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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4. 금강륜

청화큰스님의 친필노트(3)

*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18;20”


* 명상(冥想)이나 수련(修練)은 도피(逃避)가 아니라 사회(社會)속에 들어가 행동(行動)하는 에너지를 축적(蓄積)하고 보급(普及)하는 것이다.


* 불교인(佛敎人)과 그리도 인들 사이에 생긴 경계선들의 대부분(大部分)은 인위적(人爲的)인 것들이다. 진리(眞理)에는 경계(境界)가 없다. 이 두 종교(宗敎)들이 다른 것은 결국(結局) 대부분 강조점(强調點)의 차이(差異)일 뿐이다.


* 원자물리학자(原子物理學者)들도 원소이하(原素以下)의 세계(世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물(事物)이나 물체(物體)에 대한 그들의 개념(槪念)들을 버려야 한다고 한다.

 프랑스의 물리학자(物理學者) 카슬러(Alfred Kastler)는 “우리가 언제나 자연(自然)의 구성요소(構成要素)라고 생각(生覺)해 오던 물체(物體)나 사물(事物)들을 방기(放棄)해야 한다.”고 했다.


* 아무도 외딴 섬일 수 없다. 모두가 다른 것들과 얽히고설켜서 서로 관계를 지으며 어울려 있으며 이것이 무아(無我)이다.


* 의식(意識)의 변화(變化)를 통(通)해서 새로운 눈으로 세상(世上)을 보게 되는 깨침의 경험(經驗)이야말로 불교(佛敎)의 알파요 오메가요 진수(眞髓)이다. 핵심(核心)이며 존재이유(存在理由)인 것이다. 불교(佛敎)에 이것을 빼면 빛과 열(熱)이 없는 태양(太陽)과 같다.


* “한스큉”은 세계적(世界的)인 윤리(倫理) 없이는 인류(人類)의 생존(生存)이 불가능(不可能)하다. 종교(宗敎)들 간(間)의 평화(平和)없이는 세계평화(世界平和)가 불가능(不可能)하고 종교(宗敎)들 간(間)의 대화(對話)없이는 종교(宗敎)들 간(間)의 평화(平和)가 불가능(不可能)하다고 하였다.


* 만약(萬若) 서양(西洋)이 동양(東洋)의 정신유산(精神遺産)을 과소평가(過小評價)하거나 등한시(等閑視)하기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인류(人類)와 인류문화(人類文化)를 위협(危脅)하는 비극(悲劇)을 촉진(促進)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20세기(世紀) 가장 위대한 미국(美國)의 사상가들 중 한 사람인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 성육신(成肉身:Incarnation)성서(聖書)의 하느님은 아버지․아들․성령(聖靈)이라는 세 가지의 위격(位格)과 하나의 실체(實體)에 있어서 존재(存在)한다는 것이 삼위일체(三位一體)인데, 그 제2 위격(位格)인 아들이 나사렛 예수라는 역사적(歷史的) 인간성(人間性)을 취(取)했다고 하는 교리(敎理)를 말함. 화신(化身), 신자성육(神子成肉), 수육(受肉)


* 제법실상(諸法實相)이란 제법(諸法)은 십계인과(十界因果)의 법(法)이다. 천태(天台)는 이를 삼세간(三世間) 십계(十界) 십여(十如)에 약(約)하여 삼천(三千)의 제법(諸法)이라 운(云).

 실상(實相)이란 본래허망상(本來虛妄相)을 리(離)한 상상개실(相相皆實)임을 운(云). 기(其)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임을 “법화경방편품(法華經方便品)” 해(解)하여 “시법주법위(是法住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라 설(設)한다.

시법(是法)이란 삼천(三千)의 제법(諸法)이다. 법위(法位)란 삼체원융(三諦圓融)의 법위(法位)이다.

 그런데 세간법(世間法)을 생멸무상(生滅無常)이라 견(見)함은 공제(空諦)의 일변(一邊)을 견(見)하는 소승(小乘)의 편견(偏見)으로서 기(其) 무상(無常)한 곳에 불변(不變)의 성(性)을 구(具)함을 시(是) 가제(假諦)이다.

