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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4. 금강륜

제67호 불교TV 무상사건립 봉은사 대법회

                       <제 67 호>


*20020910-불교TV 무상사건립 봉은사 대법회*


   원통무애(圓通無碍)한 한국불교의

         바른 전통(傳統)


 저는 법이 높아서 큰스님이 아니라 여기 나오신 선지식 대덕스님들 가운데서 제가 나이가 제일 많아서 대접을 하셔서 제가 이 자리에 올라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어른들께서 아주 유익한 좋은 말씀을 하셨고 또 불교(佛敎)텔레비전을 통해서도 아주 축도하는 말씀들을 수없이 하셨습니다. 사실 불교 텔레비전은 불교의 가장 첨단적인 영상(映像)매체입니다. 그런 첨단적인 영상매체를 저 같이 구닥다리 노장이 이렇게 법상(法床)에 올라 와서 말씀을 하게 된 것을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우리가 어째서 애써서 그와 같이 여러 가지 방송망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야 하는 것인가? 그럴 만한 가치(價値)가 우리 불교의 가르침 가운데 어느 가르침이 가장 적절한 가르침인가? 이런 것에 대해서 몇 말씀 제가 하겠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아니면 인생(人生)과 우주(宇宙)의 참다운 도리를 밝히지를 못 했습니다. 가장 비근한 예로 어떠한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가장 핵심(核心)인가?

이것은 우선 ‘나’라는 존재, 나라는 것은 대체로 어떠한 것인가? 이런 것을 일반 사람들은 명확히 잘 모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불교의 전문술어로 하면은 아견(我見)이라. 나아(我)자 볼견(見)자 아니겠습니까. 아견(我見)이라. 일반사람들은 나라는 것이 우리가 지각(知覺)으로 느끼는 나라는 것이 사실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依支)하면은 나라는 것은, 나라는 그런 집착(執着)은 원래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라는 것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사대(四大) 물질적(物質的)인 요소와 또는 수(受)와 상(想)과 행(行)과 식(識)과 하는 그러한 우리 심리적(心理的)인 요소, 이런 것이 잠시간 인연(因緣) 따라서 있는 것 같이 보인단 말입니다.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만은 인간사회(人間社會)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원흉(元兇)은 무엇인가? 죄스러운 생활의 근원(根源)은 무엇인가? 이것은 나라는 견해(見解)때문에 그럽니다.

나라는 것이 잠시간 모든 요소(要素)가 인연(因緣) 따라서 합해서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지 실지로는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고서는 나라는 것에 대해서 확실히 참다운 나가 무엇인가? 이런 것을 다른 가르침은 모릅니다. 다른 성인(聖人)들 가르침은 대체로 어렴풋이는 말씀을 하지만은 명백히는 잘 모릅니다. 부처님 가르침만이 나라는 실상(實像)을 확실히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나 사회적인 모든 문제에 있어서 나라는 실상을 모르면은 자기 개인적(個人的)인 행복(幸福)도 있을 수가 없고 또는 가정(家庭)이나 사회(社會)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부처님 가르침, 나라는 것이 어디 있을 수가 없다는, 나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으니 사실은 내 소유(所有)도 없습니다.

무아(無我), 무소유(無所有)라. 일반 사람들은 무아 무소유 이런 말 하면은 사람들이 너무나 자기에 집착(執着)하니까 부처님께서 훈계(訓戒)하는 의미로 해서 내가 없고 내 소유가 없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적(實像的)으로 사실 무아 무소유입니다. 나라는 것은 원래 없습니다. 나라는 것이 없거니 내 소유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죄악(罪惡)은 거기에서 나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모든 종교(宗敎), 세계적(世界的)인 종교인 기독교(基督敎) 또 이슬람교 힌두교 많은 종교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종교도 모두가 진리(眞理)의 말씀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불교(佛敎)와 다른 종교(宗敎), 다른 철학(哲學)과의 차이점이 뭣인가? 이것은 내가 있다는, 내가 있다는 다른 종교의 견해, 내가 없다는 무아 무소유라는 부처님의 바른 견해, 이런 것이 불교와 같은 참다운 가르침, 정도(正道)와 다른 가르침 그런 삿된 견해의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 영상 매체에서 그야말로 참 모든 어려운 것을 다 극복하시고 한사코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펴겠다는 그런 의도(意圖)도 이 세상을 구하는 길이 사실은 부처님 가르침 밖에는 달리 구할 수가 없습니다.

다종교(多宗敎) 사회의 서로 갈등(葛藤) 반목(反目)이라든가, 또는 정치적(政治的)인 그러한 여러 가지 반목된 현상이라든가, 또는 각 학계(學界)에 있어서 서로 옥신각신하는 여러 가지 논쟁(論爭)이라든가, 그런 것도 부처님 가르침 아니고서는 도저히 회통(會通)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정보화시대(情報化時代) 아니겠습니까. 정보화시대는 많은 정보 지식(知識)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 지식을 우리가 여과(濾過)를 시키고 또는 선택을 해서 가장 좋은 지혜(智慧), 가장 좋은 정보(情報)를 우리가 골라야 할 것인데 무엇으로 고를 것인가? 상대유한적(相對有限的)인 그런 가르침으로 해서는 고를 수가 없습니다.

