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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2. 금륜

금륜 10호 불념이념不念而念으로 삼매발득三昧發得

금륜 10호 불기 2545년 7월 】

 

 

불념이념不念而念으로 삼매발득三昧發得

 

이 글은 청화큰스님께서 불기 2545년(2001년) 5월 8일 성륜사 금강선원에서 행하신 하안거 결제법문입니다.

 

이 우주는 도리나 논리論理나 이치로 존재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우주 자체가 하나의 생명입니다. 자연계自然界가 있어서 산山이 있고 나무(木)가 있고 돌멩이(石)가 있는 것이니까, 우리가 보는 것이 객관적인 현상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이런 것들은 겉에 있는 현상적現象的인 모습뿐이고, 깊이 파고들면 다 하나의 생명입니다. 물질의 강도强度가 제일 높은 금강석이든 금金이든 그 어떤 것도 분석分析해 놓고 보면, 결국 전자電子 중성자中性子 양성자陽性子 같은 것들이 적당히 결합되어 있단 말입니다.

따라서 그 어떤 현상이든 중생이 상식적常識的으로 󰡐보는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입니다. 우주의 생명은 우리처럼 김씨나 이씨, 박씨 등 개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즉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는 하나의 원만한 생명生命인 것입니다. 평등 무차별의 한 생명입니다.

우리 중생은 현상적으로 상相만 보니까 천차만별千差萬別의 상相으로 구분되지마는, 성자의 깨달은 눈으로 볼 때는 근본성품根本性品을 다 본단 말입니다. 성품으로 보는가 겉으로만 보는가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성자聖者들은 성품으로 보고, 우리 중생은 겉의 상相으로 봅니다. 상에는 여러 가지 상이 있습니다. 나라는 상, 너라는 상, 좋다는 상 … 한도 끝도 없습니다.

 

굳건한 인생관으로 정보를 정립해야 성불할 수 있다

 

현대 학문이라는 것도 모두가 다 상相으로 봅니다. 특히 정보화시대情報化時代라는 것은 정보가 많아 정보 과다過多시대라 하는데,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 정보를 다 수용受用하다 보면, 우리 마음이 안정安靜될 수가 없습니다.

고도산업사회高度産業社會가 우리 생활에 편리하지만 각종 불필요한 정보도 생기고 텔레비전도 우리 인간생활의 참다운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 필요하지 않는 것인가 분석할 때 필요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많습니다. 부질없는 정보가 너무 많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 저런 것 다 소비해야 자본주의 사회가 지탱되기 때문에 정보가 너무 많아도 별수없이 그러한 혼란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굳건한 주장과 인생관 밑에서 정보를 잘 정리해야 됩니다. 그래야 이른바 성불成佛이라는 우리의 지상과제를 성취할 수 있단 말입니다.

 

염불공부가 어째서 중요한가

 

우리가 부처님 되는 공부가운데서 염불공부가 어째서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제가 역설하고자 해서 말이 좀 빗나갔습니다마는 복잡한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순탄한 방법만으로는 우리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삼매三昧라는 말씀을 알고 계시지마는 삼매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잘 느끼시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삼매라는 것은 우리 불자가 어느 때 들어가든 우리가 거쳐야 됩니다. 삼매三昧를 거치지 않고서는 성불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매라는 것은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 우리 마음을 오로지 하나로 모으는 경계가 이른바 삼매입니다. 어떤 경우로 들어가든지, 꼭 삼매를 거쳐야 우리 본연의 목적인 부처를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삼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명상법으로 해서는 삼매에 못 들어갑니다. 그 명상법이 부처님 사상에 따라야지, 그냥 세속적인 명상법으로 해서는 삼매에 못 들어갑니다. 왜 못 들어가는가 하면 일반 세속적世俗的인 명상법冥想法은 아我를 못 떠납니다.󰡐나󰡑라는󰡐아我󰡑를 못 떠납니다. 그래서 제법공諸法空의 도리道理를 알 수가 없습니다.󰡐아我󰡑를 떠나 제법공諸法空의 도리를 알고 자기自己라는 것을 초월超越을 할 수가 있어야 삼매三昧에 들어갑니다. 삼매에 들어가야 본래면목本來面目 자리를 깨닫는단 말입니다. 그래야 할 터인데 우리 재가불자在家佛子들은 집안에 계시기에 삼매에 들어가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때문에 재가불자님들 처지에서 삼매에 들어갈려고 하면 집안에서 소리 안내고 공부하고 소리내고 공부도 하고 자면서 공부하고 막 일어나자마자 공부해야 되겠지요.

