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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0.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가르침

13.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의 해석

13.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의 해석

 

 

보리방편문(菩提方便文)

 

 

心은 虛空과 等할새, 片雲隻影이 無한 廣大無邊한 虛空的 心界를 觀하면서 淸淨 法身인달하여 毘盧遮那佛을 念하고, 此 虛空的 心界에 超 日月의 金色 光明을 帶한 無垢의 淨水가 充滿한 海象的 性海를 觀하면서 圓滿 報身인달하여 盧舍那佛을 念하고, 內로 念起念滅의 無色 衆生과 外로 日月 星宿 山河 大地 森羅萬象의 無情 衆生과 人畜 乃至 蠢動 含靈의 有情 衆生과의 一切衆生을 性海 無風 金波自湧인 海中漚로 觀하면서 千百億化身인달하여 釋迦牟尼佛을 念하고, 다시 彼 無量無邊의 淸空 心計와 淨滿 性海와 漚相 衆生을 空ㆍ性ㆍ相ㆍ一如의 一合相으로 通觀하면서 三身一佛인달하여 阿(化身)·彌(報身)·陀(法身)佛을 常念하고, 內外 生滅相인 無數 衆生의 無常 諸行을 心隨萬境轉인달하여 彌陀의 一大 行相으로 思惟 觀察할지니라.

 

“심(心)은 허공(虛空)과 등(等)할새”

우리 마음은 허공과 같습니다. 허공은 막힘이 없고 거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도 허공과 같이 막힘이 없는 것인데 우리 중생은 ‘나’라는 장애, ‘너’라는 장애에 걸려있습니다. 즉, 상(相)에 막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마음에 걸려 있는 것을 ‘마음은 허공과 등할새’라는 실존 그대로 말하는 법문을 받아들여 탁 털어버려야 합니다.

 

“편운척영(片雲隻影)이 무(無)한 광대무변(廣大無邊)한 허공적(虛空的) 심계(心界)를 관(觀)하면서”

조각구름이나 조그마한 그림자도 없는, 넓고 크고 끝이 없는 허공과 같은 마음의 세계를 관찰합니다.

우리 마음의 본바탕은 끝도 없는 광대무변한 허공 같은 세계입니다. 우리 마음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생명입니다.

 

“청정법신(淸淨法身)인 달하여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염(念)하고”

우리의 마음은 이와 같이 끝도 없는 생명이기 때문에 청정법신(淸淨法身)입니다. 오염도 없고 한없이 맑고 깨끗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입니다. 끝도 없이 훤히 비어 있는 생명, 즉 우리의 마음이 바로 비로자나불입니다. 끝도 갓도 없이 훤히 트여 있는 광대무변한 하나의 생명체, 이것이 이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는 것입니다.

“인달하여”는 옛날에 쓰이던 접속사입니다. “청정법신인달하여”라고 표현한 것은 “청정법신인”것과 같습니다.

 

“차(此) 허공적(虛空的) 심계(心界)에 초일월(超日月)의 금색광명(金色光明)을 대(帶)한”

이와 같이 끝도 갓도 없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인 마음세계는 다만 허무하게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마음의 세계는 달이나 해보다도 훨씬 더 찬란하고 초월적인 금색광명 세계입니다. 달이나 해의 빛을 초월하는 빛이란 우리가 물리적으로 보는 광명이 아닙니다. 그 빛은 물질이 아닌 질료(質料)가 아닌 순수한 적광(寂光), 정광(淨光)을 말합니다.

 

“무구(無垢)의 정수(淨水)가 충만(充滿)한 해상(海象的) 성해(性海)를 관(觀)하면서”

조금도 때 묻지 않은 정수(淨水), 즉 청정한 하나의 생명수가 충만한 바다와 같은 성해(性海)를 관찰한다는 것입니다. 끝도 없는 광명의 바다도 하나의 물리적인 현상이 아닌 광대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이름을 붙인 것이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입니다.

 

“원만보신(圓滿報身)인달하여 노사나불(盧舍那佛)을 염(念)하고”

모든 가능성과 모든 생명을 생성하고 이끌고 다스리는 힘이 거기에 원만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원만보신 노사나불입니다. 부처님은 신비부사의하고 전지전능하신 살아계시는 실존의 초월적 생명체입니다. 그러한 원만보신인 노사나불을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내(內)로 염기염멸(念起念滅)의 무색중생과”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온갖 생각들은 무색중생입니다. 무색중생이라 한 까닭은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형체(色)가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좋다, 궂다, 밉다, 예쁘다’라고 하는 추상관념은 형체가 없는 것입니다.

 

“외(外)로 일월성수(日月星宿) 산하대지(山河大地)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무정중생(無情衆生)과”

밖으로 보이는 해나 달이나 별이나 산이나 강이나 달을 비롯한 모든 만상(萬象)은 무정중생입니다. 무정중생은 아직 의식이 발달하지 못한 중생을 말합니다.

 

“인축내지(人畜乃至) 준동함령(蠢動含靈)의 유정중생(有情衆生)과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사람이나 동물 등 꾸물거리는 식(識)이 있는 유정중생입니다.

