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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4. 금강륜

18호 성륜사정기법회

                            <제 18 호>

                     2001.9.2 성륜사정기법회


늘은 유난히도 반가운 우리 불자님들 많이 오셔서 제 감회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대단히 반갑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초췌한 모습을 안 보일러고 그래서 될수록 낮게 앉아있습니다.

 아, 참! 무슨 부처님말씀을 오늘은 특별히 아주 좋은 말씀을 드려서 여러분들께서 큰 도움이 되시도록 해야 할 것인데 아주 만연하게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지금 불교佛敎하면 그 일본불교, 일본불교가 굉장히 공로가 많습니다. 불교학자도 우리보다도 훨씬 많고 또 실적도 우리보다도 더 많이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본불교는 우리 한국 스님네가 건너가서 일본불교 여명기黎明期를 그대로 아주 훌륭하니 자리를 잡게 해주었습니다.

 우리 신라의 혜자惠慈스님, 혜자스님은 일본 들어가서 일본불교의 요람기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성덕태자聖德太子, 성덕태자의 스승이 되어서 일본불교를 아주 그 기초부터서 지도를 하셨습니다.

 또 그 심상대사審祥大師, 심상대사는 당나라에 들어가서 그 현수대사賢首大師, 현수스님하면 화엄경華嚴經에 통달하신 분이고 또는 화엄종의 3대 조사 같은 그런 분입니다.

 그런 어른한테 화엄경을 배워가지고 일본 들어가서 그 대안사大安寺라는 훌륭한 절에 머물면서 일본불교의 화엄 강의를 하신 일도 있고, 하여튼 이래저래 여러 가지 면에서 일본불교의 스승역할을 아주 훌륭하니 해냈습니다.

 

 또 그 뿐만 아니라 그 중국에 있어서, 중국의 중원이 참 넓고 또 사람도 많겠습니까마는 그 중국에 있어서도 두드러지고 수도 많은 그런 가운데서 우리 한국 스님네가 조사祖師가 되었단 말입니다.

 조사란 것은 한 종파의 위대한 어른역할이 조사 아니겠습니까.

 특히 그 신라新羅 무상대사無相大師?~756, 신라 무상대사는 그 분은 7세기부터서 8세기때 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굉장히 위대한 분입니다. 신라 왕자인데 이 분은 그 정중종淨衆宗이라 하는 염불선종念佛禪宗을 세웠습니다.

 

 그 우리가 염불念佛하면 그냥 아, 염불이지 무슨 염불선念佛禪인가, 이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마는 같은 염불도 염불선이 되어야 바른 염불이 됩니다.

 그러면 일반염불과 염불선은 어떻게 다를 것인가.

 일반염불은 그냥 타력적他力的으로 부처님이 우리 마음밖에 계시거니, 이렇게 생각하면서 우리가 기복적祈福的인 의미를 벗어나지 못하고서 하는 염불, 이것이 이른바 보통염불입니다. 보통염불이라고 하는 것이고,

 또는 염불선, 염불선은 염불참선念佛參禪아닙니까마는 염불선은 어떤 것인고 하면 그 본래면목本來面目자리, 본래면목이란 것은 바로 우리마음의 본바탕을 말합니다. 우주宇宙 모든 존재의 실상實相을 말하고 동시에 우리 마음의 본바탕을 이른바 본래면목이라고 그럽니다.

 헌데 그러한 본래면목을 안 떠나고서 본래면목에다가 우리 마음을 딱 거기다가 안주安住해놓고서 하는 염불이 이른바 염불참선念佛參禪입니다.

 염불참선을 다른 말씀으로 하면 이것은 실상염불實相念佛이라.  

 

 우리 중생들은 시각視覺이 짧고 또는 여러 가지로 망념妄念이 많아서 모든 존재의 그 실상實相을 보지를 못한단 말입니다.

 성자聖者들은 항시 실상과 더불어서 우주의 참다운 그런 성품인 실상과 더불어 삽니다마는 우리 중생은 가상假相만을 봅니다. 겉만 본단 말입니다.

 다시 바꾸어서 말하면 우리 중생들은 상에만 얽혀있고 성자들은 그 근본성품根本性品을 본단 말입니다. 성자와 일반중생의 차별은 거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그 본래적인 성품을 안 여의면서 하는 즉 다시 더 바꾸어서 말씀을 드리면 우리 불성, 우리 진여불성眞如佛性을 안 여의고서 하는 그런 염불이 이른바 실상염불이고 이렇게 되면 바로 그때는 염불참선입니다.

 따라서 사실은 참다운 염불은 염불참선인 셈이지요.

 그런데 보통사람들은 그냥 아, 염불하면 아까 말씀마따나 마음밖에 부처님이 계시거니 우리가 애쓰고 부처님을 그렇게 외고 일념一念으로 하면 부처님께서 우리한테 오셔서 도움을 주시거니 이렇게 한단 말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타력염불他力念佛인 것이고 또는 다시 말하면 방편염불方便念佛입니다.

진리眞理라는 것은 언제나 방편方便과 진실眞實이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가 인제 신앙信仰에 입문할 때는 방편도 필요하지만 입문한 뒤에는 그때는 아, 방편을 우리가 떠나서 진실로 그 신앙의 핵심核心으로 바로 들어가야 된단 말입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불교신앙을 가진 분도 결정신심決定信心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결정신심이라 하는 것은 다른 의심疑心이 없이 결정적으로 확실히 믿는단 말입니다.

 열반경涅槃經에 보면 사자후자獅子吼者 명결정설名決定說이라, 사자후는 부처님 같은 그런 성자가 하시는 말씀을 사자후라고 합니다.

 보통 웅변 잘하고 큰소리치고 그것이 사자후가 아니라, 그 진리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그런 진리에 합당한 말씀이 이른바 사자후란 말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을 위시한 그런 위대한 성자의 말씀이 사자후인데, 사자후자 결정설이라, 그 사자후가운데도 가장 아주 결정적인 조금도 군더더기나 찌꺼기 없이 아주 결정적인 말씀이란 말입니다.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고 하면 여러 불자님께서 대체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일체중생一切衆生 실유불성悉有佛性이라,

 모든 중생이 다 부처 불자, 성품 성자, 불성佛性이 있단 말입니다.

