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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8. 마음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으리라

●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으리라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법신(法身) 부처님은 법계(法界;온 누리)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 계시느니라" 하였듯이, 우주만유가 그대로 부처님 자신의 몸이며, 나고 죽고 변천하는 일체 만상 또한 부처님 자신의 심심미묘한 활동양상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중생들이 자기 자신이 우주의 실상인 부처님과 하나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과 갈등은 영구히 해소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우주의 목적의지를 불교 표현으로는 부처님의 서원(誓願)이라 하는데, 이를 간추리면 사홍서원(四弘誓願)이라 하고, 이를 보다 구체화하면 아미타불의 48서원이 됩니다. 그 내용은 다 한결같이 모든 중생을 본래 자기성품[自性]인 부처가 되게 하는 광대무변한 원력(願力)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특히 제3서원에서 "온 세계 중생들의 몸이 모조리 진정한 금색광명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으리라" 하였고, 제11서원에서는 "온 세계 중생들이 필경에 부처가 되지 못한다면,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으리라" 하였으며, 제12서원에서는 "내 광명이 무량무변하여 헤아릴 수 없는 모든 국토를 비출 수가 없다면,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으리라" 하였고, 제18서원에서는 "내 나라인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환희심을 내어, 내 이름(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지성으로 다만 열 번만 외우거나 불러도,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면,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으리라" 하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법문들이 여러 경전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상징적인 의미를 풀이해 보면, 진실한 부처님 곧 법신 부처님은 바로 우주 자체이며, 온 누리에 충만한 부사의한 생명의 광명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을 비롯한 일체 만유 또한 깨닫고 깨닫지 못하는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두가 동일한 생명인 불성의 광명으로 이루어진 화신(化身)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量子力學)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 일체 존재를 구성하는 근본요소인 양자ㆍ전자ㆍ중성자 등의 소립자란, 우주에 충만한 장에너지(energy of field)인 광명의 파동[光波]으로 부터 인연 따라 이루어진 광명의 입자[光粒子]임을 증명하고 있으니, 일체 물질현상은 그대로 광명의 형상화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일찍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큰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시다가, 아버지인 정반왕의 간청으로 가비라성을 떠난 지 12년 만에 귀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허공으로 솟아올라 자재롭게 거니시며 상서로운 광명을 발하시어 정반왕을 비롯한 모든 대중들을 환희에 넘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내 좌정하시어, "일체 만법이란 인연 따라 잠시 모였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지 않을 수 없는 덧없고 허무한 것이니, 이를 집착하지 말고 오직 번뇌를 여의고 해탈을 구함이 인생의 정도(正道)라"는 해탈법문을 설하시어, 모든 이에게 보리심(菩提心;위없는 진리를 깨닫고 만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셨습니다.


이때, 정반왕이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습니다.

 "세존(世尊)이 부처님이 되시어, 그 광명이 이렇듯 형언할 수 없이 장엄하거니와,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말세 중생들은 어떻게 부처님의 한량없는 광명을 알 수가 있으리오. 원컨대 세존께서는 나와 여러 중생들을 위하여 자세히 말씀하여 주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 온 누리에 광명을 충만케 하는 삼매[遍色身三昧]에 드시니, 홀연히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청정미묘한 오색광명이 나와서 온 세계를 두루 하고, 다시 부처님의 정수리로 거두어져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가비라성의 넓은 정원에 난데없이 금빛 찬란한 커다란 연꽃이 솟아오르니, 그 꽃잎이 1천(千)이며, 그 천 잎으로부터 천 갈래의 광명이 일어나고, 그 광명 가운데 천 분의 화신 부처님이 나투시었는데, 각기 부처님은 천 분의 시자(侍者)와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정반왕에게 여쭈시기를 "부처가 열반에 든 후에, 중생들이 애써 죄악을 멀리하고 생각을 오롯이 하여 한량없는 부처의 광명을 생각한다면, 부처가 생존해 있지 않더라도 부처를 보는 것이 될 것이며, 필경에는 반드시 위없는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번뇌를 여읜 성자의 청정한 안목에는 유정무정 천차만별의 모든 존재들이 다 한결같이 청정미묘하고 영생불멸하는 생명의 광명 아님이 없습니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도 부처님의 광명을 12광불(光佛)로 찬탄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광명이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 하여 무량수(無量壽)불이요, 그 광명이 온 누리에 충만하다고 하여 무량광(無量光)불이며,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다 하여 무애광(無碍光)불, 우주만유가 오직 다만 생명의 광명뿐이기에 무대광(無對光)불, 훨훨 타오르는 불꽃같이 빛난다 하여 염왕광(燄王光)불, 미묘청정한 광명이니 청정광(淸淨光)불, 모든 지혜공덕이 원만히 갖추어져 있어서 지혜광(智慧光)불, 끊임없이 언제나 빛나기에 무단광불(無斷光)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부사의한 광명이니 난사광(難思光)불, 해와 달빛으로 비교할 수 없는 영롱한 광명이어서 초일월광(超日月光)불, 그래서 부처님의 광명은 바로 영원한 행복 자체이기에 환희광(歡喜光)불이라 찬탄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을 비롯하여 일체 생명의 실상인 불성은 모든 공덕을 갖추고 온 누리에 충만하여 영원히 멸하지 않는 청정미묘한 광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자나 메아리같이 허망한 현상세계에 집착하는 번뇌만 소멸하면 우리 스스로 생명의 본질인 광명 자체 바로 부처님이 되어, 광명세계 곧 극락세계의 영생의 복락(福樂)을 온전히 보고 느끼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과 정신, 유와 무, 너와 나 등 일체 상대적 대립을 초극한 생명의 실상인 광명세계의 상념(想念)을 굳게 지니고 올바른 도덕적 생활을 기조로 하여, 제각기 인연에 따라 주문을 외우든, 염불을 하든, 화두를 참구(參究)하든, 또는 명상이나 기도를 하든지 간에 모두가 다 한결같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지름길인 선(禪)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결국 참선 곧 선(禪)이란 우리 마음을 중도실상인 생명의 본질에 머물게 하여 산란하지 않게 하는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의 수행법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실한 수행을 간단없이 지속할 때, 마치 흐린 물이 쉴 새 없이 흘러가노라면 그 자정작용에 의하여 저절로 맑아지듯, 어두운 번뇌의 그림자는 가뭇없이 스러지고 날로 생명의 광명인 부처님과 가까워지며, 필경 부처님과 하나가 되는 생명의 근본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체 존재의 동일한 성품인 불성을 자각하고, 그 불성에 입각한 보편적인 예지와 자비에 의해서만, 비로소 유물주의(唯物主義)에 멍든 갈등과 분열의 역사적 위기는 극복되고 인류의 사무친 비원인 진정한 자유와 평등과 영생의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 불기 2530년 11월《금륜》제7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