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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5. 영가천도법어

ΟΟ스님 모친 49재 천도법어

  ΟΟ스님 모친 49재 천도법어

 

 

ΟΟΟ 영가여! 자세히 듣고 깊이 생각하십시오.

 

한 아들이 출가해서 도를 닦아서 공부를 하면 구족九族이 생천生天 하는데 네 아들이 다 출가해서 공부를 하고 계시고, 또 한 아들은 5년째 묵언수행을 하고 계십니다. 그 공덕功德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물며 오늘 49재를 맞이해서 성실하고 반듯하신 좋은 시식施食을 받고 계십니다. 따라서 영가께서는 틀림없이 왕생극락을 하실 것입니다.

 

산승山僧은 영가 아드님과는 사제지간의 인연관계가 있고 또한 영가하고도 인연이 깊습니다. 산승이 새삼스럽게 좋은 법문을 안 한다 하더라도 영가의 그런 선근공덕善根功德으로 해서 극락왕생은 틀림이 없지만 그러한 인연관계로 해서 산승이 노파심에서 마지막 인도의 법문을 하겠습니다.

 

영가여! 자세히 듣고 깊이 생각하십시오. 우리 사람이라 하는 것은 마음이 밝을 때는 어떠한 것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천지우주가 그대로 마음세계뿐이고 또는 지옥이나 아귀餓鬼나 축생畜生이나 아수라阿修羅나 인간이나 천상天上이나 그러한 흔적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무명無明에 가릴 때는 분명히 지옥도 있고 아귀도 있고 축생도 있고 아수라도 있고 인간도 천상도 모두 있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천지우주가 모두 다 광명光明뿐이고 또는 찬란한 화장세계華藏世界인데 깨닫지 못하면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삼계三界가 있고 또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그런 육도六道중생의 갈래가 있는 것입니다. 한번 잘못 살면, 마음 깨닫지 못하고 어두우면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이나 삼악도三惡道로 전락되는 것이고 조금 잘 살면 아수라, 인간, 천상으로 갈 것이나 이것도 역시 인간의 본마음 자리는 못됩니다.

 

영가여! 영가는 과거 전생에 선근善根을 많이 심어서 자연히 인간으로 태어나셨고 금생今生에 나와서는 네 분의 출가사문을 낳을 정도로 훌륭한 어머니셨습니다. 또 영가는 어떤 곤혹스러운 때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선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린 적이 없습니다. 산승山僧이 여기 칠장사에 머물다가 5년 전에 여기를 떠나갈 적에 영가께서는 산승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또 그 전에도 여러 차례 만났는데 그럴 때마다 한 번도 얼굴이 흐린 적을 못 보았습니다. 그 밝은 얼굴, 밝은 미소가 산승의 뇌리에는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그와 같이 영가께서는 선근善根이 지극히 깊어 보이십니다. 그러기에 네 분의 스님을 낳으셨습니다.

 

영가여! 영가가 생전에 하신 공부도 많으셔서 영가의 공덕功德으로 해서는 틀림없이 극락왕생이 결정되시지만 공부를 좀 했다 하더라도 육근청정六根淸淨한 그런 성자의 존재가 못 되면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차마 잊어버리실까봐 산승이 노파심에서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연을 만나서 한 번 나오면 그때는 ‘날 생’자, ‘있을 유’자 ‘생유生有’라 하는 것입니다. ‘생유’에서 낳고 ‘본유本有’에서 한 세상 살고 또는 ‘사유四侑’에서 바로 죽고, 죽어서 미처 갈 곳을 모르고서 헤매는 그때는 ‘중유中有’란 말입니다. 영가는 지금 ‘중유’에서 극락세계로 비약적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영가여! 영가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들은 업장業障이 무거워서 헤맬 때는 욕계欲界나 색계色界나 무색계無色界나 삼계三界를 윤회하는 것이지만 한 생각 깨달아서 밝은 마음이 생기고 또는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본래면목本來面目자리를 깨달아 버리면 그냥 극락세계로 바로 왕생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극락세계도 자기 바탕 근본 따라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극락세계가 하품하생下品下生이요, 그 다음이 하품중생下品中生이요, 그 다음이 하품상생下品上生이요, 또는 올라가서 업장이 가벼우면 중품하생中品下生이요, 올라가서 중품중생中品中生이요, 올라가서 중품상생中品上生이요, 또는 올라가서 상품하생上品下生, 상품중생上品中生, 또는 상품상생上品上生이라, 바로 깨달아서 마음의 그림자 하나라도 없으면 그때는 상품상생으로 가는 것입니다.

