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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5. 영가천도법어

대명사 천도법어

            대명사 천도법어

 

궂은 날씨에 오시느라고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 기상 이변 때문에 여러 가지로 우리가 고난을 많이 겪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인생살이 한 세상 살기가 어려운 것인데 이렇게 일기마저도 불순하니까 더욱 더 고난이 심각해집니다. 사실은 이 일기라 하는 것도 우순풍조雨順風調라, 비도 적당히 오고 바람도 순탄하면 좋을 것인데 이렇게 되지 않아서 우리가 그때그때 살아가는데 장애를 많이 받습니다.

 

사실은 이 바람이나 비나 이런 것도 우리 인간의 생활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대체로 아시는 바와 같이 오존층 파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오존층은 태양과 우리 지구와의 사이에 있는 성층권成層圈도 미처 못 가서 하나의 탄산가스라던가 그런 가스로 해서 구성된 구름층입니다. 그런 구름층이 있으니까 태양광선이 지구까지 온다 하더라도 대체로 우리 인간에게 유해한 그런 광선은 다 흡수해 버리고 가리어서 인간에게 유익한 광선만이 오는 것이니까 우리가 이 태양광선을 제대로 받고 삽니다만 만일 오존층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생활에 유해한 그런 광선이 오기 때문에 우리가 지대한 장애를 입는 것입니다.

 

그런데 산업사회라 하는 사회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에너지를 소모하다 보면 이른바 이산화탄소 그 탄산가스라 하는 것이 생성되어 차근차근 더 쌓이고 농도가 짙어지는 것 때문에 오존층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오존층을 파괴한다고 생각할 때는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태양으로부터 우리한테 무익한 해로운 광선이 올 수가 있는 것이고 또는 바람이나 그런 것도 역시 나쁜 영향을 받아 순탄하게 내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또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 인간의 마음도 이 기상관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남을 지독하게 미워한다고 생각할 때는 미워하는 그 마음이 우리가 사는 이 주변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이고 동시에 또 나쁜 쪽으로 이산화탄소보다도 더 독한 쪽으로 우리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또는 그와 동시에 우리가 욕심을 많이 부리는 그런 탐욕심도 역시 우리 분위기, 우리가 사는 공간 세계를 오염시킨단 말입니다. 그런 것도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비가 더 많이 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야말로 태풍도 불고 이런 것 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맞이하는 여러 가지 그런 자연적인 환경 모두가 다 우리가 스스로 지어서 우리가 도로 되받는단 말입니다. 이심전심以心轉心으로 우리가 남을 지독하게 미워하면 또 그 사람도 우릴 미워하듯이 그런 사람 사람끼리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연과 우리와의 관계도 밀접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을 함부로 하면 그만치 우리가 더 보복을 받는단 말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오늘 이렇게 영혼 천도薦度를 하시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영혼세계를 잘 모르고 천도 하는 것과 영혼세계에 관해서 그 윤곽이나마 상식적으로 알고 하는 것과는 아주 차이가 많습니다. 이렇게 천도하면서도 영혼이 지금 눈에 안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관욕灌浴이라는 것은 하나의 관례적으로 하는 것이지 영혼이 정말 있을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없는 것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고 우리도 이렇게 천도를 하는 것 아닙니까. 영혼이라 하는 것은 삶의 형태만 우리 인간과 차이가 있는 것이지 생명적인 차원에서는 똑같습니다. 조금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뚱이가 천만 번 바뀌든, 바뀌어지지않든 영혼자체는 절대로 소멸이 없습니다. 따라서 사실은 우리 영혼은 그대로 영생永生하는 것입니다. 본래 죽음이 없는 것입니다.

 

죽음이 없는 도리를 분명히 알면 그때는 불교에서 말하는 생사해탈生死解脫이라 하는 그런 법문하고 걸맞은 말씀이 되겠지요. 따라서 죽음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금생에 사람이라 하는 인간의 세간적인 인연이 다하면 그때는 죽는단 말입니다. 기계도 쓰다보면 차근차근 노화되어 가지고서 못쓰게 된단 말입니다. 못쓰게 되면 응당 바꿔야 하는 것인데 이 몸뚱이에 의지해 살다 보니까 이제 바꾼다고 생각할 때는 바꾸기가 싫단 말입니다.

