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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5. 원통불법의 요체

※ 게송음미(偈頌吟味) ③

 

  ※ 게송음미(渴頌吟味) ③


 1) 교범바제(僑梵波提)의 수설게(水說渴)


 이렇게 난삽(難澀)한 법문을 여러 시간을 듣게 되어서 특히 노덕 스님들은 굉장히 지루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만남이 그렇게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또 인생은 찰나무상이기 때문에 춘한노건(春寒老健)이라, 봄눈이 금새 녹아 버리듯이 나이 먹은 사람들은 어느 때 쓰러질 줄 모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루하시더라도 내일 하루 남았습니다. 분위기를유연하게 하기 위하여 교범바제의 게송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교범바제(僑梵波提 Gavampati), 이 분은 부처님 당시 사리불(舍利弗 Sariputra)존자의 제자입니다. 부처님 당시 부처님 계시는 곳에서 살지 않고 천상에 올라가서 사는 제자들이 있었는데 한 분이 교범바제고 또 한분은 빈두로(賓頭盧 Pindolabh) 존자입니다. 빈두로 존자는 우리가 독성님 또는 나반존자라고 하는 분입니다. 여러 가지 인연도 있습니다만 교범바제는 과거세에 죄를 많이 짓고서 500세(世) 동안 소〔牛〕의 과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금생에 인간으로 태어나서는 소처럼 한번 먹은 것을 다시 되씹는 버릇이 있었는데 아라한(阿羅漢)을 성취한 뒤에도 반추(反芻)하는 소의 습성(習性)을 못 떼니까 사람들이 흉도 내고 빈정거리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라한을 비방하면 결국 구업(口業)죄를 짓지요. 그래서 부처님이 일반 중생들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구업죄를 짖지 않게 하기 위해서 교범바제에게 도리천에 가서 중생을 제도하라고 분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범바제가 도리천에 가서 지내는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칠엽굴(七葉窟)에서 부처님 법문을 결집(結集)할 때 모든 아라한들을 다 소집하는데, 마하가섭(摩訶迦葉)이 교범바제한테도 도리천에 사자(使者)를 보내서 참여하라고 했습니다. 교범바제는 사자로 온 비구에게 부처님께서도 이미 열반 드셨고 은사 되는 사리불도 가셨다는 말을 듣고는 아라한이지만 도저히 그 슬픔을 감당키 어려웠습니다. 상(相)에 걸리지는 않았겠지만 역시 마음으로 가까운 분을 이별하는 것은 슬픈 일이겠지요. 그래서 나는 도저히 슬픔 때문에 결집에 참여를 할 수 없다면서 신통으로 허공에 솟아올라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서 자기 몸을 태워 가지고, 다시 수광삼매(水光三昧)로 물이 되어, 흐르는 물로 마하가섭한데 이르러 물 가운데서 마지막 하직하는 게송을 읊었기에 수설게(水說偈)라고 합니다. 역시 공부가 성취되고 하나도 때 묻지 않은 분들의 게송들이라 간단하지마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마음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僑梵波提稽首禮   교범바제는 머리를 조아리고 절 올립니다

 妙衆第一大德僧   성중 가운데 어른이신 대덕 존자이시여,

 聞佛滅度我隨去   부처님의 열반 듣고 저도 또한 따르오리

 如大象去象子隨   어른 코끼리 앞서면 어린 새끼 뒤따르듯,

                                                - 阿含經․智度論 -


 교범바제는 뜻으로 풀이하면 우작(牛嚼 또는 牛跡․牛呵)비구라고 합니다. 교범바제는 머리를 조아려서 절을 합니다. 마하가섭은 성중 가운데 어른이므로 마하가섭 대덕 스님한테 제가 머리를 조아려서 예배를 드립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으니 저도 역시 따라가야 할 것이 아닙니까? 마치 어른 코끼리가 앞서가면 어린 코끼리가 따라가듯이 저도 역시 부처님과 은사님을 따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애절하게 읊었습니다. 이 게송을 볼 때는 꼭 코끼리가 뚜벅뚜벅 걸어가면 새끼들이 따라가는 것이 연상됨과 동시에 그런 도인들도 역시 법의 은혜와 스승에 대한 생각을 하면 도저히 슬픔을 감당할 수 없었겠지요.

 아함경(阿含經)이나 지도론(智度論二)에 나와 있는 게송입니다.


