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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7. 입보리행론

제9장 지혜품 智慧品

제9장 지혜품 智慧品

샨티데바著,청전譯/하얀연꽃/자료입력:화목

 

 이 장에서는 절대 진리인 공성空性의 입장에서 세상의 속성에 머무는 인식 수준인 실유론實有論의 견해를 논파함으로 바른 진리의 입장을 세우고 있다. 실제 인도 당시의 다양한

불교와 비불교 학파들의 견해가 본문에 질의와 반박 형식으로 녹아 있으나, 본문의 게송만으로는 구별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본문의 내용을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간단하게 반박과 응답을 구분하는 표시를 주었다. 예를 들어 [.....]는 대부분 실유론자의 반박이나 질문이며, [만일]과 [?]는 실유론자와 공성의 견해가 혼용되어 있으므로 문맥에 따라 잘 이해해야 할 것이다.

1 이 모든 가지(支)는

[석가]모니께서 지혜를 위해 설하셨노라.

그러므로 모든 고통(苦)이

평정平靜되기를 바란다면 지혜를 일으켜야 하리라


2 속제와 진제

이것을 두 가지의 진리로 인정한다.

진제는 마음의 영역이 아니기에

마음을 속제라고 하셨다.


3 이에 세간世間의 두 유형을 보면

요가행자와 일반인.

따라서 일반 세간은

요가 세간을 반박하며


4 요가행자도 역시 지혜의 차이로

더 높은 이들이 반박한다.

둘 다 인정하는 예例가

결과(覺果)만으로는 분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5 세간인은 사물事物을 보고

실제 그 자체인양 분별하나

환幻과 같지 않음을

요가행자와 세간이 논쟁한다.


6 色 등이 현량現量(직접 지각) 그 자체라도.....

보편적인 경우의 인식방법量은 아니다.

그것은 더러움 등에

깨끗함 등이 보편이라는 식의 거짓이다.


7 세간에 들어간 이를 위해

보호자[부처님]께서 사물에 대해 설명하신 것을 [보면] 그들은 순간刹那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속제도 역시 모순(相遠)이다’라고 한다면.....


8 요가[행자]는 세속을 착각하지 않는다.

즉 세간에서 의존하는 그 자체를 본다.

다른 경우 ‘여인은 불결하다’고 분별하면

세간이 반박하리라.


9 환幻과 같은 승리자와 공덕이

어떻게 현실의 어떤 것과 같겠는가?

만일 유정有情이 환幻과 같다면

‘죽어서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가?’ 한다면......


10 연(조건)이 모여 있는 한

환幻도 역시 나타나리라.

오랫동안 어찌하여

유정有情이 진실로 존재하겠는가?


11 환인幻人을 죽이는 것에

마음이 없으므로 죄가 없다하나

환심幻心을 가짐으로

공덕功德과 죄가 나타난다.


12 진언眞言 등에 효력이 없으므로

환심幻心은 나타나지 않는다.

갖가지 연緣에서 일어나

그런 환幻도 역시 갖가지 성품.


13 하나의 연緣에 의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진제는 열반涅槃이고

윤회輪廻는 속제와 같다면


14 부처도 역시 윤회하는 것인데

보리행菩提行은 어느 누가 하겠는가?.....

계속되는 연緣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환幻도 역시 돌아오지 않느니


15 계속되는 연緣이 끊어지면

속제도 역시 이어나지 않으리.

만일 착각하는 것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면

환幻을 무엇으로 인지할 것인가?....


16 만일 그대에게 환성幻性이 없다면

또한 그때는 무엇이 인지하는가?

만일 그 자체로 다른 것이 있다면

그 형상形相은 바로 마음 그 자체心性이다....


17 만일 심성心性이 환幻이라면

그때는 무엇으로 무엇을 보는가?

세간의 경우, 보호자께서도 역시

“마음으로 마음을 보지 못 한다”고 설하셨다.


18 칼날이 스스로를 자를 수 없는 것처럼

그와 같은 것이 마음이다.

