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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초기경전/4. 고요한소리

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출처: 고요한 소리 http://www.calmvoice.org


How to teach Buddhism to children?


H. 클라르 지음

각묵 스님 옮김


(Bodhi Leaves No.9)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 Sri Lanka

Dr. H. Klar



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질적인 문화에서 성장, 불교적인 사고방식과는 아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오늘의 서구 어린이들에게 불타의 가르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근대화, 즉 서구화라는 관념이 보편화된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이는 비단 서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어떤 이론을 정립한다거나 체계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열살을 조금 넘은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로서 실제 나의 생활에서 경험된 것들을 바탕으로 모든 불교가정이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문제들을 모아 검토,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해 보려는 것이다.


 과거 불교권의 사회에서는 사회 전체 구조가 불교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불교 가정의 어린이 교육이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에 의해 시행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역사적ㆍ사회적 기타 여러 면에 있어서 급속히 변화되고 서로 다른 다양한 요소들이 뒤범벅이 된 오늘날, 특히 기독교나 유물론적 환경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오늘에 있어서는 훌륭하고도 효과적이 불교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하겠다.


 사실 부모가 그들 자녀 이외의 다른 어린이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가르칠 기회는 드물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에서 불교도인 부모가 자녀에게 `어떻게 하면 불교를 가장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주로 언급하려고 한다.

 우리의 스승이신 부처님께서는 우리들 스스로가 보고 듣고 검토하여 깨치도록 하셨지 맹목적으로 남을 믿으라고 하시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선배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다른 여러나라의 경험담을 받아들여 좋은 방법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어린이를 지도하는데 선행되어야 할 몇 가지 원칙들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검토해 보기로 하자.


 1. 어린이는 어른을 모방한다.

 어린이 교육은 나이에 따라 달라야 하며 부모가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은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므로 부모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매일을 살아간다면, 이는 어린이의 연령에 상관없이 가장 확실한 지침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의 관찰력을 높은 단계로 계발해 나아감에 있어서 모방심은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우리는 어린이들의 이러한 특성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불법이 입으로만 이야기되는 것이 아닌, 부모들 일상생활에서 실현되는 산불교가 되느냐에 어린이 불교교육의 성패는 달려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2. 분위기 조성은 어린이 교육에 도움을 준다.

 부모가 스스로 좋은 본보기를 보여줌으로써 어린이를 교화시키는 것에 못지 않게 외적인 환경도 어린 시절의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다.

 불교 가정이라면, 적어도 부처님 사진이나 부처님 형상이 든 염주 정도는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어린이들이 주위에서 늘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거나 가까운 절에 자주 가서 꽃이나 향, 또는 촛불 공양을 올리게 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형상이나 불상자체를 영험이나 권위의 대상으로 예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가장 위대한 인류의 스승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셨음을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을을 갖고 예배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보살펴야 한다.


 왜 어린이들이 불상에 공양 예블하는 것이 중요한가 ?

 나이든 불자들이 단지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양하는 것으로 바라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물론 바른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관념에 바탕을 둔 모든 불교적 의식 행위는 그들의 마음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장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있지도 않은 어떤 형태의 의식을 시대에 맞게 한다고 우리 멋대로 만들어 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색다른 구경거리를 좋아하여 꽃이나 향, 등불 등을 공양하기를 즐겨한다. 어른들에게는 불교를 철학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우리 어린이들에게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너무 심오해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같은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어린이들이 주로 예불할 수 있는 어린이 법당을 건립해 주는 방안도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전통적인 법당은 어찌 보면 어린이들에게 생소하고 으스스한 느낌마저 주므로 그러한 재래의 법당과는 다른 분위기로 지어진, 불단과 색감과 선이 보다 세련되고 현대적이어서 어린이들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는 탱화로 장엄된 법당, 검토해 볼만한 일이라도 생각된다.

 위에 언급한 몇 몇 간단한 불교의식들은 어린이의 마음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깝게 느끼게 하며 선현을 공경하고 예배하는 좋은 습관을 길러 주어 불교도로서의 삶을 사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3. 축제를 활용한다.

