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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5. 영가천도법어

ΟΟΟ49재 천도법어

ΟΟΟ49재 천도법어

 

 

ΟΟΟ 영가여, ΟΟΟ 영가여! 우리 인간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죽고 살고 하는 생사生死입니다. 다른 것은 그때그때 허망虛妄무상無常합니다만 생사대사生死大事, 이것은 우리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상황입니다.

 

ΟΟΟ 영가여, ΟΟΟ 영가여! 영가들은 지금 죽음 길에 계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삶만 있고 죽음은 없으면 좋겠고 또는 만남만 있고 이별이 없으면 좋겠습니다만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라 하는 것은 꼭 상대적으로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또는 밤이 있으면 낮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이 영영 죽어져버려서 다시 부활이라 하는 신생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나쁜 것이겠습니다만 죽음이라 하는 것은 금생今生에 어설픈 인간이 생生을 그만 두고서 새로운 생으로 다시 한 단계 높은 생으로 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세상이 완벽한 지상의 행복이 아닐 바에는 꼭 죽음은 필요한 것입니다.

 

ΟΟΟ 영가여, ΟΟΟ 영가여! 사람 생명이 한 번 있으면 꼭 네 가지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인연 따라서 탄생이라 하는, 출생이라 하는 남이 있고 한 번 났으면 오랫동안 인연이 다 할 때까지 살아야 하는 그런 생이 있고, 그 다음에는 다시 다른 생으로 옮기는 죽음이 있습니다. 죽음 다음에는 다시 중유中有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네 가지 과정 즉 맨 처음에 태어나는 그런 생유生有와 그 다음에 한 세상 사는 그런 본유本有라, 그 다음에 죽어지는 ‘죽을 사’자 사유死有라, 그 다음에 죽어서 다음 세상 까지 가는 그런 죽음세계, 저승세계 이것이 이른바 중유세계입니다. 생유, 본유, 사유, 중유 이러한 네 가지 과정은 누구나 다 거치는 것입니다.

 

영가들이시여! 영가들이 지금 바르게 사셨고 복도 많으시기 때문에 이 자리에 이렇게 유족들이 많이 계셔서 영가들의 명복을 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라 하는 것은 ‘몽환포영夢幻泡影’이라, 꿈이요 허깨비요 그림자요 풀잎 끝에 이슬같이 허망虛妄무상無常한 것입니다. 죽음은 노소부정老小不定이라, 늙은이라 해서 빨리 가는 것도 아닌 것이고 나이가 적다해서 반드시 뒤에 가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중생들은 그런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허망한 것을 허망하지 않다고 하는데서 우리 중생의 고뇌가 있습니다.

 

대체로 사람의 몸은 어떠한 것인가? 사람 몸이란 것은 불교적인 술어로 하면 땅 기운 또는 물 기운 또는 불기운 바람 기운 이러한 기운이 모여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현대적인 말로 한다 하면 역시 산소나 수소나 탄소나 질소나 이러한 것들이 잠시간 인연 따라 모여서 우리 몸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금 있는 이 몸은 본래 있던 몸이 아닌 것이고 바로 전생에 이와 닮은 몸도 아니었습니다. 또는 태어 날 때는 이와 같이 성인成人의 몸도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도 없었고 금생에도 그때그때 변동해서 잠시간 각 원소가 모여서 구성 되는 그 몸, 그 몸은 종당에는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변동해서 마지않는 그 몸 또는 내생 가서는 완전히 없어져버리는 그 몸을 자기 것이라고 고집하는 데서 모든 인간의 고뇌가 생겨납니다. 내 몸도 그렇고 또는 자기 아내 몸도 그렇고 자기 남편 몸도, 자기 자식 몸도 똑같이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습니다. 현재도 그때그때 변동해서 마지않습니다. 이렇게 허망한 것을 우리 중생들이 잘 모르고 내 몸이요, 네 몸이요, 내 권속이고 내 아내고 그렇게 집착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생의 근본도리를 탐구하는 깊은 철학이라던가, 인생의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라던가 이러한 것은 모두가 다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역설합니다. ‘허망虛妄무상無常’하다, ‘꿈같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꿈’인 것입니다.

