門」은 見性悟道의 方便門이고, 定慧雙修의 妙訣이며 觀의 一相三昧로 見性하고 念(sati)의 一行三昧로 悟道하는 것으로 禪淨一如의 念佛禪 要訣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一相三昧와 一行三昧에 대한 말은 經典의 理論的 指針에 의해 禪觀을 실천했던 初期 禪宗의 禪수행 중심에서 「文殊說般若經」의 一行三昧를 根據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四祖 道信(580~651)은 「入道安心要方便法門」에서 一行三昧를, 六祖 慧能(638~713)은 「六祖壇經」의 「付囑第十」에서 一相三昧와 一行三昧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고, 「禪關策進」의 「諸經引證節略」에서도 「文殊般若經」을 引用하여 一行三昧의 功德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Ⅴ. 結論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念佛禪 修行法을 考察하면서 念佛禪이란, 여러 가지의 念佛法 중에서 자신의 여건과 취향에 맞는 修行法을 선택한 다음, 마음을 念佛에 집중하여 一心不亂이 되게 하고서 無念의 경지에 도달하여 解脫涅槃을 성취하는 禪修行法임을 밝히고, 念佛禪의 효시와 念佛禪 修行方法들을 소개하였으며, 中國 禪師들의 念佛禪 그리고 韓國 禪師들의 念佛禪까지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한 가지 修行法을 가지고 닦아나갈 때 雜念妄想과 昏沈에 빠져있으면서 외형적으로만 禪수행을 하고 있는 경우는 禪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문제가 있으며, 이러한 형식적인 방법만 가지고 念佛禪인지 아닌지를 주장하는 것은 再考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왜냐하면 禪이라는 用語를 사용하려면 기본적으로 一心不亂․三昧․惺寂等持․無念 등의 조건을 갖추었을 때 가능한 것이며,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서 念佛을 하면 念佛禪이 되는 것이고, 話頭公案을 가지고 수행을 하면 看話禪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初期 禪宗의 四祖 道信에서부터 시작하여 宋代 永明延壽에 의해 강조된 禪淨一如의 念佛禪 사상은 元代에 와서 看話禪과 융합하여 參究念佛法으로 발전을 가져왔으며, 이러한 禪淨一如 사상은 우리나라에서도 高麗의 光宗朝에 法眼宗 永明延壽 門下에서 수학한 승려들에 의해 流入되어 하나의 家風을 형성하여 太古, 懶翁, 涵虛, 西山, 四明, 金陀, 淸華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데 그 중에서 高麗末 懶翁의 念佛禪과 朝鮮時代 西山의 念佛禪, 그리고 近代 金陀의 「菩提方便門」에 나타난 念佛禪을 살펴보았다.
金陀의 「菩提方便門」은 이러한 가르침들을 會通한 것으로 眞如自性을 여의지 않는 實相念佛이자 觀念念佛이며, 四祖 道信과 六祖 慧能의 禪法을 계승하여 禪淨一如의 念佛禪을 제시한 가르침이라 생각되며, 또한 佛敎 諸宗의 融合과 禪淨一如의 흐름을 하나의 修行法으로 體系化시킨 가르침이라 생각된다.
오늘날은 모든 정보와 문명의 혜택을 공유하면서 급변하는 지구촌 시대이기 때문에 佛敎에서도 諸宗의 融合은 시대적인 요청이며, 禪淨一如의 念佛禪 修行法은 時機相應한 수행법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 念佛禪 修行法이 大衆的적으로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보다 쉬운 行法의 개발과 알기 쉬운 理論體系, 修行體系, 點檢體系가 조속히 마련될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願我盡生無別念 阿彌陀佛獨相隨 心心相繼玉毫光 念念不離金色相 我執念珠法界觀 虛空緯繩無佛貫 平等舍那無何處 觀求西方阿彌陀 南無西方大敎主 無量壽如來佛 南無阿彌陀佛
1) 主觀과 客觀세계를 想生(主觀思惟)․相生(客觀世界)․流注生(主觀과 客觀세계의 變化無常) 등 三種生으로 나누어 그 하나 하나를 否定해가는 수행법을 말함.