 불교에서 일체중생 그러면 중생이란 그 개념이 우리 인간만 중생이 아닙니다. 다른 동물도 다 중생입니다. 동물뿐만 아니라 다른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그 일체중생 실유불성이라,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이 그대로 모든 존재가 그대로 다 부처님이다, 이런 뜻이란 말입니다.

 똑같은 우리가 한문해석漢文解釋도 해석하기에 메여있습니다. 그냥 피상적으로 해석하면 별로 신통한 뜻이 못될 수가 있는 것인데 참말로 그 성자의 진리대로 해석한다고 생각할 때는 일체중생 실유불성은 모든 존재가 그대로 바로 불성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면 그 뜻이 모든 것이 부처님 아님이 없다, 이런 뜻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여래상주如來常住 무유변역無有變易이라, 여래는 부처님 아닙니까. 같을 여자, 올래자, 어째서 여래如來라고 하는지 대체로 알으시지요. 그 같을 여자가 바로 진리眞理란 뜻입니다.

 진여眞如라, 참 진자, 같을 여 그래서 진여가 바로 진리란 뜻이고, 또 줄여서 참 진자는 빼고 쓰면 여자 만, 같을 여자 만도 역시 진여眞如란 뜻으로 해석이 다 되는 것입니다.

 헌데 여래상주如來常住라, 그러니까 여래如來는 내내야 진리에서 오신 그대로의 성자니까 부처님이 되시겠지요.

 여래상주라. 항상 상자, 머물 주자, 그 여래 부처님이 항시 머물러 계시면서, 무유변역無有變易이라, 없을 무자, 있을 유자, 변자는 변할 변자, 또는 바꿀 역자, 그 모든 존재가 부처님이 아님이 없는데 그 부처님자리가 조금도 변함이 없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나 저것이나 두두물물頭頭物物이라, 모든 존재가 어려운 말로 하면, 일색일향一色一香이 무비중도無非中道라는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일색一色은 한 일자, 빛 색자, 모든 존재란 말입니다. 일색일향이라, 조그마한 그런 향기나 냄새나는 그런 것이라든가 하여튼 물질이나 이것이나 모든 그런 사소한 것도 무비중도라, 중도란 것은 바로 진리 뜻인데 중도 아님이 없다는 뜻이어요.

 부처님 가르침은 신앙信仰을 먼저 바른 신앙이 되어야 참다운 신심信心도 나고 자기의 모두가 그때는 변화가 됩니다.

 소중한 우리가 신앙을 가지면서 자기변화가 안되고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고 작년이나 올해나 똑같으면 우리가 신앙했다는 보람이 없지 않습니다. 꼭 바꾸어져야 됩니다.

 이른바 변역變易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변역變易이 못되고 작년이나 올해나 또는 몇년전에 불교에 맨처음에 들어올 때나 지금이나 같다고 생각할 때는 바른 신앙을 못가졌어요.

우리 불자님들, 꼭 그 결정적인 신심을 가지셔야 됩니다.

그래야 인제 법희선열法喜禪悅이라, 그래야 마음도 몸도 쾌적하고. 자기 마음도 몸도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절대로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가서 아무런 의심 없이 우리가 온전히 믿어보십시오. 이 세상에 두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生命이란 것이 아, 과거전생過去前生에도 끝도 가도 없이 무시이래無始以來라, 끝도 가도 없이 그대로 존재했고 모양은 수천만번 바뀐다하더라도 또 미래未來도 영구히 우리 생명은 중단中斷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의 선방禪房에서나 일본이나 대체로 화두공안話頭公案을 들고서 이것이 무엇인가 저것이 무엇인가 또는 여러 가지로 그런 수행법修行法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결정신심이 딱 되어버리면, 결정신심이란 것은 꼭 몇십년 공부해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순수純粹한 마음으로 믿는다고 생각할 때는 말씀 한마디에 아, 결정신심決定信心이 딱 돼버린단 말입니다.

 

 부처님당시에 그 위제희부인韋提希婦人은 이른바 왕후지요. 왕후가 되었는데 그 아들을 잘못 두어서 아들이 빨리 임금이 되고자 해서 자기 아버지를 그냥 유폐를 시켜버렸단 말입니다. 가두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내 되는 그 위제희부인, 즉 말하자면 왕후도 그대로 볼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자기 남편 되는 임금을 구할라고 애썼단 말입니다.

 구할라고 애쓰니까 그 아사세태자란 자기 아들이 자기 어머니도 그냥 또 다시 유폐를 시켜버렸단 말입니다.

 그때에 그 위제희부인이 즉 왕후가 그때 부처님 재세시라, 부처님께서 계실 때라놔서 부처님한테 기원드렸단 말입니다.

 부처님이시여! 우리 내외를 우리가 아무런 허물없이 이렇게 지금 아들한테 그 못된 아들한테 갖혀서 옥중에 있으니 우리 내외를 구제해주십시오.

 이런 것은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에 있습니다. 여러 불자님들께 정토삼부경을 제가 낸 것만 해도 몇 천권 냈습니다만 안 가지신 분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잘 기억이 안 나시면 다시한번 꼭 보십시오.

 그래서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게 기원을 드리니까 부처님한테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했겠지요.

 

 지금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可視的인 분야만 믿고 신비부사의神秘不思議한 것은 잘 믿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란 것은 신비부사의한 것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다하고 또 그 뒤에 무수한 도인道人들이 가지가지의 그런 신비부사의한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지금 현재 박덕薄德한 사람도 정말로 그 자비롭고 남한테 베풀고 덕을 심으면 설사 자기가 단명短命한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명을 훨씬 연장을 시키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고 하면 자기의 머리카락부터 자기발끝까지 모두가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으로 가득 차 있단 말입니다. 다른 것이 있는 것 아닙니다.