그렇게 등불이 자신을

실제로 빛나게 하는 것처럼.....


19 등불이 빛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어둠으로도 덮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리琉璃같은 청색靑色의 푸름淸性은

다른 것에 의존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20 그와 같이 어떤 것은 다른 것을 의존하며

의존하지 않는 것도 역시 볼 수 있다면.....

푸름淸性이 아닌 것을 청색靑色으로

즉 스스로 자신을 만드는 것은 없다.


21 ‘등불이 빛나고 있다’를

인식으로 안다고 말한다면

‘마음이 빛 그 자체이다’는

무엇으로 인식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22 만일 나누어짐(分離)도 역시 보이지 않는다면 빛남과 빛나지 않음은

석녀石女의 딸, 자태姿態와 같다.

그것을 말하는 것 역시도 무의미하다.


23 만일 자증自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식意識은 어떻게 기억을 하는가?.....

다른 경험과 함께 결합하여

기억하는 쥐의 독毒과 같은 것이다.


24 다른 모든 연緣이 있는 것을 봄으로써

자신이 스스로 빛난다면......

성취의 안약眼藥을 바른 후

항아리를 본다고 안약 그 자체가 되지 않는다.


25 보고 듣고 인식하는 것이

여기서 부정否定의 대상은 아니다.

즉 이것이 고苦의 인因이 된 것은

진리를 분별한 전도된 것이다.


26 마음과 환幻은 다르지 않고

다르지 않기에 역시 무상無常하다면.....

사물이라면 어떻게 그것이 다르지 않겠는가?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사물은 없다.


27 그와 같이 환幻은 진리가 아니지만

가시可視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만일 윤회가 사물을 의지한 것이라면

그것이 다른 경우에는 허공과 같게 되리라....


28 비사물非事物이 사물에 의지한다면

어떻게 작동作動할 수 있겠는가?

그대의 마음이 고독하게

홀로 [있는] 것(孤立)이다.


29 만일 마음이 파악의 대상(外境)과 분리되어 있다면

그때는 모두가 여래如來.

그렇다면 마음만(唯識)으로

분별한 것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


30 환幻과 같은 것으로 인식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번뇌를 물리칠 것인가?

즉 만일, 환幻의 여인에게

그것이 ‘만든 것’이라 할지라도 역시 애착이 생긴다면....


31 그것을 만든 자는 인식 대상에 대한

번뇌 습기習氣를 못 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그것이 보인다면

즉 공성空性의 습기가 약한 것은


32 공성 습기를 익숙하게 하여

사물의 습기를 버리게 하고

‘어떤 것도 없다’라는 것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그것도 역시 버려야 하리라.


33 만일 ‘어떤 것이 없다’고

분별할 대상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때 비사물은 의지처와 떨어져서

마음 앞에 그와 같이 존재한다.


34 만일 사물과 비사물이

마음 앞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때 형상形相은 구별(他者)이 없어지고

대상(所緣)이 존재하지 않아 완전한 평정을 이루리라.


35 여의주如意珠나 여의수如意樹가

어떠한 소원도 이루게 하듯

그와 같이 가르침의 대상(所化)은

기도의 힘으로 승리자[부처님]의 몸을 나툰다.


36 예를 들어 가루다(金翅鳥)의 경우

[독을 물리치는] 목주木柱를 완성한 후에 죽어갔다.

그가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독 등을 평정하는 것과 같다.


37 보리행菩提行도 나중에 그렇게

승리자의 목주木柱를 완성하지만

보살은 수고愁苦를 벗어났어도

역시 모든 일을 하고 계신다.


38 무심자無心者[부처]에게 헌공하여

어떻게 과果를 얻을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머뭄(有餘)과 열반(無餘)이

똑같은 것임을 설하셨기 때문이다.


39 속제나 그 자체(진제)도 역시 옳은 것이다.

즉 그 과果는 경전(阿含量)에 있다.

예를 들어 진리의 부처님께서

그렇게 과果를 얻으신 것과 같다.

