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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2. 육조단경 소참법문

1.보리방편문법문(4)

5. 선(禪)과 염불(念佛)


우리 불교인들치고서 염불을 외면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지금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은 염불에 대한 뜻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 염불은 하근중생이 한다. 참선은 근기가 높고 근기가 수승한 사람들이 참선하고 염불은 공부도 않고 미흡한사람들이 한다. 이렇게 염불을 폄해서 말합니다마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서 염불말씀을 제일 많이 했다 말입니다. 200부 이상 책 권수로 몇 천권 되지요  200부 이상 가운데서 염불을 말씀했다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염불이 방편 염불과 또는 진실 염불과 차이가 있습니다. 저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이 저 밖에 계신다 밖에 계셔서 우리가 부처님을 간절히 염불하면은 그때는 우리한테서 돕는다 이것은 이런 염불은 방편염불입니다. 이런 염불은 부처님께서 우리한테 우리한테 꼭 하시고 싶은 염불공부의 뜻이 아니라 말입니다.


분명히 잘 들으셔야 씁니다. 염불하는 방법이 방편(方便)과 진실(眞實)이 있습니다. 방편염불은 뭣인고 하면은 부처님을 자기 밖에다 두고서 나와 부처님은 인제 다른 것인데 내가 부처님한테 간절히 기원드리면은  부처님이 나를 돕는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이것은 방편염불인 것입니다. 참다운 진실염불은 뭣인고 하면은 진실한 염불은 이것은 부처와 나와 둘이 아니라 말입니다. 내 내 본래면목 내 본래 생명자리도 역시 똑같은 법신 보신 이거니 말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과 나와 마음자리 마음바탕은 똑 같습니다.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강도나 내 마음이나 마음자리는 똑 같습니다. 예수 마음이나 내 마음이나 마음자리는 똑 같습니다. 다만 겉만 차이가 있습니다 겉만, 상만 차이가 있지 본 성품은 똑 같습니다. 따라서 일체존재는 나나 너나 산이나 냇이나 하나의 곤충이나 모두가 다 모두가 다 부처님성품을 바탕으로 했다 말입니다 바탕으로 말입니다.


어떤 거품이나 어떤 파도가 다 똑같이 물을 바탕으로 했듯이 어떤 사람이나 어떤 존재나 모두가 다 불성이라 하는 부처님을 바탕으로 했다 말입니다.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의 차이가 어디가 있는고 하면은 일반 소승들은 아, 모두가 텅텅 비어있다 허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소승이고 말입니다.  법계(法界)연기(緣起)라 같은 인연법도 진여(眞如)불성(佛性)이라 일체만유가 진여불성에서 이뤄졌다 이렇게 돼야 참다운 대승이라 말입니다. 인연 따라서 이것저것 하고서 갖다가 내가 생겼다 이것저것 하듯이 인연이 하듯이 이것저것 이뤄졌다 이런 것은 소승적인 이것은 연기법인 것입니다. 참다운 대승 연기는 그러지 않고서 법계연기 진여연기라 진여법성이 진여법성이 만유가 됐다 말입니다. 사람도 진여법성이 되고 달도 해도 하나의 곤충도 어떤 것이나 모두가 다 진여법성이 됐습니다. 어떤 것도 에너지가 안 된 것이 없습니다. 어떤 것도 모두가 다 궁극적인 건 다 에너지라 말입니다. 그와 똑 같이 어떤 것도 궁극적인 본 성품은 진여 법성이라 말입니다.


아까 제가 누누이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중생은 진여법성을 못 보는 것이고 성자는 맑은 눈으로 해서 두루두루 원수 같은 탐욕심 그 원수 같은 그런 진심(嗔心) 원수 같은 그런 무명심(無明心) 그런 마음만 던져 버리면은 우리도 훤히 트여버린 진여법성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야 우리 인간이 비로소 참다운 고향에 들어가서 영생의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교는 참말로 말하면은 일언에 폐지하면은 여실지(如實知) 여실지자심(如實知自心)이라 우리마음을 참다웁게 한다 말입니다. 