 비(譬)하면 화(花)가 산(散)함은 공제(空諦)이다. 그리고 산(散)하는 곳에 소성(笑性)을 구(具)함 시(是) 가제(假諦)이다. 차(此) 이상즉불이(二相卽不二)임으로 시(是) 중제(中諦)이다. 차(此) 중제(中諦)를 지(指)하여 중도실상(中道實相)이라 운(云)함.

 차(此) 중도실상(中道實相)은 일체제법(一切諸法)의 상(相)이다.

 고(故)로 “천태지관(天台止觀)”에 일색일향무비중도(一色一香無非中道)라 운(云)함. 실상(實相)은 상주(常住)의 이명(異名)이므로 중도실상(中道實相)이기 때문에 산(散)함도 고(枯)함도 공(共)히 상주(常住)이다. 시즉제법(是卽諸法)의 실상(實相)이다. 그러나 오등우양안(吾等牛羊眼)은 제법(諸法)을 실아실법(實我實法)이라 미집(迷執)하여 <시범부(是凡夫)의 견(見)> 무상생멸(無常生滅)의 세상(世相) <시이승견(是二乘見)>을 불능견(不能見)한 자(者) 여하(如何)히 중도실상(中道實相)의 묘리(妙理)를 철견(徹見)할 것인가?

 무명(無明)을 제(除)하여 불혜(佛慧)를 개(開)함이 아니면 불능(不能)하다.

 고(故)로 “법화경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유불여불(唯佛與佛) 내능구진(乃能究盡)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설(說)함.


* “지도론5(智度惀五)”에 제제법실상(除諸法實相) 여잔일체법(餘殘一切法) 실명위마(悉名爲魔) “동십(同十)”에 “삼세제불(三世諸佛) 개이제법(皆以諸法) 실상위사(實相爲師)” “동십칠(同十七)”에 “제보살종초발심(諸菩薩從初發心) 구일체종지(求一切種智) 어기중간지(於其中間知) 제법실상혜(諸法實相慧) 시반야파라밀(是般若波羅密)” 이라 설(設).

 고(故)로 혹(或)은 제법개공(諸法皆空)을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하고 혹은 열반(涅槃)을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하고 고공무상무아(苦空無常無我)로써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한다.

 정토문(淨土門)에서는 미타(彌陀)의 명호(名號)를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하고

 진언종(眞言宗)은 아자불생(阿字不生)을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하고

 화엄종(華嚴宗)에서는 일진법계(一眞法界)를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하고

 법상종(法相宗)에서는 원성실성(圓成實性)을,

 삼론종(三論宗)은 팔불중도(八不中道)를,

 성실종(成實宗)에서는 개공(皆空)을,

 유부종(有部宗)에서는 고공무상무아(苦空無常無我)를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함.


********* 생사관(生死觀) *********


 죽음의 공포(恐怖)가 인류(人類)라는 가족(家族)에 스며있는 모든 괴로움의 원인(原因)이다. 그러므로 이 공포(恐怖)를 떨치는 것이 가장 중대한 일이다.


 이 살아있는 우주(宇宙)에는 단 한 분자(分子)라도 죽은 것은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대생명(大生命)에게 죽은 부분(部分)같은 것은 한 구석도 있을 수가 없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도 없다. 생(生)과 사(死)는 하나이며 둘이 아니다.

 죽음이란 영원(永遠)한 생명(生命) 속에서의 한 국면(局面)에서 다른 국면으로 옮겨감에 불과(不過)하다.

 생명(生命)은 보다 완전(完全)한 집 곧 영체(靈體)같은 보다 정밀한 몸속에서 존재(存在)를 계속하면서 개체생명(個體生命)의 의식(意識)이 차츰 확대심화(擴大深化)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음에서 죽음의 공포(恐怖)를 떨쳐버리고 영원(永遠)한 생명(生命)이라는 의식(意識)을 확실히 세워두어야 한다.

 이것이 몸과 마음의 치유(治癒)에 최대(最大)의 힘이다.

 왜냐하면 공포의식(恐怖意識)은 심신기능(心身機能)을 파괴(破壞)하지만 생명의식(生命意識)은 심신(心身)의 알맞은 기능(機能)을 살려내기 때문이다.