   2. 두순학(杜荀鶴)의 안인게(安忍偈)


 三伏閉門被一衲   삼복 더위 문을 닫고 누더기를 걸치고서

 兼無松竹蔭房廊   송죽 숲도 시원스런 방사 또한 아니지만

 安禪不必須山水   하필이면 산수 좋아 편안해야 참선일까

 滅得心頭火自凉   마음 번뇌 사라지면 불이라도 서늘하리.

                                            - 唐代杜荀鶴凉-


 두순학(杜荀鶴)은 당나라 사람으로서 정확한 신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평생을 두고 청빈(淸貧) 위주한 수도인 이었습니다.

 삼복폐문피일납(三伏閉따液一衲)이라, 삼복더위에 문을 닫고서 누더기 걸치고 정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삼복더위만 해도 무더운데 하물며 문을 닫고 게다가 누더기를 입고 있으니 오죽이나 덥겠습니까? 그러나 정진하는데 구태여 소나무나 대나무 숲도 있고 그늘에 있는 시원한 방사가 아니라도 상관할 바 아니며, 우리가 참선하는데 반드시 산수가 좋은 곳에서 공부해야만 할 것인가?


멸득심두(滅得心頭)면, 우리 마음의 번뇌만 다 없애버린다면, 화자량(火自凉)이로다. 불도 추위도 주림도 문제될 것이 아니며 또한 시정(市井) 가운데 참선한다 해도 오히려 청량한 법락을 즐길 수 있다는 게송입니다.


 3. 결사문법게 (決死問法偈)


 設滿世界火   설사 온 세계가 불바다일지라도

 必過要聞法   반드시 뚫고 나가 불법 배우고

 會當成佛道   맹세코 마땅히 불도 이루어

 廣濟生死流   생사고 중생들 모두 건지리,

                                    - 無量壽經 -


 일본 중세기에 오다노부나가라는 장수가 자기에게 대항하던 적군의 장군이 숨어 있던 절을 쳐들어갔는데 적장이 나오질 않으므로 성질이 조급한 장군은 화가 치밀어 스님 네가 한 분도 도망을 못 가게하고서 절 안에 스님 네가 있는 채로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스님 네가 다 비참하게 화장을 당했겠지요. 그때에도 이런 게송을 읊으면서 목숨을 마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게송은 무량수경(無壽經量)에 있는 법문입니다.


 설사 온 세계에 불바다가 되어 한없이 위험한 경우일지라도, 필과요문법(必過要聞法)이라, 요(要)는 꼭 한사코 라고 풀이합니다. 반드시 지나가서 한사코 법을 들을지니, 우리가 참다운 진리를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설사 온 세계에 난리가 나서 불바다가 되었다 하더라도 꼭 반드시 뚫고 나가서 법을 들을지니, 회당성불도(會當成佛道)하여, 회당의 회(會)도 여기서는 만난다는 뜻이 아니고 맹세할 회라고도 풀이가 됩니다. 맹세코 불도를 성취하여 널리 무량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서원(誓願)이 담겨 있는 게송입니다.


4. 장사경잠(長沙景岑)의 백척간두게(百尺竿頭偈)


 다음은 우리들이 흔히 외우고 있는 게송입니다.


 百尺竿頭坐底人   백척간두 꼭대기에 주저앉은 사람아

 雖然得入未爲眞   비록 도에 드나 참다움은 못되나니

 百尺竿頭進一步   백척간두 그곳에서 한 걸음 더 내 딛어야

 十方世界是全身   시방세계 그대로 부처님의 온몸일세

                                              - 長沙景岑 -


 장사경잠(長沙景岑 ?~868) 스님은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 선사의 제자입니다. 마조도일(馬祖道一 707~786) 선사 밑에 삼대 준족이라 하여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 서당지장(西堂智藏 735~814), 남전보원, 삼대 선사가 가장 이름이 있고 훌륭한 분이라고 정평이 있습니다. 태안사(泰安寺)를 개산한 혜철(惠哲 785~861) 국사는 그 가운데서 서당지장 선사한테 법을 받은 분입니다. 장흥 보림사(寶林寺)를 개산한 도의 (道義)선사도 역시 서당지장 선사의 법을 받았고 남원 실상사(實相寺)를 개산한 홍척(洪陟) 국사 역시 서당지장 선사 법을 계승한 분입니다. 벽암록(碧巖錄)이나 무문관(無門關)을 보면 그런 분들의 공안이 굉장히 많습니다. 장사경잠에 따른 화두도 벽암록에 있습니다.