40 진리를 봄으로써 해방이 된다면

공성을 봄으로써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경전(阿含量)에서 이 길 없이는

깨달음(菩提)도 없다고 설하셨기 때문이다.


41 만일 대승[경전]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그대의 경전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둘 다에 [우리의 경전]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먼저 그대에게 [그대의 경전]은 성립하지 않는다.


42 무엇을 근거로 거기에 의존所依하는가?

그것은 대승에도 역시 똑같다.

다른 둘 다 인정하는 것이 진리라면

베다(Veda)등도 진리여야 하리라.


43 ‘대승은 논쟁論爭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경전에서 [보면] 외도外道는 [물론]

[불교 안에서도] 경전이 달라도

자타自他모두가 논쟁論爭이 있으므로

[위의 논증은] 파기破棄되어야 하리라.


44 교설敎說의 근본이 비구比丘 자신이라면

비구 자신 역시도 [법을 얻기] 어려우리라.

마음이 대상(所緣)과 함께 하는 이들의 경우,

열반도 역시 어려우리라.


45 번뇌를 버려서 해방된다면, 그것은....

한순간 그렇게 되어야 하리라.

번뇌는 없더라도 그들에게서

업業의 영향력은 볼 수 있다.


46 ‘잠시 가깝던 번뇌(取)를 집착함(愛)이 없다’고 확신한다면.....

이 집착(愛)이 번뇌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모든 미혹迷惑과 같은 것으로 [인해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가?


47 수受(감각)의 연緣으로 집착(愛)이 있다.

수受는 그들에게도 존재한다.

대상(所緣)과 함께하는 마음이

어느 부분에는 남아있으리라.


48 공성과 분리된 마음을 차단하는 것은

머지않아 다시 생기게 된다.

즉 관념觀念이 없는 정定(等地)과 같다.

그러므로 공성을 수습修習해야 하리라.


49 말씀(敎說)이 모여 경전(契經)을 구성한다.

즉 부처가 설한 것을 인정한다면

대승은 대부분 그대들의

경전과 똑같은 것을 왜 인정하지 않는가?


50 만일 속하지 않는 하나가

모든 허물을 가지게 된다면

일치하는 경전 하나에 의해 모두가

승리자께서 설하신 것이 왜 아니겠는가?


51 어떤 말씀은 대가섭(Kasyapa) 등도

깊이 헤아리지 못하였다.

그것을 그대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52 미혹으로 고통을 받는 이를 위해

애착과 두려움의 끝에서 구하고

윤회에 머무는 자를 성취하게 하는 것

이것이 공성의 과(覺果)이다.


53 그와 같이 공성을 향한

비판은 타당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의심을 갖지 말고

공성을 수습해야 하리라.

54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의

어둠을 치료하는 공성.

속히 일체지一切智를 바란다면

그것을 왜 수습하지 않는가?


55 어떤 사물도 고통을 산출産出한다.

거기에 두려움이 생기면

공성[만]이 고통을 평정平靜하리라.

이에 두려움이 어찌하여 [다시] 생기겠는가?


56 만일 어떤 내가 존재한다면

어떤 것을 또한 두려워해야 한다면

자신은 어떤 것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데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57 이(齒牙)와 머리카락은 내가 아니다.

나는 뼈와 피가 아니다.

콧물도 아니고 점액粘液도 아니며

황수黃水(림프액)와 고름도 아니다.


58 나는 지방脂肪과 입자粒子가 아니며

폐肺와 간肝도 내가 아니다.

다른 내장內臟도 내가 아니고

나는 대변과 소변도 아니다.


59 살과 피부도 내가 아니고

열과 풍風도 내가 아니다.

구멍도 내가 아니고 모든 형상과

여섯 가지 식識도 내가 아니다.


60 만일 소리(聲)의 인식이 영원하다면

언제든지 소리는 파악될 것이다.

인식 대상이 없다면 어떤 근거에서

그 무엇을 인식한다고 말하겠는가?