 

영가들이시여! 우리 인간이 죽음도 없고 이별도 없고 상대적인 허망 무상한 것을 떠나서 가는 세계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생명이 정말 허망 무상으로 끝나버리면 삶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명이 본래적으로 떠나온 생명의 고향도 있는 것이고 또는 장차 돌아가야 할 생명의 고향도 있습니다. 이것이 극락세계입니다. 어떠한 누구나가 다 극락세계에서 와서 다시 극락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어째서 극락을 떠나 왔는가? 혹시 천지 우주의 순환과정 따라서 그때그때 인연이 우리 심식心識을, 우리 마음을 덮어 버리면 모두가 다 본래에서 ‘나’라는 것이 없는 것인데 ‘이것이 나다’ 이렇게 고집하는 데서, 그래서 우리가 극락세계라 하는 영원한 낙원, 영원히 행복스러운 데서 추방되는 것입니다.

 

추방은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둡기 때문에 잘 몰라서 이래저래 구하고 헤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죄를 많이 지어 이 몸뚱이에 너무나 지나치게 탐욕심을 내다보면 그때는 저 아귀餓鬼로도 뚝 떨어지는 것이고 또는 이 몸뚱이 지키기 위해서 이 몸뚱이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간수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해치면 지옥으로도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더욱 보호하고 자기 권속이나 자기 가족의 몸뚱이를 더욱 더 보호하기 위해서 살다보면 사람이 거칠어지고 아수라阿修羅 같은 세상을 연출하는 것입니다. 다행이 그런 가운데도 탐욕심도 그렇게까지는 많이 안내고 성내는 그런 번뇌도 그렇게 많이 안내고 또는 거칠어지는 마음도 어느 정도는 사라지고 선행善行도 하고 나쁜 마음도 내고 이렇게 우리가 생활하는 것입니다.

 

영가들이시여! 영가들은 과거 전생에 선행을 많이 지어서 금생今生에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제가 뵙기에 굉장히 선량한 어른이셨습니다. 그래서 금생에 인생을 살고 가실 때는 마땅히 돌아갈 근본고향으로 가셔야 하는 것입니다. 근본고향으로 못 가시면 다시 인간으로, 복이 적으면 인간 가운데도 박복하고 병도 많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영가들이시여! 우리 생명이라 하는 것은 여러 가지 갈래고 윤회하는 것인데 앞서 말한바와 같이 가장 못 살면 지옥 가는 것이고, 분명히 지옥도 실존적인 세계입니다.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더러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옥이나 그런 세계는 우리 중생의 권선징악을 위해서 우리 중생한테 선행을 권장하기 위해서 방편方便으로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나 이것은 방편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분명히 있듯이 지옥 존재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인간 존재가 허망하듯이 지옥도 허망할 뿐입니다. 잘못 살면 지옥으로, 조금 낫게 살면 그때는 일반 동물로, 더 낫게 살면 아귀餓鬼귀신으로, 조금 나아지면 싸움만 좋아하는 그런 신의 세계인 아수라신으로, 더 나아지면 사람으로, 조금 더 나아지면 천상으로 또는 성문聲聞으로, 연각緣覺으로, 보살로 부처로 이렇게 뱅뱅 도는 것입니다만 생명의 본바탕은 부처님입니다.

 

‘부처 불’자, ‘성품 성’자, ‘불성佛性’이라 하는 이것이 본래의 생명인데 불성을 모르기 때문에 허망한 모양을 ‘내 것이다.’ 집착하는 데서 나한테 좋게 하면 탐욕심을 내고, 남을 시기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마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근본번뇌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인간의 몸, 이것이 허망한 것인데 허망하지 않다고 보고 ‘이 몸이 영구히 존재한다.’ 이렇게 고집하는 데서 우리 무지無知의 근본된 번뇌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탐욕심이 나오고 성내는 마음이 나오고 그렇게 해서 이 세계라 하는 것은 아수라阿修羅라 하는 혼란스러운 그런 갈등된 세상이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영가여! 영가가 가실 곳은 극락세계입니다. 또는 만 중생이 돌아갈 세계도 극락세계입니다. 극락세계 이것은 광명光明의 세계이고 죽음도 없고 이별도 없고 또는 실패도 없는 영원한 만남의 세계입니다. 극락세계는 상대적인 것을 떠나보내는 참다운 시작의 세계이기 때문에 불생불멸不生不滅이요, 나지 않고 죽지 않고 불구부정不咎不淨이요, 청정하거나 더러워질 것도 없고, 또는 부증불감不增不感이라, 더하고 덜하지 않은 그러한 세계입니다. 마치 에너지가 천차만별로 무수한 그런 현상계가 나온다 하더라도 에너지 불멸법칙이라, 에너지는 조금도 늘지 않고 감하지 않듯이 부처님의 세계, 영원의 실상세계인 극락세계도 역시 나지 않고 죽지 않고 더하지 않고 덜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는 행복만 충만한 세계입니다. 한번 만나면 영원히 행복을 누리는 세계입니다. 이 자리가 바로 우리가 돌아갈 근본고향인 것입니다.