 어린이들은 축제를 매우 좋아한다. 기독교 및 기타의 다른 종교에서는 빈번히 성대한 축제를 갖고 갖가지 잔치와 행사를 벌인다. 이같은 것은 어린이들을 그 종교로 향하게 하는 일종의 인센티브, 즉 동기유발 요인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초파일이나 성도일, 열반일 그밖에도 포살일과 같이 특별히 의미 있는 날을 축제일로 하면 좋을 것이다. 초파일이나 성도일과 같은 날에는 온통 잔치 분위기에서 화려한 옷차림에 절에 가서 준비해간 등을 달고 특별한 음식을 먹게 한다면 어린이들에게는 퍽 재미있는 놀이가 될 것이다. 이와는 아주 다르게 포살일 같은 날에는 검소한 옷차림으로 절에 가서 법회에 참석하고, 가정에서는 그날 하루 채식만 한다거나 죽을 먹는다든가 하는 일정한 계율을 지키는 것도 어린이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축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축제일에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아이들의 연령이나 인식 능력에 맞는 부처님 말씀을 가르친다. 때로는 아버지가 옛 불교도들의 감동적인 설화, 또는 본생담에 나오는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나 윤회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도덕성을 강조하고 비도덕적인 마음과 행위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상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매우 유익하다. 자신의 완성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 끝없이 자신을 버리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인 본생담의 여러 이야기들은 어린이들이 고대인도 사회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들의 마음에 업과 윤회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업과 윤회의 개념은 지적인 추론을 가장 적게 요구하므로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데 적합한 개념일 수도 있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우고 그리스 신들과 다른 신들간의 처참한 싸움에 관한 이야기를 수없이 듣는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우린가 본생담에 얽힌 유익하고도 재미난 이야기들을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기를 마다하겠는가?

 사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하고 이를 어린이들에게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바른 방법만 알고 있다면 다 가르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도 하지 않고 어떤 이들은 불법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지레 단정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이는 참으로 커다란 잘못이다. 반면에 어떤 불자들은 어린이들에게 채식이나 참선을 강요 한다거나, 절을 많이 시키는 등의 지엽적인 것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잘못 오도하는 가장 큰 요인중의 하나이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의 마음에 부처님 가르침의 씨앗이 싹틀 수 있는 토양을 일구는 것이다.


4.어린이에 대한 불교 교육은 불자의 의무이다.

 다른 종교들은 어린이들을 교화시키는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 신앙을 주입시키는 방법이 우리보다 훨씬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불교를 종교라기보다 철학에 가깝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혹은 불교의 특성으로 보아 누군가에게 어떤 사상을 주입 시키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분석 검토하기를 권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불교가 우리의 삶에 있어 추구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귀여운 자식들에게 반드시 전수해야 할 귀중한 유산이 아니겠는가?


 만일 현대 사회에서 불교의 위치가 옛날과 같지 않다면, 이는 전적으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불교교육을 등한시한 우리자신의 책임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 특히 서구사회에서의 불교교육은 가능하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행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동양의 불교국가에서는 출가하여 승단의 일원이 되는 그 목적이 자신의 해탈에도 있지만 불법이 이 세상에서 끊기지 않고 이어지도록 하는 데에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깊이 음미해 볼 만한 점이다.

 나는 물론 우리 불교에는 교육체계의 기초조차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책임을 거기에 전가하고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러기에 더더욱 우리 재가신자들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일은 불법의 전승이라는 성스럽고 중차대한 우리의 의무이다.


5. 불교 역사를 가르친다.

 이미 언급한 본생담에 덧붙여 우리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부처님 재세시 그곳 사람들의 삶과 사회상, 그리고 근본 불교가 일어나게 된 역사적ㆍ사회적 배경 및 부처님의 일대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법의 수레바퀴가 어떻게 해서 인도 전역으로, 후에는 다른 여러나라에까지 굴러가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해준다. 이는 어린이들에 역사적 현실로서의 불교를 받아들이고 불교를 포괄적으로, 건전하게 이해하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그밖에도 우리는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의 전기를 읽히는 것이 좋겠다. 부처님을 더없이 높은 스승으로 받들며 수도와 포교의 길에 헌신하였던 아난다, 사리불, 목갈라나 같은 제자들의 행적과 가르침을 읽게 한다. 인류 최고의 스승과 제자들 사이에 오간 숭고한 사랑과 신뢰의 이야기들은 아마도 어린이들의 감수성을 활짝 피어나게 하리라.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에 높은 수준의 인간관계를 열망하게 하고 용기와 희망이 솟아나도록 할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권하고 싶은 것은 과학과 불교가 일치되는 시각에서 쓰여진 책들을 읽는 일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우주법칙을 설명해 보이는 과정에서 그들의 발견을 수용할 종교로서 불교를 선택했다. 부모들 자신이 이러한 지식을 받아들여 어린이들에게 가장 과학적인 진리로서 불법의 이치를 알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6. 불법을 설명해 준다.