 

영가여! 사람 몸이라 하는 것은 과거 전생에 업 따라서 자기 몸을 구성한 지·수·화·풍 사대, 지금으로 말하면 산소나 수소나 질소나 탄소나 그러한 각 원소가 합해서 우리 몸이 됩니다. 이런 것이 합해서 몸이 되는 것인데 우리의 마음은 대체로 어떤 것입니까? 마음은 우리가 잠수하고 또는 상상하고 또는 의식하고 또는 분별시비하고 수와 상과 행과 식이 모여서 우리 마음이 됩니다. 그런데 범부라 하는 것은 그 오온五蘊 이것이 허망한 줄을 모르고서 사대四大가 합해진 색신色身 이것이 참다운 자기 몸이요 또는 분별 시비하는 그 마음이 자기 마음이라고 집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나’라고 집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이라 하는 것은 지·수·화·풍 사대가 잠시간 합해졌기 때문에 이런 것은 사실은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잠시도 지·수·화·풍 사대가 합해서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순간도 자기 몸은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 몸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것이나 산하대지 삼라만상 두두물물 모두가 이러한 물질적인 존재는 어느 순간도 머물지가 않습니다. 그러기에 무상인 것입니다. 어느 공간에 머물러 있어야 그래야 시간적으로도 존재 할 수가 있는 것인데 어느 공간에도 머물러 있지가 않거니 어느 시간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무상無常이요, 공입니다. 무상이요, 공인 것은 나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공인 것입니다.

 

바로 본다고 할 때는 어느 사람이나 어느 존재나 모두가 다 무상한 존재요, 무상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은 공이요, 또는 공이기 때문에 나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나’라고 할 것이 없는 것인데 우리 중생들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하는 본체를 못 보고 현상적인 그런 모양만 보기 때문에, 모양도 그때그때 잠시간 모여서 변화해서 마지않는 것을 그대로 있다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그런 마음 때문에 몸뚱이 이것이 내 몸이요, 분별 시비하는 마음이 내 마음이라 합니다. 그것은 모두가 다 우리 중생들이 성품을 못 보고서 그냥 현상만 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본체를 못 보고 이름에 걸리고 이른바 명상名相에 집착하기 때문에 참다운 자기 생명을 못 보는 것입니다.

 

영가여! 참다운 생명은 자기 몸, 이 색신이 아니고 자기가 지금 분별 시비하는 이 마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거품같이 또는 뜬구름 같은 가상假相에 불과합니다.

 

영가여! 오늘 인연 따라서 모이신 우리 사부대중이시여! 도둑놈 가운데서 참 도둑놈 또는 배신자가운데서 가장 무서운 배신자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자기 몸뚱이가 가장 지독한 도둑놈이고 가장 악독한 배신자입니다. 생전에 제아무리 산해진미로 호위호식을 시키고 또는 온갖 비단으로 해서 몸을 치장을 시키고 또는 금 은 폐물을 몸에 찬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종당에는 인사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 태우면 재가 되고, 흙에 묻으면 그때는 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피나 우리 고름이나 우리 눈물이나 흔적도 없습니다.