 공부가 백척간두(百尺竿頭)까지 갔으니 이미 공부가 상당히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거기까지 가서 머물러 버린 사람, 백척간두에 올라가서 거기에 걸려 버린 사람은 비록 깨달았다 하더라도 아직 참다운 것은 못 된다는 말입니다. 비록 득입(得入) 되었다 하더라도 아직 참다운 것은 되지 못하니, 그러니까 공부를 해 가지고 어느 정도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로서 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백척간두에서 오히려 다시 더 한 발을 내딛으라는 말입니다. 세간법을 떠나서 출세간이 되고 공부가 익어졌으면 다시 무량 중생을 제도하려 내려와야 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면

보살이라 할 수가 없겠지요. 따라서 백척간두에서 한 발을 더 내딛어야 시방세계가 바로 참다운 자기요, 부처의 장엄법신이라는 게송입니다.


 5. 장경혜릉(長慶慧稜)의 권렴견천게(捲簾見天偈)


 장경혜릉(長慶慧稜) 스님은 설봉 대사의 제자입니다. 설봉의존(雪峰義存 821~908) 대사도 벽암록이나 무문관에 이 분의 공안 화두가 있을 정도로 위대한 분입니다. 또 설봉 스님의 제자 현사사비(玄沙師備 835~908) 스님도 위대한 선지식입니다.

 현사 스님한테 어느 스님이 '여하시불(如何是佛)이니꼬' 부처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진시방세계 시일과명주(盡十方世界是一顆明珠)라' 부처고 중생이고 우주만유가 바로 한 덩어리의 밝은 마니보주와 같은 보배구슬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깨달은 분상에서 본다면 온 세계 만법이 평등무차별한 영롱한 광명의 구슬과 같다는 말입니다. 어디에도 막힘이 없는 구슬과 같은 것이 온천지 사바세계요, 삼천대천세계라는 말입니다.


 현사 스님의 출가 인연이 있습니다. 현사 스님은 어부(漁夫)인데 30대에 자기 아버지와 같이 어망을 지고 고기잡이를 나갔습니다. 어망의 한쪽 귀는 아버지가 잡고 한쪽은 자기가 잡고 있었는데 그때에 비가 많이 와서 어망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는 평생 동안 어업만 해온 셈이라 살림 도구인 어망이 그대로 떠내려가면 큰일이겠지요. 그래서 안간힘을 쓰고 잡고 있는데 물의 수세로 보아서 도저히 어떻게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대로 있다가는 자기 아버지도 그물도 현사 스님도 한꺼번에 떠내려 갈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현사 스님은 그때 생각에 '내 나이 30밖에는 안되었는데 이대로 죽을 수가 없다. 무엇인가 금생에 나온 보람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는 어부이고 별로 공부도 안한 사람이었지만 선근이 있었는지라, 과거 전생에 사문이 되어 공부한 사람이었던지 도저히 그대로 죽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물을 놓자니 자기 아버지가 떠내려 갈 것이고 놓지 않으면 자기도 한꺼번에 죽을 것이고' 고민하다가 비장한 각오를 하고서 잡고 있던 그물 벼리를 놓아 버렸습니다. 자기 아버지는 그물과 함께 급류에 휩싸여서 수장(水葬)이 되어 버렸겠지요.


 어차피 자기가 놓으나 안 놓으나 아버지는 돌아가시지마는 그래도 자기만 살고 아버지가 가셨다는 생각에 출가한 뒤에도 두고두고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수행도 진지하고 한 점의 빈틈도 없이 정진하여 위대한 성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수자들을 제접할 때도 굉장히 준엄하여 웬만한 것도 용납을 안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현사 스님은 설봉 스님 제자이므로 장경혜릉 스님에게는 사형이 되므로 사형한테 가서도 공부하고 또는 은사한테도 가서 공부하고 왔다  갔다하면서 12년 동안에 무명베로 만든 좌복이 일곱 개나 떨어질 정도로 일심정념으로 정진했습니다. 그랬어도 공부가 안 트이는 것입니다. 그 동안에 몹시 고생도 하고 여러 모로 자기를 매질도 하고 심각한 고행을 했겠지요. 그러나 12년 동안이나 공부를 했으니까 무던히 공부가 익었겠지요. 그러다가 12년이 다 되는 여름이었던가, 선방에서 발을 획 젖히고서 밖을 내다보는데 문득 산천 경계가 훤히 열려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발을 들고 산천 경계를 볼 때에 활연대오를 해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때에 읊은 게송입니다.


