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청화 큰스님 서적/5. 원통불법의 요체

원통불법의 요체(86)

원통불법의 요체(86)

 

2. 사선정四禪定

 

이 사선정四禪定은 앞에서 대강 살펴보았습니다만 바로 근본선根本禪으로서 모든 선정의 근본이 되며 증오證悟를 위한 필수必須적인 선법禪法입니다. 금강심론에 한결 구체적으로 되어 있으므로 정확한 인식을 하도록 합시다.

 

앞의 사선근四善根이란 곧 지풍 사대四大의 현계顯界 곧 나타나 있는 우리 중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상대 유한적인 세계라는 말입니다. 현계의 반대가 밀계密界입니다. 색온色蘊을 타성일편打成一片하는 경계요 곧 모두를 하나의 공상空相으로 돌려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선근에서 이것이나 저것이나 물질이요 내 몸뚱이요, 이런 것들을 쳐부숴 공상空相으로 통찰하지 못 하면은 사선근은 못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공부는 한 말로 말하면 사대四大 색온이 다 비었다고 달관達觀하는 것입니다. 내 몸뚱이까지 포함하여 천지 우주의 모든 있는 것이 다 비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고, 본래로 비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정진해 나가면 차근차근 비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 비어지면 참선이 잘못 되는 것이지요. 원래가 빈 것인데 안 비어질 까닭이 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욕심이나 분노심이 점차로 줄어가고 상이 가셔가겠죠, 상이라는 것은 내내 무엇이 실제로 있다는 것이요, 있다고 집착해서 상이 생기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다음에는 무슨 공부인가? 인 우리 마음에 오염되어 있는 습기習氣를 없애는 것입니다. 불교 수행의 근본은 그것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상대 유한적인 것이 모두 다 비어 있다는 것과 내 마음에 스며있는 오염汚染을 차근차근 없애는 작업입니다. 이렇게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불경佛經의 근본 요지는 다 그런 뜻입니다. 근본불교에는 네 몸뚱이가 비었다고 가르치면 소중히 아끼는 자기 몸뚱이 인데 상식 밖의 깊은 뜻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중생이 못 알아들으니까 12년 동안이나 중생 근기에 따라 가르쳐가다가 그다음에 부처님께서 그대가 바로 비었느니라. 그대 몸뚱이는 지 사대四大로 구성되었고 그대 마음은 수으로 잠시 구성되어 있으니 본래로 다 비었느니라하고 일체가 다 비었다는 제법공諸法空 도리를 또한 22년 동안이나 말씀했던 것입니다. 을 깨닫기가 얼마나 어렵기에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제법공諸法空 도리 반야般若의 지혜가 없으면 참선도 못되고 불교도 아닙니다. 염불念佛도 제법공 자리에 입각해야지 그렇게 못하면 하나의 방편에 불과합니다. 극락세계가 십 만억 국토 저 밖에 가 있다 하면 천지 우주가 다 비었는데 어디 밖이 있고 안이 있습니까? 천지 우주는 이대로 극락세계요, 이대로 광명세계입니다. 극락세계의 별명이 광명세계요, 화장華藏 세계입니다. 화장세계는 일체 공덕을 다 갖춘 찬란 무변한 세계라는 말입니다. 행복과 자비와 지혜와 모든 공덕을 다 갖춘 영생불멸의 세계가 연화장蓮華藏세계이고 극락이라는 말입니다. 이것만이 실제로 존재하는 실존實存적 세계인데 우리 중생의 업장으로 물질이라는 환상에 얽매여서 바로 못 보는 것입니다. 또는 우리가 물질이 있다고 하는 병 때문에 우리 마음이 오염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염된 마음을 떼어버리면 본래 극락세계인지라 극락세계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에 사바세계가 곧 적광토寂光土, 사바세계를 떠나서 저 밖에 극락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발도 떠나지 않고 바로 내 몸 이대로 부처요, 이 세계 그대로 극락세계인데 다만 우리 중생이 어두워서 못 보는 것입니다. 어두워서 못 보는 데에 허물이 있는 것이지, 극락세계와 사바세계, 예토穢土와 정토淨土가 따로 있지가 않은 것입니다. 현대는 이렇게 분명히 깨달아야 할 절박한 시대입니다. 현대 물리학도 여기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앞으로 종교는 과학을 근거로 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다 한결같이 실상實相을 근거로 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타성일편打成一片이란 말을 거듭 역설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일체 만법을 하나의 원리로 통일한 인생관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본래로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시켜 버려야지 그러지 못하고 이래저래 막히고 거리끼면 자기 마음도 항시 의단이 풀리지 않고 마음의 흐림을 제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의 불성佛性이요 불성이 아닌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물질이란 환상이 없어져 버리면 결국은 진여불성眞如佛性만 남지 않겠습니까?

 

사선정四禪定이란 밀계密界의 그 실색實色을 증명해서 보는 동시에 수식 사온四蘊의 사선四禪으로써 상정 사덕四德의 사정四定에 전입轉入하는 경계이니 곧 사무색四無色의 경계일상境界一相을 관찰함은 사선四禪이요, 그의 사유思惟로써 일행一行함은 사정四定입니다.