 우리 중생衆生들은 아, 내 심장이요, 내 위장이요, 모두 하지만 이것은 우리 중생들이 그 부분적인 것밖에는 보지를 못하니까 거기다가 이름을 붙인 것이지 참말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피 한 방울까지도 모두가 다 진여불성입니다. 진여불성으로 안된 것이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몸 모두가 각 지금 원소元素로 안 돼 있습니까. 이른바 원자로 돼있단 말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원자로 안 된 것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원자는 무엇인가. 원자란 것이 그 고유하니 항시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전자電子나 양성자陽性子나 그때그때 순간순간 변화變化해서 마지않는 하나의 그것이 가상적인 존재인 것이지, 물리학자가 이름 붙인 것이지 전자가 따로 있고 중성자가 따로 있고 그런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 것은 모두가 에너지Energy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가, 이른바 에너지의 하나의 그것이 변형이란 말입니다. 그 에너지는 무엇인가. 이것은 현대물리학은 알 수가 없습니다.

 왜 알 수가 없는가 하면 그것은 모양이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시간성時間性 공간성空間性이 없으니까 현대물리학은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가 없는 그 자리, 생명 자체의 자리가 그것이 바로 불성佛性입니다. 부처 불자, 성품 성자, 바로 불성佛性이란 말입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귀신 신자, 성품 성자, 그때는 신성神性이겠지요.

 그것이 이 우주宇宙에는 그 불성으로만 충만돼 있는 것인데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중생들은 상만 보니까 겉만 보니까 그 알 수 없단 말입니다.

 성품性品을 본 사람들은 아, 그때는 불성뿐이니까 그대로 해서 다 수용할 수가 있는 것인데 우리 중생의 할 일이 무엇인가. 우리 중생이 할 일은 겉만 보는 것을 우리가 그 적극적으로 성품性品을 보는 쪽으로 우리가 우리 인생의 코스를 바꿔야 한단 말입니다.

 염불念佛하는 것이나 주문呪文하는 것이나 모두가 다 우리중생이 상에만 얽매인 것을 근본성품을 보고자해서 다 그러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는 서구철학의 고향 같은 나라아닙니까. 그리스 철학자 가운데서 한 서기540년 정도나 앞선 그 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라는 위대한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말씀한 말은 그 현상적인 우리의 감각感覺으로 보는 것은 모두가 그것은 거짓이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감각으로 보지 않습니까. 나라는 것이나 너라는 것이나 모두가 즉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감각으로 봅니다. 감각으로 보는 것은 이것은 다 허망虛妄한 것이고 그 로고스logos라, 그 이성理性으로 보는 것만이 참다운 것이란 말입니다.

 붉은 것이나 또는 흰 것이나 또는 어떤 그 모양이 있는 것이나 이런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한 것이고, 순수한 이성적 판단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것만이 이것이 참다웁게 있는 것이다.

 또 그 당시에 똑같은 그 시대에 또 역시 그 유명한 헤라클레이토스Heraclettos BC540, 헤라클레이토스란 분은 여러분들 잘 알으시겠지요. 만법유전萬法流轉이라, 모두는 다 움직이고 운동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 분도 역시 참말로 있는 것은 운동 그런 것은 이것은 하나의 가상假相에 불과하고 참다운 것은 우리 이성에서 판단한, 이성으로 판단한, 로고스로 판단한 것만이 이것이 참말로 실상實相이다, 이랬단 말입니다.

 이런 말씀은 그 뒤에 소크라테스Socrates나 또는 플라톤Platon이나 다 그런 계통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우리가 노장老莊에서 장자莊子가 있지 않습니까. 장자도 굉장히 위대한 분입니다. 아, 그 맹자孟子님보다 조금 늦게 태어났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노자, 장자 하면 도교道敎의 즉 말하자면 할애비같은 그런 분 아닙니까.

 장자 그분의 그 꿈이 유명한 꿈이 있어요. 호접몽虎蝶夢이라,

 호접이란 것은 나비 아닙니까. 아, 장자가 꿈을 꾸는데 그러니까 기분이 좋았겠지요. 나비가 되어서 그냥 너울너울 아주 기쁘게 춤을 추었단 말입니다. 어떻게 기쁘게 춤을 추었던가 꿈을 깨서도 아, 그 내가 글쎄 꿈에 나비가 되었던가 나비가 꿈에 내가 되었던가 이것이 알 수가 없구나.

 그렇게 혼동할 정도로 즉 말하자면 그 나비와 자기와의 한계가 모호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의 각성의 계기가 되어서 나비나 나나 이것이나 저것이나 모두가 참 본래에서는 둘이 아니구나, 그래서 제물론齊物論이라, 가지런할 제자, 모두가 결국은 다 하나의 생명이다, 하나의 도리를 깨달았단 말입니다.

 

 천지우주天地宇宙가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生命입니다.  

 그 인도철학 가운데서도 유명한 인도철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우파니샤드Upanisad, 우파니샤드란 것이 있습니다.

 우파니샤드는 지금 힌두교, 힌두교도 아주 그야말로 참 다시없는 위대한 성전聖典이라고 기리고 있지요.

 우파니샤드에도 그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이라, 불이不二, 아니 불자, 두 이자, 그 모든 존재가 원래 둘이나 셋이나 그런 분열해있는 것이 아니라 일원론一元論이라, 오직 하나의 존재란 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다 하나의 존재입니다.

 여기 지금 한 200명이상 되는 우리 불자님들이 계십니다만 우리는 보통 저 사람과 나와는 지금 뿔뿔이다, 성姓名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하니 따로따로 있지 않은가,

 허나 사실은 본 바탕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원자의 차원에서는 지금 다 붙어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지금 겉만 보니까 따로따로 보인단 말입니다.

