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타행자의 편지/광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

염불선이야기6-대승불교에서의 염불-중국 ②

염불선이야기6-대승불교에서의 염불-중국 ②


 극락세계는 서쪽으로 아득히 먼 공간에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실존하는 세상일까? 아니면 중생들에게 하나의 방편으로 제시된 허구의 세계일까?

 <정토삼부경> 가운데 하나인 <아미타경>에서는 “서쪽으로 십만억 불국토를 지난 곳에 극락세계가 있고 우리 중생이 부처님을 일심으로 염하면 그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라고 설한다. 또 같은 <정토삼부경>인 <관무량수경>에서는 “모든 부처님은 바로 법계(法界)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이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할 때 이 마음이 바로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수형호(八十隨形好)를 갖춘 원만 덕상(德相)이니라.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루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니라.”라고 설하고 있다. 같은 정토삼부경내에서도 한 곳에서는 ‘극락세계는 서쪽으로 십 만억 불국토 바깥에 있고,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하면 그 나라에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고 다른 한곳에서는 ‘우리 마음이 곧 부처요. 우리가 부처를 생각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가 부처님의 다양한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진제란 이법계(理法界)의 관점으로, 즉 부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을 의미하며, 속제란 사법계(事法界)의 관점으로, 다시 말해 우리중생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부처님의 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변해가는 무상(無常)한 연기(緣起)적 세계로 ‘나(我)’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으니 무아(無我)이다. 그래서 내가 가야할 극락세계도 이 사바세계를 떠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성미타(自性彌陀)ㆍ유심정토(唯心淨土)’라 하여 일체 만법을 원만히 갖춘 참 성품인 마음이 바로 우리 자성인 아미타불이며 극락세계 또한 청정한 마음 위에 이루어지는 장엄한 경계인 것이다.


 그러나, 중생의 관점에서는 분명히 ‘나’와 ‘너’,가 존재하고 항상(恒常)하다고 믿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어,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된다는 관점에서는 분명히 극락세계도 우리가 사는 세계처럼 어딘가에 따로 실존하는 세계인 것이다. 그런데 왜 십 만억 불국토를 지난 서쪽에 극락세계가 있다고 했을까? 극락세계는 번뇌에 때 묻은 중생의 분상에서는 실재하지 않는 꿈같은 세계이기 때문에 중생의 차원에 영합(迎合)한 비유와 상징적인 표현으로 십만억국토를 지난 먼 거리에 있다고 표현하고, 서쪽은 해가 지는 방향으로 모든 것의 결말, 성취를 상징하여 이상화해서 말한 것이다.  이렇듯 같은 <정토삼부경>내에서도 속제적 가르침과 진제적 가르침, 방편과 진실이 혼재(混在)하는 것은 중생의 근기에 고려해 모든 중생을 성불로 이끄는 부처님의 대자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