 

사람 고생 가운데 죽음이라 하는 고생이 제일 심각한 고생 아닙니까? ‘자기가 죽는다.’ 그 금쪽 같이 아끼는 자기가 죽는단 말입니다. 그 자기 몸을 아끼기 위해서 반지 끼고 별별 옷을 다 입고 말입니다. 어떤 때는 귀에 구멍 뚫어 가지고 귀걸이를 다 걸고 말입니다. 이렇게 해 봐야 결국 죽고 만단 말입니다. 자기 몸도 그렇고 자기 아내 몸도 그렇고 자기 남편 몸도 그렇고 자기 아들이나 딸 모두가 결국은 죽고 맙니다. 죽고 말지만,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허망한 몸뚱이, 바로 전생의 업장 따라서 잘나고 못나게 생긴, 그 몸뚱이만 사라지는 것이지 생명자체는 조금도 훼손이 없습니다. 가령 지금 교통사고를 만나 가지고서 당장에 머리가 깨지고 사지가 찢어지고 한다 하더라도 우리 생명자체는 조금도 훼손이 없습니다. 자기 생명자체는 자기 몸뚱이가 지금 머리가 깨지고 사지가 찢어지는 그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가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인지, 생명의 본 고향이 어디인지를 안 생명들은 그냥 해매임 없이 갑니다만 보통은 갈 곳을 모릅니다.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인가? 저승에서 평생 또 오랫동안 해맬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영혼은 죽은 다음에는 굉장히 해매는 것입니다. 저승에는 스승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인간 세상이야 스승도 있고 책도 있고 그러니까 배우기도 하고 묻기도 하고 그러지만 저승은 그믐 같은 껌껌한 세계입니다. 그래서 길을 모르면 굉장히 괴로운 것입니다.

 

우리네 동생이나 우리네 아들이나 또 누구네 남편이나 그런 분들이 갑자기 죽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영혼이 갈 곳으로 쉽게 갈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렇게 괴로우니까 괴로운 걸 면해줘야 할 것인데, 괴로움을 면해주지 못하면 첫째는 그 영혼이 한없이 심각한 고통을 받는 것이고 동시에 괴로운 영혼들, 방황하는 영혼들이 산사람 근처에서 보통은 자기 가족들 근처에서 오락가락 해매는 것입니다. 해매다 보면 그냥 더러는 스치기도 하고 만지기도 한단 말입니다. 산사람 끼리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하면 좋겠지만 죽은 영혼이 우리 몸에 닿아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한다고 생각할 때는 산사람은 굉장히 시달림을 받습니다. 분명히 아파서 병원에 가서 진찰 해봐도 무슨 병명이 안 나온단 말입니다. 그런데 아프기는 분명히 아프고 그런 때는 틀림없이 영혼이 스쳐가고, 영혼이 만지고 그래서 아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우리 형제간이 죽고 이런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부처님 법으로 해서 꼭 길을 알려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집안에 영혼들은 천도薦度를 많이 해주고 사람도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천상도 갔겠는데, 그랬으면 그만인 것이지 자주 되풀이 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그건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가령 우리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지금 천도도 하고 또 오랜 세월이 되가지고서 인도환생이라, 다른 사람 세상에 태어났다고 합시다. 이러는 경우는 우리가 소박한 생각에서는 ‘태어나시면 그만인 것이지 우리가 뒤에 사람들이 무슨 불공佛供을 모셔드리고 하는 것이 무슨 보람이 있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만 그렇지가 않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느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수명이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고 재수도 더 많고 적고 병치레도 많이 하고 않고 그러겠지요. 그러는 경우도 우리 후손들이 불공도 해주고 또는 남한테 베풀기도 하고 또는 방생도 하고 하여튼 어떻든 간에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할 때는 생명이라 하는 것은 신비하기 때문에 우리 자손이 좋은 일을 하면 틀림없이 인간 세상에 자기 조상이나 형제가 있던 또는 저 천상에 가 있던 어느 세상에 있던지 간에 틀림없이 거기 가 있는 그 분들이 그만치 우리가 공을 들인 만치 행복을 받는 것입니다. 가피加被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자녀들이 지금 미국이나 영국이나 있다 합시다. 그렇게 있다고 생각할 적에 한국에서 그 자식을 위해서 기도를 모시면 가피가 있으니까, 덕이 있으니까 기도를 모시고 하는 것이지 미국이나 어디나 그렇게 멀게 있는 자기 자식들이나 친척들이 아무 도움도 못 받는데 여기서 우리가 한국에서 기도를 모시고 공을 빌고 하겠습니까?