  也大差矣也大差矣   크게 차이 있구나 크게 차이 있구나

  捲起簾來見天下     드린 발을 걷고서 천하 경계 바라보니,

  有人問我解我宗     어느 누가 나에게 깨달은 바 묻는다면

  拈起拂子劈口打     불자 들고 입을 쳐 말을 막아 버리리,

                                                    - 長慶慧稜 -


 크게 차이가 있구나 크게 차이가 있구나, 범부로 있을 때에 느끼던 자기 경계와 활연대오(豁然大悟)한 경계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는 환희충만한 심경(心境)입니다. '견성오도 해도 약간 더 알고 마음이 시원하겠지 '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사소한 차이가 아닙니다. 12년 동안에 좌복을 일곱 개나 떨어뜨리면서 공부를 하다가 발을 걷고서 바깥 하늘을 바라볼 때 활연대오하여 깨달아 버렸는데 깨닫기 전의 범부경계와 깨달은 성자의 경계는 참으로 하늘과 땅의 차이임을 감탄하는 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한테 무슨 종지(宗旨)를 깨달았는가? 묻는다고 하면 염기불자(拈起拂子)하여, 총채와 같은 불자(拂子)를 들어서 벽구타(劈口打)라, 그 입을 때려서 쪼개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공부한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사무친 마음이 있었겠지요. 몇 번 죽으려고도 해보았을 것이고 겨우 가까스로 깨달은 것이며 깨달은 종지(宗旨)란 말도 상(相)도 여읜 것인데 그냥 말 몇 마디로 쉽게 알려고 묻는다면 괘씸하기도 하겠지요.


 보통,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냥 말로만 알려고 애씁니다. 많은 말을 않더라도 화두면 화두, 염불이면 염불, 주문이면 주문으로 오로지 공부하고 계행 지키고 닦아나가면 원래 부처인지라 부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말로만 알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기에 과거 조사 스님이나 도인들은 너무 세밀한 너절한 말을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다 스스로 공부를 시키기 위해 그러는 것입니다. 결국은 참구자득(參究自得)이라, 참구해서 스스로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깨달은 경계를 묻는다면 불자(拂子)를 들어서 그 입아귀를 부수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6, 도원(道元)선사 학소옹게(鶴笑翁偈)


 永平雖谷淺   영평사의 골이 비록 옅다 하더라도

 勅命重重重   임금님의 칙명은 무겁고도 무겁도다.

 却妓猿鶴笑   원숭이가 입으면 도리어 학이 웃으리

 紫裵一老翁   늙은 중이 분수 아닌 자가사를 걸치다니

                                             - 道元禪師 -


 도원(道元 1200~1253) 선사는 일본 조동종의 개조(開祖)로 일본에서 가장 위대한 선사라고 하는 분입니다. 이 게송은 그저 평범한 영탄시(詠嘆詩)이나, 도인들의 겸사(謙辭)한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겸사한 마음은 얼마나 소중한 마음입니까? 근래에 고암(古庵) 스님이나 운허(耘虛) 스님이나 그분들의 겸사한 태도가 얼마나 우리 마음에 훈훈한 교훈으로 남습니까?


 영평사(永平寺)는 도원 선사가 머무는 조동종의 대본산입니다. 그 당시 위대한 선사니까 왕이 자가사 곧 금란가사를 하사했는데 그때에 이 게송이 나온 것입니다. 영평의 골이 풍경이 좋거나 깊은 골인 아니고 옅어서 별로 신통할 것이 없지만 칙명중중중(輪命重重重)이라, 중자가 세번이나 거푸 되어 있습니다. 서산(西山休靜) 대사도 선조(宣祖)와 같이 거량(擧揚)할 때 굽실거렸다 하여 지금 사람들은 안 좋게 생각도 하겠지요. 그러나 임금이 다스리는 상황일 때는 도인들도 그 정도에 맞추어서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땅히 그 당시 인연 따라서 맞추는 것이 이른바 도인도, 성현도, 여세추이(與世推移)라, 세간 인연 따라 수순(隨順)하는 것입니다. 영평의 골이 비록 옅다 하더라도 임금님이 주신 가사, 그 임금님의 칙명(勅命)은 무겁고 무겁습니다. 원숭이가 가사를 입으면 학이 웃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도인이지만 성자의 경계인 학 같은 분들이 본다면 자기는 하등 별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같이 늙은 중이 금란가사를 수한다면 다른 선지식들이 비웃지 않겠습니까? 하는 뜻입니다. 부용도해 선사처럼 가사를 안 받기 때문에 귀양살이를 간 분들이나 뜻이 같지 않습니까? 선지식들도 그때그때 상황 따라서 각기 개성 따라서 행동을 달리 합니다.


