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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41

 

 

부처님 공부는 조금도 무리한 공부가 아닙니다. 본래대로의 공부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본래대로 있는 참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번뇌 망상을 일으키고 거기에 따르는 업을 짓고, 인생고의 여러 가지 재난을 스스로 지어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방금 여러분들이 들으신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은 육조단경(六祖壇經)귀의일체삼신자성불(歸依一體三身自性佛)’하라, 또는 삼보(三寶)에 귀의(歸依)하고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깨닫는그러한 가르침으로 육조단경의 중심 사상에 근거한 가르침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습니다만 참선(參禪)의 근본 가르침은 부처님 당시부터 있어 왔지만 적어도 문자(文字)를 배제(背除)하고 오직 마음만 닦아야 한다는 그런 가르침은 달마스님 때부터 역설 강조되어 왔습니다.

 

달마스님 가르침의 핵심은 이입사행(二入四行)이라. ‘둘 이()’, ‘들 입()’, ‘넉 사()’, ‘행할 행()’, 먼저 이입(理入)이라는 것은 다스릴 리()’, ‘들 입()’, 이치로 먼저 들어가고, 다음에 행입(行入)이라, ‘행할 행()’, ‘들 입()’, 우리가 실천궁행(實踐躬行)으로 해서 이른바 행동에 옮긴단 말입니다.

 

이치(理致)로 들어간다고 하는 말은 달마 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 일체중생(一切衆生) 동일진성(同一眞性)이라일체 모든 중생이 다 한가지의 성품(性品)이란 말입니다.

 

중생 그러면 동물적인 유정중생은 다시 말할 것도 없고, 또는 무정중생(無情衆生)이라, 동물이 아닌 식물같은 존재도 모두가 다 중생 가운데 포함됩니다. 또는 무색중생(無色衆生)이라, 모양은 없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관념이라든가, 우리의 사고, 이 모든 것도 역시 무색중생(無色衆生), ‘없을 무()’, ‘빛 색()’, 모양이 없는 중생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중생은 유정중생과 무정중생 또는 무색중생을 다 포함해서 중생이라 합니다.

 

우리 중생과 깨달은 분과의 차이는 중생은 현상적인 상만 보는 것이고, 깨달은 분은 근본성품(根本性品)을 보는 것입니다. 바다에 비유하면 바다 물결만 보는 것이 우리 중생인 것이고, 깨달은 분들은 그 물 자체를 보고 그 성품을 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현상계(現象界) 모두가 다 중생에 포섭됩니다.

 

중생(衆生)이 동일진성(同日眞性)이라’, 하나의 참다운 성품이란 말입니다. ‘참 진()’, ‘성품 성(’), 진성(眞性)이란 말에는 여러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법성(法性), 법신(法身), 불성(佛性), 불심(佛心) 또는 자성(自性), 본래면목(本來面目) 등 이러한 것이 모두가 다 참다운 성품(性品)에 해당합니다. 조사(祖師)스님들이 우리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서 그때그때 말씀하셨기 때문에 뜻은 똑같고 표현만 다를 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성인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우리 범부가 성인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그냥 아무렇게나 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반드시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타고 태어났습니다. 바꿔서 말하면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란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깊이 느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니까 부처가 안 되고 그렁저렁 살면 업()만 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사람 몸 받은 것도 과거 전생에 사람 몸 받을 정도로 다섯 가지 계율(戒律) 정도는 닦았기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십선계(十善戒)를 닦았으면 천상에 태어났겠지요. 눈에 보이는 세계만 긍정하는 사람들은 천상이라 하면 천상이 어디 있을 것인가? 그것은 부처님께서 방편(方便)으로 말씀하셨겠지.’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방편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허망무상(虛妄無常)하지만 이와 같이 이렇게 있듯이, 천상(天上)도 역시 허망무상한 것이지만 천상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서 헤매는 영가(靈駕)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를 다른 데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우리 마음의 본 성품이 바로 부처입니다. 마음을 떠나서 참다운 법신(法身) 부처가 없고 부처를 떠나서 우리 마음이 없습니다. ()를 완벽하니 깨달으신 석가모니 부처님한테 있는 불성이나, 달마 스님한테 있는 불성이나, 우리 불성이나 또는 개한테 있는 불성이나 다 똑같습니다.