<주: ‘청화큰스님의 친필 자료모음2’에서 다음 쪽 친필 참조>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 주문(呪文)


 아제아제(揭帝揭帝)

 바라아제(波羅揭帝)

 바라승아제(波羅僧揭帝)
보디사바하(苦提娑婆訶)


 돌아가세, 돌아가세

 우리 다함께 돌아가세

 영생의 고향 극락세계로 다함께 돌아가세

 위없는 진리를 성취하여

 영원한 행복 영원한 자유 다함께 누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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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바라밀다주(般若波羅密多呪) 그대로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의 인(因)이 되고 과(果)가 됨을 요지(了知)할지라!          ‘금강심론(金剛心論)’

<인과동시(因果同時)임을 명확히 이해하고 닦는다.>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
‘피안(彼岸)에 이르는 거룩한 지혜(智慧)’

 ‘영생(永生)의 해탈(解脫)에 이르는 신묘(神妙)한 지혜(智慧)’

 ‘반야(般若) 실상지혜(實相智慧)로 영생(永生)의 열반(涅槃)에 이르는’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로 열반(涅槃)에 이르는’

 ‘한마음(一心) 한 생명(一佛)의 지혜(智慧)로 열반(涅槃)에 이르는’

 ‘지혜광명(智慧光明)을 관조(觀照)하여 영생해탈(永生解脫)에 이르는’

 ‘관심염불(觀心念佛;卽心念佛,本願念佛)로 열반(涅槃)에 이르는’

 ‘염불선(念佛禪)으로 열반(涅槃)에 이르는’

 ‘반야지혜(般若智慧)로 피안(彼岸;極樂,成佛,涅槃)에 이르는’

 ‘제법(諸法)이 본공(本空)한 실상지혜(實相智慧)로써 열반(涅槃)의 피안(彼岸)에 도(到)하는 보살(菩薩)의 대행(大行)’


* 염불심시불(念佛心是佛) 망념시범부(妄念是凡夫)

* 단좌염실상(端坐念實相:念佛) 시명제일참(是名第一懺) 병제삼독심(倂除三毒心)

* 불언(佛言) 법계일상(法界一相) 계연법계(繫緣法界) 시명일행삼매(是名一行三昧) 선남자(善男子) 선연인(善女人) 욕입일행삼매(欲入一行三昧) 당선문반야바라밀(當先聞般若波羅密) 여설수학연후(如說修學然後) 능입일행삼매(能入一行三昧)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




일행삼매(一行三昧)<마음을 하나의 行에 定하고 닦는 三昧>


* 일행삼매자(一行三昧者)는 유전일행(惟專一行)하야 수습정정야(修習正定也)

                                             ‘삼장법수4(三藏法數四)’

<일행삼매라는 것은 오로지 마음을 하나로 행(行)하여 닦아 익히는 바른 선정(禪定)이다.>


* 법계일상(法界一相) 계연법계(繫緣法界) 시명일행삼매(是名一行三昧) 내지(乃至) 입일행삼매자(入一行三昧者)는 진지항사제불법계(盡知恒沙諸佛法界) 무차별상(無差別相)이라.                     ‘문수설반야경(文殊設般若經)’

<이것이 천태(天台)의 사종삼매(四種三昧)의 하나인 상좌삼매(常坐三昧)의 내용이고, 선종(禪宗)에서는 좌선(坐禪) 그것이라고도 함.>


*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이 욕입일행삼매(欲入一行三昧)인댄 응처공한(應處空閒)하야 사제란의(捨諸亂意)하고 불취상모(不取相貌)하며 계심일불(繫心一佛)하야 전칭명자(專稱名字)하면서 수불방소(隨佛方所)하야 단신정향(端身正向)하되 능어일불(能於一佛)이 염념상속(念念相續)하면 즉시(卽時) 염중(念中)에 능견과거미래현재제불(能見過去未來現在諸佛)이라.