 7. 중봉명본(中峯明本)의 신광송(神光頌)


 다음에 중봉(中峯明本 1263~1323) 대사는 원(元)나라 때 분인데 우리 불교에 굉장히 공로를 많이 끼친 위대한 분입니다. 고봉어록도 있는데 고봉(高峰原妙 1238~1295) 대사가 스승입니다.


 고봉 대사는 일반 대중방에는 고목당(枯木堂)이라 현판을 걸고 자기가 거처하는 선실에는 사관(死關)이라 붙여 놓고서 십년 동안 문지방을 넘지 않았다는 진지한 수행자였습니다. 내가 죽어도 무상 대도를 성취하지 않고서는 안 나오겠다는 결사 부동한 뜻이 되었겠지요.


 고봉 대사의 법제자가 즉 중봉명본 스님인데 투철한 선사(禪師)이면서도 불․유․선(佛儒仙)의 3교일치(三敎一致)를 제창한 선지식입니다. 또한 스님은 마치 왕사, 국사 같은 대접을 받고 명필 조맹부(趙孟頻)와는 절친한 막역지간이었습니다. 스님은 사람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면서 공부를 하는데 자기가 지내는 암자를 허깨비같이 잠시간 상없이 머문다고 환주암(幻住庵)이라 이름 지어서 잠시 머물다가 사람들이 몰려들면 미련 없이 다른 데로 가서 또 환주암이라 하고 지내는데 나중에는 몇 차례나 배〔船〕에 가서 숨어 정진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중봉대사는 화두 참구하는 임제종인데 공부하는 방식은 참선, 염불을 회통(會通)해서 주장한 분입니다. 이 분이 지은 간단한 게송을 소개합니다.


 神光不昧   신묘한 불성광명 어둡지 않고

 萬古徽猷   만고에 오히려 장엄하나니

 入此門內   불법의 문안으로 들어오려면

  莫存知解   아는 체 분별심을 두지 말아라.

                                      - 中峰明本 -


 신광(神光)은 도광(道光)이나 불광(佛光)이나 같은 뜻입니다. 신광불매란 신비로운, 영원적인, 영생불멸한 광명이 조금도 어둡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만고휘유(萬古徽猷)라, 만고에 오히려 더 아름답고 장엄하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순수한 불성광명의 빛은 조금도 어둠이 없이 만고에 오히려 아름다우니 부처님 법을 순수하게 닦는 이 문중에 들어와서는 지해(知解)분별을 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뒤에 선방에서는 기둥에다가 입차문내(入此門內) 막존지해(莫存知解)를써서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8. 조원(祖元) 선사 참춘풍게(斬春風偈)


 조원(視元 1126~1286) 선사도 역시 원(元)나라 때 분입니다.

 그때는 난리가 나서 우리 승려도 공부하기가 굉장히 곤란스러운 때입니다. 마침 조원 선사가 있는 절에 원나라 군대가 들어와서 칼을 겨누고 스님 네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조원 선사에게도 와서 칼을 들이대고 협박을 하므로 그때에 읊은 게송입니다.