 

염력念力이라 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염력은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광파光波도 초속이 30만 킬로미터㎞라, 뻔쩍하는 광명하나에도 그 속도가 일초에 30만 킬로미터㎞입니다.

 

모든 것을 다 만드는 것이 마음입니다. 어떠한 존재나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 마음, 네 마음도 둘이 아니라 원래 마음이라는 것은 우주에 가득 찬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이 자리가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입니다.

부처님 성품이라, 법성法性 ‧ 불성佛性 다 같은 뜻입니다. 모든 생명의 근본자리인 진여불성은 우주의 어느 곳에나 언제나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고 또한 낳고 죽음도 없단 말입니다. 영생불멸하고 상주부동한 그런 생명체가 우주에는 항상 있는 것인데 그 자리에서 인연 따라서 지구가 이루어지고 달이 이루어지고 또는 사람이 태어나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공부는 뭣 때문에 하는 것인가? 우리 중생들은 지금 겉만 보고 삽니다. 중생은 허망虛妄 무상無常한 겉만 보고 삽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천지 우주의 진여불성이라 하는 부처님 기운에서 이루어진 것이 우주의 모든 만물이란 말입니다. 내 몸이나 네 몸이나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산이나 냇이나 하늘에 있는 별이나 모두가 다 천지에 가득 차 있는 진여불성이라 하는 순수생명 위에서 인연법因緣法 따라서 이루어지고 또는 인연이 다하면 소멸되고 한단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하는 일 가운데서 가장 소중한 일은 생명의 본체인 생명의 근본자리인 진여불성 자리 그 자릴 깨닫는 것이란 말입니다. 기독교나 도교나 또는 유교나 다 그런 것입니다.

 

모두가 다 허망 무상한 잠시간 있다가 스러지는 그러한 모양인 상을 떠나서 그 모든 상의 근본자리인 부처님 자리, 불성자리, 참된 진리자리, 그 자리를 깨닫는 것이 모든 철인이나 성자의 가르침이란 말입니다. 그러한 가르침 가운데서 부처님 가르침이 가장 철저하고 가장 투철하고 완벽하고 가장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가르침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모든 철인哲人, 성인成人들의 가르침은 모두가 다 하나의 방향으로 허망 무상한 상을 떠나서 본 성품으로 가는 것인데 다른 성인들은 확실히 잘 모르니까 어렴풋이 말도 하고, 또는 공부를 조금 더 한 분들은 더 확실히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조금도 흠절이 없이 원만 무결하게 내 생명의 근본인 동시에 우주생명의 근본자리를 밝히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진 만치 더 훌륭하고 위대하고, 그 자리에서 멀어지면 멀어진 만치 더 어리석고 어둡고 불행하단 말입니다. 참다운 행복은 그 자리를 밝히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밝혀야 자기 생명이 무엇인가도 알고 또는 참다운 행복이 있습니다. 자기 생명의 근본도 모르고 고향도 모르고 집도 모르면서 어떻게 자기가 있겠습니까. 참다운 자유나 평등이나 모두가 다 생명의 근본을 밝히는 자리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 자리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중생들이 애지중지 하는 자기 몸뚱이, 자기 가족 몸뚱이 그것 때문에 탐욕심을 내고 진심을 내고 한단 말입니다. 가장 훌륭한 지혜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 하신 지혜라 하는 것은 방금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모든 상을 떠나서 천지만유가 본래로 하나다. 본래로 하나의 부처님이다.’ 이렇게 아는 것이 참다운 지혜입니다. 이렇게 알아야 ‘반야바라밀般若波羅密’이라, 반야般若의 지혜란 말입니다.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이나 다 그런 지혜입니다.

 

우리 중생은 겉만 보기 때문에 우리 중생의 업에 가리운 흐릿한 그런 마음으로 보는 것이니까 잘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근본은 안 보이고서 그냥 현상만 본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잘 못 보는 그런 이른바 가상假相 말입니다. 그게 바로 망상입니다. ‘망상을 얼마만치 많이 떠나는가.’ 이것에 따라서 우리 인생의 가치가 규정됩니다. 양심적인 사람들은 그런 망상, 탐욕심, 분노의 마음 그런 마음을 더 많이 떠날 것이고 흐리멍덩한 사람들은 자기 몸뚱이에 평생 노예가 되어서 살고 자기 가족 몸뚱이의 평생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 가상을 떠난 그 자리, 실상의 자리를 밝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길 기원 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