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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0.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가르침

10. 방편설(方便說), 진실설(眞實說)

10. 방편설(方便說), 진실설(眞實說)

 

 

방편을 넘어서면 진실설(眞身說)이 있습니다.

이론도 있고 교양도 있고 또 본체를 이야기해도 알아들을 정도가 되면

그때는 본 체성(體性), 즉 불성을 바로 집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방편설(方便說)이라는 수행법이 있습니다. 본질 그대로 불성을 말하지 못하고, 현상적인 문제에 의지해서 불성 쪽으로 가는 방법입니다. 중생들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들의 수준에 맞춰 이런저런 쉬운 방법을 끌어다가 수행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편을 넘어서면 진실설(眞實說)이 있습니다. 이론도 있고, 교양도 있고, 또 본체를 이야기해도 알아들을 정도가 되면 그때는 본 체성(體性), 즉 불성을 바로 집어서 이야기합니다. 바로 마음을 딱 집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 말로 교외별전(敎外別傳)이고 직지인심(直指人心)입니다.

 

학식도 있고 여러 이론도 배우고 있고 또 몸도 있지만 바로 그대의 마음이 부처라는 즉심시불(卽心是佛)입니다. 내가 지금 남을 미워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분별을 하는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것입니다. 곧 직(直)자에 가리킬 지(指)자, 사람 인(人)자, 마음 심(心)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딱 집어서 그냥 그대로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다!”라는 법문이 가장 고등한 법문입니다.

 

자비관이니 부정관이니 방편설이니 하는 여러 가지 수행법이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여러 가지 체계가 많이 있지만 이런 것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들의 허망함과 마음의 중요성을 깨우치면 이제 “그대 마음이 바로 부처요”라고 합니다.

천지우주가 지금 풀도 있고 산도 있고 누런 것도 있고 푸른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렇고 푸른 것은 중생이 보아서 누렇고 푸른 것이지 그것도 바로 보면 불성이고 부처입니다. 이런 것을 당체여시(當體如是)라고 합니다. 산이면 산, 물이면 물, 티끌이면 티끌 모두가 그대로 부처라는 말입니다. 중생을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성자는 당체 그대로를 부처로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법문이 가장 높은 차원의 수행법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