 성자聖者들은 원자의 차원이 아니라 모든 그런 원자보다도 훨씬 근원적인 생명자리인 진여불성眞如佛性으로 본단 말입니다.

 진여불성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 모든 존재가 어떻게 해서 둘이 되고 셋이 되겠습니까. 오직 하나란 말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자연도 마찬가지고 우리 인간존재란 것은 이 자연가운데 인연因緣 따라서 잠시간 이렇게 보이고 저렇게 보이고 한다 하더라도 근본바탕은 다 똑같단 말입니다.

 이른바 중생衆生과 성인聖人의 차이는 무엇인고 하면 성인들은 모두를 다 근본바탕에서 본단 말입니다.

 근본바탕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에 나와 남이 둘이 있겠습니까.

 우주란 것은 지금 물리학적으로 보면 원자가 꽉 차있습니다. 원자는 무엇으로 돼있는가, 에너지energy로 돼있다, 에너지는 무엇인가, 에너지는 진여불성이다. 이래버리면 결국은 간단하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 남한테 뭘 베풀 때도 아, 저 사람은 배고프니까 내가 좀 줘야되겠다, 저 사람은 나보다 못하니까 내가 좀 도와줘야 쓰겠다, 이렇게 해서 보통 베풀고 가르치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상을 떠나지 못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 전체적으로 일원적一元的인 자리, 그 자리에다 가 마음을 두고 말도 하고 행동도 해야 비로소 상을 떠나는 것이고 본질적인, 헤라클레이토스Heraclettos BC540나 또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os BC544~501나 그런 철인哲人들이 하는 식으로 할 수가 있지, 우리가 현상적인 것만 생각해서는 그때는 우리가 상을 여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상을 못 여의면 항시 마음이 풀리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이란 것이 지금 모양이 있습니까.

 달마대사達磨大師의 법문이란 것은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 편안 안자, 마음 심자, 안심법문이란 말입니다. 안심법문의 핵심이 무엇인가.

안심법문安心法門이란 것은 내 마음과 부처와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생각할 때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이사 인제 인도에서 2500년이상 전에 나오신 석가모니 화신化身부처님이 되겠지요.

 그러나 참다운 부처님은 여러분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석가모니가 나오시고 안 나오시고 상관이 없이 영원한 그런 진리眞理부처님이란 말입니다.

 영원한 진리부처님이 모양이 있습니까.

내 마음도 모양이 없고 그 영원한 진리부처님도 모양이 없습니다.

 모양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똑같이 모양이 없이 결국은 하나란 말입니다.

 모양이 없는 내 마음과 또는 모든 존재의 참다운 진여불성 자리인 부처님과 똑같이 모양이 없으니까 결국은 하나란 말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와 내 마음과 틀림없이 하나다, 이렇게 생각하는 법문이 안심법문安心法門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우리 마음이 비로소 안심입명安心立命을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우리가 인제 주체성主體性이 확립確立이 되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아까 우리나라 훌륭한 스님들이 중국 들어가서 얼마만치 훌륭하게 무슨 일을 해냈던가, 이런 것에 관해서 말씀을 제가 드리다가 조금 빗나갔습니다마는,

 우리가 그 한 7세기경에 혜초慧超스님, 혜초스님 알으시지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낸 혜초스님.

 그 중국에서 그 구법승求法僧이라, 그러니까 그 법을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 인도까지 가셔서 법을 구한 분들을 가리켜서 구법승이라고 합니다.

 구법승이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요. 그러니까 십진구퇴十進九退라,  열사람쯤 가면 아홉 사람쯤은 실패한단 말입니다.

 왜 실패한고 하면 그 중국에서 그야말로 참 고비사막을 넘고, 또는 그 파미르 고원, 히말라야 산을 넘고서 인도를 가는데, 중국에서 인도 가기에도 꼭 3년 너머 걸려요. 말이 3년이지 짧은 세월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한 몇 개월 동안만 한자리에서 공부하셔도 상당히 지루하시지 않습니까. 그 3년동안을 그 사막이나 비바람치고 그런데서 지낸단 말입니다.

 오늘날 같은 이와 같이 편리한 때는 아, 무슨 사자나 무슨 범이나 그런 것이 별로 있을 수가 없겠지요. 더러 있을랑가 몰라도. 그때야 그런 것들이 하여튼 그야말로 굉장히 아주 그냥 여기나 저기나 그 숲이라든가 그런 데서 출몰할 때란 말입니다.

 가는 데 3년, 오는 데 3년 합치면 6년 아닙니까.

 또 지금도 외국어 배우기가 어려운데 더구나 그 당시에 가서 뭘 좀 배워야 되는데 인도 말을 또 배우기 위해서 또 몇 년 걸려버려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보통은 한 20년 걸려요. 보통은 다 20년 걸립니다. 아까운 청춘 다 거기에 완전히 투자를 해야 되겠지요. 그렇게 해서 인도에 가서 법을 구해가지고 옵니다.

 

 지금 우리 불자님들은 너무나 진리를 구하기에 성급하고 또 안락의자에 앉아서 지금 진리를 구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조금 더 마음을, 정말로 진리眞理를 구하시는데 진지眞摯하고 성실誠實해야 됩니다.

 세월이 많고 적고가 아니라 정말로 사무치게 내 생명 이것이 무엇인 것인가.

 색즉공色卽空이라,  내 생명을 내 존재를 위시해서 모두가 다 공이란 말입니다.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아설즉시공我說卽是空이라.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존재는 모두가 다 인연 따라서 잠시간 이루어진 것입니다.

 인연 따라서 잠시간 이루어져가지고서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變化無雙하단 말입니다.

 어느 한동안도 내 존재가 그대로 머물러있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변화무쌍하니까 무상無常이다, 그러는 것입니다. 없을 무자, 항상 상자. 무상이단 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가 다 다 무상합니다.