일체중생은 앞에서 말한 대로 우리 관념(觀念)으로 이루어진 무색중과, 우리가 무생물(無生物)이라고 하는 무정중생과, 동물인 유정중생을 모두 더해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해무풍(性海無風) 금파자용(金波自涌)인”

바람도 없는 바다 위에서 금빛 파도가 스스로 뛴다는 말입니다. 바람도 없는 바다란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는 광명의 생명의 바다를 말합니다. 일체중생은 그 무한한 바다에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 사람과 동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은 무량무변(無量無邊)한 천지우주에 금색광명이 가득한 가운데서 인연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생성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해중구(海中漚)로 관(觀)하면서”

바다 가운데 있는 거품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일체중생은 광대무변한 생명의 바다에서 스스로 뛰노는 물거품 같다는 것입니다.

창해일속(滄海一粟)입니다. 끝도 없는 바다에 한 톨의 좁쌀이라는 뜻입니다. 바다나 산이나 강처럼 우리 눈에 크게 보이는 것들도 별자리나 은하계나 보다 더 큰 성운(星雲)같은 것에 비교하면 하나의 점만도 못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좁쌀 한 알만도 못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나’라는 것은 마음으로 보면 파스칼의 말과 같이 천지를 다 감싸고 있지만 존재적인 의미만 보면 먼지 하나 만큼도 못한 것입니다. 사람 수, 동물 수, 무생물들의 수, 두두물물 산이요, 들이요, 별 같은 것을 모두 무수한 거품으로 보는 것입니다.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인달하여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염(念)하고”

바다에 뛰노는 금색 파도의 거품 같은 것들이 숫자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이라, 이런 것이 모두가 원래 부처님한테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모양은 사람이고 동물이고 들이고 산으로 천차만별 구분된다 하더라도 전부가 부처한테서 나왔으므로 근본 성품은 조금도 변질이 없습니다. 다만 중생이 잘못 보는 것뿐입니다. 바로 보면 아무리 산이 되고 사람이 된다 하더라도 조금도 변질이 없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불을 좁게 생각하면 인도에서 난 역사적인 석존(釋尊)이시고, 넓게 생각할 때는 천지우주의 모든 존재가 다 석가모니불입니다.

 

“다시 피(彼) 무량무변(無量無邊)의 청공심계(淸空心界)와 정만성해(淨滿性海)와 구상중생(漚相衆生)을”

맨 처음의 비로자나불을 말한 텅 비어 있는 마음 세계와, 다음으로 노사나불을 말한 청정한 생명수가 충만한 바다와 같은 성해와, 마지막으로 석가모니불을 말한 금색 바다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거품 같은 일체중생입니다.

 

“공(空)ㆍ성(性)ㆍ상(相) 일여(一如)의 일합상(一合相)으로 통관(通觀)하면서”

청공심계(淸空心界)의 공(空), 정만성해(淨滿性海)의 성(性), 구상중생(漚相衆生)의 상(相), 이 세 가지를 결국 하나로 통합해서 종합적으로 본다는 말입니다.

 

“삼신일불(三神一佛)인달하여 아(阿ㆍ化身),미(彌ㆍ報身),타(陀ㆍ法身)불(佛)을 상념(想念)하고‘

청정법신(淸淨法身), 원만보신(圓滿報身),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의 삼신(三身)이 결국은 하나의 부처님입니다. 하나의 부처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아(阿)는 화신(化身)을 의미하고, 미(彌)는 보신(報身)을 의미하고, 타(陀)는 법신(法身)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아미타불을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외생멸상(內外生滅相)인 무수중생(無數衆生)의 무상제행(無常諸行)을”

내(內)는 자기 마음으로 생각하는 관념입니다. 외(外)는 밖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현상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내외는 나고 죽습니다. 일체 존재라는 것은 모두가 다 생사를 거듭하는 무수한 중생들의 무상한 모든 행(行)입니다.

무상(無常)이라는 뜻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무상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어떤 것이나 고유한 존재가 없다는 말입니다. 어떠한 존재나 어느 순간도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나, 내가 생각하는 관념이나 모두가 변덕스럽게 움직이는 경망하기 짝이 없는 원숭이와 같습니다.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인달하여”

마음이 만 가지 경계로 뒹구는 것입니다. 사람이니 별이니 산이니 강이니 하는 모든 것은 마음이라고 하는 생명체가 인과율(因果律)에 따라서 만 가지 경계로 굴러가는 것입니다. 모든 혼란스러운 것들도 사실 마음이라고 하는 우리들의 불성 기운이 인과법을 따라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혼란의 씨앗을 심었기 때문에 다 같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미타(彌陀)의 일대행상(一代行相)으로 사유관찰(思惟觀察)할지니라.”

미타의 미(彌)는 원만보신 노사나불, 타(陀)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입니다. 법신과 보신입니다. 현상적으로 제아무리 잘되고 못되고 하는 것도, 천지가 모두 파괴돼서 텅텅 비어버리고 또 생성되고 하는 것도 모두가 미타의 일대행위(一代行爲)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것을 미타의 행위로 생각하고 관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