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 청화 큰스님 법문집/8. 마음

부처님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 부처님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인간을 비롯한 우주만유의 모든 존재들은 저마다 그 인연에 따른 목적이 있고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최상의 성인이시며 사생(四生:胎,卵,濕,化)의 어버이이시고 삼계(三界)의 스승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출현하신 서원과 목적은 크고 깊어서 이루 헤아릴 수 없으나, 그것을 한 말로 요약하여 '일대사인연'이라고 합니다.


정작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인생의 고난을 벗어나서 해탈의 바다에 노닐게 하시기 위하여, 짐짓 고생바다[苦海]인 사바세계에 화신(化身)의 몸을 나투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45년 설도 있음) 동안 설법하신 가르침, 곧 일대시교(一代時敎)는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신 이른바 8만 4천 법문인데, 이를 세 시기로 나누어 삼시교판(三時敎判)이라 합니다.


그 중 제1시교(時敎)를 유교(有敎)라 합니다. 나와 너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는 범부중생의 뒤바뀐 생각을 깨우치기 위하여, 우리 인간이란, 물질인 사대(四大:地,水,火,風)와 마음작용인 사온(四蘊:受,想,行,識)이 인연 따라 잠시간 화합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필경 나와 너의 인간존재는 무상하고 허무하여 다만 사대와 오온(五蘊:色,受,想,行,識) 등의 법만이 실재한다는 가르침으로서, 이는 근기 낮은 중생들을 일깨우는 소승교(小乘敎)라고도 합니다.


제2시교는 공교(空敎)라 합니다. 물질과 마음의 온갖 현상을 만드는 사대 오온의 법이 실제로 있다고 집착하는 소승들의 소견에 대하여, 일체 만법이 모두 공(空)하다고 부정하는 제법공(諸法空)의 가르침으로서,『반야심경』이나『금강경』등의 요지인 반야사상을 의미합니다.

제3시교는 바로 중도교(中道敎)입니다. 제1시교와 같은 너와 나의 실재를 고집하는 편견과, 제2시교에서 말하는 바, 일체 만법이 다만 허망무상하다고 하는 공의 한편만을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를 다시 부정하여,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실상은 유(有)의 개념과 공(空)의 개념을 초극한 중도의 묘한 이치, 곧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불성(佛性) 경계를 말씀하신 가르침입니다.


오랜 인류 역사를 통하여 가지가지의 고난과 갈등과 불안의 어두운 그림자는 다만 한시도 개일 날이 없었으나, 그것은 마치 물에 비친 달[月]이나 거울에 나타난 현상이 실상이 아님을 모르고 실재하는 사실로 착각하는 것과 같은 무명(無明)과 번뇌의 소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무(有無)의 집착을 여의고 중도의 진여실상(眞如實相)을 깨달은 성자의 경계에는, 우리 인생의 모든 고난과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한계상황마저도 한결같이 꿈과 거품 같고 허깨비 같고 그림자같이 허망하고 무상하여, 그 어떠한 현실적 시련도 마음을 얽매는 밧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일찍이 중국의 승조(僧肇)대사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31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그 마지막 게송(偈頌)에서 "사대로 이루어진 몸은 원래 주인이 없고, 의식의 작용인 오온 또한 본래 비었거니[空], 이제 퍼런 서슬 아래 목을 내미니, 봄바람 베는 듯 무심하여라"라고 하여 초연한 자세로 애꿎은 죽음의 인연을 흔연히 받아들었습니다.

또한, 범신론(汎神論)의 위대한 철인으로서 신(神)에 도취하였다고까지 일컬어지는 스피노자는 "영원한 상념(想念)으로 현실을 관찰하라,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그때그때 영원에 참여하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허망한 상대적 현실에 집착하는 편견을 떠나서 매양 중도실상의 바른 인생관으로 현실을 살아간다면, 정치적ㆍ경제적으로 사뭇 술렁거리는 삶의 현장에서도 오히려 순간순간 영생의 삶을 창조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실한 깨달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마음과 우주만유가 본래 진선미(眞善美)를 원만히 갖춘 동일한 불성임을 굳게 신인(信認)하고, 우주적 대아(大我)인 불성에 걸 맞는 무아 무소유의 생활을 애써 지속해야 합니다. 그러면 편견과 집착으로 굳어진 업장의 응어리는 무너지고, 인생과 우주의 본래 고장인 장엄한 연화장(蓮華藏) 세계 곧 극락세계의 영원한 지평이 거침없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영생불멸한 진여자성(眞如自性), 곧 부처님을 순간 찰나에도 여의지 않는 생활, 그것이 바로 순수한 참선생활이요, 진정한 염불생활이며, 거기에 우리 종교인의 숭고한 자랑과 솟음치는 환희와 초인적인 강인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의상조사는 법성게의 끝부분에서 "중도실상의 도리를 사무쳐 깨달음이 영원히 변치 않는 부처님 경계로다"라고 하여 원만한 깨달음의 경지를 찬탄하였습니다.


그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고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지혜와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두루 갖춘 영원히 변치 않는 중도실상의 법성의 지혜, 곧 부처님의 일체 종지(一切種智)를 나와 남이 다 함께 깨닫게 하는 '일대사인연'이야말로 바로 우주 자체의 목적이요, 삼세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신 인연이며, 우리 삶의 가장 순수하고 고귀한 구경(究竟) 목적이기도 합니다. ◈



                          [- 불기 2530년 9월《금륜》제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