 그러기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우리 중생衆生들은 그 무상無常한 것을 이렇게 이론적理論的으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이성적理性的으로 따지면 순수 논리적으로 하면 분명히 무상한 것인데 우리가 순수론리純粹論理로 보지 않고서 그냥 상식常識으로 생각하고 자기의 감각感覺으로 따지니까 무상을 못 본단 말입니다.

 어느 순간도 자기라는 존재가 그대로 머물지 않고 변화무쌍하단 말입니다. 

 또 그런 것은 사실은 그 변화무쌍한 그것을 나다 너다 이렇게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것이 고유하니 어느 공간속에나 어느 시간속에 그것이 딱 들어있어야 갖다가 있다고 그러는 것이지 어느 공간속에도 어느 시간속에도 존재해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무상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무아無我라, 나라고 할 것이 없단 말입니다.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니까 결국은 공이란 말입니다.

 순간순간 변화해서 마지않고 또는 어느 시간時間 공간대空間帶에도 그것이 존재할 수가 없으니까 결국은 이것이 공이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뿐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은 다 그럽니다.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아설즉시공我說卽是空이라.

 인연 따라서 잠시간 이루어진 것은 이것은 바로 바로 공이란 말입니다.

 분석한 뒤에 공이 아니라 바로 공인 것을 본래本來로 공인 것을 우리 중생은 보지 못할 뿐입니다.

 순논리적純論理的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바로 공이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은 이성理性으로 안 보고 우리 감각感覺으로 봅니다.

 부처님가르침은 그 수학數學모양으로 정확합니다.

 

 그래서 그 중국들어가서 신라때 무상대사無相大師, 무상대사는 왕자인데, 무상대사는 그 정중종淨衆宗이라는 그 한국 사람으로 중국 들어가서 한 종파를 세웠단 말입니다. 종파를 세운 할애비가 되었습니다.

 정중종이라 하는. 염불선종念佛禪宗입니다. 7세기 때 분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까 말씀한 바와 같이 구법승 가운데서 우리 혜초스님, 우리 혜초스님도 역시 중국들어갈 때는 바다로 갔습니다.

 그 바다로 갈 때 아, 지금은 그야말로 참 견고한 그런 기계선機械船으로 가더라도 그것이 풍랑 만나면 더러 파손도 되는 것인데 옛날에 한 1300년이나 전에 그 그런 목선木船으로 간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위험천만하겠습니까.

 몇 번 저만치 갔다가 또 폭풍 몰아치면 다시 돌아왔다가 또는 배가 파손되었다가 말입니다.

 그러기에 십진구퇴라고 합니다. 열사람 가면 결국은 아홉사람은 다 후퇴한단 말입니다. 다 살아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 가운데서 법을 구하기 위해서 갔다고 생각할 때에 얼마나 진지한 구도심求道心입니까.

 정말 아까 말씀마따나 지금 우리들은 안락의자에 앉아서 도를 구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편하게 구하니까 공부도 그 결정신심決定信心으로 바로하면 될 것인데 보통은 마음이 너무나 안일해서 빠져버립니다. 안일해서.....

눈에 불을 써야 합니다.

우리 진리란 것은 바로 우리 생명입니다.

 우리가 금생今生에 못 닦으면 그대로 마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내생來生가서 또 태어납니다.

 금생에 공부한만치 그런 정도로 태어납니다. 그럼 또 닦아야 쓰겠지요.

 윤회輪廻라는 것은 우리가 온전히 자기 마음의 실상을 깨달을 때까지 윤회를 합니다.

 우리 인간의 참 고향은 역시 영원한 나라, 영원한 극락세계極樂世界입니다.

 아까 중국 들어가서 우리 한국 백성들이 위대한 그런 선사禪師가 되고 했다는데,

 특히 의통대사義通大師는 또 그 천태종天台宗 십육조사에요. 같은 종파도 화엄종 천태종 모두 아, 무슨 종파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가운데 천태종은 아주 그 세밀한 그런 교리체계敎理體系를 그 완벽하니 세운 종파가 천태종입니다.

 그런 종파가운데서 우리 한국 스님네가 16대조사란 말입니다. 조사.

 일본사람들이 지금 그 교만을 부리고 마치 세계불교가 자기들이 다 해놓은 양 그렇게 참 교만을 냅니다만 사실은 그네들은 중국 들어가서 그런 조사가 된 분이 한 분도 없습니다. 

 그 의통스님은 인제 사람만 보면 저분 내 고향故鄕사람이구나, 당신 내 고향사람이요.

 자기 고향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그 얼마나 친밀하고 다정하겠습니까.

 그래서 아, 당신은 신라新羅사람인데 왜 고향사람이냐고 그러니까 아, 지금 나는 내 고향을 극락極樂으로 하는데 저 사람들은 내내야 닦아서 인제 극락 가는 것이니까 같은 고향이 아닙니까.

 대저 듣고보면 또 그러겠지요.

 우리가 지금 다 고향사람입니다.

 극락세계가 이것이 우리의 참 고향입니다.

 또 그 어지빠른 사람들은 아, 참 극락세계가 그냥 우리보고 바르게 빨리 공부하라고 그래서 방편으로 만들었겠지.

 극락세계는 방편이 아닙니다. 극락세계는 바로 확실한 모든 존재가 필경 돌아가야 할 영원한 고향입니다.

 우리가 눈에 안 보인다고 그래서 천상天上도 우리는 보통 부인하지요.

 지금 그 물질적인 물질 위주로 아까 말씀마따나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그런 물질적인 것만 사실로 실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천상도 부인할 것입니다.

 천상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자기 업 따라서 꼭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이 3계에 자기 업 따라서 여기 태어나고 저기 태어나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존재는 지금 욕계 가운데 욕계천상도 못됩니다. 욕계 가운데 사람존재란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닦아야 그래야 욕계천상으로 올라갑니다.

 욕계천상에 올라갈라면 십선계十善戒라, 우리 인간이 지키는 그런 도덕道德보다도 훨씬 더 정확한 그런 열가지 선이상을 닦아야 그래야 욕계천상에 올라갑니다.