우리중생은 내가 나를 안다 내가 나쁘다 내가 좋다 나는 제법 양심 있는데 그러지마는 우리중생은 사실은 모르는 것입니다. 어째 모르는 것인가 우리중생은 우리 성품을 모른다 말입니다. 우리중생은 알더라도 겉만 알지 자기 본 성품은 모릅니다. 남의 성품도 모르고 내 성품도 모르는 것이 우리중생입니다. 성자의 맑은 눈만이 아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 된다 하더라도 어떠한 고도한 현미경을 쓰고라도 우리 인간의 본 성품 우주의 본 성품 불성을 모르는 것입니다. 다만 질료가 있는 상대성의 그런 상대에 있는 공간성이 있는 그것만 과학은 안다 말입니다. 우리 범부라는 것은 인과율에 제한되고 또는 시간 공간에 제약 되어 있는 그런 질료만 아는 것이지 질료가 아닌 참다운 세계 참다운 생명은 모른다 말입니다. 그걸 그 세계는 삼매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딱 모아져서 모아진 힘으로 해서 우리 번뇌가 녹아서 말입니다. 탐욕심이 녹아지고 또는 진심(嗔心)이 녹아지고 치심(癡心)이 녹아져서 청정 무비한 맑은 그런 우리정신 이것으로만이 영원적인 자기 참다운 성품을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인간이 할 일은 뭣인고 하면은 여실지자심이라 우리마음의 실상을 여실히 안다 말입니다. 천지우주가 참다운 불성에서 왔거니 불성 모르고서 인간이 행복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악쓰고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역시 진리를 모르고서는 전쟁과 또는 갈등과 분열은 그 차이가 없습니다. 마땅히 진리를 알고서 진리에 따라야 만이 우주의 도리에 따라야 만이 참다운 행복 참다운 자유 참다운 평등이 있습니다. 지금 새로운 사고 새로운 사고(思考) 합니다마는 새로운 사고도 역시 참다운 새로운 사고가 될라 하면은 아까 우리가 말씀드린 중도(中道)실상(實相) 참다운 부처님 도리(道理)를 가지고 있어야 만이  참다운 새로운 사고가 됩니다.


마음은 허공과 같이 이와 같이 텅 비어있다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법문 외일 때에 그냥 남 미워하고 남 좋아하고 말입니다. 딱 갇혀있는 우리중생 마음은 지금 번뇌에 딱 갇혀있습니다. 우리중생 마음은 지금 감옥 생활입니다. 우리중생은  욕심의 노예 또는 탐심노예 진심노예 우리 우리마음은 지금 노옙니다 지금 삼독심 노예 욕심이 진실이라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법문들을 때에(?) 이 순간에 벌써 이 마음을 딱 해방을 시켜버려야 쓰는 것입니다. 비록 내 마음은 지금 욕심에 갇혀있고 또는 진심에 갇혀있다 하더라도 내 본 본래마음은 청정 광대무변하다 이와 같이 *****21세기에(?) 내 마음이 꼭 맞힐 때 말입니다. 우리마음은 분명히 허공 같습니다. 광대무변하다 말입니다. 내 마음 니 마음 허공 같이 탁 틔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기 자기의 소중한 마음 모르고 죽는 것 같이 원통한 일이 없습니다. 몇 억대 몇 십억 몇 백억을 쌓았다 하더라도 내 마음 내가 모르고 죽는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것 같이 한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인간의 실상 인간의 실존은 아는 것은 우리마음을 아는 것을 떠나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은 잘나나 못 나나 그 마음은 이것은 마음의 본체는 허공과 같을 새 조금도 흐림도 또는 때도 없는 높고 크고 또는 갓도 없는 그런 허공 같은 그런 마음세계를 부처님 이름으로 하면 이것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세계 그런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같은 마음세계에 해나 달보다도 훨썩 밝은 훤히 밝은 그런 여러 가지 공덕이 꽉 차 있다 말입니다.


