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 청화 큰스님 법문집/8. 마음

마음의 세계

● 마음의 세계


우리는 흔히 너그럽고 밝아서 트인 마음을 하늘같이 넓다고 찬양하고, 옹졸하고 막막한 마음은 바늘귀만도 못하다고 꾸짖고 빈축하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체 인식작용이나 무의식 등 그 무엇이든 마음을 떠나서는 아예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엄경』에도 "일체 만법이 오직 마음뿐이요, 마음 밖에 따로 아무것도 있을 수 없거니, 마음과 부처님과 중생의 이 세 가지가 차이가 없느니라[三界唯一心 心外無別法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비단 사람뿐 아니라, 일월성수(日月星宿)나 삼라만상 일체 존재가 마치 바람 따라 물 위에 맺히는 거품과도 같이 마음 위에 이루어진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經)에도 우주만유는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 중생이 무지와 무명에 가리어 일체 만유의 실상(實相)인 마음, 곧 불성(佛性)을 깨닫지 못하고 그 현상인 상대적인 물질세계만이 실재(實在)한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한량없는 번뇌 망상을 일으켜, 현대와 같이 불안하고 혼란한 사회현상을 자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중생들이 생활하는 경계를 『법화경』에서는 그 번뇌의 정도에 따라서 십법계(十法界)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선, 번뇌와 업장이 가장 무거운 지옥세계로부터 일반 동물인 축생세계, 매양 굶주리고 헤매는 귀신세계, 힘이 세고 싸움만을 일삼는 아수라(阿修羅)세계, 선악(善惡)이 거의 상반되고 사뭇 분별이 많은 우리 인간세계, 선량하고 안락한 천신(天神)들의 천상세계 등 아직 마음의 진리에 어두운 여섯 갈래[六道]의 범부세계가 있습니다.


그 다음, 마음의 실상을 깨달은 성자의 세계로서, 스승에 의지하여 깨달은 성문(聲聞)세계, 스스로 명상을 통하여 깨달은 연각(緣覺)세계, 자기뿐 아니라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육바라밀(六波羅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을 닦는 보살(菩薩)세계, 그리고 지혜와 자비 등 일체 공덕을 원만히 갖춘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 자체인 부처님세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분은 우리 인간의 차원에서 분별한 방편적인 구분에 지나지 않으며, 마음의 본성인 불성 곧 우리의 본래면목을 깨달은 성자의 청정한 안목에는, 위에서 열거한 지옥에서부터 부처님의 세계까지가 다 한결같이 미묘청정한 불성으로 이루어진 불국토(佛國土) 아닌 데가 없습니다.


그것은, 일체 물질의 근본 요소인 전자나 양자나 중성자 등과 소립자로부터 동물과 식물과 광물 그리고 하늘의 뭇별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결같이 마음이라 하는 가장 순수한 생명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일체 존재의 근본에 통달한 대아(大我;성자)의 경계에서는 천지만물이 오직 마음뿐이요,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진정한 의미의 하느님이기도 함)이기도 한 것입니다.

『법화경』「비유품(譬喩品)」에 "어떤 가난한 사람이 부자인 친구 집에 가서 술에 취하여 잠이 들었는데, 주인 친구는 요긴한 일이 생겨 외출하게 되자 가난한 친구의 옷 속에 보배를 매어주고 떠나게 되었다. 이윽고 잠을 깬 가난한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르고 하릴없이 유랑하면서 간신히 세월을 보냈다. 얼마 후에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게 되어 그 말을 듣고, 그 보배 덕택으로 단번에 빈궁한 신세를 벗어나 행복하게 되었다"는 법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무지와 번뇌에 사로잡혀 그지없이 헤매다가 다행히 성자의 가르침을 만나서 자기 안에 본래부터 갖추어 있는 불성을 깨닫고 애꿎은 인생고(人生苦)를 벗어나 영생의 안락을 얻게 되는 간곡한 비유 담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의 본성은 완전무결한 불성이지만, 우리들이 본래 성품인 불성을 등지고 현상적인 물질만을 집착하여 탐내고 증오하는 생활을 되풀이하는 한,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뭇 허기진 탄탈로스의 사무친 기갈(飢渴)과도 같이 인간존재의 처참한 고난의 형벌은 영구히 가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류사회가 당면한 인과응보의 고질적인 병폐와 역사적 위기를 극복하는 오직 하나의 확실한 대도(大道)는, 일찍이 수많은 성자들이 밝히신 바, 우주와 인생의 근본생명인 불성 곧 부처님을 굳게 믿고, 스스로 부처님이 되기 위하여 마음에 순간 찰나도 부처님을 여의지 않으면서 공변된 도덕적 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영원히 행복한 길, 그 길을 위하여 무수한 성자들과 순교자들이 난행고행(難行苦行)을 거듭하고 생명을 바쳐서 개척한 영생불멸의 고향으로 통하는 광명의 길, 유물주의의 탁류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이 살아남을 오직 한 줄기 이 구원의 길을 우리들이 마다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


                       [- 불기 2531년, 《강천회보》-]



▒ 청화 큰스님 행장 ▒



큰스님께서는 1923년 11월 6일(陰) 전남 무안군 운남면 연리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스님의 속명은 강호성(姜虎成)이었습니다. 일본에 유학하고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셨는데, 학생시절 민족 자각의식을 깨우치면서 민족의 독립과 해방에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여 귀국한 뒤 고향인 무안군에서 고등공립학교(현 망운중학교)를 세우셨습니다.