61 만일 인식이 없는 인식이 있다면

나무도 역시 인식할 수 있어야 하리라.

그러므로 인식 대상이 근처에 있지 않으면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는 것은 분명하다.


62 그 본성으로 색色이 인식된다면....

그때 들리는 것은 또한 아무 것도 아닌가?

만일 소리가 근처에 없어서라면.....

그러므로 그런 경우 인식도 역시 없다.


63 소리를 파악하는 자성自性은 무엇이며

그것이 색色을 어떻게 파악한다는 것인가?

한 사람을 아버지와 아들 자신으로....

분별해도 실제 그런 것이 아니다.

64 즉 이와 같이 순질純質(Sattva). 동질動質(Rajas)과

암질暗質(Tamas)은 아들이 아니며 아버지도 아니다.

그것은 소리를 파악하는

자성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65 배우俳優와 같이 역할이 다름으로.....

그 본성을 보면 그것은 무상無常하다.

만일 역할이 다른 것이 그 본성이라면.....

하나의 본성인 그것은 이전에 없던 하나이다.


66 만일 역할이 달라 진리가 아니라면.....

그런 경우 스스로 자성을 말한다.

‘인식이 본성’이라고 한다면.....그렇다면

생기는 모든 것은 하나가 되어야 하리라.


67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그것들(無情)도 역시 하나가 된다.

존재하는 본성은 똑같기 때문이다.

만일 구분區分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그때 같은 것에 의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68 마음이 없는 것도 내가 아니다.

즉 마음이 없는 성품 때문에 항아리 등과 같다. 그러나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식한다면 비인식非認識은 무너져야 하리라.


69 어떤 것도 아我가 될 수 없다면.....

사고思考[작용]은 거기에 무엇을 했겠는가?

그와 같이 인식 없이 대상(所)과 분리된

허공도 아我가 되었어야 하리라.


70 만일 아我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업業이 과果를 맺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즉 ‘업을 지은 후에 소멸했다면

누구의 업이 되겠는가?‘ 한다면......


71 행위와 과果는 토대土臺가 다르고

거기에 아我가 한 것이 없더라도 역시

우리 둘 다에게 성립함으로

이것을 논쟁했던 의미가 없지 않은가?


72 인因이 있어 과果를 수반한다면

보는 이것은 있을 수 없다.

한 줄[法眼]에 의지해 오면서

행위자(作者)가 행한 일이라고 가르치셨다.


73 과거와 미래의 마음은 아我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기는 마음이 아我라고 한다면....

그것이 소멸한다면 역시 아我는 존재하지 않는다.


74 예를 들어 파초芭蕉는 밑동을 드러내면

아무 것도 없다.

그와 같이 형상을 분석하여

탐색探索하면 아我도 역시 실제가 아니다.


75 만일 ‘유정有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자비를 베풀겠는가?‘ 한다면.....

과(覺果)를 기약期約한

미혹으로 인해 분별하는 무엇인가 있는 것이다.


76 유정有情이 존재하지 않는 과果는 누구의 것인가?

사실이다. 그렇지만 미혹으로 바라는 것이다.

고통을 완전히 평정하기 위해

과果의 미혹을 부인하지 말아야 하리라.


77 고통의 인因인 아만我慢이

아我를 미혹함으로 늘어나게 하리라.

거기에도 역시 ‘부인할 것이 없다’한다면.....

무아無我를 수습修習하는 것이 최고이리라.

78 몸은 다리나 종아리(小腿部)가 아니다.

허벅지(大腿部)와 허리도 몸은 아니다.

복부腹部와 등어리도 역시 몸이 아니고

가슴과 어깨도 몸이 아니다.


79 늑골肋骨 옆, 손도 몸이 아니고

겨드랑이에 박힌 어깻죽지도 몸이 아니다.

내장도 역시 그것이 아니며

머리와 목도 몸이 아니라면


80 여기서 몸은 어떤 것인가?