 그러면 그런 천상들은 어째서 그냥 천상이라고 그러면 그랬지 왜 욕계라는 말을 붙이는 것인가.

 욕계라는 것은 어째서 욕계인고 하면 이것은 그 식욕食慾이라는 먹는 욕심과 남녀 이성욕심異姓慾心과 또는 잠욕심睡眠慾心과 이 3가지 기본적인 욕심을 못 떠난 것이 욕계란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깊이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지금 욕계에 있습니다.

 욕계천상도 못되고 욕계 지금 인간에 있습니다.

 왜 인간은 이대로 우리가 지금 극락도 있고 천상도 있는데 그 욕계에 인간은 머물러 있을 것인가. 식욕과 남녀이성욕심과 잠욕을 못 떠난단 말입니다.

 우리 출가수행자가 왜 독신생활을 하는가 알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카톨릭이 왜 신부나 수녀가 독신생활을 하는 것을 짐작이 되시겠지요.

 그 음욕이란 것이 그것이 이 욕계에다가 우리를 꽁꽁 묶어놓는단 말입니다.

 3계를 못 떠나게 우리를 꽁꽁 묶어놓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셔야 됩니다.

 어느 겨를에 우리가 욕계를 떠나야 할 것인가. 꼭 떠나야 됩니다.

 못 떠나면 다시 또 윤회輪廻합니다. 뱅뱅 돌아갑니다. 지옥地獄도 갔다가 또는 아귀餓鬼가 되었다가 축생畜生도 되었다 합니다.

 그렇다고 그래서 우리가 기왕 이루어진 가정家庭을 파괴할 수는 없겠지요.

 가정에 계신다하더라도 그 부설거사浮雪居士같이 그 동기同期가 되어서 말입니다. 그러면 오직이 좋겠습니까.

 자기 혼자 공부한 것보다도 같이 내외간 동기가 되면 훨씬 공부하기 쉬울 것입니다.

 우리 지금 여기 있는 불자님들은 다 대체로 내외간 아주 동기적으로 공부를 하신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 부처님당시에 월개장자月蓋長子라는 장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월개장자는 비사리국이라고 저 인도 북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비사리국 장자인데 거기는 참 민주주의가 저절로 이루어져서 그 나라 장자가 500명쯤 되는데 500명이 같이 의논해서 즉 말하자면 나라를 다스렸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 월개장자라는 장자가 하도 사람이 준수俊秀하니까 선출해가지고서 당신이 꼭 우리 왕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추대를 하니까 왕자가 되었단 말입니다.

 앞으로 대통령선거나 다 모두 그런 쪽으로 되어야 되겠지요. 자기가 그 마다하고 그래도 추대해서 억지로 올려 세워야 한단 말입니다.

 플라톤Platon 말마따나 아, 철인이 정치가가 되고 정치가가 철학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자가 정치가가 되고 정치가가 성자 같은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플라톤 공화국에 보면 그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꼭 그 가정家庭을 갖지 말고 독신獨身으로 지내라고 돼 있어요. 또 자기 소유所有를 갖지 말고 말입니다.

 그 소유를 갖지 않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쪽으로 생활을 해보면 참 편합니다. 아, 오늘은 이 자리에 있다가 또 인연이 다하면 걸망하나 짊어지고 또 훅 떠나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까도 말씀마따나 그런 생활도 좋으나, 또 그 가정에서 훌륭한 그런 내외간에 동기가 되고 또 인연 따라서 태어난 그런 자녀들을 훌륭한 불자佛子를 만드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훌륭한 일입니다.

 따라서 집안에 계신다하더라도 절대로 그 자기 비하卑下라든가 그렇게 열등의식劣等意識을 갖지 말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라는 것은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중생이 본다고 생각할 때는 여러 가지로 모순이 많이 있지만 또 근원적根源的으로 실상實相의 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이대로 바로 극락세계極樂世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극락세계 하면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무엇인고 하면 우리가 닦아서 천상도 지나고 훨씬 초월해서 바로 영생의 나라인 극락세계로 가는 것과

 또 한 가지는 우리가 마음을 닦아서 맑은 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이 세계 이대로 바로 극락세계란 말입니다.

 그래서 꼭 그 두 가지를 항시 대비해가면서 우리가 부처님가르침을 해석을 하셔야 됩니다.

 보통은 불교믿는 분들은 아, 이 세계는 그냥 아주 사기詐欺도 많고 부조리不條理 하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가, 지금 도둑질을 해서 우리 앞에 아주 그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우리한테 부정적으로 보이는 그 사람도 똑같이 부처님의 화신化身입니다.

 그 사람도 똑같이 진여불성이, 부처님이 잠시 인연 따라서 저렇게 도둑질 하는 나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지 실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한 것인데, 이 상으로 해서 허망虛妄한 것이지만 또 근본성품根本性品으로 해서는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모두가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또는 징그러운 그런 독사 같은 모양을 한다 하더라도 똑같이 부처님의 화신입니다.

 

 그래서 뭘 보든지 간에, 가령 우리가 산에 다닐 때에, 그 독사를 볼 때도,

 그 미국美國가서 좀 있어보니까, 저쪽 LA이 그 준사막지대는 그 방울뱀 방울독사가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독사가 올 때는 꼭 방울 흔드는 소리가 납니다. 그 놈한테 한번 물리면 영락없이 죽습니다.

 그래서 그런 큰 독사라도 또 차마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지키는 우리 스님네가 그걸 다 지킬 수가 없고 그래서 그 깊은 통을 사다가 그 놈을 통으로 유도해서 그래가지고 사막 저 멀리  거기다가 빨리 너 죽든가 살든가 너 잘 살다가 나중에 보리심菩提心을 내서 너도 성불成佛해라. 이렇게 해서 두고 온단 말입니다.

 마음이 한결 풀리고 합니다만, 하여튼 그런 독사일지라도 똑같이 부처님의 화신입니다.