 

영가여! 이 자리로 가기 위해서는 꼭 그렇게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 중생들의 눈에 안 보인다 하더라도 석가모니를 위시한 예수나 또는 공자나 무수한 성자가 다 증명한 길입니다. 명명백백한 실상의 세계입니다. 극락세계는 영원히 존재하는 광명으로 충만된 세계, 이러한 물질적인 몸이 아니라 순수한 장엄스러운 광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땅도 숲도 모두가 다 광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세계를 가기위해서는 분명히 이 자리를 믿어야합니다. 본래 이 자리가 우리 마음의 본성자리지만 이 자리를 안 믿으면 이 자리에 갈 기약이 없습니다. 딱 믿고서 그 자리에 계시는 모든 그런 성중聖衆들, 모든 성중들이 본래 생명자리, 모든 성중들을 거느리는 가장 어른자리, 그 자리가 바로 ‘아미타불’입니다.

 

부처님은 우리 생명 본바탕인 동시에 극락세계의 바탕이고 또는 주인공이고 또는 모든 중생의 본래 주인공입니다. 우리들은 모두가 다 아미타불이 본래 생명자리인데 거기까지 미처 못 가니까 구분해서 보는 것입니다. 극락세계도 역시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상품상생上品上生이요, 상품중생上品中生이요, 상품하생上品下生이요, 우리의 그런 업장業障이, 우리 번뇌가 녹아짐에 따라서 비록 가벼운 업장 때문에 극락세계는 갔다 하더라도 우리 중생의 가장 순수한 단계는 온전히 부처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가장 순수하지 못하면 상품중생이요, 상품하생이요, 중품상생中品上生이요, 중품중생中品中生이요, 중품하생中品下生이요, 하품상생下品上生이요, 하품중생下品中生이요, 하품하생下品下生이요, 이런 세계는 가장 순수한 곳에는 미치지 못하는 세계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도 극락極樂의 범주이기 때문에 고통도 없고, 이별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순수도가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되어서 완전무결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중생이나 모두가 다 이것이 근본자리이기 때문에 인간뿐만이 아니라 딴 동물이나 딴 식물이나 딴 무생물이나 모두가 다 근본은 그와 같이 진여불성眞如佛性, 부처님자리인 것입니다. 하나의 티끌이나 어떠한 것이나 모두가 다 부처님자리로 부터서 인연 따라서 이렇게 태어나고 저렇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에너지가 음이온 양이온 결합하는 양에 따라서 산소나 수소나 그런 구분이 있고 또는 거기에서 각 세포라던가 일체 물질이 구성되듯이 일체 존재 역시 모두가 근본, 가장 순수한 에너지, 가장 순수한 생명 이것이 부처님입니다. 이 자리에서 모든 중생이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중생은 종당에는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중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몸뚱이는 좋아하고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 몸뚱이는 싫어하겠지요.’ 이렇게 구분하고 업을 짓기 때문에 본래 고향자리, 부처로 못 가는 것입니다.

 

영가여! 극락세계는 우리 눈앞에 훤히 전개가 되어 있습니다. 에너지가 산소가 되고 수소가 되고 전자가 되고 한다 하더라도 에너지 자체는 변동이 없듯이 부처님자리, 부처님의 그런 생명자리는 어떻게 변화가 됐다 하더라도 조금도 변동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광명光明은 사람한테나 또는 하나의 티끌에나 또는 독사한테나 어디에나 훤히 빛나 있습니다. 다만 중생이 색안경에 가리어서 중생의 번뇌에 가리어서 부처님의 그런 참다운 도리, 참다운 광명을 못 볼뿐입니다.