 

ΟΟΟ영가여! 우리 사부대중이시여! 이 몸이 대체로 무엇입니까?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몸 이것은 안개가 모인 것과 같고 또는 꿈의 부스러기가 모인 것과 같습니다. 지· 수· 화· 풍風 사대의 땅기운 지도 역시 허망한 것이요 또는 물 기운 수도 허망한 것이요 또는 불기운 화 이것도 허망한 것이요 또는 바람기운 풍 이것도 허망한 것입니다. 산소도 허망한 것이요, 수소도 허망한 것이요, 질소도 허망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다 에너지라 하는 물질이 아닌 하나의 생명이 진동하고 운동해서 그러한 것이 될 뿐입니다. 중생들은 본바탕을 못 보고 상만 보기 때문에 한동안 이루었다가 사라지는 구름 같은 존재를 ‘나’로 고집합니다.

 

그러나 이 도둑놈은 어떠한 경우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도둑놈은 욕심도 한정이 없어서 백만 원이 있으면 천만 원이 갖고 싶고 천만 원이 있으면 억대를 갖고 싶고 정말로 히말라야 산 보다도 더 많은 금덩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만족 못하는 것이 도둑놈 호주머니입니다. 다이아반지를 끼어 보나 무얼 끼어 보나 죽은 다음에는 자기 손가락이 흔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참다운 우리 생명의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가 바로 부처님인데 이 자리를 모르기 때문에 바로 그 무명심無明心 때문에 지옥으로 아귀餓鬼로 축생畜生으로 헤매는 것입니다. 무명심만 없다고 할 때는 바로 내 몸이 천지우주와 더불어서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나의 본 생명 또는 일체 존재의 본 생명 이것을 아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뿐인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과학인 동시에 철학이요 또는 종교인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인 인과율因果律 이것은 철두철미한 과학인 것이고 또 인생과 우주의 본바탕을 아는 참다운 철학, 또는 그 자리를 증명하는 참다운 종교는 역시 불교밖에 없습니다. 부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을 믿는 것인가? 허망虛妄무상無常한 상을 떠나서 참다운 본래면목本來面目자리,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를 믿고 사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인 것입니다.

 

영가여! 영가가 갈 곳은 극락세계입니다. 극락세계는 삼독심三毒心을 떠나버린 곳으로 무명심無明心을 떠나버린 분만이 갈 수가 있습니다.

 

영가여! 자세히 듣고 깊이 생각하십시오. 극락세계는 필경 돌아가야 할 일체 중생의 고향입니다. 극락세계는 땅도 황금으로 되어있고 나무도 숲도 모두가 다 금색 찬란한 광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극락세계는 광명정토光明淨土입니다. 극락세계의 교주는 극락세계에서 우리 중생에게 법문하시는 부처님은 아미타불입니다. 또한 극락세계는 삼독심을 떠난 무수한 보살들이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따라서 극락세계에 가는 첩경捷徑을 말씀하신 법문인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에는 법장비구가 극락세계를 건립할 때에 세운 48원의 원력願力이 있습니다. 그 원력 가운데서 십팔원이라, 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이라, 염불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한다는 그러한 법문이란 말입니다. 그 법문 가운데서 우리 중생이 설사 업장이 무겁다 하더라도 우리 인간의 누구가 업장이 없겠습니까. 삼독심이 있는 중생이라면 누구나가 다 업장이 있습니다. “범부凡夫가운데서 비록 업장이 무겁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참다운 마음으로 열 번만 ‘나무아미타불’을 왼다고 하면 틀림없이 극락세계에 태어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 전에 일심으로 조금도 남을 미워하지 않고 참다운 평등심을 가져야 할 것인데 보통 사람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영가여! 영가의 참 생명은 영가의 몸도 아니요, 영가의 자식도 아니고, 영가의 처자도 아닙니다. 자기의 몸도 자기를 못 따라오고 자기 자식도 자기를 못 따라오는 것이고, 자기 아내도 자기 남편도 못 따라옵니다. 어떠한 것도 못 따라옵니다. 오직 자기의 그런 업식業識만 가지고서 홀로 가는 것이 우리 중생이 가는 길입니다. 우리 중생들이 몸이 있고 자식이 있고 형제가 있고 이럴 때는 일념이 되기가 어려우나, 업식만 가지고 있는 그러한 심식心識이기 때문에 마음만 잘 먹어 한 생각 돌이키면 그냥 일념이 되시는 것입니다.

