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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광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

염불선이야기4-대승불교에서의 염불-인도

염불선이야기4-대승불교에서의 염불-인도


 대승불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용수보살은 불교의 수행법을 난행문(難行門)과 이행문(易行門)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중 염불수행은 믿음을 통해 쉽게 수행하는 이행문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저서 <십주비바사론>에서 염불을 색신염불(色身念佛)과 법신염불(法身念佛), 실상염불(實相念佛)과 십호염불(十號念佛)로 분류하고 있다. 먼저 ‘색신염불(色身念佛)’이란 32상 80종호로 표현되어 있는 부처님의 색신을 염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색신에는 무량한 공덕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몸에 갖춘 뛰어난 묘상(妙相), 또는 상호(相好)를 염하면 공덕이 생겨, 일체 지혜를 얻고 성불한다고 한다.


 ‘법신염불(法身念佛)’은 먼저 부처님의 색신을 염하고 난 후 부처님의 법신을 염하라고 한다. 이 법신에는 40불공법(不共法)이 있기 때문이다. 불공법(不共法)이란 성문, 연각 등과 공통되지 않는 불보살님들만이 갖추신 특유의 공덕법(功德法)을 말한다. 부처님의 몸은 분명 색신(色身)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색신은 항상 하지 않기 때문에 색신을 통해 법신을 보아야 한다고 한다. ‘실상염불(實相念佛)’은 색신과 법신에도 집착하지 않는 중도(中道)의 실천으로 반야공사상(般若空思想)을 기초로 한 공관염불(空觀念佛)이다. 실상염불(實相念佛)은 공을 믿고 즐거워하여 모든 법이 허공과 같은 줄 아는 것으로, 이것이 용수보살이 생각하는 염불의 본뜻이라고 할 수 있다.


 ‘십호염불(十號念佛)’은 십호(十號)의 묘상(妙相)으로써 염불하면 부처님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마치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십호란 여래(如來).응공(應供).정변지(正遍知).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세존(佛世尊) 등이다. 용수보살은 처음 발심한 보살은 색신염불, 법신염불, 실상염불의 순서로 쉬운 염불부터 시작해야만 궁극의 목적인 실상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실상염불을 설한 후 다시 십호 염불을 언급한 이유는 처음 발심한 보살은 실상염불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하근기의 사람도 할 수 있는 십호 염불을 통해 반주삼매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고, 십호는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공덕의 표상이므로 십호 자체에 공덕이 있기 때문에 처음 발심한 보살이라도 십호를 염하면 반주삼매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용수보살은 <대지도론>에서 염불은 수행자가 일심으로 부처님을 염하여 여실지혜를 얻고 대자대비를 성취해 착오가 없기 때문에 이행문이라고 말한다. 이상 살펴 본 바와 같이 인도 대승불교의 염불도 초기불교의 염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할 것인가’ 하는 관점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색신염불은 부처님의 32상 80종호라 하는 외형적 특징을 통해 접근하고, 법신염불은 부처님의 공덕상(功德相)을 통해 접근하며, 실상염불은 부처님을 중도실상의 이치로써 접근하며, 십호 염불은 명호(이름, 기호의 상징성)를 통한 접근방법으로 이해된다. 이는 대승불교로 넘어오면서 삼신불사상(三身佛思想)이 출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염불의 대상인 부처님에 대한 개념에 따라 세분화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