                                       ‘문수설반야경(文殊設般若經)’       


*  의시삼매고(依是三昧故)로 즉지법계일상(卽知法界一相)일새 위일체제불(謂一切諸佛)의 법신여중생신(法身與衆生身)이 평등무이(平等無二)라 즉명일행삼매(卽名一行三昧)니 당지(當知)하라 진여시삼매근본(眞如是三昧根本)이라.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 혜능(慧能)은 일행삼매자(一行三昧者) 어일체처행주좌와(於一切處行住坐臥) 상행일직심시야(常行一直心是也)    ‘육조단경정혜품(六祖壇經定慧品)’


<약어일체처(若於一切處)>의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순일직심(純一直心)이 부동도량(不動道場)하면 진성정토(眞成淨土)니 차명일행삼매(此名一行三昧)라.>

<차(次)에 사(事)의 일행삼매(一行三昧)는 염불삼매(念佛三昧)의 이명(異名)으로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함을 운(云)함.>


* 약어일체처(若於一切處)하되 이부주상(而不住相)하고 어피상중(於彼相中)하되 불생증애(不生憎愛)하며 역무취사(亦無取捨)하고 불념이익성괴등사(不念利益成壞等事)하야 안한념정(安閒恬靜)하면 허융담박(虛融澹泊)할새 차일행삼매(此一行三昧)라.                          ‘육조단경부촉품(六祖壇經咐囑品)’


* “불괴어신(不壞於身)하고 이수일상(而隨一相)”이라심의 주(註)에 조왈(肇曰) “만물(萬物)이 제지(齊旨)라 시비동관(是非同觀)이 일상야(一相也)니라 연즉(然則) 신즉일상(身卽一相)이어니 기대괴신멸체이후(豈待壞身滅體而後)에 위지일상호(謂之一相乎)아”                           ‘유마경제자품’



* ‘시개일상(是皆一相)인 일종(一種)임을 성소칭탄(聖所稱嘆)이라’시고 ‘문구(文句)’ 칠상(七上)에 ‘일상자(一相者)는 중생지심(衆生之心)이라 동일진여상(同一眞如相)일새 시일지야(是一地也)요 일미자(一味者)는 일승지법(一乘之法)이니 동전일리(同詮一理)라 시일우야(是一雨也)라.     

                                            ‘법화경비유품’


* 일상(一相)이란 위일실상(謂一實相)이라 합일지야(合一地也)요 일미(一味)란 위일지(謂一智)의 미(味)라 합상일우야(合上一雨也)랐고,

                                                       ‘법화경의소8’


* 일상(一相)이란 소위(所謂) 무상(無相)이라.          ‘지도론27’


* 일상(一相)이란 관적(觀的)이요 일행(一行)이란 염적(念的)이다.

                                     ‘금강심론(金剛心論)’


* 가령(假令) 무변허공(無邊虛空)에 정수(淨水)가 충만(充滿)한데 일체(一切)는 포말(泡沫)이라 관(觀)함은 일상삼매(一相三昧)요 염(念)함은 일행삼매(一行三昧)며                                  ‘금강심론(金剛心論)’


* 무수중생(無數衆生)의 무상제행(無常諸行)을 미타(彌陀)의 일대행상(一大行相)이라 관(觀)함은 일상삼매(一相三昧)요 염(念)함은 일행삼매(一行三昧)다.

 그리하야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의 근본(根本)은 일(一)

이오 근본(根本)을 구색(求索)하는 방법(方法)은 한(限)이 없다.

                                                    ‘금강심론(金剛心論)’


* 마음을 일경(一境)에 주(住)하야써 관이염지(觀而念之)하면 가관적(假觀的) 일상삼매(一相三昧)가 인(因)이 되야 과(果)의 실상(實相)을 견(見)하고 염수적(念修的) 일행삼매(一行三昧)가 인(因)이 되야 과(果)의 보현경(普賢境)을 증(證)하니라.                              ‘금강심론(金剛心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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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차법요(我此法要) 의릉가경(依楞伽經) 제불심제일(諸佛心第一), 우(又) 의문수설반야경(依文殊設般若經) 일행삼매(一行三昧) 즉(卽) 염불심시불(念佛心是佛) 망념시범부(妄念是凡夫)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 도신장(道信章)’


* 지혜관조(智慧觀照:般若觀照) 내외명철(內外明徹) 식자본심(識自本心) 즉본해탈(卽本解脫) 즉시반야삼매(卽時般若三昧) 즉시무념(卽時無念)

                                        ‘육조단경(六祖壇經)’


* 신회(神會)는 시무념자(是無念者) 즉시반야바라밀(卽是般若波羅密) 반야바라밀자(般若波羅密者) 즉시일행삼매(卽是一行三昧)

                                             ‘남종정시비론(南宗定是非論)’


* “법계일상(法界一相) 계연법계(繫緣法界)”라 함은 전우주(全宇宙)를 일체(一體)로 하여 전인격적(全人格的)으로 행도(行道)하는것. 이 2도(二道)는 불타(佛陀)의 원시경전(原始經典)에 계합(契合)된다.