만일 이 몸이 모두에게

부분적으로 의지한다면

부분이 부분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81 만일 모든 자신의 몸이

손 등에 의지한다면

손 등은 그것이 있는 한

그만큼의 몸이 되리라.


82 외부나 내부에도 몸이 없다면

어떻게 손 등에 몸이 존재하겠는가?

손 등에 다른 것이 없다면

그것은 어찌하여 존재하는 것인가?


83 그러므로 몸이 없는(不在) 손 등에서

미혹으로 인해 몸을 인식하게 되리라.

형상形相을 배열하는 차이는

돌무더기에게 마음이 없는 것과 같다.


84 연緣이 있는 한 결합이 있어서

몸이 사람처럼 나타난다.

그와 같이 손 등이 있는 한

그것이 존재함으로 거기에 몸이 나타난다.


85 그와 같이 손가락의 결합이 있음으로

손도 무언가가 될 수 있으리라.

그것도 역시 뼈마디의 결합이므로

뼈마디도 자신의 한 부분으로 나누어져


86 부분은 또 입자粒子로 나누어지고

그 입자도 분할(面分割)되어 펼쳐져서 분할(方分割)되고 또 분할(形分割)됨으로 허공과 같다.

그러므로 입자도 없다.


87 그와 같이 몽상夢想(꿈 같은)의 색色(모양)을 분석하면

어느 누가 애착을 하겠는가?

만일 그와 같이 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때 남자는 무엇이고 여자는 무엇인가?

88 고통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면

왜 지복至福에 해害가 없는가?

안락安樂하다면 슬픔. 고뇌 등에 [있는]

달콤함 등은 왜 행복을 주지 않는가?


89 [보다] 강强한 것으로 제압하므로

그런 경우 그것을 경험할 수 없다.

어떤 경험을 자신이 아니라 하겠는가?

그것을 감각(受)하는 것은 무엇인가?


90 고통은 미세한 것으로 존재한다.

이런 경우 거친 것은 드러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이 ‘그와 다른 행복 정도’라고 한다면......

미세한 것도 역시 그런 경우


91 만일 모순(相遠)된 연緣이 생겼기 때문이라 한다면

[또] 고통은 생겨난 것이 아니라면

‘감각(受)으로 분별한 집착(貪) 그 자체이다.’ 라고 한다면

성립하지 않는가.


92 그러므로 이런 경우

해독제(拮抗)인 이 분별지分別智를 수습修習한다.

즉 헤아린(思量) 후에 나온

선정禪定은 요가행자의 양식이다.


93 만일 감각 대상에 간격이 있다면

그것들은 어디에서 만나야 하는가?

간격이 없다 해도 하나의 성품인 것을.

무엇이 무엇을 만나야 하는 것인가?


94 미진微塵(極微)으로 미진에 들어갈 수 없다.

그것은 사이(時)가 없이 똑같은 것이다.

들어가지 못함에 섞임이 없고

섞이지 않음에 만남은 없다.


95 ‘부분이 없어도 만난다’고 한다면

어찌 타당할 것인가?

만난 것과 부분이 없는 것을

만일 보았다면 보여야 하리라.


96 식識은 몸이 없는데

만남은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결합도 역시 실체가 없기 때문에

앞에서 그와 같이 고찰한 바와 같다.


97 그렇게 촉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감각(受)은 어디에서 나타나는 것인가?

이 수고로움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이 무엇을 해害한다는 것인가?


98 만일 어떤 감수자感受者도 없고

감각(受)도 역시 없다면

그때 이런 상태를 보고서도

애착(愛)은 어찌하여 떠나지 않는 것인가?



99 보는 것과 촉觸도 역시

몽환夢幻 같은 자신으로

마음과 함께 생겨나기에

감각(受)은 그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100 이전과 이후에 생긴 것을

또한 기억한다 하더라도 경험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경험하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도 역시 경험할 수 없다.


101 어떤 감수자感受者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감각(受)은 그 자체가 아니다.

그와 같이 아我가 없는 이 결합에

이것이 어떻게 해害가 될 것인가?


