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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2. 금륜

금륜 25호 계율이 청정하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금륜 25호 불기 2546년 10월 】

 

 

 

계율이 청정하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 글은 큰스님께서 2002년 9월 10일 봉은사에서 있었던 불교텔레비전 법당(무상사) 건립 추진을 위한 대법회 법문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어른들께서 아주 유익한 말씀을 하셨고 불교텔레비전에 관해서도 앞날을 축도하는 그런 말씀을 수없이 하셨습니다. 사실 불교텔레비전은 불교의 가장 첨단적인 영상매체입니다. 이런 첨단적인 영상매체 행사에 저같은 노장이 이렇게 법상에 올라와서 말씀을 하게 된 것을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우리가 왜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송망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한테 애써서 알려야 하는 것인가, 불교의 가르침 가운데 어떤 부분이 가장 이와 맞는 가르침인가, 이런 것에 대해서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아니면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도리를 밝히지 못합니다, 비근한 예로 어떠한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가장 핵심인가? 이것은 우선 나라는 존재, 나라는 것은 대체로 어떠한 것인가, 이러한 것을 일반사람들은 명확히 잘 모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불교의 전문술어로 하면 아견我見이라, 나 아我자 볼 견見자 아니겠습니까?

 

일반사람들은 우리가 지각으로 느끼는 나라는 것이 사실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하면 나라는 것은, 나라는 집착은 원래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라는 것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 물질적인 요소와 수受와 상想과 행行과 식識과 같은 그러한 심리적인 요소가 잠시간 인연따라서 있는 것 같이 보일 뿐입니다.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마는 인간사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대립의 원인은 무엇인가? 죄스런 생활의 근원이 무엇인가? 이것은 나라는 주의主義 때문에 그럽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라는 것은 여러 요소가 잠시간 인연 따라서 합해져서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는 있지 않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고서는 ‘나’ 라는 것에 대해서, 참다운 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확실히 모릅니다. 다른 성인들의 가르침은 대체로 어렴풋이는 말씀을 하지마는 정확하고 명백히는 잘 모릅니다. 부처님 가르침만이 나라는 실상을 확실히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나 또는 사회적인 모든 문제에 있어서 나라는 실상을 모르면 자기 개인적인 행복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가정이나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경우에 처하더라도 부처님 가르침, 나라는 것이 원래 있을 수 없다는 가르침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으니 사실은 내 소유도 없습니다.

 

무아무소유無我無所有라, 무아무소유를 말하면 사람들이 너무나 자기에 집착하니까 부처님께서 그냥 훈계하는 의미로 내가 없고 내 소유가 없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적으로 무아무소유입니다. 나라는 것은 원래 없습니다. 나라는 것이 없거니 내 소유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죄악은 거기에서 나옵니다. 모든 종교, 세계적으로 기독교, 또는 이슬람교․힌두교 많은 종교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종교도 모두가 진리의 말씀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불교와 다른 종교, 다른 철학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것은 다른 종교의 내가 있다는 그런 견해와는 달리 부처님께서는 내가 없다는 ‘무아무소유’ 의 견해를 말씀하십니다. 이런 것이 불교의 참다운 가르침인 정도와 다른 종교의 그릇된 가르침과의 견해 차이입니다.

 

불교텔레비전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사실은 부처님 가르침밖에는 달리 구할 수가 없습니다. 다종교사회에 있어서 상호간의 갈등반목이라든가 또는 전체 사회 구성원간의 대립 경쟁이라든가 또는 각계에 있어서 여러 가지 모순된 입장 차이도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회통會通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현대는 정보화시대 아니겠습니까. 정보화시대는 많은 정보, 지식이 빠져나옵니다. 그런 지식을 우리가 여과를 시키고 또는 선택을 해서 가장 좋은 지혜, 가장 좋은 정도를 골라야 할 것인데 무엇으로 고를 것입니까?

 

상대유한적인 그런 가르침에서는 고를 수가 없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가르침이 많이 있으나 부처님의 무아무소유의 가르침만이 비로소 다른 종교의 부족한 점을 다 보완시키고 또는 그것을 다 회통시킬 수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여러 나라에 불교가 유포 되어있습니다마는 특히 일본은 자기들이 마치 불교의 대변자인 양 행세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한테 부처님 가르침의 정통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사람들은 종파주의 때문에 거기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우리 한국불교 교세가 비록 오늘에 있어서는 일본불교나 다른 저 미얀마불교나 그런 나라에 미치지 못한다하더라도 한국은 빛나는 불교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신라때 원효․의상, 고려 때 대각․보조국사 또는 이조 때 기화득통스님․무학스님․서산대사․사명당 그런 분들은 모두가 다 그냥 보통 스님이 아니라 회통會通된 불교의 전체를 조금도 치우침이 없이 원만하게 깨닫고 원만하게 가르친 분들이십니다.

 

따라서 그러한 원통무애圓通無碍한 부처님 가르침만이, 즉 한국에서 내려오는 그런 남다른 전통만이 세계의 다른 불교를 회통시키는 것이고 동시에 다른 모든 종교를 다 화회和會를 시킬 수가 있습니다.

 

불교텔레비전의 책임을 맡아 여러 어려운 점을 극복하시는 불교텔레비전방송 회장님 되시는 성우화상을 깊이는 모릅니다. 다만 계행청정하신 율사인 줄은 압니다. 한 가정도 도덕적으로 하자가 있으면 절대로 흥성할 수가 없습니다. 한 나라도 마찬가집니다. 나라가 도덕적으로 문란하다거나 또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그 사회는 절대로 번성할 수가 없습니다.

 

용수보살龍樹菩薩께서도 지도론智度論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계율이 청정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우리 불자님들, 깊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사실 안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부당한 요구를 하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정당한 희망을 가지고서 또는 자기 최선의 노력을 한다고 생각할 때 계행청정은 꼭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파계자破戒者 개실皆失이라. 모두 개皆자 잃을 실失자, 계행이 부실하면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불교텔레비전 방송국을 힘차게 일으켜 세우고자 하시는 스님께서 율사이시기 때문에 저는 그 일이 꼭 성취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정법을 만천하에 빛나게 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우리 불자님들, 제가 여러 말씀을 안 드린다 하더라도 여러분들께서는 대덕스님들 곁에서 부처님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입니다. 따라서 제가 말한 상식 정도는 여러분들께서도 충분히 납득하시리라 믿기 때문에 많은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불교텔레비전 방송을 주관하신 분들이 계행 청정한 율사律師이시기에 우리 불자님들이 거기에 따라서 성심껏 노력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가령 우리가 천불을 시주하거나 또는 몇 불을 시주하는 그런 공덕도 크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부처님의 정통 가르침을 따라서 무아무소유의 가치관 아래서 청정하게 계율을 지닌다고 생각할 때는 주관자와 불자님들의 원력 따라서 틀림없이 불교텔레비전방송 무상사 대작불사가 훌륭하게 성취될 것을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나이가 많아서 조그마한 절에 의지해서 살고 있는 노장입니다. 삼천불 가운데 크게 동참시주하면 좋겠으나 미력하게도 몇 분 부처님을 시주토록 하겠습니다. 金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