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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참선은 실상관에 투철해야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참선은 실상관에 투철해야

 


 선에 임하는 자세는 바로 참다운 나를 찾는 것이요, 참다운 나의 인생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 참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진여실상’이라 하였는데, 우주만유의 근본이요 진리 당체인 실상을 알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말이나 문자로써는 표현할 길이 없기에 ‘리언진여’라고 합니다. 달마대사는 ‘불립문자’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떠나버린 진여, 문자로써 표현할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말이나 문자로써 다 표현을 못하지만 부처님이나 도인들이 깨달으신 심심미묘한 지혜로써 밝혀놓은 것을 ‘의언진여’라고 합니다. 우리 범부 중생들은 미처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더라도 이미 깨달으신 분들의 가르침에 의지하고 짐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좀더 쉽게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는 지구덩어리같은 큰 것도 못보고 산너머에 있는 것도 못보고 먼지보다 작은 것도 못보고 겨우 가까이 눈앞에 있는 것 밖에는 못봅니다. 빛도 X광선이나 알파 베타 감마선등은 못보고 가시광선 밖에는 못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X광선이나 현미경 눈을 달았다고 할때 모든 것이 달리 보일 것입니다. 사람이나 온갖 물체의 겉모양보다 속에 있는 뼈대가 보일 것입니다. 사람도 예쁘고 밉고를 떠나 똑같은 뼈대만 보일 것입니다. 더 배율이 높다면 하나의 세포로만 보이고 전자현미경 눈이라면 하나의 'field'공간 밖에 없고 전자 파동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똑같은 근원으로 하나의 같은 뿌리로 보일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현상의 내면인 실상이 짐작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감각기관은 시각이나 청각이나 후각 미각 촉각 등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은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근원인 제6의식을 갖고, 의식에 잠재해 있는 잠재의식 무의식의 발견, 더나아가 제7 제8 제9 제10 등 가장 근원적인 순수한 마음인 불심에 바탕을 둘 때 참다운 실상을 깨닫게 되겠지요.

 앞에서도 알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진여라 할지라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이미 깨달으신 분들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굳게 믿고 닦아가는 ‘선오후수’가 꼭 필요 합니다. 그것은 ‘대신심’입니다. 굳게 믿는 대신심이 없이는 방황하고 헤매이고 시험하다가 갈 길을 못가게 될 것입니다.

 ‘법성게’에서도 ‘법성원융무이상’이라, 진리의 근본성품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하나의 생명, 같은 뿌리, 부처님 뿐이요, 하나의 모습이라는 관념에 실상관에 투철하여 올바른 견해를 확립하면 이를 ‘일상삼매’라 합니다. 일상삼매의 입장을 비유하면 ‘여묘포서’라 합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으려 할때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노려보듯이 오로지 한 생각으로 한눈을 팔지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일상삼매가 끊임없이 사뭇 이어지는 것을 ‘일행삼매’라 합니다. 일행삼매를 비유하면 ‘여계포란’이라 합니다. 닭이 병아리를 깨기 위해 달걀을 품고 있을 때는 한시도 자리를 뜨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진여불성 진여실상관이 확립되었다면 한시도 놓치지 않고 ‘염념상속’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인들은 밥먹을 때나 잠잘 때나 변을 볼 때나 도 아닌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 일을 하면서도 놀면서도 어느 때나 어디에서나 내 가슴속 내 마음 가운데 부처님 공부를 놓치지 않는다면 항시 참선하고 염불하는 수행이 될 것입니다.

 



출처 : LA중앙일보


2006년 4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