 

천지우주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실은 모두가 다 불성뿐입니다. 그러기에화엄경(華嚴經)에서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모두 다 차별이 없습니다. 성인이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하시기 쉽습니다만 사실은 제일 쉽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부처가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저도 애쓰고 지금 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왜 쉬운가 하면, 천지우주의 본래자리가, 본래면목이 바로 부처이기 때문에 본래면목을 따르는 것이 우리 건강으로 보나, 우리 마음으로 보나, 제일 편합니다. 우리가 화두공안(話頭公案)을 참구(參究)하고 염불(念佛)하고 하는 것은 모두가 다, 일체중생이 부처인 것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공부하실 때에 꼭 주의해야 할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암증선(暗證禪)이라는 것입니다. ‘어두울 암()’, ‘증명할 증()’, 암증선(暗證禪)입니다. 우리가 우리 공부를 스스로 점검하지 못하고 어두운 가운데 암중모색(暗中摸索)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데도 여러 가지 차서(次序)가 있는 것인데, 가령 수능엄경(首楞嚴經)을 본다 하더라도, 수능엄경에 보면, 참선할 때 어떤 것을 먼저 해야 되는가 하는 차서에 대한 법문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또는 우리가 과거 전생에 많이 닦아서 일언지하(一言之下), 한마디에 깨달아 버리면 좋을텐데 보통 차원(普通次元)에서는 그렇게 안 됩니다. 역시 분분단단(分分段段) 으로 닦아서 올라가야 합니다. ‘모두가 부처 아님이 없다는 그러한 것을 돈오(頓悟)한 다음에는, 암중모색할 것이 아니라 공부해서 올라가는 차서를 알아야 합니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되고, 또는 생활은 어떻게 해야 우리 공부가 빠를 것인가? 부처님 법대로 잘 따르면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암중모색을 해서는 안됩니다. 가령 어느 경계에도 이르지 못하고 한계(限界)를 모르니까, 자기 공부가 상당히 되었다고 교만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문자선(文字禪)이라, 이것 저것 불경(佛經)을 많이 봐서, 능엄경(楞嚴經)도 보고, 법화경(法華經)도 보고, 구사론(俱舍論)도 보고 공부하는 차서에 따라서 올라가는 한계는 안다고 하더라도 그 아는 것으로 해서 공부가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증명(證明)을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닦아서 그 자리를 증명해야 참답게 아는 것인데, 그냥 이치로만 알고서 닦지 않는단 말입니다. 이런 것은 불가(佛家)에서는 문자선(文字禪)이라, 또 구두선(口頭禪)이라 합니다. 입으로만 안단 말입니다. 문자선(文字禪)과 구두선(口頭禪)을 해서는 안됩니다.

 

또 한 가지는 야호선(野狐禪)이라, 야호는 들여우입니다. 여우란 놈이 꾀가 많고 거짓이 많지 않습니까. 여우는 다른 짐승도 속이고, 우리 사람도 속이는 간교한 꾀가 있습니다. 그처럼 어떠한 경계를 성취하지 못하고서도 성취했다고 한단 말입니다. 그러한 것이 이른바 야호선(野狐禪)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할 때는 앞서 말씀과 같이 암중모색하는 암증선(暗證禪)을 경계해야 하고, 문자만 알고 입으로만 알고서 실지로 닦지 않는 구두선(口頭禪) · 문자선(文字禪)을 경계해야 하고, 깨닫지 못하고서 깨달았다고 하거나 또는 수승(殊勝)한 경계를 체험하지 못하고서 체험했다고 하는 야호선(野狐禪)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꼭 이 3가지를 주의해서 공부하실 것이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존재가 본래로 오직 하나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다이렇게 확실히 안 다음에는 지계청정(持戒淸淨)이라’, 꼭 계율이 청정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