 

공무변처空無邊處를 관하고 염하여 색계의 금진상金塵相을 견하고, 금진상을 견해야 금강지입니다. 관법觀法을 관법 외도外道라고 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마는 부처님의 모든 수행법도 관법이요 육조 스님까지 한결같이 관법인데 관법이 외도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이 지금 한국 불교의 미숙한 풍토입니다. 참 통탄할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법집法執 불경에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주관적으로 아무렇게나 국집하는 그런 법집을 떠나야 합니다. 아함경이나 금강경이나 화엄경이나 다 관법이 아닌 것이 있습니까?

 

관조觀照하는 수행법 속에 모든 수행법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욕계의 허망상을 없애고 열반계의 정덕淨德을 증험하는 것이 초선정初禪定입니다.

식무변처識無邊處를 관하고 염하여 미진微塵의 아누색阿耨色을 견하는 동시에 수성水性적 수음受陰 곧 감수感受해서 얻은 번뇌를 걷고 청청한 마음의 아덕我德을 증함은 이선정二禪定이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관하고 염하여 색구경色究竟의 극미상極微相을 견하는 동시에 화성火性적 상음想陰을 전하여 일도광명一道光明의 상덕常德을 증함은 삼선정三禪定입니다. 사바세계가 오로지 광명뿐인 광명정토, 광명세계로서 그런 광명은 어디에 있고 어디에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충만해 있으니까 상덕입니다.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관하고 염하여 미미의 인허상隣虛相을 견하는 동시에 풍성風性적 행음行陰을 전하여 낙덕樂德을 증함은 사선정四禪定일새 사선정이란 곧 사바세계 즉 적광토寂光土임을 견하고 사바세계 그대로 극락세계임을 증험하는 선정입니다.

 

그리하여 욕계의 혹망惑網 곧 욕계 번뇌의 그물을 초탈하고 색계에 생 할새 모든 공덕을 생하는 의지依地 근본이 되는지라, 욕계의 욕심 뿌리가 뽑혀 버려야 공덕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통을 하고 싶고 뭣인가 남을 위하여 애쓰고, 알려고 하지만 욕계를 못 떠나면 안 됩니다.

 

사선정四禪定을 본선本禪이라고도 칭하니 몸에는 욕계를 떠나갈 때에는 동이라, 몸이 움직이고, 또는 가렵고, 더러는 몸이 가볍거나, 무겁고, 더러는 몸이 차고, 따습고, 더러는 깔깔하고, 또는 윤택이 있고 부드럽고 이러한 팔촉八觸이 생기고, 자기 마음에는 텅 다 비어서 공이라, 밝아서 명이요 또는 마음이 일심지一心支가 되어서 하나로 통일되니까 정이요, 지혜가 발동하니까 지, 또는 선심善心이라, 굉장히 마음이 선량해져서 나와 남이 둘이 아닌데 어떻게 자기 때문에 남을 성가시게 한다거나 듣기 싫은 말을 한다거나 자기만 잘 산다든가 할 수 없는 이른바 동체대비同體大悲가 저절로 우러나는 경지입니다.

 

그리고 유연柔軟이라,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강강한 마음이 가시어 누구와도 다투고 싸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일체가 같은 마음이요 같은 몸이거니 누구와 싸우고 필요 없는 시비를 하겠습니까? 라 기쁘고, 이라 즐거움이고, 또는 해탈解脫이고, 경계상응境界相應이라, 경계에 따라 이해가 되고 알맞게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십공덕十功德이 생함은 초선정에 들어간 증상이며, 초선부터 비 이식二識이 없어서 냄새를 못 맡고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차근차근 오관五官을 떠나게 됩니다.

 

이선二禪부터는 오식五識을 모두 떠나서 몸으로 촉감도 못 느끼고 눈으로 보아도 안 보이고 귀로 들어도 안 들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도인이나 사선에 들어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듣고 보고 할 것인가? 이런 때는 차기借起, 하고 싶으면 짐짓 욕계의 이근耳根이나 또는 안근眼根을 빌려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만 의식意識만 있는 것이니 혹은 안 삼식三識, 눈과 귀와 또는 촉감과 삼식의 희수喜受가 있어서 의식과 상응하고 혹은 의식의 낙수樂受가 있어서 삼식과 상응하는바 의식의 기쁨이 거치르니 희수喜受, 낙수樂受가 아닙니다.

 

삼선三禪에는 역시 의식만 있어서 낙수樂受와 사수捨受 , 즐겁게 느끼고 괴롭게 느끼는 등 고락을 못 느끼는 이수二受가 상응하되 기쁨이 지극히 맑고 미묘하니 낙수樂受, 사선四禪에서는 역시 의식뿐이요,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할 뿐입니다.