2) 스승으로부터 주어진 話頭公案을 생각하면서 坐禪을 행하는 禪을 말함. 3) 禪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敎外別傳이라 하여, 고요하고 묵묵히 앉아서 모든 생각을 끊고 좌선하는 것을 말함. 4) 雲門文偃이 수행자의 물음에 대해, 항상 一字로서 대답하면서 지도했던 것을 말함. 5) 마음을 念佛에 집중하여 一心不亂이 되게 하고서 無念의 경지에 도달하여 涅槃을 성취하는 禪을 말함. 6) 萬象의 차별의 相을 인정하는 것. 동서남북의 방향을 지정하여, 淨穢大小의 물질적인 相을 인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淨土敎에서 極樂淨土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서쪽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음. 7) 정암, 「불교의 정토사상과 정토경전의 세계」, 「정토경전의 세계」, (부다가야, 2001), pp.29~35 참조. 8) 宗密著, 「禪源諸詮集都序」, (大正藏, 48), p.399上. “禪是天竺之語 具云禪那 中華飜云思惟修 亦云靜慮” 9) 金東華著, 「禪宗思想史」, (寶蓮閣, 1985), p.16. 10) 金東華著, 「禪宗思想史」, (寶蓮閣, 1985), pp.16~17. 11) 金東華著, 「禪宗思想史」, (寶蓮閣, 1985), pp.17~18. 참조. ) 印鏡, 「禪淨一致에 관한 思想史的 考察」, 「大覺思想」 3, (대각사상연구원, 2000). pp.174~175. 참조.13) 梁扶南國三藏曼陀羅仙譯, 「文殊師利所說摩訶般若波羅蜜經」卷下, (大正藏 8), p.731上中. “文殊師利白佛言 世尊 當云何行能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佛言 文殊師利 如般若波羅蜜所說行 能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復有一行三昧 若善男子善女人修是三昧者 亦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文殊師利言 世尊 云何名一行三昧 佛言 法界一相 繫緣法界是名一行三昧 若善男子善女人 欲入一行三昧 當先聞 般若波羅蜜 如說修學 然後能入一行三昧 如法界緣 不退不壞不思議 無礙無相 善男子善女人 欲入一行三昧 應處空閒 捨諸亂意 不取相貌 繫心一佛 專稱名字 隨佛方所 端身正向 能於一佛念念相續 卽是念中能見過去未來現在諸佛 何以故 念一佛功德無量無邊 亦與無量諸佛功德 無二不思議 佛法等無分別 皆承一如成最正覺 悉具無量功德無量辯才”
14) 釋正覺著, 「楞伽師資記」, (大正藏, 85), pp.1286下~1287上. “善男子善女人 欲入一行三昧 應處空閒 捨諸亂意 不取相貌 繫心一佛 專稱名字 隨佛方所 端身正向 能於一佛念念相續 卽是念中能見過去未來現在諸佛 何以故 念一佛功德無量無邊 亦與無量諸佛功德無二不思議 佛法等無分別 皆承一如成最正覺 悉具無量 功德無量辯才”
) 한보광, 「念佛禪이란 무엇인가?」, 「佛敎硏究, 10」, (한국불교연구원, 1993.), p.147. 16) 일정한 곡조에 맞추어서 염불을 외우는 것을 말함.
