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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의 실상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의 실상

 

 

우리 인간의 본성은 완전무결한 불성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본래성품인 불성을 등지고 현상적인 물질만을 집착하여 탐내고 증오하는 생활을 되풀이하는 한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뭇 허기진 탄타로스의 사무친 기갈과도 같이 인간존재의 처참한 고난의 형벌은 영구히 가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인류사회가 당면한 인과응보의 고질적인 병폐와 역사적 위기를 극복하는 오직 하나의 확실한 대도는 일찍이 수많은 성자들이 밝히신 바 우주와 인생의 근본생명인 불성 곧 부처님을 굳게 믿고 스스로 부처님이 되기 위하여 마음에 순간 찰나도 부처님을 여의지 않으면서 공변된 도덕적 생활에 최선을 다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소승에게는 죽음을 의미하고 대승에서는 번뇌의 속박을 벗어난 영생의 경계)에 들으시기 위하여 ‘구시나가라Kusinagara’성밖에 있는 발제하의 맑은 시냇물이 속절없이 흐르는 강 언덕에 우거진 사라수나무 숲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에 아난은 부처님의 침상을 등지고 하염없이 흐느끼며 슬픈 상념에 잠겼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아난아 그렇게 한탄하고 슬퍼하지 말아라 사람은 누구나 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한결같이 인연따라 이루어진 허깨비같이 허무한 가상에 지나지 않으니 필경 허물어지고 만다고 일러주지 아니하였더냐. 아난아 공부에 진력하여라. 그러기만하면 머지않아서 번뇌의 습기를 없애고 반드시 해탈을 얻으리라.”

아난은 가까스로 마음을 수습하여 바른편 무릎을 꿇고 왼편 무릎을 세워 합장하여 여쭙기를

“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아왔으나 열반하신 뒤에는 누구를 스승으로 삼으오리까.”

“아난과 여러 제자들은 잘 듣거라. 내가 열반에 든 뒤에는 이미 설법한 교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도록 하여라.”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은 앞으로 공부하는 수행방법을 어떻게 하오리까.”

“그대들은 다함께 깊이 새겨들어라. 그대들이 의지할 수행법은 주로 사념처관을 닦도록 하여라.

그것은 첫째로 ‘신념처’로서 이 육신을 살과 뼈와 피과 고름 등 더러운 것들이 인연 따라 잠시 모인 것이니 부정하다고 관찰하고, 둘째는 ‘수념처’로서 중생들이 낙이라고 여기고 집착하는 재물이나 음행이나 권속이나 권세 등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고 필경 고통의 결과를 맺는 근원으로 관찰하고, 셋째는 ‘심념처’로서 인간의 마음은 잠시도 쉬지 않고 항시 전변하여 마지않는 무상한 것이라고 관찰하며, 넷째는 ‘법념처’로서 일체 모든 것은 허망하고 무상하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가 없고 자재로운 것도 아니니 나라고 할 것이 없는 무아이며 나의 소유란 아예 없는 무소유임을 관찰하도록 하여라.”

이와 같이 부처님의 간곡하신 마지막 설법은 인간과 천상등 모든 제자들의 흐느끼는 오열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가고 옴이 없고 생사가 없는 법신부처님은 어느 때 어느 곳에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의 실상이며 바로 우리 인간의 참다운 자아입니다.

 

 

출처 : LA중앙일보

2006년 3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