그 진여불성이 어쩌다가 전생에 잘못 생각하고 잘못 살아서 독사의 모습으로 지금 보인단 말입니다.

 따라서 누구를 보든지간에 남편을 봐도 아, 부처님이 내 남편으로 지금 잠시간 보인다, 아내를 보나 누구를 보더라도 뭘 보더라도 그래야 됩니다.

 그래야 인제 우리 부처님 가르침을 우리가 근원적으로 생각이 된단 말입니다.

 

 아까 그 월개장자 이야기를 제가 하다 말았습니다만 월개장자가 인제 비사리국의 왕자가 되었지요. 되었는데 그 여러 가지 재앙이 끊이지 않는단 말입니다.

 유행병遊行病도 일어나가지고 또 폭풍우도 쳐가지고서 지지리 지어놓은 농사도 갖다가 다 어긋나지고 아, 그래서 우리가 내가 지금 박덕하니까 이런다, 생각이 되어서 그 부처님께서 계실 때라 놔서 부처님한테 가서 하소연했단 말입니다.

 아, 그 어떻게 해야 이런 액운厄運을 우리나라에서 면할 수가 있습니까. 하니까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온 나라의 백성들이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또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또는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이렇게 한 열흘만 지성껏 왼다고 생각할 때는 아, 모든 재앙이 다 가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단 말입니다.

 대중이 그건 뭐 쉬운 일 아닙니까. 더구나 자기 신앙심도 더 깊어지고. 그래서 열흘동안 그냥 그 비사리국 온 나라사람들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또는 대세지보살 이와같이 염불念佛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 염불공덕念佛功德으로 정말로 그 모든 그런 재액들이 다 사라지고 말입니다. 화평한 그런 국토가 되었다는 그런 일화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성자들의 말씀은 그냥 허튼 말씀이 아닙니다.

 부처님같으신 분은 이 나라로 가면 또 부처님을 줄줄이 모두 따라오고 말입니다.

 

 여러분들께서 계행戒行을 잘 지키면 또 여러분들이 계행을 잘 지킨만치 그런 선신善神들이 좋은 신들이 여러분을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계행을 지키지 않으면 또 지키지 않은만치 거기에 걸맞는 좋지 않은 신들이 여러분들을 따라다닌단 말입니다.

 이 계율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잘났다 해도 우리가 가령 우리 스님네 가운데도 아, 법문도 잘하고 똑똑하고 모두 그렇다하더라도 계행이 없으면 그때는 공부도 더 깊이 못 들어가고 또 불사佛事도 안 됩니다. 불사도 안 됩니다.

 깊이 명심들 하시기 바랍니다.

 세속도 마찬가지입니다. 큰일을 하실 분들은 꼭 도덕적道德的으로 하자가 없어야 됩니다.

 자기내외간에 화합和合을 못한다거나 또는 양심良心이 좋지 않다거나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큰일을 못합니다.

 과거 전생前生에 닦은 걸로 해서 전생에 선근善根을 좀 심어서 금생今生에 조금 나아질랑가 모르지만 얼마 안 가서 다시 또 파멸되고 맙니다.

 꼭 가정에서나 또는 출가한 사람이나 철저하니 계행을 지켜야 됩니다.

 용수보살龍樹菩薩 지도론智度論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계율을 지킨 사람은 모든 자기가 경영하는 일을 꼭 안 되는 일이 없이 다 될 수가 있고, 또는 파계인破戒人들은 일체계실一切皆失이라, 잃을 실자, 모두를 다 잃어버린단 말입니다.

 이 도덕道德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우리 신앙信仰의 기본입니다. 도덕의 초석위에 신앙을 두어야 그래야 바른 신앙이 됩니다.

 근래 중국에서 1959년에 열반드신 허운대사虛雲大師, 허운대사라는 위대한 스승이 계셔요.

 그 분이 120세에 1959년에 열반드셨습니다마는 이 분이 마지막에 한 법문이 무엇인고 하면 근수계정혜勤修戒定慧라, 부지런할 근자, 닦을 수자, 근수계정혜라, 부지런히 계행지키고,

  또는 참선염불參禪念佛하고 또는 그래가지고서 반야般若의 지혜智慧를 닦는 것이 이것이 근수계정혜입니다.

  근수계정혜勤修戒定慧 진멸탐진치盡滅貪嗔痴라. 이와 같이 부지런히 계행을 지키고 참선염불하고 또는 반야의 지혜를 닦아서 탐심과 진심과 치심을 다 소멸시켜버리는 이것이 그 120세까지 살으신 허운대사의 법문이란 말입니다.

 허운대사의 법문일 뿐만 아니라 부처님께서도 열반涅槃드실 때에 맨 나중에 하신 법문이 爲戒爲師라, 계율을 지킴으로 해서 스승을 삼으라, 이랬단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꼭 집안에 계실 때에 철저한 계율을 지키셔야 됩니다.

 내외간도 절조있게 그 내외간에 조금도 흐트러진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부부간의 그런 화목도 도모가 되는 것이고 또는 자녀들한테도 그래야 모범이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래야 모두가 이루어집니다. 한번 결합이 되었으면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꼭 절조를 지켜야 됩니다.

 

 지금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천고마비라. 하늘이 높고 하늘이 맑고 아주 쾌적한 계절이니까, 말 마자, 살찔 비자, 말이 살찐단 말입니다. 말도 살찌는데 사람은 살찌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좋은 때입니다만 말도 살찌고 사람도 살찌는 것은 좋은데 지금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먹어요. 지금 사람들이. 그 많이 자시지 말고 정말로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말이나 소는 절대로 많이 안 먹습니다. 꼭 자기 정도에 맞게 먹는단 말입니다.

 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는 사람은 글쎄 영장이 아니라, 글쎄 참 딱한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절대로 많이 자시지 말고 또 고기도 가급적이면 덜 자셔가다가 그 결정적으로 내 마음의 번뇌煩惱를 몽땅 모조리 다 없애야 되겠다, 그런 결정적인 단계에서는 고기는 자시지 말으시기 바랍니다.