17) 撰者不詳, 「歷代法寶記」, (大正藏, 51), p.185上, “金和尙 每年十二月正月 與四衆百千萬人受緣 嚴說道場處 高座說法 先敎引聲念佛 盡一氣念 絶聲停念訖 說云 無憶無念莫忘 無憶是戒 無念是定 莫忘是慧”
18) 다음 장 「永明延壽의 禪淨一如」에서 소개하고 있음. 19) 韓普光, 「念佛禪의 修行方法」, 「淨土學硏究」 제5집, (如來藏, 2002),, p.175. 20) 眞歇淸了禪師著, 「淨土宗要」, (卍續藏經, 124), p.319上. “彌陀不離衆生心 是三無別 極樂徧在一切處.” 21) 「天目中峰和尙廣錄」, (佛敎大藏, 73), p.1100. “禪이란 곧 淨土의 禪이며 또한 淨土는 禪의 淨土이다. 옛날에 永明和尙은 淨土와 禪을 四料揀으로 분류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배우는 이들이 그 뜻을 모르고 서로 반목한다. 禪은 스스로 禪이고, 淨土는 스스로 淨土라고 하여 參禪은 生死를 了達하는데 있고, 念佛도 마찬가지로 生死를 了達하는데 있음을 알지 못한다.” 22) 印鏡, 「禪淨一致에 관한 思想史的 考察」, 「大覺思想」 3, (대각사상연구원, 2000), p.181. 23) 淸華譯, 「淨土三部經」, (을지출판사, 1994), p.55. “諸佛如來是法界身 入一切衆生心想中 是故汝等想佛時 是心卽是三十二相八十隨形好 是心作佛 是心是佛.” 24) 無念處는 阿彌陀佛 一念이 지속되다 어느 순간 그 일념마져 끊어진 我空․法空의 상태에 도달함을 말함. ) 「答妹氏書」, 「懶翁和尙語錄」, (韓國佛敎全書 6), p.728. “阿彌陀佛在何方 着得心頭切莫忘 念到念窮無念處 六門常放紫金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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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寬淨禪師(1924~)께서는 중국에서 近代 四大名僧 가운데 한 분인 虛雲禪師(1840~1959)의 제자로 1967년 10월부터 1974년 4월 8일까지 6년 5개월 동안 觀世音菩薩의 引導를 받아 극락세계를 參觀 하면서 ‘淨土禪’을 배우고 阿彌陀佛로부터 사바세계에 전하라는 부촉을 받은 不可思議한 체험을 하신 분이다. 현재는 中國 福建省 仙遊縣 滴水岩寺에 적을 두시고 전 세계로 다니면서 '淨土禪'을 傳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와는 1997년 봄에 인연이 되었으며, 그 동안 수차례에 걸쳐 往來하시면서 ‘淨土禪(耳根圓通稱名念佛法)’을 傳하고 있다. 37) 寬淨은 淨土와 參禪을 함께 닦는다는 의미로 ‘念佛禪’을 ‘淨土禪’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여러 經論에서 ‘念佛禪’이라는 用語는 찾아볼 수 있지만 ‘淨土禪’이라는 用語는 어떠한 經論이나 「佛敎大辭典」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와 같이 ‘淨土禪’이라는 말은 寬淨禪師께서 처음 쓰는 말이기도 하고, 또한 淨土禪은 念佛禪 修行法의 한 方法에 해당하므로 本考에서는 「耳根圓通稱名念佛法」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밝혀 둔다. 38) 拙譯, 「극락은 있다」, (붓다의 마을, 2002), p.232. 「阿彌陀佛開示」 “九品蓮花, 參觀完後, 我們又回到阿彌陀佛的跟前, 我跪在阿彌陀佛面前, 拜了三拜, 誠心懇切地求祂給我開示. 不一會, 自阿彌陀佛金口中, 一句一句, 十分愼重地給我開示:“衆生佛性, 一律平等, 意識顚倒, 以幻爲眞, 因緣果報, 六道生死, 輪廻不斷, 苦痛萬千. 