 

영가여! 영가의 몸은 영가의 몸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인연 따라서 잠시간 받은 몸입니다. 따라서 이 몸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영가여! 영가의 권속도 어쩌다가 금생今生에 태어나서 잠시간 인연 따라서 나그네 길에서 스쳐가듯이 인연지은 인연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권속도 영구히 자기의 소유가 못 됩니다. 자기가 쓰던 그런 세간, 재물, 자기 권력도 자기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것도 자기 마음 외에는 자기 순수한 마음 외에는 자기 것이 못 됩니다. 이러한 것을 자기 것이라 생각할 때는 우리 본 고향인 극락에 못 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꿈같은 것입니다.

 

영가여! 그러나 금생에 지은 인연이 참 소중한 것입니다. 영가가 금생에 지은 아들이요 딸이요 자기 형제간들이 잘 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베품은 무엇인가? 이것은 극락세계의 도리, 부처님의 도리, 우주의 진리에 따라서 허망虛妄 무상無常한 것을 허망 무상하다고 분명히 인식하고 극락세계로 바로 가시는 그것이 자기 권속들한테 가장 좋게 베푸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생각할 적에 자기 아들이나 딸이나 아내가 다 극락세계의 길로 지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산 사람 역시 극락세계의 길로 지향해서 허망한 것에 대해서 집착을 끊고서 바른 생활로 ‘원래 나와 너는 둘이 아니거니 천지우주가 허망한 것이기 때문에 우주라 하는 그러한 하나의 생명체와 동질성이라, 모두가 다 같은 차이가 없는 생명체 가운데서 다만 바다 가운데 일어나는 거품 모양으로 나요 너요 구분이 있습니다만 모두가 바닷물이라 하는 하나의 생명체다. 따라서 모든 것이 다 하나의 생명이다.’ 이렇게 느껴버려야 자기 몸에 대한 집착을 끊습니다.

 

영가여! 자기 몸은 허망虛妄 무상無常한 거품과 똑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고서 극락세계로 빨리 가시는 그것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권속들한테, 또는 친구들한테 누구한테도 가장 좋게 베푸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권속 또한 역시 극락세계, 자기 본래적인 고향으로 빨리 가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뿌리가 하나고, 같이 상통하기 때문에 ‘내 자식이나 내 친구가 빨리 바른 우주의 진리에 따라서 바른 길로 가야하겠구나.’ 이렇게 한번 마음먹을 적에 그런 기운이 거기에 미치는 것입니다.

오늘 천도薦度에 동참하시는 유가족들이시여! 돌아가신 영혼에 대해서 가장 좋게 우리가 받들어 드리는 그런 명복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슬프게 울고불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많은 물질로 공양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계시는 유족들이 행동을 바르게 하고 말을 바르게 하면서 또는 그 자리에서 바로 우리 본고향 자리를 지향해서 애쓰고 바르게 사시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내 개인만 내가 아니라 우주가 하나의 생명인데 ‘모든 생명과 더불어 내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생각할 적에 자기를 위해서 남을 구박한다거나 해코지 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모든 생명은 본바탕에서 본다고 할 때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기랑 뿔뿔이 헤어진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이 ‘모든 생명이란 하나’라는 생각, 그 생각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 ‘자기 이웃을 위해 베풀어야 하겠다. 자기만을 위해서 착취를 안해야 하겠다.’는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또는 말도 중생의 마음을 상하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모든 중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행동 역시 생물은 근본이 같거니 하나의 곤충이나 모두가 다 근본생명이 같거니 어떠한 것도 생물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됩니다.

 

그 다음에 또 음탕한 행동도 말고 거짓말도 않고 허튼 음식도 먹지 않고 이렇게 함으로 해서 우리 생명은 본래생명 자리로 보다 빨리 지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이 돌아가신 영가에게 귀중한 최상의 효심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시면 나중에 같이 극락세계에 가셔서 영생의 만남, 영생의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ΟΟΟ 영가여, ΟΟΟ 영가여! 자기 본래 생명인 동시에 우주의 생명인 부처님을 생각하시고 아미타불을 생각하시고 이렇게 하셔서 한 생각도 흐트러짐이 없이 한 생각도 부처님을 생각함에 후회함이 없이 부처님을 생각하고 극락세계를 생각한다고 할 때는 순식간에 영가는 극락세계에 상품상생上品上生, 가장 좋은 그런 윗자리에 계시는 것입니다.

 

영가들이시여! 왕생극락하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1990년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