그렇게 하려고 생각할 때는 염불念佛 공부보다 더 좋은 공부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사실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또는 지식知識이 아니라 바로 생명生命이기 때문에, 부처님 생명을 그대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도 생명이고 만중생들이 내 눈으로 볼 때 생명 아닌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중생들은 알고 모르고 상관없이, 사실은 우주宇宙의 생명 자리를 항시 그리워하고 추구하는 흠모심欽慕心이 있단 말입니다. 마음이 맑은 사람들은 부처님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우리의 생명의 중심을 흠모하는 마음이 더욱 더 강렬할 것이고, 마음이 어두운 사람들은 별로 강하지 않단 말입니다.

가령 우리가 세속世俗에서도 시를 쓴다든가 할 때, 감성感性이 풍부한 분들은 예술적인 才幹재간이라든가 종교심宗敎心도 보통은 강합니다. 위대한 시인치고 종교심이 강하지 않는 분이 없습니다.

그것은 왜 그런고하면 그 영원의 세계, 우리 생명生命의 본고향本故鄕 자리에 대한 동경憧憬이 항시 강렬하게 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물질적物質的인 세계만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간절하고 강렬한 동경이나 흠모欽慕나 갈앙심이 별로 많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보다 깊이 생각하고 마음이 예술적으로 숙성되어서, 마음이 그야말로 온화하고 순수한 분들은 갈앙심渴仰心도 더 강하단 말입니다.

사실은 우리 중생들은 누구나가 다 마음, 즉 강강剛剛한 마음을 녹여야 됩니다. 우리가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춰 보더라도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그냥 버티고 있고 교만심이나 있고 우쭐하면, 그 얼굴이 얼마나 굳어 버립니까? 그러나 부처님 앞에서 다 풀어 버리고 모든 사람을 다 수용하고 용납하는 마음, 관용寬容스러운 마음을 품을 때는, 얼굴도 그냥 봄바람같이 보인단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생명으로 받아들여서 부처님 명호名號를 외면, 명호를 외는 그것이 바쁜 중에 공부할 때에 있어서는 가장 하기 쉽고 통하기 쉽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왕이수易往易修라, 닦기 쉽고 깨닫기 쉽단 말입니다. 이것도 제가 지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용수龍樹보살이라는 제2의 석가라 할 수 있는 그 어른이 그렇게 했단 말입니다. 용수보살은 14대 조사입니다. 또 팔종조사八宗祖師라 하여, 모든 종파宗派가 그 어른을 윗 조사로 모셨단 말입니다. 선禪이고 정토淨土고 또는 염불念佛이고, 어떤 것이나 용수보살을 조사로 받드는 것입니다.

 

극락세계에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용수보살에 더 앞서서 마명대사馬鳴大師가 계십니다. 마명스님 이분은 열두번째 분이어요. 용수보살은 열네번째 조사고, 마명대사는 열두번째 분인데, 한문자로 마명을 표현하면 말 마馬자 울 명鳴자 마명입니다. 어째서 마명이라 했던가?

그 당시 인도에는 북인도에 ‘카니시카왕’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중앙 인도를 점령했습니다. 점령했으나, 중앙 인도가 너무 가난해서 무엇인가 대상금代償金을 받아내야 할 것인데, 가져갈 것이 별로 없단 말입니다. 마침 마명대사가 하도 위대하다 하니까, 카니시카왕이 불심이 좀 있었던가, “그러면 그대들이 전쟁에 진 배상금賠償金 대신에 마명대사를 달라”고 이렇게 해서 마명대사가 포로로 배상금 대신 북인도로 끌려갔단 말입니다.