102 마음은 감각기관(根)에 있지 않으며

색色 등도 아니며, 간격도 아니다.

안(內)도 마음이 아니며 바깥 역시도 아니고

다른 것에서도 찾을 수 없다.


103 어떤 것도 몸이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니다.

섞이지 않고 단독으로 떨어진 것도 없으며

그것은 소량小量도 아니다.

그러므로 유정有情의 본래 성품은 열반이다.


104 인식 대상보다 이전에 인식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무엇을 봄으로써 생기는가?

인식과 인식 대상이 함께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봄으로써 생기는가?


105 그러나 인식 대상이 나중에 존재한다면

그때 인식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그와 같이 모든 법法의 발생發生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06 만일 그와 같이 속제가 없다면

거기에 두 가지 진리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또한 속제와 다른 것이라면

유정有情은 근심을 어디에서 넘어서는가?

107 이것은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思量) 것이다.

즉 그것은 자신의 속제가 아니다.

나중에 그것이 확실하다면 그것은 존재한다.

아니면 속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108 분별과 분별하는 대상은

둘이 서로 의지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보편에 의지해서

모든 분별지를 말한다.


109 만일 분별지를

분별지로 분석한다면

그때 그 분별지 역시도

분별지임으로 접촉接觸이 없다.


110 분석 대상이 분별지라면

분별지에는 의지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의지할 것이 없음으로 생기지 않는다.

즉 그것 역시 열반이라 말한다.


111 그렇다면 이 둘은 진리이다.

그것은 [입증하기] 아주 어려우리라.

만일 인식하는 감각 기관에서 실제가 성립한다면.....

인식이 존재 그 자체에 의지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112 그러나 인식 대상에서 인식이 성립한다면....

인식 대상이 존재에 의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즉 서로의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둘 다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113 만약 아들이 없으면 아버지가 아니라 한다면

아들 그 자체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아들이 없음으로 아버지가 없고

그와 같이 그 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114 싹이 씨앗(種子)에서 생겨난 뒤에

씨앗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과 같다.

인식 대상에서 생긴 인식으로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하는 가?


115 싹에서 다른 것을 인식하여

‘씨앗이 존재한다’고 이해하면

어떤 인식 대상도 그것을 [스스로] 이해하는 것인데 인식이 존재하는 그 자체를 무엇으로 이해하겠는가?


116 잠시 세간은 현량現量(직접 지각)으로

인因을 모두가 볼 수 있다.

연꽃의 줄기 등을 구별하는 것은

인因의 구별에서 생긴 것이다.


117 ‘인因을 구별한 것은 무엇으로 했는가?’한다면....

이전의 인因을 구별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어떻게 인因으로 과果를 산출産出할 수 있는가?.....

이전 인因의 힘 그 자체에서.


118 자재천自在天(Isvara)이 전변轉變의 인因이라면.....

먼저 자재천은 무엇을 말하는가?

‘대종大種(구성 요소)’이라고 한다면..... 그런 것은 없다.

이름에 이 또한 무슨 수고인가?


119 그렇다 하더라도 지대地大 등은 다수多數이고

무상無常. 부동不動. 신성神性이 아니며

밟히고 더렵혀지는 그것은

자재천의 본성이 아니다.

120 자재천은 허공이 아니고 부동不動임으로 아我가 아니다.

이전부터 논박했듯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창조주라도

불가사의한 것을 말해 무엇 할 것인가?


121 그것을 생산生産하기 바라는 것은 또한 무엇인가?

아我는 그것과 지대 등을.....

자재천의 자성도 역시 영원하지 않는가?

인식은 인식 대상에서 생기고,


122 무시이래無始以來 안락에서 나온다면

그리하여 무엇을 생산生産하는 것이란 말인가? 인因에 처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果의 처음은 어디에 있는가?


123 항상 어떤 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가 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것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면 그에 의한 이것은 무엇인가에 의존해야 하리라.


124 만일 의존한다면 결합한 그 자체가

인因이 됨으로 자재천이 아니다.