四十八願, 誓度衆生, 男女老幼, 以信․願․行, 一心不亂, 是淨土禪, 就是十念, 決定往生” 39) 宋 道源纂, 「景德傳燈錄」 권3, (大正藏 51), p.222中, 참조. 40) 宋 道源纂, 「景德傳燈錄」 권3, (大正藏 51), p.221下. “有沙彌道信 年始十四 禮師曰 願和尙慈悲乞與解脫法門 師曰 誰縛汝 曰無人縛 師曰 何更求解脫乎 信於言下大悟服勞九載”41) 唐 正覺集, 「楞伽師資記」, (大正藏, 85), pp,1286下~1687上. “唐朝蘄州雙峰山道信禪師 僧粲禪師後 其信禪師再敞禪門 宇內流布 有菩薩戒法一本 及制入道安心要方便法門 爲有緣根熟者說 我此法要 依楞伽經諸佛心第一 又依文殊說般若經一行三昧 卽念佛心是佛 妄念是凡夫 文殊說般若經云 文殊師利言 世尊 云何名一行三昧 佛言 法界一相 繫緣法界是名一行三昧 若善男子善女人 欲入一行三昧 當先聞般若波羅蜜 如說修學 然後能入一行三昧 如法界緣 不退不壞不思議 無礙無相 善男子善女人 欲入一行三昧 應處空閒 捨諸亂意 不取相貌 繫心一佛 專稱名字 隨佛方所 端身正向 能於一佛念念相續 卽是念中能見過去未來現在諸佛 何以故 念一佛功德無量無邊 亦與無量諸佛功德 無二不思議 佛法等無分別 皆承一如成最正覺 悉具無量功德無量辯才 如是入一行三昧者 盡知恒沙諸佛法界無差別相 夫身心方寸 擧足下足 常在道場 施爲擧動 皆是菩提”
42) 李智冠, 「延壽의 禪淨兼修觀」, 「佛敎學報」 22, p.98. 참조. 43) 明 大佑集, 「淨土指歸集」, (續藏經, 108), p.122上. “有禪無淨土 十人九錯路 陰境若現前 瞥爾隨他去, 無禪有淨土 萬修萬人去 但得見彌陀 何愁不開悟, 有禪有淨土 猶如帶角虎 現世爲人師 當來作佛祖, 無禪無淨土 鐵床幷銅柱 萬劫與千生 沒箇人依怙” 44) 暗中摸索(암중모색):물건을 어둠 속에서 더듬어 찾음. 45) 明 大佑集, 「淨土指歸集」 卷上, (卍字續藏經 108), p.135上 참조. 46) 永明延壽著, 「萬善同歸集」, (大正藏, 48), p.963下. “以除重障 策發身心 不可確執一門以爲究竟” 47) 永明延壽가 저술한 「宗鏡錄」은 961년 永明寺 住持에 就任한 이후부터 집필하여 약 5년간의 소요기간으로 보아, 965년 이전에 脫稿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보았을 때 탈고한 965년경부터 入寂한 975년 사이에 해당하는 高麗朝의 王은 곧 第4世인 光宗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48) 宋 道原纂, 「景德傳燈錄」 제26, (大正藏 51), p.422上, 참조. 49) 權奇悰著, 「한국불교에 있어서 선과 정토의 관계」, 「佛敎思想史硏究」 上, (韓國佛敎硏究院, 2004), p.204. 50) 印權煥, 「懶翁王師 惠勤의 文學과 思想], 「韓國佛敎文化思想史」 下卷, (가산불교문화진흥회, 1992), p.615. 51) 「答妹氏書」, 「懶翁和尙語錄」, (韓國佛敎全書 6), p.728. “阿彌陀佛在何方 着得心頭切莫忘 念到念窮無念處 六門常放紫金光.”52) 西山休靜著, 朴敬勛譯, 「淸虛堂集」, (東國譯經院, 1987), pp.363~364. “西方念佛法 決定超生死 心口若相應 往生如彈指 一念踏蓮花 誰道八千里 功成待命終 大聖來迎爾 參禪卽念佛 念佛卽參禪 本性離方便 昭昭寂寂然” 53) 西山休靜著, 朴敬勛譯, 「淸虛堂集」, (東國譯經院, 1987), p.139. “念佛參禪法 成功理無差 身心如放下 枯木定生花”
54) 空閒山人 編著, 「碧山閑人 秘密心契」, 「碧山禪要」 上卷, (能顯禪院, 1993), p.280.
55) 淸華禪師 法語集Ⅱ, 「圓通佛法의 要諦」, (聖輪閣, 1993),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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