오직 부처님 가르침만이 다른 여러 가지 가르침이 많이 있으나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무아무소유(無我無所有), 무아무소유의 가르침만이 비로소 다른 모든 종교들이 부족한 점을 다 보완(補完)시키고 또는 그걸 모두가 다 회통(會通)을 시킬 수가 있습니다.

세계적(世界的)으로 불교(佛敎)가 여러 나라에 많이 유포(流布)가 돼 있지 않습니까만은 특히 일본(日本) 나라는 자기들이 마치 불교의 대변자 모양 지금 행세를 합니다. 그러나 그네들한테 부처님 가르침의 정통(正統)을 우리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은 그네들은 그 종파주의(宗派主義), 종파주의 때문에 거기에 집착(執着)이 굉장히 강합니다. 우리 한국불교(韓國佛敎)는 비록 현대(現代)에 있어서 교세(敎勢)는 일본 불교나 다른 저 버마 불교나 그런 나라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한국은 빛나는 불교전통(佛敎傳統)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신라(新羅)때 원효, 의상 고려(高麗)때 대각국사, 보조국사 또 이조(李朝)때 와서 기화 득통 스님 또 무학스님, 서산대사, 사명당 그런 분들은 모두가 다 그냥 보통 된 위대한 고승이 아니라 모두가 회통 된 불교의 모두를 조금도 치우침이 없이 원만하게 깨닫고 원만하게 우리한테 가르치신 분들이십니다.

따라서 그러한 원통무애(圓通無碍)한 부처님 가르침만이 즉 한국에서 내려오는 바른 전통(傳統)만이 세계(世界) 다른 불교를 회통을 시키는 것이고 동시에 다른 모든 종교를 다 화해(和解)를 시킬 수가 있습니다.

불교 영상 텔레비전을 지금 여러 가지로 계획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을 극복하시는 지금 텔레비전 방송국의 회장님 되시는 성우 화상, 성우 화상을 저는 잘 깊이는 모릅니다. 다만 계행청정(戒行淸淨)한 율사(律師) 인줄은 압니다. 한 가정(家庭)도 도덕적으로 하자가 있으면은 절대로 흥성할 수가 없습니다. 한 나라도 마찬가집니다. 나라가 도덕적(道德的)으로 문란스럽다거나 또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은 나라가 절대로 성할 수가 없습니다.

용수보살(龍樹菩薩) 지도론에 한 말씀이 있습니다. 지계청정(持戒淸淨)하면은 계율이 청정하면은 무사불사라. 안 되는 일이 없단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깊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사실 안 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부당한 요구를 하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정당한 희망(希望)을 가지고서 또는 자기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고 생각할 때에 계행청정 하면 꼭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파계자, 파계자개실(破戒者皆失)이라. 모두개(皆)자 잃을실(失)자 계행이 부실하면 다 잃어버린단 말입니다.

불교 텔레비전 방송국을 일으키고자 하는, 주관하는 스님께서 율사(律師)이시기 때문에 저는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꼭 절은 성취(成就)가 되고 정말로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만천하에 빛나게 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 불자님들 제가 다른 말씀을 여러 말씀 안 드린다 하더라도 여러분들께서는 대덕(大德)스님들을 비롯해서 부처님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입니다. 따라서 제가 말한 정도는 여러분들께서 충분히 납득하시고 알으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많은 말씀 드리지 않습니다. 다만 이 텔레비전, 불교방송(佛敎放送)이 앞으로 틀림없이 성취(成就)가 될 것을 주관(主管)하신 분들이 계행청정(戒行淸淨)한 율사(律師)이시고, 또 우리 불자님들이 거기에 따라서 우리들 각자가 다 그 삼천불 가운데서 몇 분을 다 시주하고, 그런 공덕(功德)도 크나 우리 각자 스스로가 부처님 가르침 따라서, 부처님의 정통(正統) 가르침 따라서 아까 말씀마따나 무아무소유(無我無所有)의 불교 가치관(價値觀)밑에서 꼭 계행청정(戒行淸淨)하니, 청정하게 기원(祈願)을 드린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 주관자(主管者)의 원력(願力)과 또는 우리 불자님의 원력 따라서 틀림없이 텔레비전 불교방송 무상사 대작불사가 성취 될 것을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도 지금 나이가 많아서 조그만한 절에서 의지해서 살고 있는 노장 입니다만은 저도 많이는 못해도 삼천불 가운데 더 훨썩 많이 동참 시주했으면 되겠으나 다섯 분을 저도 시주를 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020910-청화대선사 설법

20020910-? 촬영

20050722-본정 김영동 DVD작업

20080510-주안 한동일 워드작업


* 본 법문은 동영상 자막작업용으로 큰스님 말씀

그대로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