* 불타(佛陀)에 있어서는 달마(達磨)를 행(行)하는 것이나 여래(如來)를 억념(憶念)하는 것이나 동일(同一)하며 선정(禪定)과 염불(念佛)과는 동일(同一)하다.                                    ‘조선당3집 97쪽’


* 약돈오자심(若頓悟自心) 본래청정(本來淸淨) 원무번뇌(元無煩惱) 무루지성(無漏智性) 본자구족(本自具足) 차심즉불(此心卽佛) 필경무이(畢竟無二) 의차이수자(依此而修者) 시최상승선(是最上乘禪) 역명여래청정선(亦名如來淸淨禪) 역명일행삼매(亦名一行三昧) 역명진여삼매(亦名眞如三昧) 차시일체삼매근본(此是一切三昧根本) 

                                              ‘도서(都序)’


* 일행삼매(Ekavyuha-Samadhi) 또는 일상삼매

일장엄삼매(一莊嚴三昧) : 전 우주(全宇宙)의 온갖 물심(物心)의 현상(現狀)은 평등(平等)하고 한 모양인 줄을 관(觀)하는 삼매(三昧). 지도론47에 일체만유(一切萬有)의 차별상(差別相)에서 제법일미동체(諸法一味同體)의 상(相)을 관(觀)하는 삼매(三昧).

 이것이 일상삼매(一相三昧)라 이름하게 된 까닭.

 진여삼매(眞如三昧 : 마음을 고요히 하고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理致)를 관(觀)하는 삼매(三昧)라고도 함.


 * 진여삼매자(眞如三昧者) 부주견상(不住見相) 부주득상(不住得相) 내지(乃至) 출정역무해만(出定亦無懈慢) 소유번뇌(所有煩惱) 점점미박(漸漸微薄)

                                              ‘기신론(起信論)’


* 일행일체행(一行一切行) : 일일행중(一一行中)에 일체행(一切行)을 구(具)함을 원행(圓行)이라 운(云)함. 화엄(華嚴) 천태(天台)의 제종(諸宗)에서 세운 묘행(妙行)이 총(總)히 시(是)이다.

                                                 ‘불교학대사’


* 신시보장제일법(信是寶藏第一法)

                                 ‘『화엄경(華嚴經)』 현수보살품(賢首菩薩品)’


*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재차(再次) 심방(尋訪)한 선재동자(善財童子)에게 훈계(訓誡) : 착하고 착하다. 소년(少年)이여! 만약(萬若) 보리심(菩提心)을 떠난다면 마음은 근심이나 뉘우침으로 가득 차 버리고 게을러져서 작은 공덕(功德)으로 만족하게 된다. 따라서 작은 선(善)에 집착(執着)하기 때문에 보살행(菩薩行)은 일어나지 않고 선지식(善知識)에 의해서도 수호(守護)되지 않으며 또한 여래(如來)에 의해서도 호념(護念)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리(眞理)의 근원(根源)을 캔다든지 진리(眞理) 자체(自體)를 체득(體得)한다든지 하는 일은 할 수 없게 된다.


 * 마지막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만났을 때, 그의 훈계(訓誡) : ....그대는 잠시 나의 청정(淸淨)한 법신(法身)을 관찰(觀察)하라. 그러면 그대는 반드시 내 청정(淸淨)한 몸 안에 태어날 수 있으리라.


 * 갈앙(渴仰) : 『화엄경(華嚴經)』 수량품(壽量品)에

         “심회연모갈앙어불(心懷戀慕渴仰於佛) 편종선근(便種善根)

              : 『열반경(涅槃經)』에

          “선지정계(善持淨戒) 갈앙대승(渴仰大乘)”


* 일념희애심(一念喜愛心) : 여래(如來)의 자비(慈悲)를 기뻐하고 사랑하는 일념(一念)의 신심(信心)


“정신게(正信偈) : 능발일념희애심(能發一念喜愛心)

                 부단번뇌득열반(不斷煩惱得涅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