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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천지만물의 마음이 바로 부처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천지만물의 마음이 바로 부처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너그럽고 밝아서 트인 마음을 하늘같이 넓은 마음이라 찬양하고 옹졸하고 막막한 마음은 바늘귀만도 못한 마음이라 꾸짖고 빈축하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체 인식 작용이나 무의식 등 그 무엇이든 마음을 떠나서는 아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일월성수나 삼라 만상 일체존재가 마치 바람따라 물 위에 맺혀지는 거품과도 같이 마음 위에 이루어진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에도 우주만유는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일체유심조’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 중생이 무지와 무명에 가리어 일체만유의 실상인 마음 곧 불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 현상인 상대적인 물질세계만이 실재한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한량없는 번뇌망상을 일으켜 현대와 같이 불안하고 혼란한 사회현상을 자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중생들이 생활하는 경계를 법화경에서는 그 번뇌의 정도에 따라서 십법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선 번뇌와 업장이 가장 무거운 지옥세계로부터 일반 동물인 축생세계, 매양 굶주리고 헤매는 아귀세계, 힘이 세고 싸움만을 일삼는 아수라세계, 그리고 선악이 거의 상반되고 사뭇 분별이 많은 우리 인간세계, 선량하고 안락한 천신들의 천상세계 등 아직 마음의 진리에 어두운 여섯 갈래의 범부세계와 마음의 실상을 깨달은 성자의 세계로서 스승에 의지하여 깨달은 성문세계, 스스로 명상을 통하여 깨달은 연각세계, 자기뿐 아니라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육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을 닦는 보살세계, 그리고 지혜와 자비 등 일체공덕을 원만히 갖춘 바로 ‘진여불성’자체인 부처님 세계들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분은 우리 인간의 차원에서 분별한 방편적인 구분에 지나지 않으며 마음의 본성인 불성 곧 우리의 본래면목을 깨달은 성자의 청정한 안목에는 위에서 열거한 지옥에서부터 부처님의 세계까지가 다 한결같이 미묘 청정한 불성으로 이루어진 ‘불국토’아닌 데가 없습니다.

 그것은 일체물질의 근본요소인 전자나 양자나 중성자 등의 소립자로부터 동물과 식물과 광물 그리고 하늘의 뭇 별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결같이 마음이라 하는 가장 순수한 생명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일체존재의 근본에 통달한 대아(성자)의 경계에서는 천지만물이 오직 마음뿐이요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이기도 함)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법화경』「비유품」에 이르기를 ‘어떤 가난한 사람이 부자인 친구집에 가서 술에 취하여 잠이 들었는데 주인 친구는 요긴한 일이 생겨 외출하게 되자 그는 친구의 옷 속에 보배를 매어주고 떠나게 되었다. 이윽고 잠을 깬 가난한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르고 하릴없이 유랑하면서 간신히 세월을 보내다가 얼마 후에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게 되어 그 말을 듣고 그 보배의 덕택으로 단번에 빈궁한 신세를 벗어나 행복하게 되었다.’는 법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인간이 무지와 번뇌에 사로잡혀 그지없이 헤매다가 다행히 성자의 가르침을 만나서 자기가 본래부터 갖추어 있는 불성을 깨닫고 애꿎은 인생고를 벗어나 영생의 안락을 얻게 되는 간곡한 비유담인 것입니다.

 



출처 : LA중앙일보


2006년 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