 이와 같이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발전함에 따라 어린이들의 마음은 점차 불법의 정신과 하나가 되어갈 것이다. 부모들은 경전 가운데 평이한 내용을 골라 읽게 할 수 있다. 근본 오계와 관련된 가르침이라든지 재가 신도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일러주고 나가서는 증지부경에서 설하신 재가 신도의 일상 생활에 관한 가르침을 들려주어도 좋다. 그러면 어린이들은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법구경에 나오는 게송들을 들려주는 것도 좋다.


        모든 생명은 채찍 앞에 두려워 떨고

        모든 생명은 죽음을 두려워하네

        이를 자신의 일로 안다면

        죽이지도 않고 죽음을 당할 일도 만들지 않으리.(법구경 129)


        모든 악을 짖지 않고

        모든 선을 찾아 행하며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네(법구경 183)


 이와 같은 게송들을 읽거나 외우게 하면 어린이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심어 줄 것이다. 사실 불교는 흔히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라. 한 어린이가 불교 신자를 부모로 하여 태어났다면 그것은 그 아이가 그러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날만한 업의 소산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어린이들에게 불자로서의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7. 어린이에게 경전 암송을 시킨다.

 어린이들은 무엇이나 쉽게 외울 수 있다. 그들에게 오계나 삼귀의를 외우게 한다. 팔리어로 색다르게 외우게 된다면 어떤 어린이들은 더욱 좋아할 것이다.

법구경에 나오는 게송들을 외우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는 나를 때렸다, 나를 욕했다, 나를 억압했다.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에

                         분함과 미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

       

        고요히 앉아 있는 사람, 그는 비난받으리

        말이 많은 사람, 그는 비난받으리

        말이 적은 사람, 그 역시 비난받으리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사람

        이 세상 어디에도 없네

        이는 지금만의 일이 아니고

        예로부터 있어 온 일이라네(법구경 227, 228)


 무조건 게송을 외우게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진리의 눈이 떠져 있으며, 또 비록 지금 당장에는 그 깊은 뜻을 모를지라도 장차 어른이 되어 삶의 바다를 표류 할 때에 그들의 잠재의 속에 남아 있는 이 빛나는 부처님의 말씀들은 삶의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8. 포살 일을 존중한다.

 포살일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배웠던 게송들을 외우게 하거나 부모들이 불법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그러나 이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어린이란 일정기간이상 한 일에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지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할 것이다. 또한 포살일을 어린이들이 기다리는 축제일이 되도록 배려를 해준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소풍을 간다거나, 여행을 하여 그날 하루 그들과 함께 노는데 조금도 인색하지 말자.

 즐겁게 숲과 들을 거닐면서 우리는 그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생명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자연스럽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태자 싣달타는 마차를 타고 그가 살던 화려한 궁궐 밖을 나왔을 때 노인을 보고, 병든 사람을 보고, 죽은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츨가 사문을 본 후 삶의 덧없음을 깊이 통찰하고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대 전환을 갖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안전하나 좁기만한 가정이라는 울타리로부터, 세상이라는 험난한 마당으로 어린이들을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불교도의 자녀들을 유년시절의 고오타마 싣닫타 왕자와 같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우리 안에서만 자라게 해서는 안된다.

 자연으로의 여행은 어린이들에게 삶의 참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숲과 들에서 짐승들이 서로 싸워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냉엄한 현실을 보고 어린이들은 자연이 이빨과 손톱을 피로 물들인 맹수들의 무대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자연 속에 팽개쳐진 인간의 삶이 갖는 조건들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린이들은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실감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들에게 이러한 사실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현장을 통해 조금씩 정확하게 알려 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고통스런 현장을 체험할 때 어린이들의 마음에는 고통받는 이웃에 대란 자애의 마음과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싹틀 것이다.


 어린이들은 자연 속에서 동물들에 대한 자애심을 느낄 기회 또한 접하게 된다.