끌어다가 놓으니까, 북인도 대신이라든가 일반사람들 입장에서는, 애쓰고 전쟁해서 이겼는데 하필이면 중만 하나 데리고 왔나 하고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 앞에서 말은 못하지만 불평이 많단 말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일반 대중한테 보여주어야 할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래서 카니시카왕은 마명대사를 대단히 숭상하기 때문에, 틀림없이 기적적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망아지 여남은 마리를 마당에 놓고서 말이 제일 좋아하는 먹이를 주었단 말입니다. 그와 동시에 마명스님보고 당신이 위대한 도사라고 하니까, 저 말에 대해서 부처님 설법을 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명대사가 부처님 법문을 아주 간곡하게 하셨단 말입니다. 사람도 감동시키기 어려운데, 동물을 감동시키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헌데 마명대사가 설법을 하니까, 말들이 자기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먹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지 않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어요. 그래서 말 마馬자 울 명鳴자, 말이 울었다해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그럴 정도로 위대한 스승이 마명대사입니다. 그래서 마명대사가 지은 책에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 있습니다. 일어날 기起자, 믿을 신信자, 대승의 믿음을 일으키는 그런 책이란 말입니다. 여러분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은 꼭 보셔야 합니다.

 

마명대사는 대승불교의 할아버지라 할 정도로 우리가 숭앙崇仰합니다. 그런 분들이 아까 말씀드린 염불을 역설강조力說强調하셨단 말입니다. 제2의 석가釋迦라 할 수 있는 제14대조사第十四代祖師인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염불을 창도創導하고, 마명스님이 염불을 그렇게 지성으로 우리한테 권유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다 보셔서 아실 것입니다마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염불문念佛門으로 해서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 가장 중요한 핵심核心 가르침입니다. 정토삼부경은 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인데, 꼭 여러분들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행복스러운가, 극락세계에 가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극락세계極樂世界, 그것은 없는 세계가 아닙니다. 극락세계는 비단 저 10만억 국토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생의 업장이 가벼워서 모든 존재의 실상實相을 볼 수 있는 투철한 안목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이 자리가 바로 극락세계입니다. 천지우주天地宇宙는 모두가 다 극락세계입니다. 다만 중생이 자기 업장 따라서 보고 못 보고, 또 많이 보고 적게 보고 그런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삼매에 들어가면 기기묘묘한 행복이 다 거기에

 

염불을 하는 데 있어서는 꼭 염념상속念念相續이라, 생각생각에 상속해야 된단 말입니다. 화두話頭를 참구參求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했다 말았다 했다 말았다 해서는, 우리 마음이 삼매三昧에 못들어갑니다.

삼매에 들어가야 우리 범부가 바뀌어져서 성자聖者가 될 것인데, 못 들어가면 범부가 성자로 못 되겠지요. 자기혁신自己革新을 해야 합니다. 자기초월自己超越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생각생각 생각생각에 끊임없이 지속해야 됩니다. 그래야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 삼매에 들어간단 말입니다.

삼매三昧에 들어가면, 여러분들이 생각할 수 없는 기기묘묘奇奇妙妙한 행복幸福이 다 거기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가벼워지고, 평소에 모르는 것도 알아지고 말입니다. 우리 마음자리가 본래 부처인데, 또 부처는 만공덕萬功德의 자리기 때문에, 부처의 자리에 우리가 걸음걸음 접근되어 간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한테도 그와 같은 부처의 공덕이 하나둘씩 차근차근 깊어지는 것입니다.

행복도 참 쉬운 것입니다. 원래로 행복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 존재가 행복되기 위해서 금생今生에 나와서 우리가 고행을 하는 것입니다. 본래 부처가 정말로 참다웁게 부처를 증명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인생고人生苦를 느끼면서 살아가는데, 다행히도 부처님 법 만나서 걸음걸음 지금 부처님한테 다가서고 있단 말입니다.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는 생生

 

 

금생에 닦아가는 그것이 그야말로 참 희귀하고 희귀한 일입니다.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우리 인생이 너무 허무虛無하지 않습니까? 자기자신만은 몇 년까지 건강하게 꼭 버틴다고 할 수 없는 문제 아닙니까? 언제 갈는지 모릅니다. 바람 앞에 등불이나 똑 같습니다. 아무리 건강하다하더라도 자기 남편이 자기 아내가 또는 자기 자식이 금방 어떻게 될는지 모릅니다.

생활하면서 아, 나한테는 무슨 불행이 당장 오지 않을 것이다. 결코 이렇게 장담할 수 없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이 그런 불행이 그렇게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자기 눈앞에서 자기 부모가 돌아가시건 자기 형제간이니 자기자식이 어떻게 해서 불행을 당하건 이런 것도 사실은 불행不幸이 아닙니다. 불행이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 중생은 본래로 죽음이 있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인연 따라서 잠시간 몸만 바꾸는 것이고 당장에 자기 형제간이나 누가 돌아가셨다 하더라도 지금 그 양반이 돌아가신 것이 꼭 그 양반의 손해가 아니란 말입니다.

