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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4. 금강심론

제2절 12인연

 第 二 節  十二因緣(십이인연)


  十二因緣(십이인연)은 辟支佛(벽지불)의 觀法(관법)으로서 新譯(신역)으로는 十二緣起(십이연기)요 舊譯(구역)으로는 十二因緣(십이인연)이며 又(우)는 因緣觀(인연관)이라 支佛觀(지불관)이라고도 하니라

  이는 衆生(중생)이 三世(삼세)에 涉(섭)하야 六途(육도)에 輪廻(윤회)하는 次第緣起(차제연기)를 說(설)한 것으로서

  一(일)에 無明(무명)이란 過去世(과거세)의 無始煩惱(무시번뇌)요

  二(이)에 行(행)이란 過去世(과거세)의 煩惱(번뇌)에 依(의)하야 지은 善惡(선악)의 行業(행업)이오

  三(삼)에 識(식)이란 過去世(과거세)의 業(업)에 依(의)하야 受(수)한 現在(현재) 受胎(수태)의 一念(일념)이오

  四(사)에 名色(명색)이란 胎中(태중)에서 心身(심신)이 發育(발육)하는 位(위)를 말함이니 名(명)이란 곧 心法(심법)으로서 心法(심법)이란 體(체)로써 現示(현시)하기 어렵고 다만 名(명)으로써 詮義(전의)할 바이므로 名(명)이라 하고 色(색)이란 곧 眼(안) 等(등)의 身(신)이오

  五(오)에 六處(육처)란 六根(육근)이니 六根(육근)이 具足(구족)하야 將次(장차) 出胎(출태)하고자 하는 位(위)요

 

  六(육)에 觸(촉)이란 二~三歲之間(이~삼세지간)에서 事物(사물)에 對(대)하야 아직 苦樂(고락)을 識別(식별)할 수는 없고 다만 物(물)에 觸(촉)하고자 하는 位(위)요

  七(칠)에 受(수)란 六~七歲(육~칠세) 이후에 事物(사물)에 對(대)하야 苦樂(고락)을 識別(식별)하고 此(차)를 感受(감수)하는 位(위)요

  八(팔)에 愛(애)란 十四~五歲(십사~오세) 이후에 種種(종종)의 强盛(강성)한 愛慾(애욕)을 生(생)하는 位(위)요

 

  九(구)에 取(취)란 成人(성인) 이후에 愛慾(애욕)이 尤盛(우성)함에 따라 諸境(제경)에 馳驅(치구)하야 所欲(소욕)을 取求(취구)하는 位(위)요

  十(십)에 有(유)란 愛取(애취)의 煩惱(번뇌)에 依(의)하야 種種(종종)의 業(업)을 지어 當來(당래)의 果(과)를 定(정)하는 位(위)니 有(유)란 곧 業(업)으로서 業(업)이 能(능)히 當來(당래)의 果(과)를 含有(함유)함으로 有(유)라 이름함이오

 

  十一(십일)에 生(생)이란 現在(현재)의 業(업)에 依(의)하야 未來(미래)의 生(생)을 받는 位(위)요

  十二(십이)에 老死(노사)란 來世(래세)에서 老死(노사)하는 位(위)니 이 中(중)에서 「無明(무명)과 行(행)」의 二(이)는 곧 惑․業(혹․업)의 二(이)로서 過去世(과거세)의 因(인)에 屬(속)하고 「識(식)․名色(명색)․六處(육처)․觸(촉)․受(수)」의 五(오)는 過去(과거) 惑業(혹업)의 因(인)에 緣(연)하야 받은 現在(현재)의 果(과)에 屬(속)할새 이는 過現一重因果(과현일중인과)이며 또한 「愛․取(애․취)」의 二(이)는 現在(현재)의 惑(혹)이요 「有(유)」란 現在(현재)의 業(업)이라 이 惑業(혹업)의 現在因(현재인)에 緣(연)하야 未來(미래)의 生(생)과 老死(노사)의 果(과)를 感(감)할새 이는 現未一重因果(현미일중인과)라 위의 過現一重(과현일중)과 現未一重(현미일중)을 合稱(합칭)하야 三世兩重因果(삼세양중인과)라 하나니 此(차) 兩重(양중)의 因果(인과)에 依(의)하야 輪廻(윤회)가 無窮(무궁)함을 알지니라

 

  現在(현재)의 惑(혹 : 愛․取) 業(업 : 有)이 이미 現在(현재)의 苦果(고과 : 識․名色․六處․觸․受)에서 生(생)하였음을 볼진대 過去(과거)의 惑業(혹업)도 역시 過去(과거)의 苦果(고과)에서 生(생)하였음을 알 것이며 이미 現在(현재)의 苦果(고과 : 識 내지 受)가 現在(현재)의 業(업 : 有)을 生(생)함을 볼진대 역시 未來(미래)의 苦果(고과 : 生․老死)가 未來(미래)의 業(업)을 生(생)할 것임을 알지니라

 

  그러므로 이를 推究(추구)하면 過去(과거)의 惑業(혹업)은 過去(과거)의 苦果(고과)에서 來(래)하고 未來(미래)의 苦果(고과)는 未來(미래)의 惑業(혹업)을 生(생)하야 過去(과거)에 始(시)가 無(무)하고 未來(미래)에 終(종)이 無(무)하니 이를 無始無終(무시무종)의 生死輪廻(생사윤회)라 하는 바 辟支佛(벽지불)은 이를 觀(관)하야 一(일)은 生死(생사)를 싫어하고 一(일)은 常實(상실)의 我體(아체)가 없음을 知(지)함으로써 드디어 惑業(혹업)을 끊고 涅槃(열반)을 證(증)하나니 이 中(중)에서 因(인)과 緣(연)을 分別(분별)하면 行(행)과 有(유)와의 二支(이지)는 因(인)이오 無明(무명)․愛(애)․取(취)의 三支(삼지)는 緣(연)이며 餘(여)의 七支(칠지)는 果(과)이나 果(과)는 도리어 惑業(혹업)의 因(인)을 일으키는 緣(연)이 됨으로 이를 緣中(연중)에 攝(섭)하고 別(별)로 果(과)의 名(명)을 두지 않고 因緣觀(인연관)이라 單稱(단칭)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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