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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5. 원통불법의 요체

원통불법의 요체(14)

 

 

4. 범일梵日의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

 

梵日범일眞歸祖師說진귀조사설

(梵日범일: 810-889 15 出家출가, 馬祖마조法嗣법사鹽官齋安임관제안法嗣법사 闍堀山門사굴산문 開祖개조)

 

我本師釋迦아본사석가 出胎說法출태설법 各行七步云각행칠보운 唯我獨尊유아독존 後踰城住雪山中후유성주설산중 因星悟道인성오도 旣知是法기지시법 猶未臻유미진 極遊行數十月극유행수십월 尋訪祖師眞歸大師심방조사진귀대사 始傳得玄極之旨시전득현극지지 是乃敎外別傳也시내교외별전야

 

禪門寶藏錄선문보장록(眞靜國師天?진정국사천책1293著述저술)

 

범일梵日대사의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도 문제로 지적을 많이 합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조작했다고 여러 나라 불교 학자들이 신랄한 비판을 합니다. 범일梵日스님은 9세기 신라 때 분으로 이른바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하나인 사굴산문의 개조開祖가 된 스님입니다. 중국에 가서 마조(馬祖道一 707~786) 스님의 제자인 염관제안鹽官齋安 선사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진귀조사설도 범일 대사가 스스로 저술한 것이 아니라, 400여년 뒤 진정국사천책眞靜國師天頙이 저술한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에 나오는 것입니다.

 

내용은 우리 본사인 석가모니께서 태어나서 사방으로 각기 일곱 걸음을 걷고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의 설법을 하였다. 그 뒤에 성을 넘어 출가하여 설산 중에서 공부를 하다 샛별을 보고 도를 깨달았는데 이미 깨달은 이 법은 지극한 깨달음이 못되었다. 그래서 수십 개월 동안 다시 유행을 하여 진귀眞歸 조사를 심방尋訪하고서 현묘하고 극진한 사무친 도를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교외별전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진귀조사설은 한국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디에도 없다고 비판들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까 비문을 든 것이 무엇인가 하면, 적어도 마조계통의 정통으로 법을 받으시고 사굴산문의 개조가 되시는 범일 대사께서, 이렇게 훌륭한 분이 이런 말을 과연 했을 것인가? 의심이 안 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조사어록에 대해서도 꼭 자성自性에 비추어서, 본래적인 부처님의 중도실상中道實相의 궁극에 비추어 조명을 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 그대로 묵수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선종사에 가장 위대한 분이 도원(道元希玄 1200~1253) 선사라고 합니다. 중국 송나라 천동여정(天童如淨 1163~1228) 스님에게 사법嗣法하고 일본 조동종의 개조開祖인 도원 선사는 이러한 여래선 조사선의 우열론優劣論에 대하여 여래선이다 조사선이다 하는 이름이 일찍이 옛날에는 전하지 않았는데 오늘날 비로소 망령되게 전해져 부질없이 헛된 이름에 미혹하여 집착하기 몇 백 년이니 참으로 가련한 일이 아닌가? 말세에 용렬한 인연 때문이니 다 이익이 없는 한갈등閒葛藤이다[如來禪祖師禪여래선조사선 往古不傳왕고부전 今妄傳금망전 迷執미집 何百歲可怜末世劣因緣하백세가련말세렬인연 皆是無益之閒葛藤也개시무익지한갈등야]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우리 후학들이 참고할 만한 경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왕고往古에는 없던 것을, 경우에 따라 문자에 착하지 말고 경에도 착하지 말고 오로지 마음공부에 정진하라는 의미의 방편 말씀이고 경책의 말씀인데, 그 뜻을 잘 모르고 헛된 이름에만 미혹되어 집착하니 참으로 가련하고 딱한 일이요, 말세의 용렬한 인연 때문에 쓸데없는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무슨 말에도 구속될 필요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마음 닦는 모든 법을 다 팔만사천법문으로 밝혀 놓으셨습니다. 따라서 새삼스럽게 부처님 경전 밖에 마음 닦는 법은 따로 있다고 하면 문제가 됩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설사 어록이라 하더라도 권위를 백 퍼센트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부처님 경전과 우리 자성自性으로 조명하여 간택揀擇해야 하는 것입니다.

 

 

5. 결어結語

 

祖師禪조사선如來禪여래선敎禪一致說선일치설反對반대하여 如來言句여래언구執着집착함을 警策경책하는 意味의미에서 如來禪여래선簡別간별하여 祖師禪조사선唱導창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如來禪여래선이나 祖師禪조사선이나 對機대기에 따른 隨時수시所說소설로서 如來禪外여래선외祖師禪조사선이 없고 또한 祖師禪外조사선외如來禪여래선이 따로 있지 않으며 그 內容내용에 있어서는 一毫일호相違상위도 없고, 淺深천심 優劣우열이 있을 수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제 끝맺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조사선이란 여래선의 교선일치설敎禪一致說에 반대하여 제언提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래선 도리는 교나 선이나 원래 둘이 아니라는 도리를 역설하여 말합니다. 불법佛法에 있어서 무엇이 둘이 되겠습니까, 우리 중생이 공연히 갈라서 둘인 것이지, 어느 것도 불법 속에 안 드는 것이 없기 때문에 본래에서는 절대로 둘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나 선이 특징은 다 있으나 원래가 둘이 아닙니다.