 乾坤無地卓孤筇 천지간에 외로운 지팡이 세울 땅 없으나

 喜得人空法亦空   기쁘도다 인공(人空) 법공(法空) 모두 깨달았도다

 珍重大元三尺劒   소중한 원나라 삼척 장검도

 電光影裏斬春風   봄바람 칼로 베는 그림자로다


 천지가 모두 난리가 되어서 어디가나 편안하게 쉴 수가 없으니, 천지간에 내 외로운 지팡이를 세울 땅이 없다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산중에는 피난민이 많아서 출가한 수행자가 되었다하더라도 어디가 쉴 데가 없으니까 수행자로서 한탄도 되었겠지요 그러나 감사하고 기쁘게도 나(我)도 비었다는 것을 깨닫고 법공(法空)도 증명했다. 그러니까 아공(我空), 법공(法空)을 온전히 성취했다는 뜻이겠지요. 장군들이 가져온 삼척 검으로, 서슬이 퍼런 칼로서 설사 내 목을 벤다하더라도 마치 봄바람이 지나가듯이 조금도 내 마음에 거리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군졸들은 이 게송을 보고 크게 느끼고 뉘우쳐서 물러갔다는 것입니다:


 또 스님들의 임종 때를 보면 여러 말을 많이 한 분도 있고 단 몇 마디만 간략히 한 분도 있고 구구합니다만 이것은 조원선사의 임종 때의 게송 두 구절입니다.


 百億毛頭獅子現    백억 터럭 끝에 사자 나투어

 百億毛頭獅子吼    백억 터럭 끝에 사자후 한다

                                           - 祖元遺揭 -


 백억모두사자현(百億毛頭獅子現)이요, 백억 개나 되는 많은 털끝마다 사자가 나타나고 백억모두사자후(百億毛頭獅子吼)라, 털 끄트머리에 나타난 백억 사자가 모두 다 사자후를 토한다는 말입니다. 깨달은 분상인지라 두두물물 모두가 다 터럭까지도 사자가 곧 부처님이 나타나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자는 부처님의 상징 아닙니까? 부처님은 성자이기 때문에 인중(人中) 사자라고 하는데 부처님이 터럭 끝마다, 두두물물 모든 데에 다 나타나 보이는 것이고 백억 터럭 끝마다 부처님이 사자후하시는 철법이 여실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진진찰찰이 구설구청이라, 그야말로 산이나 내나 흙이나 식물이나 동물이나 모두 다 서로 설법하고 서로 듣는다는 것이나 같은 소식입니다.


  9. 백운경한(白雲景閑) 임종게(臨終揭)


 다음은 백운경한(白雲景閑) 스님의 임종게송입니다.


 人生七十歲  인생 칠십 년이

 古來亦希有   고래에 드무나니,

 七十七年來   칠십 칠년 전에 와서

 七十七年去   칠십 칠년 되어 돌아 가도다

 虛濫皆歸路   모두 다 비어 있는 돌아갈 길에

 頭頭是故鄕   모두가 바로 고향이로다

 我身本不有   이 몸 본래 있지 않았고

 心亦無所住   마음 또한 머물지 않으니

 作灰散十方   재로 만들어 시방에 뿌리고

 勿占檀那地    남의 땅 점하여 묻지 말아라.

                         -- 白雲景閑(1229~1375 고려말 白雲錄二卷) -


 경한 스님은 고려 말 스님으로서 원(元)나라에 들어가 석옥청공 스님의 법을 받고 돌아와서 해주 신광사에서 크게 선풍을 드날린 선지식입니다.


 저도 아직 77세는 못되었으니까 이 스님 나이까지는 세월이 있는 셈인데 이 스님은 77세까지 사신 모양이지요. 인생 칠십 세는 예부터 또한 드물게 있는 것인데, 칠십 칠년 전에는 내가 왔고 칠십 칠년 뒤에는 내가 떠나가나니, 이것은 간단명료한 시 아닙니까? 내가 칠십 칠년 전에 와 가지고서 칠십 칠년 뒤에는 내가 가는 것이니 생각해보면 모두가 허망하고, 생각할 것이 아무것도 없이 다 털어 버리고 고향길에 들어서니. 두두시고향(頭頭是故鄕)이라, 내가 돌아갈 때 이것저것에 걸리고 미련이 있으면 돌아가는 그리운 고향길이 못되겠지요.


 그러나 깨달은 분에게는 가고 오는 것이 없이 모두 다 고향이고 적광토(寂光土)입니다. 내 몸도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도 역시 머무를 바가 없으니 내 몸을 화장해서 재를 만들어 시방(十方)에 흩으리니 단나(檀那)의 땅, 곧 재가 불자의 땅에다 내 시체를 묻을 필요가 없다.

 본래가 공(空)인지라 몸도 허망한 것이고 마음도 허망한 것이고 원래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재를 만들어서 뿌리는데 아무 걸림이 없다는 게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