 영양이 지금 적은 것이 아니라 지금 사람들은 영양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저 같은 사람은 지금 50년동안 제가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아, 50년동안 고기 한 점도 안 먹었어도 지금까지 그렇게 영양실조가 되어서 보대낀 일이 없습니다.

 우리 불자님들, 그 우리가 말만도 못하고 소만도 못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꼭 절제하셔서 많이 자시지 말고 소식小食이 장수長壽의 원인原因입니다. 적게 먹는 것이 이것이 장수의 원인이어요. 꼭 해보면 그래요. 그것이.

 그러니까 그런 점에서 그렇게 해가시다가 또 그 음식과 또 우리의 그런 마음이란 것이 항시 이것이 상관관계相關關係가 되어요.

 아까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욕계라는 것은 식욕과 또 남녀이성간의 음욕과 말입니다. 잠욕과 이런 것인데 이 모두가 상생관계가 됩니다.

 따라서 절제하고 살아야 그래야 몸도 좋고 집안도 편하고 사회도 훨씬 더 안녕사회가 됩니다.

 

 아까 그 월개장자 말씀마따나 부처님 이름을 외면 그 우주란 것은 근원이 부처님의 광명光明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전에 배울 때는 가사 나무아미타불이 무량광불無量光佛이다. 또는 청정광불淸淨光佛이다. 또는 그야말로 거리낌이 없다고 그래서 무애광불無碍光佛이라. 그 빛 광자, 광불光佛이란 말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의 상징적으로 아, 참 그야말로 부처님 이름이 하도 빛나고 위대하니까 빛광자光字를 넣었겠지,

 그러나 현대물리학現代物理學이, 그 우주의 근본에는 지금 광명으로 충만 돼 있습니다.    이른바 방사선放射線이라든가 말입니다. 또는 그 광량자光量子, 그 모든 존재의 근원적인 가장 미세한 것이 이른바 빛 광자, 아들 자자, 광자光子, 또는 광량자光量子 아닙니까.

 우주란 것은 지금 에너지가 그냥 에너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빛으로 존재합니다. 빛으로. 우주의 근원은 지금 빛뿐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부지런히 닦으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우주의 근원 자리가 바로 빛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도 빛을 차근차근 처음에 어렴풋이 보다가 나중에는 확실히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빛을 한번 감득感得한 사람들은, 그것보고 광촉光觸 그래요. 불교전문 술어로. 빛 광자, 접촉할 촉자. 광촉이라. 한번 그런 빛을 우리가 감득한 사람들은 실지로 우리가 접촉한 사람들은 그때는 공부도 훨씬 더 비약적으로 성취가 되고 말입니다.

 또는 건강도 다시 말할 것도 없이 항시 몸이나 마음이나 항시 정말로 참 상쾌한 이 가을날 같은 그런 쾌적한 것을 스스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광명光明은 단순히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우주의 실상적인 우주의 실존적인 하나의 그것이 생명生命이니까 말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은 바로 생명의 광명입니다. 생명의 광명입니다.

 따라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그 말 자체가 무량광불이어요. 또는 광명변조光明遍照라.

그 광명이 끝도 가도 없이 우주에 빛나는 하나의 생명이란 뜻이 나무아미타불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그 이름 자체가 바로 그러한 광명으로 충만해 있는 이름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무아미타불 한번 외면 그 나무아미타불 그것이 다른 모든 존재를 다 정화를 시켜요.

 그것이 가령 우리 주변에 무슨 나쁜 신도 있고, 좋은 신도 있고, 그런 신들이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마는 그런 신들도 역시 그 나무아미타불 그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들으면 그냥 스스로 감동을 느끼는 것이고 또 부당한 것은 거기에서 또 그마만치 배격을 당하고 또 정화를 당하는 것입니다.

 아까 그 월개장자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로 해서 모든 그 나라가운데 있는 그런 부정적인 것을 다 추방을 시켰듯이 우리도 역시 속으로라도 소리내면 옆엣 사람들이 약간 거부할랑가 모르지만 거부하지 않으면 크게 할수록 좋습니다.

 고성염불高聲念佛 십종공덕十種功德이라. 그 염불을 크게 하면 그때는 그야말로 천마경포天魔驚怖라, 모든 마구니가 두려워한단 말입니다.

 크게 하면 더욱 좋고, 크게 않고 하더라도 그냥 속으로 혀만 달싹달싹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꼭 영생永生의 고향故鄕에 하루빨리 가시기를 간절히 빌어 마지않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본 글은 동영상 자막 작업용으로 큰스님 구어체 그대로 받아쓴 글입니다.*

*2001년 9월 2일-성륜사정기법회-청화대종사설법

*2001년 9월 2일-삼영불교음반 학무 유락재 촬영

*2001년 9월 2일-울산 정안 이성도 촬영

*2005년 6월 4일-본정 김영동 DVD작업

*2007년 3월 9일-만덕화 이주미 녹취

*2007년 3월 15일-본정 김영동 정리      


  <본문과 관련딘 큰스님 친필>



<고성염불 10종 공덕>


(1) 능배수면(能排睡眠) = 능히 잠을 밀어낸다.

(2) 천마경포(天摩驚怖) = 천마가 놀라서 두려워한다.

(3) 성변시방(聲遍十方) = 소리가 시방에 두루 가득한다.

(4) 삼도식고(三途息苦) = 삼도의 고통이 쉬게 되며

(5) 외성불입(外聲不入) = 바깥소리가 들어오지 아니한다.

(6) 염심불산(念心不散) = 마음이 흗어지지 않으며

(7) 용맹정진(勇猛精進) =용맹하게 정진하여 나아가게 된다.

(8) 제불환희(諸佛歡喜) = 모든 부처님이 크게 기뻐하신다.

(9) 삼매현전(三昧現前) = 삼매가 앞에 나타난다.

(10)왕생정토(往生淨土) = 극락정토에 왕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