그리고 상에 있어 사선에 각각 삼급三級, 초선정에 셋, 또 이선에 셋, 또는 삼선에 셋, 사선에 삼급三級이 있습니다. 에 있어서 사급 내지 팔급八級을 말하는 바, 이란 밀계密界의 지상地相으로서 이른바 광명세계의 지상으로서 색계 12에 무색계의 정범지淨梵地를 보태서 색계라 총칭하기도 하니 곧 선정禪定의 차서次序입니다.

 

우리가 사선천四禪天과 사선정四禪定도 구분해야겠습니다. 사선천四禪天을 선정과 덕을 닦은 과보로써 그 하늘에 태어나 안락한 경계를 수용하는 것이고 사선정은 범부 중생이 선정을 닦아서 번뇌를 녹임에 따라 발현되는 공덕상입니다. 그런데 사대四大의 실색實色인 줄 시인할 뿐이요. 사대四大의 허상을 떠난 실상實相임을 감득 못함은 범부 소견이요, 중생은 사대의 실색을 못 보니까 무슨 색이라 하면 중생의 차원에서 이것도 번뇌에 때 묻은 색이 아닌가 하지만 묘색妙色은 제법이 공한 자리에 나타나는 우주에 충만한 청정적광淸淨寂光, 정광淨光으로서 한계나 국한이 없습니다.

 

또는 사음四陰 곧 수식인 우리 심리에 묻어 있는 오염된 번뇌인 사음四陰을 사덕四德인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전환 못함은 외도의 천견淺見일새, 외도는 습기를 소멸하지 못하여 나라는 아를 못 끊는 것입니다. 외도와 정도의 차이는 무엇인가? 정도는 아를 끊는 것이고 외도는 아를 못 끊는 것입니다. 멸진정滅盡定을 성취해야 수와 상과 행과 식에 있는 마지막 아의 뿌리를 뽑아 버리는 것이므로 정도正道라 합니다.

 

다만 근기根機에 있을 따름이요 삼계에 있지 않음을 요지了知하는 동시에, 삼계란 깨달은 안목에서는 오직 청청 무비한 영원한 극락세계입니다. 다만 중생이 잘못 보아서 또는 업장 따라서 오염되게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선정을 외도선外道禪이라 폄하는 분도 있는데 그것은 근본선根本禪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근래에 흔히 볼 수 있는 사선死禪 곧 죽은 선, 바른 지혜 없이 멍청히 닦는 무기정無記定이나, 근본 성품을 여의고 분별하고 헤아리며 닦는 망상정妄想定인 삿된 사정邪定을 닦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두 들고, 염불하고, 주문 외우고 하더라도 모두가 다 진여불성이 아님이 없고 천지 우주는 진여불성의 청정미묘한 무량적광으로 충만해 있다고 이렇게 분명히 느끼고 그 자리를 안 여의고 닦아야지 그렇지 않고 분별하고 헤아리면 결국은 망상인 것입니다. 내가 있고 네가 있고 또는 무슨 상대 유한적인 문제를 의심하고 누가 어떻게 말하고, 이런 것은 모두가 망상 아닙니까? 일체가 부처라는 생각 외에 한 생각이라도 달리 일어나면 벌써 다 망이라는 말입니다. 천지 우주가 청정미묘하고 일미 평등한 불성뿐이라는 생각 외에는 사실은 다 망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조사 어록에 일념불생一念不生이라, 한 생각도 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정邪定의 수행을 능사로 자인하는 아양승啞羊僧 곧 참다운 진리를 모르고서 법을 잘못 설하는 승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선정이란 삼승성자三乘聖者가 공수共修하는 누구나 함께 닦아야 하는 근본선根本禪입니다. 사선정을 이른바 근본선이라고 합니다. 근본불교의 요체는 근본선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태국이나 버마나 스리랑카에서는 출가승의 자세는 좋은데 정작 수행법에 있어서는 근본선을 제대로 닦지 않는 것입니다. 참다운 비파사나vipaśyana는 근본선을 닦아야만 합니다. 따라서 비파사나 선을 공부하는 분도 꼭 근본선을 닦아야 부처님 당시의아함경근본불교의 요체를 공부하는 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근본선은 소승권이나 대승권이나 누구나 다 닦아야 합니다. 우리가 번뇌로 오염되어 있으니까 빨리 가고 더디 가는 차이뿐인 것이지 꼭 근본선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타金陀 스님도 근본선을 역설하여 재음미하기 바라며 멸진정滅盡定을 거쳐 구경성취究竟成就를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선정四禪定이 구경지究竟地는 아닙니다. 외도外道와 정도正道가 공수共修하기 때문에 외도도 사선정을 닦으나 다만 아를 못 떼고 머물러 버리고, 정도는 아를 소멸한다는 견고부동한 대원력大願力으로 멸진정滅盡定에 진입하는 것입니다.

 

 

 

'2.청화 큰스님 서적 > 5. 원통불법의 요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통불법의 요체(89)  (0) 2022.08.24
원통불법의 요체(88)  (0) 2022.08.18
원통불법의 요체(85)  (0) 2022.07.27
원통불법의 요체(85)  (0) 2022.07.27
원통불법의 요체(84)  (0) 2022.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