자비도 행복도 지혜도 꽉 차 있습니다. 우리마음 세계는 그냥 다만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천지 같이 비어있는 그 세계에 말입니다. 행복도 지혜도 자비도 끝도 갓도 없이 꽉 차 있다 말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님이나 각 도인들은 자비나 지혜나 한도 끝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능력은 사실은 무한대다 말입니다.  우리는 자기 능력을 절대로 제한하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이 무제한적인  그런 가능성이 우리 마음속에는 꽉 차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 말로 하면 원만보신 노사나불인 것이고 말입니다. 이와 같이 광대무변한 자리에 일체 일체 공덕과 지혜 꽉 차있고 또는 일체 존재는 나나 너나 또는 곤충이나 또는 그야말로 원자나 또는 별이나 모두가 다 그런 자리에서 인연 따라서 이뤄졌다 말입니다.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하나의 결국은 거품이나 같습니다. 바다에 비기면은 광대무변한 바다의 크기는 이것은 법신이고 말입니다 법신이고, 또는 바다에 꽉 차 있는 물 이것은 하나의 보신이고 말입니다. 그런  바다에서 일어나는 거품이나 물결은 이것은 산이나 냇이나 또는 사람이나 모든 존재 같은 그런 하나의 이것은 화신이라 말입니다. 하나의 달에 비기면은 하나의 달에 비기면은 하나의 달 달 전체는 이것은 법신인 것이고 말입니다. 법신인 것이고, 또는 달 달 광명은 그때는 보신인 것이고 또는 달그림자는 화신인 것입니다. 하나의 달이 휘영청 밝아서 중천에 떠 있다고 생각 할 때에 시냇물이 백이요 천이요 두만강 또는 한강 또는 그야말로 참 금강  양자강 이와 같은 냇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냇이 많이 있지마는 달이 하나가 떠 있으면은 모두가 다 냇마다 다 달그림자는 똑 같이 비추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연 따라서 인연 따라서 하나의 중생이 이루어지면 그런 중생들은 모두가 다 똑 같이 부처님의 광명을 다 우리가 나누어 있다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모두가 다 부처님의 광명의 화신인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잘나고 못 나고 화장도 않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화장도 않는다 하더라도 석가모니 부처님 같이 훤히 빛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누구나가 중생이 중생을 본다고 생각 할 때에는 그 중생 다음에는 중생 뒤에는 훤히 다 원광이 빛나는 것입니다. 다만 중생이 못 본다 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중생이나 모두가 다 광명으로 빛나 있고 사실은 ****** 바로 광명 화신이라 말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다 다 잘 알으실 것입니다. 가사 산소가 수소가 다 흩어진다 하더라도 산소 수소의 성분이 그냥 변동은 안 됩니다. 또는 산소나 수소나 그것이 갖다가 인제 그것이 한 전자나 중성자나 그게 되었다고 생각 할 때에 산소나 수소가 된다 하더라도 전자나 중성자나 또는 그런 것이 그런 것이 그냥 변동이 되 버리지 않는다 말입니다. 또는 에너지가 또는 전자나 양자가 됐다 하더라도 에너지 수는 변동이 없다 말입니다. 에너지는 어떻게 되든지 간에 어떤 현상을 나타내든지 간에 에너지 수는 변동이 없습니다. 그와 똑 같이 불성이라 하는 우주의 참다운 생명이 이 인연 따라서 사람이 되고 또는 하늘의 별 되고 한다 하더라도 불성은 조금도 변동이 없다 말입니다. 잘나고 못나고 했다 하더라도 불성은 조금도 변동이 없으니까 불성을 볼 수 있는 부처님이나 성자가 본 다고 생각 할 때는 못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모두가 다 훤히 불성으로 보인다 말입니다. 이와 같이 일체 존재는 모두가 다 광명 빛나는 보신의 바다에서 내가 사고하는 좋다 궂다 생각하는 그런 생각이라던가 말입니다 또는 허공에 있는 해나 달이나 냇이나 산이나 그런 것이라든가 또는 사람이나 곤충이나 모두가 본래에서 본 다고 생각 할 때에는 모두가 다 부처님 바다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물거품이나 같다 말입니다. 광명의 파도나 같은 것입니다 같은 것인데 이런 것을 다 합해서 본 다고 생각 할 대는 이것이 바로 아미타불 이란 말입니다. 아미타불인데 아미타불이기 때문에 사실은 나도 없이 너도 없이 모두가 다 아미타불이란 말입니다. 절에서 아침에 장엄 장엄염불을 모십니다마는 장엄염불 가운데서 아미타불을 찬탄하는 그런 법문이 있습니다.  일십일만(一十日萬) 도마죽위(稻麻竹葦) 무한극수(無限極數)라 도마죽위란 것은 갖다가  도마(稻麻)는 마치 이것은 하나의 삼대나 삼밭에 삼대가 얼마나 많습니까, 대밭에 대가 얼마나 많습니까, 대밭에 대가 많고 삼밭에 삼대가 많듯이 말입니다. 도마죽위 무한극수 한도 끝도 없이 많은 수란 말입니다. 도마죽위 무한극수 일십일만 구천오백이라 일십일만 구천오백 동명동호 아미타불이란 말입니다. 동명동호(同名同號)라 같은 이름 같은 이름 결국은 같은 성(性)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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