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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88)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8. 궁금증 풀고 정견(正見)으로 정진(精進)하세

 

1) 이치와 사물(理事)

 

세간과 출세간의 이치는 마음과 성품(心性)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고, 세간과 출세간의 사물은 원인과 결과(因果)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소. 중생들이 구계(九界 : 육도와 성문 · 벽지불 · 보살)를 허우적거리거나, 여래가 일승(一乘)을 증득하거나, 마음과 성품에는 조금도 줄어들거나 늘어남이 없소. 그런데 향상과 타락이 천양지차이고, 괴로움과 즐거움이 판이한 까닭은, 도대체 무엇이겠소? 원인의 자리(因地)에서 덕을 닦은 게 같지 않기 때문에, 결과의 자리(果地)에서 받아 누리는(受用) 보답이 각각 다른 것이라오.

 

불법을 펼쳐 전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소. 오직 이치와 성품만 따진다면, 중하근기의 보통 중생들이 실제 이익을 받을 수 없게 되오. 그렇다고 인과의 사실만 오로지 말한다면, 최상근기의 선비들이 매번 듣기조차 싫어하게 되오. 그런즉, 인과와 심성을 서로 분리시키면 양자 모두 손상되고, 서로 합치면 둘 다 아름답게 되오.

 

그래서 몽동(夢東 : 徹悟) 선사는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소.

마음과 성품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인과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며, 인과법칙을 깊이 믿는 사람은 결국 틀림없이 마음과 성품을 크게 밝힐 것이다.”

 

이는 이치로나 대세로나 당연한 말씀이오. 그런데 말법시대의 중생들은 근기가 형편없이 낮소. 선종이나 교종의 모든 법문은 오직 자기 힘에만 의지하기 때문에, 해오(解悟)조차 오히려 어렵다오. 하물며 증득하여 생사 해탈하기야 말할 나위가 있겠소? 오직 부처님의 힘에 의지하는 정토법문만이,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만 지닌 자면 누구나, 오역(五逆) 십악(十惡)의 죄인까지 윤회를 영원히 벗어나 극락왕생하도록 이끌 수 있소. 이처럼 불가사의한 최상승의 법문은, 이치와 사물을 함께 언급하여 훈계하고 권장하여야 마땅하오.

 

정토법문은 네 법계(四法界)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모든 사물의 모습은 전무 사사무애의 법계임을 모름지기 알아야 하오. 그래서 정토법문을 배워 수행하는 사람은, 추상(관념)적인 이치에 집착하여 구체(실체)적인 사물을 팽개쳐서는 절대 안 되오.

 

일단 집착하면, 사물과 이치가 모두 상실되기 때문이오. 마치 사람들이 의근(意根 : 생각하는 감각 기관)이 가장 훌륭한 줄만 알고서, 나머지 다섯 감각 기관(오근 : · · · · )을 내팽개쳐 버린다면, 그 의근마저 존립할 여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오. 오직 구체적 사물을 통해 추상적인 이치를 밝히고, 추상적 이치를 가지고 구체적 사물을 융합 회통(체계화)시켜야만, 비로소 허물이 없게 되오. 이른바 정토법문의 요지는, 바로 사물을 온전히 갖추면서 이치를 꿰뚫는 것이오. 이치와 사물이 원만히 융합(조화)될 때, 비로소 본체에 딱 들어맞게 되오. 대사께서 이미 임금의 진수성찬을 포식하신 줄 알면서도, 애써 초라한 나물 반찬 올리려 하는 뜻은, 단지 궁핍한 자식이 고향에 돌아가길 바라는 한 조각 성의이며, 또한 지난날 불법을 비방했던 허물을 깨끗이 씻어내려는 참회일 따름이오.

 

요즘 총명한 사람들은 비록 불법을 배울지라도, 진정한 지혜의 눈을 갖춘 선지식을 가까이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의 다 추상적인 이치와 성품에만 오로지 치중하고, 구체적 일을 통한 수행과 인과법칙은 내팽개치고 있소. 그렇게 구체적 일을 통한 수행과 인과법칙을 내팽개치면, 이치와 성품도 함께 상실되기 마련이오. 그래서 으레히 재주가 뛰어난 인재들이 말과 글은 귀신을 깜짝 놀라게 하면서도, 그 행실을 살펴보면 길거리의 무식한 중생들과 다를 바가 없소. 그 병폐의 근본 원인은, 모두 구체적 일을 통한 수행과 인과법칙을 내팽개친 데서 비롯되오. 그래서 최상의 지혜로운 이들이 보면, 단지 안타깝게 연민할 수 있을 뿐이며; 중하의 어리석은 이들이 보면, 그를 본받아 망령된 것을 따라하게 된다오. 이것이 이른바 몸으로 불법을 비방하는 것이니, 그 죄가 한량없소.

 

알기는 어렵지 않은데, 행하기가 정말 어렵소. 세상에 헛된 명예를 훔치려는 자들은, 마음과 부처와 중생 세 가지가 본래 차별이 없다는 이치를 주워듣거나, 또는 교법(경전)을 뒤적이거나 참선 좀 하여 이러한 이치를 깨닫게 되면, 바로 나와 부처가 같기 때문에 수행이나 증명(증득)이 더 이상 전혀 소용없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소. 그래서 모든 바깥 경계와 인연 가운데서 마음 내키는 대로 방종하면서, 제멋대로 지껄여 대기 일쑤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