보통은 생生을 한번 옮길 때는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교통사고 만나서 가시든 어떻게 가시건 간에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중생은 어떻게 죽어진다 하더라도 그 사람 자체를 위해서나 이 사회를 위해서나 절대로 그것이 불행이 아니란 말입니다.

인간 존재가 개벽이래 얼마나 많은 진화進化를 해왔습니까? 무수한 사람들이 죽고 죽고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다가 지금 얼마만큼 발전을 해왔습니까?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불교인생론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주가 앞으로 수백억년 뒤에는 괴겁壞劫이라, 다 파괴破壞가 됩니다. 파괴될 때는 그냥 사람만 산 채로 파괴되어 가지고 무참히 죽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공부해서 저 높은데 무색계無色界나 올라가서 편안히 지내고 그 뒤에 우주가 파괴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들이 지금 세월이 가면 갈수록 차근차근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정보과다시대情報過多時代에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사람의 본래本來 성격性格이 부처기 때문에 부처님 가르침같은 가르침에서 이 정보를 정리整理할 것이고 그래서 좋은 정보만 남습니다.

 

어떤 경우도 우리 중생의 눈앞에 닥쳐지는 불행들이 절대로 불행이 아닙니다. 인간이 보다 더 발전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일이 현실적으로 닥쳐온다 하더라도 불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모든 것은 뜬구름같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실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은 그냥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참 봄날 아지랑이와 같다고 한 것이고 또한 물 속에 비친 달그림자나 똑같은 것입니다.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있지가 않는 것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부처님 가르침, 나나 너나 누구한테 대해서나 가장 좋은 것이 우리가 부처가 되기 위해 한걸음씩 앞으로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서로 격려해서 진일보하자

 

자기 남편한테나 아들한테나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고 하면 서로 피차彼此 격려해서 부처가 되어가는 쪽으로 진일보進一步한단 말입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염불念佛이라는 것은 우리가 삼매三昧에 들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 세속적世俗的인 생활에서는 그 삼매란 것이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 마음이 오로지 하나로 모아지는 것입니다. 일반 세속적인 명상같은 것은, 그때 그때 머리가 좋아지고 몸이 날씬하고 예뻐지기 위해서 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은 하나의 유위법有爲法이라, 세간적인 중생들이 생각하는 차원次元에서 머무는 것이고, 이것은 해탈解脫의 공부가 아니란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되어야 비로소 해탈의 공부입니다. 그래서 비록 재가불자들이 선방禪房에서 공부는 못하신다 하더라도, 자기 집에서라도 염불 공부는 지속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불념이념不念而念이라, 생각지 않아도 저절로 염불이 나온단 말입니다. 꼭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주무실 때도 역시 염불하다가 주무시고 말입니다.

주무시면 그때는 여러분들은 스스로 잠들어서 모른다 하더라도 옆에 사람들이 볼 때는 자면서 염불하고 있단 말입니다. 저는 도반道伴들하고 같이 지낼 때 봤습니다마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서 잠들면, 어떤 도반은 다른 도반들이 다 자는 가운데서도 공부를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럴 경우 잔다는 것이, 그냥 잔다는 것이 상당한 손해 아닙니까, 인생이 굉장히 짧은 것인데 자는 동안을 빼버리면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자는 동안에 손해 안보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잘 때까지 자리에 누워서까지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장좌불와長坐不臥는 못하더라도, 공부를 하시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들어 버리면 잠든 가운데서도 공부가 됩니다. 또는 잠든 가운데 서 또 다른 망상을 했다가도, 일어나자마자 그냥 마음을 추스려서 또 염불을 한단 말입니다.

그렇게 이어가도록까지 하면 나중에는 불념이념不念而念이라, 생각지 않아도 저절로 염불이 된단 말입니다. 그때는 바람 불면 바람 소리도 염불하고, 또 시냇물이 흘러가면 시냇물 소리도 염불하고, 그러다가 나중엔 부처님 광명이 눈앞에 훤히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없는 행복을 누리시고 금년 여름 어디서 공부 하시든지 간에 우리 공부가 꼭 부처님 앞으로 한걸음씩 한걸음씩 나가도록 합시다. 본래 부처인 것을 깨닫는 것이 사실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본래 부처인 자리를 꼭 한사恨死코 올 여름에 증명證明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만 말씀 줄입니다. 金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