 

극락세계는 무한의 세계이기 때문에 어떠한 세계나 한도 끝도 없이 모두가 다 극락세계입니다. 우리 중생이 본다고 할 때에는 극락 따로 있고 지옥 따로 있습니다만 밝은 분들이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는 비단 도인들이 가는 그 세계가 극락세계가 아니라 이 세계도 바로 화장세계華藏世界라 바로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우리 중생들은 상만 보고 또는 겉만 보는 것이지만 본 성품을 보는 성자의 안목에서는 본 성품이라 하는 것은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이기 때문에 나무나 소나 어떠한 것이나 우리 중생들이 상에 가려 중생들이 나쁘고 더럽다하더라도 더러운 것은 흔적도 없는 것입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이대로가 바로 극락세계요 화장세계이기 때문에 극락세계라 하는 것은 정말로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는 광명정토라 어느 곳 어느 처소 모두가 다 진여불성의 청정미묘한 영생의 광명으로 충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영가여! 영가가 아직은 그렇게 안 보인다 하더라도 영가가 가실 극락세계는 조금도 흠이 없는 훤히 빛나는 자비慈悲요, 지혜요, 또는 일체 무량공덕無量功德을 갖춘 그러한 광명세계입니다. 그리고 그 극락세계의 그 마음을 단 한 순간도 안 놓치기 위해서 극락세계의 교주, 참다운 생명의 이름 ‘나무아미타불’을 간절히 부르십시오.

 

영가여! 극락세계, 우리가 갈 참다운 고향 또는 우주의 참다운 실상實相인 동시에 일체존재, 일체중생이 돌아가야 할 참다운 고향 이 자리를 마음에 간직하시고서 다만 한시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참다운 이름, 우리 진여불성자리의 참다운 이름인 동시에 우주의 이름 또는 극락세계의 교주의 이름인 ‘나무아미타불’을 간절히 부르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우리 사부대중이시여! 오늘 천도薦度를 받는 청신녀

ΟΟΟ영가의 극락왕생을 돕는 길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섭섭하다, 슬프다’ 그러한 습정習情에서 우러난 말들은 극락세계의 왕생을 돕는 힘이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다운 생명의 고향은 극락세계다 우리 참다운 생명의 본체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이다.’ 이렇게 믿고서 참 이름, 우주의 참 이름 또는 일체 존재의 참 이름인 ‘나무아미타불’을 간절히 외우시기바랍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이 오늘 극락세계로 바삐 가시는 ΟΟΟ영가의 왕생을 촉진하는 제일의 법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그러한 중생의 망념으로 볼 때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밝은 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러한 것은 흔적도 없이 모두가 다 청정미묘한 광명세계인 것입니다. 깨달으면 바로 부처요 또는 바로 극락이고 깨닫지 못하면 바로 지옥이요 또는 아귀요 또는 축생이요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인간에 있다 하더라도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가장 무서운 도둑놈인, 가장 배신자인 내 몸뚱이 이것을 생각하고 참다운 생명을 외면할 때는 영원히 청정한 빛을 등지고 어두운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 우리 인간에 있어서는 어두움과 광명이 따로 있습니다. 자기 몸뚱이만 생각하고 자기와 가까운 권속의 몸뚱이 생각하고 이렇게 해서 물질위주만 생각할 때는 우리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우주의 참다운 도리 이것은 누구나가 참다운 진리의 부처님을 딱 믿고서 그 자리를 확신하고서 그 자리에 가도록 가상假相이나 또는 가명假名을 떠나서 우리가 생활도 하고 공부도 하는 것이 우리가 우주의 도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진리에 반하는 길은 참다운 자유와 참다운 행복이 없습니다. 진리를 따라야 만이 참다운 자유와 행복이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1990년 9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