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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거꾸로 세상보기

거꾸로 세상보기



 한국의 지리산자락 동리산 태안사에서 청화淸華큰스님을 모시고 살 때였습니다.

 어느 날 40대인 나이 많은 행자가 들어왔는데 그는 사회에서 어느 정부기관에 근무했고 또 상류층사람들과 골프회동도 잦았다며, 먼저 들어온 나이어린 행자들에게 과시하며 선배 행자들을 부리곤 했습니다. 더구나 어른스님들이 보이면 얼른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면서 성실한 듯 잘 보이려는 모습이 완연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큰스님께서는 먼저 들어온 행자들과 함께 사미계를 주어 스님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에 나는 ‘조금 더 두고 보시자.’고 건의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큰스님께서는 괜찮다고 하시기에, 혼자 속으로 ‘큰스님께서는 멀리 토굴에 계시어 후원사정을 잘 모르시면서 저러시는구나.’하고 두 번 세 번 말씀을 드렸으나 결국 계를 주어 스님이 되게 하였습니다.

 행자는 스님이 된 뒤 그 다음날로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얼마 뒤에 어느 큰절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큰스님 상자라는 분이 남을 속이는 사기를 치고 일을 저질렀다. 그런 사람을 왜 알아보지도 못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보고 판단한 견해가 옳았다고 생각하면서 큰스님께 전후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래도 계주길 잘 했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의아해하는 저에게 큰스님은 말씀하시길 “부처님 계를 받는 것이 씨앗이 되어 이 다음에는 더 큰일을 저지르진 못할 것이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부끄러웠습니다. 나는 겨우 눈앞에 벌어진 현실만 보고 나의 판단이 틀림없다고 자신했는데, 큰스님께서는 얼마나 멀리 바라보고 얼마나 깊이 생각하신 것인가! 순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40여년 전 불교공부를 해나가면서 부처님 말씀을 확인하고픈 소견으로 유치원 아이들에게 시험을 해본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하던 놀이 중 하나로 등에 올라타서 가위 바위 보를 하는 놀이었습니다.

 그때 허리를 숙이고 가랑이 사이로 멀리에 있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보이는가? 어린 아이들은 보이는 그대로 순진하게 대답 했습니다. “이상해요. 사람이 거꾸로 서 있어요.”

 부처님 눈으로 보면 범부중생의 견해는 ‘전도몽상’이라고 합니다. 거꾸로 매달려 바라보는 꿈같은 생각이라 합니다. 그래서 깨달음은 ‘원리전도몽상’이라, 전도몽상을 멀리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지금 나의 소견이, 견해가, 판단이 가장 확실하고 옳다고 고집합니다만 상대편 입장에서 본다면 어떠할까? 아내의 입장으로, 남편의 입장으로 각기 상대편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나는 어떻게 보일까?

 거꾸로 보기를 생각해 봅니다. 또한 멀리 보기를 생각합니다. 겨우 눈앞, 코앞에 벌어진 일들을 보고 좌절하거나 실망하기 쉽고 또 기뻐 날뛰기 쉬운 것이 우리네 범부중생들의 심정인데 한치 앞 밖에서 더 멀리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정견正見이 올바른 견해가 확립되어야만 공부도, 수행도, 삶도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출처 : LA중앙일보


2005년 5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