 

또 조사선은 여래의 언구言句에 집착함을 경책하는 의미에서 여래선과 간별簡別하여 조사선을 창도唱導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밖에는 달리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래선이나 조사선이나 근기에 따른 수시隨時의 말로서 여래선 외에 조사선이 없고 또한 조사선 외에 여래선이 따로 있지 않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는 일호一毫의 상위相違도 없고 천심淺深 우열優劣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디가 깊고 어디가 더 옅고 또는 어디가 더 수승하고 또는 용렬한 차이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마땅히 이런 도리를 깊이 생각하셔서 앞으로 부질없는 갈등을 일으키지 않아야 합니다. 진지한 수행자는 꼭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달마 때부터 6조까지는 이런 이름도 없이 오로지 마음공부만 했습니다. 부처님 법을 범부소견으로 무엇이 옳네, 그르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부처님은 비록 수하성도樹下成道했다 하더라도 미처 공부가 덜되어서 또다시 숲속에 들어가 스승을 구하고서야 비로소 완전한 법을 얻었다는 말이 있다고 할 때 세존을 얼마나 비방하는 말이 되겠습니까,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것에 대해서는 일호一毫의 관심도 갖지 말고 다만 근기에 따라서 공부할 길을 한번 선택했으면 생명을 걸고 최선의 정진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서 문제가 되어 있는 돈오돈수, 돈오점수 문제와 또 비슷하게 문제가 되어 있는 조사선, 여래선에 대해서도 말씀을 대강 드렸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공부하는 데는 장애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수행자가 부질없이 무익한 한갈등閒葛藤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 닦는 것에 도움 되는 말 외에는 말도 함부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야말로 찰나무상刹那無常 아닙니까? 숨 한번 들이쉬지 못하면 우리 생명은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 인생에 있어서 부질없는 말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불成佛하는 직통 길만 가는 데도 우리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또한 우리 번뇌는 얼마나 깊습니까. 닦으려고 생각하지 않고 그렁저렁 지내는 사람들, 속물이 되어 세속에 휩싸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정작 그런 속물이 되지 않아야겠고 한사코 해탈의 길에 나가야겠다.’ 고 할 때는 가지가지의 마장魔障이 굉장히 많습니다. 욕계에 있는 것은 모두가 다 총동원해서 우리한테 대항하는 것입니다. 좋은 맛이나 좋은 경치나 아름다운 것이나 또는 이성이나 모든 것이 다 우리의 해탈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방해가 많은 원수의 밀림 가운데서 이른바 번뇌조림煩惱稠林이라, 번뇌나 마군魔軍이 빽빽한 가운데서 헤쳐 나가기는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팔만장경을 금생에 다 볼 수가 없습니다마는 어느 경을 보아도 다 소중합니다. 또한 논장도 다 볼 수 없습니다마는 지금 우리에게 이미 알려져서 강원에서 배우는 것은 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대교大敎까지 안 배운다 하더라도 정말로 숙세에 선근이 깊다면 초심에서도 깨닫는 것입니다. 불보고 깨닫고, 물보고 깨닫고, 달 보고 깨닫고, 별 보고 깨닫고, 우리가 깨닫는 인연은 한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 자성의 문제입니다. 오로지 자기 문제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돈오돈수나 돈오점수나 따지고 보면 결국은 다 옳은 말입니다. 다만 시초에 말씀한 분들은 너무나 점차를 따지고 고하, 시비, 차서를 따질 때 이른바 무염오無染汚수행이라, 오염하지 말라는 뜻으로서 돈수를 말씀한 것이지 견성 견도한 다음에 닦을 것이 없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화엄경이나 어느 경이나 어록을 보아도 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처음부터 권위 있는 어록에 의거하여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래선 조사선도 그와 똑같은 의미로서 고하가 있는 것도 아니요. 우열이 있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화두話頭는 근기가 수승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주문呪文이나 염불念佛은 근기가 하열한 사람들이 한다고 합니다. 부처님 경전에 그런 말씀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다만 어떻게 하는가? 그 자세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가 본래적인 자세만 여의지 않고 본체를 여의지 않을 때는 다 그대로 수승한 대승법이요 참선이 되는 것입니다. 설사, 묵조黙照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냥 묵묵하니 바보같이 앉아 있기만 할 때는 선이 못 됩니다. 분명히 중도실상中道實相의 도리를 관조觀照해야 참다운 묵조선인 것입니다.

 

또는 화두를 참구한다 하더라도, ‘이뭣고, ‘간시궐乾屎橛이나 또는 판치생모板齒生毛나 무슨 화두를 들 때는 원래는 본분사,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 본래면목 자리를 들었습니다. 어록을 보신 분은 다 아는 바와 같이 본래면목이 무엇인가?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 이런 데서 화두가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 따라서 무슨 화두를 들든지 간에 제일의제第一義諦 자리를 분명히 들어야 참다운 화두가 되는 것이지 본체 자리를 여의고 그냥 의심한다고 해서 참다운 공부가 되고 참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훤히 틔어버린 본래면목 자리를 안 놓치고 화두를 들어야 상기上氣도 안 됩니다. 그냥 애쓰고 의심만 할 때는 상기되기 마련입니다. 마땅히 마음을 열고 닦아야 참다운 공부가 됩니다. 마음을 연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일체존재 모두가 다 하나의 도리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일체존재 모두가 진여불성 뿐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닦아나가는 데는 꼭 철저하게 계행戒行을 지켜야 합니다. 철저히 계행을 지키지 않으면 삼매에 못 들어갑니다. ‘시라불청정尸羅不淸淨이면 삼매불현전三昧不現前이라시라Sila는 계율입니다. 계율이 청정하지 않으면 삼매가 못 나온다는 말입니다. 삼매에 들지 못하면 참다운 견성이 못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은 진리 그대로 하신 말씀인 것이고, 진실 그대로의 말씀인 것이고, 다른 말씀은 하시지 않고 또는 속이지 않는 말씀입니다. 저도 지금 산길에 허우적거리고 올라가는, 허위단심 올라가는 향상수좌向上首座에 불과합니다. 같이 부지런히 공부를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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