 아주 어린 어린이들은 종종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동물들에게 짓궂게 대하는 수가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부모들의 역할이다. 부모들은 재빨리 그러한 사실을 깨달아서 어린이들에게 그들이 지금하고 있는 행위로 인해 동물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가를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부모들은 그들 자녀가 동물을 학대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다시 말해, 자녀들이 동물을 음식 덩어리가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로 존중하도록 가르칠 의무가 있다.


 전원으로의 소풍이나 여행은 이처럼 어린이들에게 동료 인간과 동물들에게 어떻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 수 있는가 하는 것을 행동으로 가르칠 기회를 갖게 해준다.

 선행을 하는 보이스카웃처럼 노인들의 짐을 대신 들어준다거나 짐수레를 밀어주는 행위, 혹은 흙탕물에 빠진 개미를 구해 주고 비가 온 후 생긴 작은 웅덩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작은 물고기들을 깊은 물로 옮겨 주는 행위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백번 암기시키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클 것이다.

 불교는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아는 것을 실행에 옮길 때 비로소 열반은 그 열매를 맺으리라.


9. 불교가 자비의 종교임을 충분히 인식시킨다.

 불교는 무엇보다도 자비를 근본으로 하는 종교이다.

 부처님께서는 대각을 이루신 후 세상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에서 가르침을 펴시게 되었다. 우리는 이 중요한 점을 어린이들에게 충분히 인식시켜 바르게 일깨워 주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어린이들의 마음에

          이웃에 대한 사랑의 마음 (慈, Mettaa)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 (悲, karunaa)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 (喜, Muditaa)

의 정신을 바로 이해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의 할 일은 끝난 셈이다.

 물론   평온한 마을을 유지하는 것(捨, Upekkha)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린이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10. 부처님의 교화 방법을 본보기로 한다.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렵게 가르쳐서는 안된다. 이는 어린이의 불교에 대한 의욕을 상실케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당시 사회의 구조와 문제점, 그리고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의 성격을 소상히 파악하고 계셨다. 그래서 사람들을 어떻게 교화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왕에서 거지에 이르기까지, 무사에서 상인, 자유인이거나 노예, 철학자, 창녀 등 어떤 신분의 사람들이 찾아와도 부처님께서는 각각의 이해와 능력에 맞게 법을 설하셨다.


 부처님이 그리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의 성격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만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들에게 불법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 가족으로 태어난 것은 어떤 절대적인 힘에 의해 그리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과 우리의 업력이 비슷해서일 것이다. 이 사실을 깊이 유념해 본다면 자녀들을 교화하는데 필요 불가결한 요소인 성격 파악이 용이해질 것이다.

 부모가 그들 자신의 자녀들에게 불교를 가르칠 수 없다면, 누가 이 중차대한 일을 성공시킬 수 있단 말인가?


11. 기독교와 유물론을 충분히 이해시켜 이에 대한 면역을 길러준다.

 우리 어린이들의 마음이 진리의 빛을 향하여 활짝 열려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어린이들이 유물론의 그물에 걸려들거나 전지 전능하리라고 가정한 신을 맹목적으로 믿는 신앙 속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서구의 어린이들은 유물론과 기독교라는 두 개의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과 다른 종교 내지 철학과의 차이점을 자세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아울러 그들에게 두 가지 극단을 극복하고 중도의 길을 설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이 갖는 독창성을 일러주어 우리 어린이들이 이러한 외적인 감염에 스스로 면역을 길러 나아가도록 한다.

 기독교와 유물론이 서구에서는 두 줄기의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상이므로 우리는 유물론의 오류를 지적하고 아울러 기본적인 기독교 사상을 알게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기독교 교회에 관한 지식과 예매와 축제 및 성가대 등에 관한 지식도 포함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자라서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를 맞았을 때 기독교의 그런 부분들에 대해 지극히 위험하고도 단순한 동경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미리 손을 써서 이런 일들에 대해 알려주고 친숙하게 해주는 것이 그들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외부환경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심리적 환경이다. 어린이에게 있어서는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말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특히 TV, 카세트, 비디오와 같은 전파매체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이러한 강력한 영향력 속에 어린이들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방치해온 무관심을 기성불자들은 스스로 가책해야만 할 것이다.