큰스님은 평소 동양철학에 깊이 심취했고 진보적 의식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해방공간에서 민족 간의 극심한 좌우대립을 목격한 스님은 평소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출가를 결심하셨습니다. 그때가 바로 24세 때입니다. 1947년 큰스님은 속세를 등지고 전남 장성 백양사 운문암을 찾아가 당시 송만암 대종사의 상좌이신 금타대화상(金陀大和尙)을 은사로 출가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은사인 금타대화상의 수행가풍을 그대로 이으셨습니다. 하루 한 끼 공양[一種食]과 장좌불와(長坐不臥), 청빈(淸貧), 통불교(通佛敎) 사상을 평생의 신조로 삼아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출가 후 40여 년의 깊고 깊은 수선안거(修禪安居)에 들어가셨습니다. 무안 혜운사, 구례 사성암, 지리산 벽송사, 백장암, 남해 부소대, 두륜산 진불암, 상원암, 남미륵암, 장흥 금선암, 월출산 상견성암 등 전국 제방선원과 토굴에서 계율을 엄격히 지키며 탁마장양(琢磨長養)하셨습니다. 그 중 사성암의 혹독한 고행은 세간에 알려질 정도의 두타행이셨습니다. 큰스님은 동안거 결제정진을 위해 암주보살에게 방세를 주어 아랫마을로 보내시고 홀로 삼동 한 철을 공부하셨습니다.


암주보살이 절 안에 놔둔 고양이 때문에 밤중에 가끔 사성암에 올라가면 큰스님께서는 껌껌한 바위 웅덩이에서 찬 샘물을 큰 양동이에 받아 아주 천천히 머리에서부터 붓고 계셨다고 합니다. 당시 큰스님께서는 수행처 앞에 근고청중(謹告淸衆; 삼가 청정대중에게 알림) 푯말을 내걸으셨다고 합니다. 생사사대(生死事大; 삶과 죽음이 가장 큰 일인데), 무상신속(無常迅速; 덧없는 세월은 빨리 가버리니), 촌음가석(寸陰可惜; 짧은 시간도 한껏 아끼며), 신물방일(愼勿放逸; 방심하고 게으르지 말라)고 써놓으셨다고 합니다.


큰스님 탁발수행은 1983년 태안사에 주석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늦깎이로 출가한 스님인지라 이미 60세가 넘으신 나이셨습니다. 83년 10월 큰스님은 20여 명의 도반과 함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태안사에서 95년까지 10년간 주석하시면서 3년 결사정진을 감행하고 중창불사를 완결하셨습니다. 수행과 불사는 따로 가 아니라는 것을 손수 보여주신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재가불자들을 위한 참선수행을 위해 정중당(淨衆堂)을 개설하셨습니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결정이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수행에는 출ㆍ재가가 따로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1992년 겨울, 큰스님께서는 또 한 번 대중들을 놀라게 하는 수행력을 보여주셨습니다. 한국 불교 역사상 최초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 분의 대중스님들과 함께 3년 결사정진에 드신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삼보사에서 결사정진 하시면서 많은 미국인들에게 감화를 주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95년 1월 동안거 중에 사부대중을 위한 7일간의 '순선안심탁마법회'를 열어 참다운 선수행의 진리를 설파해 미국의 언론으로부터 큰 반향을 얻기도 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출가하신 이래 한 번도 수선안거를 어기신 일이 없으셨습니다. 천하의 선승으로 널리 알려지신 큰스님께서는 교학(敎學)이나 외전(外傳)에 있어서도 대단한 박학이셨습니다. 교학에 대해 어떤 참구가 와도 시원시원하게 답변을 하실 정도였습니다.


큰스님께서 제창하신 행법은 투철한 계율과 정혜쌍수(定慧雙修)를 기본정신으로 한 염불선(念佛禪)이었습니다. 큰스님께서 제창하신 염불선은 경우에 따라 정통선(正統禪), 자성선(自性禪)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는 은사이신 금타대화상께서 창도하신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이라는 행법을 전수받으시고 이를 법계일심(法界一心)의 한 생명사상으로 승화시킨 행법입니다.

큰스님은 또 일관된 도량신조(道場信條)를 견지하셨습니다. 가장 청정한 도량, 가장 엄정한 계율, 초인적인 용맹정진의 휘호를 손수 쓰셔서 도량에 내걸으셨습니다. 큰스님 수행도량의 사부대중은 이 삼대 신조를 기준으로 정진하였기에 세상의 귀감이 되는 수행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큰스님의 평생 화두는 '중도실상(中道實相)'이었습니다. 큰스님은 "선이란 우리 마음을 중도실상인 생명의 본질에 머물게 해 산란하지 않는 수행법이다. 중도실상에 입각하면 회통이 된다. 중도실상의 안목을 가지고 바른 생활을 해야만 바른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생을 청정한 계행과 철저한 두타 행으로 수행 정진해 오신 스님은 입적하실 때까지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전남 곡성 성륜사와 서울 도봉산 광륜사에서 정기법회를 열어 후학들을 제접해 오셨습니다.


2003년 11월 12일 오후 10시 30분, 곡성 성륜사 조선당에서 문도들에게 "철저한 수행과 계율을 지킬 것"을 당부한 후 임종게(臨終偈)를 수서(手書)하시되


   此世他世間   이 세상 저 세상

   去來不相關   오고 감을 상관치 않으나

   蒙恩大千界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報恩恨細澗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


하시고, 편안히 열반에 드시니 세수는 80세가 되시고 법랍(法臘)은 56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