결합이라면 생기지 않은 힘은 없는 것이고

그것이 없음으로 생기는 힘은 없다


125 만일 자재천이 바라는 바와 같지 않다고 한다면 다른 힘으로는 되어야 하리라.

바란다 하더라도 바라는 것을 얻은 후에 되리라.

행하더라도 자재천은 어디에 있는가?


126 어떠한 미진微塵도 영원하다는 주장들

역시 이전에는 부인했었다.

원질原質(Prakrti)을 영원한 전변의 인因으로

수론파數論派(Samkhya)는 인정한다.


127 순질純質. 동질動質. 암질暗質이라는

행위動力의 속성이 평형平衡 상태인

원질原質(Prakrti)이라는 근본 동력인動力因을 말한다.

즉 평형[상태]이 아닌 것을 전변이라 한다.


128 하나에 자성이 셋인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속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그것 역시도 각각 세 가지 형상이기 때문이다.


129 속성이 없다면 소리 등도 역시

존재성存在性이 아주 멀어진다.

마음이 없는 의복衣服 등에 안락 등이 존재하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다.


130 그 사물도 인因 의 자성이라면.....

사물은 고찰하지 않았던가?

그대의 인因도 역시 안락 등의 성품

거기에서 모포毛布(보료)등이 나온 것도 아니다.


131 모포毛布 등에서 안락이 왔다면

그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락도 없다.

안락이 영원한 것이라도

언제나 대상(所緣)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32 안락 등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라면

경험은 어떻게 파악되는 것인가?

그 자체가 미세하다면.....

즉 거칠고 미세함은 또한 어떤 것인가?


133 거친 것을 버려서 미세하게 된다면

그 미세함과 거침은 무상한 것이다.

그와 같이 모든 사물이

무상한 것을 왜 인정하지 않는가?


134 거침이 안락과 다른 것이 아니라면

안락은 확실히 무상한 것이다.

만일 존재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고 인정한다면.....


135 확실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데서 생긴 것은 그대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일 인因에 과果가 존재한다면

음식을 먹는 것은 오물을 먹는 것이다.


136 무명(綿衣) 옷값으로

면화棉花 씨앗을 사서 입어야 하리라.

세간이 미혹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 자체는 인식하는 그것이다.


137 그 인식은 세간에도 역시 존재함을

어찌하여 보지 못하는가?

세간은 인식 방법 그 자체가 아니라면.....

확실한 것은 보이는 것 역시도 진리는 아니다.


138 만일 인식 방법이 척도尺度가 아니라면

그것으로 측정한 것도 거짓이 아닌가?

그렇다면 공성을 수습修習하는 것

그것 때문에 반박하게 되리라......


139 분별한 사물을 접촉하지 않으면

그것의 비사물은 파악되지 않는다.

그럴 때 파악한 사물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 경우 비사물은 확실히 거짓이다.


140 몽자夢子(꿈속의 아들)가 죽었기 때문에

‘그것이 없다’고 여기는 사량 분별思量分別은

‘그것이 있다’는 사량 분별의 장애이며

그것 또한 거짓이다.


141 그러므로 그와 같은 분별지에서

어떠한 것도 인因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성個別性과 집합성集合性은

연緣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142 다른 것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머무는 것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다.

미혹이 진리가 되어버린 이것이

환幻에서는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143 환幻이 변화한 것은 무엇이고

인因은 무엇이 변화한 것인가?

그것은 무엇에서 왔고

무엇으로 가는지 또한 분별해야 하리라.


144 어떤 것은 무언가 근처에서 볼 수 있지만

그것이 없으면 아니다.

가짜 영상影像과 똑같은

그것에 진리 그 자체가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145 사물이 존재하는 것에

인因은 왜 필요한 것인가?

그러나 그것이 없다면

또한 인因은 왜 필요한 것인가?


146 백 천만 가지 인因으로도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바꿀 수는 없다.

그 상태에서 사물은 어떤 것인가?