 한편, 음악적인 성향을 가진 어린이라면 아주 일찍부터 세계의 여러 음악을 들려주어서 그들이 자라서 성가대나 교회음악에 취하지 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 밖에도 다른 여러 방법으로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의 심리상태를 파악해서 알맞은 조치를 해준다. 예를 들자면 독일에서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불교 믿는 어린이들은 당연히 "왜 우리에게는 저런 훌륭한 축제가 없지?" 하고 물을 것이다.


 원래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와는 상관없는 고대 게르만족인 Yule족의 가족 축제였다. 이것은 해가 가장 짧은 날인 동지를 기리고 이날부터 해가 길어짐을 축하하는 데에서 유래된 날이다. 아직도 그런 뜻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는 독일 사람들이 많이 잇다. 이처럼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서구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가 그토록 성대란 축제일이 된 유래를 설명해 주어야 할 것이다.


12. 자기 책임의 정신이 불교의 핵심임을 알게 한다.

 모든 것은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 이야말로 불교의 중핵을 이르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그 중요성을 거듭거듭 강조해야 한다. 편견 없는 순수한 어린이들의 마음은 이 이치를 잘 이해할 것이다.


 매일 저녁 다른 종교의 어린이들이 그들의 신에게 기도를 올릴 때 불교 어린이들 또한 잠깐 동안 좌선을 하고 그날 하루 자기가 한 일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다음 번에는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을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어린이들이 자신의 그릇된 생각이나 행위를 근절시키기가 힘들어하면 그때 부모는 아이로 하여금 내일은 보다 잘 생각하고 행동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잠자리에 들도록 해준다. 다음날 아침 어린이들은 전날 잠자리에 들기 전 그들이 했던 결심을 생각해 내고는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어린이들은 심력(마음의 힘)을 개발해 나갈 수 있으며, 끊임없이 선을 행하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숙달시켜 감으로써 그들 자신을 청정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우리 어린이들은 모든 것을 용서해준다는 신의 은총이나, 사제를 통해서만이 청정해질 수 있다는 기독교적 도그마를 너머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업의 법칙에 대한 교육은 어린이들에게 이점을 더 명확하게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릇되고 제어되지 않는 행동을 길들이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에 지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미래에 보다 나은 행위를 하는 것이라는 업의 법칙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자기가 지은 것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완전한 자기 책임의 정신이야말로 성숙된 마음의 표시이다. 우리 어린이들의 마음에 이러한 수승한 마음이 계발된다면, 이는 그들 평생을 통해 가장 확실하고 완전한 의지처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맹목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종교를 극복하고 동시에 얄팍한 유물론의 철학을 뛰어넘는 튼튼한 보루가 될 것이다.

 그 밖에도 불교도인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들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자면 기독교 어린이들이 그들의 창조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식사 때에 불교 어린이들은 이 세상에는 자기들처럼 이런 훌륭하고 많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식사중에 어린이들이 음식이나 맛에 대해 절대로 불평하는 일이 없게 한다. 그러한 행위는 그들에게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해준다. 스님들이 바루 안에 있는 음식을 단지 몸을 지탱하기 위한 것으로 알아, 가리지 않고 먹는 것처럼 그런 자세로 식탁위의 음식을 먹게 한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을 규제해서는 안된다.



 이상과 같이 나는 이 글에서 어린이 불교 교육에 대한 윤곽을 대충 잡아보았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불교도인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한 불교 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그 애들은 나중에 커서 스스로 종교를 선택해야 해. 우리도 그랬지 않은가?" 하는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중에 라니!


 기독교와 유물론이 우리의 자녀들을 완전히 물들이고 난 후에는, 아무리 그들이 자란 후라도 자유롭고 지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어떻게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바른 진리의 길을 발견해 내리라고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외적인 도움 없이 스스로 진리를 깨달으셨다. 그러나 그 외의 사람들은 교육과 지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가라,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신들과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떠나라. 오, 비구들이여, 영광된 진리를 전파하라, 청정하고 완전하며 순결한 삶을 설하라." (율장 대품)

 불교도인 부모들이 그들 자녀들에게 불교도로서의 사고방식을 갖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고 사려 깊게 행해야 할 의무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은 진리라는 선물이다. 그런데 무엇대문에 우리의 귀한 자식들에게 그러한 값진 선물을 선사하지 않겠는가?


Sabbe daanam Dhammadaanam Jinaati !

(모든 보시 중에서 법의 보시가 최상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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