사물이 되는 다른 것은 또 무엇인가?


147 [그런 것이] 없을 때, 사물이 존재할 수 없다면 사물이 존재하는 것은 언제라는 것인가?

사물이 생기지 않았다면

비사물과 분리되지 않았으리라.


148 비사물과 분리되지 않았다면

사물이 존재할 사이(時)도 없었을 것이다.

사물은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자성이 둘로 되기 때문이리라.


149 그와 같이 막혀있지 않으면

사물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모든 중생은 언제나 생기는 것이 아니며 막힘이 없는 것이다.


150 중생은 꿈과 같은 것이며

통찰通察해 보면 파초와 같다.

열반과 비열반非涅槃도 역시

그 자체로는 차이가 없다.


151 그와 같이 공한 사물에서

얻을 것은 무엇이고 잃을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공경恭敬하였으며

심하게 경멸輕蔑한 것은 또 무엇인가?


152 안락과 고통은 무엇에 있는가?

미분未分은 무엇이고 분리는 무엇인가?

그 자체(自性)를 찾았다면

무엇을 애착하고, 무엇에 애착하는가?


153 분석하면, 재생再生하는 이 세간

무엇이 여기서 죽어 가는가?

즉 나올 것은 무엇이고 나온 것은 무엇인가?

친척과 친구는 또 무엇인가?


154 모든 것은 허공과 같으니

나와 같이 완전히 파악해야 하리라.

자신이 안락하기를 바라는 이들은

다투고 좋아한 인因으로,


155 아주 흥분하고, 행복해 하며

수고하고, 노력하며, 논쟁하고

서로 가르고, 찌르며, 위협하며

아주 어렵게 살아간다.


156 선취善趣로 다시 또다시 오고

많은 안락을 누리고 또 누린 후에

죽어서 악취고惡趣苦는

긴 세월, 참을 수 없는 이들로 떨어진다.


157 세상(有)의 수많은 골짜기

그곳은 자성自性이 아닌, 이와 같다.

그곳은 또 서로 모순(相遠)되어

자성이 이와 같지 않다.


158 그곳은 또 예외 없이, 참을 수 없는

고해苦海가 끝없이 펼쳐진다.

그곳은 그와 같이 힘이 없으며

그곳은 수명도 또한 짧은 곳


159 그곳은 또 살고, 병듦이 없으면

행하고, 굶주리며, 피곤해 하고

수면과 손해가 그와 같아서

어리석은 이와 친함은 의미가 없어라.


160 시간은 의미없이 빨리 지나가며

분별지는 참으로 얻기가 어려워라.

그곳은 또 나태懶怠가 익숙한 곳

막아낼 방법이 어디에 있는가?


161 그곳은 또 커다란 악취惡趣에 떨어짐으로

마군魔群(Mara)이 수고하리라.

그곳은 외도外道의 길이 많으며

의심에서도 건너기 어려워라.


162 즉 다시 한가롭기 어렵고

부처가 오시기는 더더욱 어려워라.

번뇌의 강물은 되돌리기 어렵고

아! 고통은 계속되누나.


163 그와 같이 혹독한 고통도

자기고自己苦는 못 보는 것인가?

고통의 강물에 머무는 이들은

아! 근심을 행하기 좋구나.


164 예를 들면 어떤 이는 반복해서 목욕을 하고 그리고는 반복해서 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와 같이 혹독한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즐거움에 이끌리는 것과 같다.


165 그와 같이 늙고 죽음이 없는 듯

따라서 누리던 이들은 제일 먼저 죽어

악취에 떨어지는 것이 불가항력不可抗力으로 찾아온다.


166 그와 같이 고통의 불로 괴로우니

공덕의 구름에서 상서롭게 나타난

자기 안락의 결정結晶인 비로

적멸寂滅에 이를 나는 언제나 되려나?

167 언제나 대상所緣이 없는 방법으로

겸양한 공덕 자량을 쌓으며

대상으로 쇠망한 이들에게

공성을 보여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