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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5. 원통불법의 요체

원통불법의 요체(13)

 

 

3. 조사선祖師禪

 

祖師禪조사선

不立文字불립문자 敎外別傳교외별전 直指人心직지인심 見性成佛견성성불格外道理격외도리立脚입각祖祖本傳조조본전을 말한다. 楞伽經所說능가경소설如來禪여래선하여 此稱차칭을 세웠다. 따라서 如來禪여래선敎內未了교내미료이라 하고 祖師禪조사선敎外別傳교외별전至極지극으로 한다.

 

(祖師禪조사선如來禪여래선보다 우월하다는 主張주장)

 

그러면 조사선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조사선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참다운 진리는 원래 문자를 세울 수가 없다. 다만 우리 중생들에게 표현하기 위해서 문자를 빌린 것이지, 참다운 진리 자체는 말도 떠나고 문자도 떠나고 생각을 떠나 있다. 따라서 참다운 도는 교 밖에서 전한다.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그러니까 교를 하나도 안 배운다 하더라도 사람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그대 마음이 바로 부처니까 바로 마음 깨달으면 된다, 바로 본래 성품을 보고 성불하는 이른바 격외格外 도리에 입각한 조사와 조사가 본래 전하는 선을 말한다고 합니다. 능가경에서 말하는 여래선의 이름에 대하여 조사선이란 명칭을 세웠고 여래선은 교 안의 미처 덜 된 선이라고 하고, 조사선을 교 밖에 달리 전하는 지극한 선이라고 하는 것이 조사선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조사선이 여래선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의 뜻이 여래선 가운데에 안 들어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여래선의 공덕 가운데는 일체 상을 떠나고 문자를 떠나고 생각을 떠난 도리가 다 들어있기 때문에 여래선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조사선이란 이름이 언제 시초로 나왔는가?

전등록傳燈錄』 「앙산장仰山章, 앙산혜적(仰山慧寂 815~891)이란 분은 위산영우(潙山靈祐771~853) 선사한테서 법을 받은 분입니다. 중국의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위앙종潙仰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5종 가운데 하나인 위앙종은 위산영우 대사와 그 제자인 앙산혜적 선사 두 분 이름의 첫 자를 따서 위앙종潙仰宗이라 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앙산은 위앙종을 건립한 한 분이지요.

 

향엄격죽香嚴擊竹이라 하면 공부하는 분들은 다 알지 않습니까. 향엄(香嚴智閑 ?~914) 대사가 위산 선사 밑에 가서 공부할 때에 위산 대사가 향엄 대사를 점검했습니다. 향엄 대사가 책을 많이 보아서 말은 청산유수였습니다. 그래서 점검을 좀 해야겠구나하고 향엄대사에게 그대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삼장三藏 십이부경十二部經의 뜻을 의지하지 않고서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한번 말해보게했습니다. 경을 많이 배웠기에 경으로야 이말 저말 다 하겠지요. 그러나 삼장 십이부경을 의지하지 않고서 낳기 전의 본래면목을 말해보라고 하니까 딱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에서 배운 대로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해도 그런 말이 맞을 턱이 없습니다. 도인 스님 네의 명구名句를 적어놓은 책을 아무리 뒤적여 보아도 명답이 안 나옵니다.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은 문자를 통한 말로 할 수 있는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깨달은 분상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겠지요. 말로 알아맞히는 것으로서는 선도리에서 맞는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가 없다 하더라도 깨달은 사람들은 벌써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위산대사가 볼 때에 향엄은 법기法器이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범부인데, 학문만 많이 해서 알음알이로 말만 잘 하니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이렇게 점검을 했던 것입니다. 향엄이 아무리 애쓰고 궁리해도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화엄경뜻을 갖다 대보아도 아니라고 하고, 별스럽게 영리한 말을 해보아도 다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내가 공부를 한 것이 참다운 본래면목 자리하고는 거리가 먼 것이었구나, 이제는 정말로 내 마음 닦는 공부를 해야겠구나하고서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던 제방 도인 스님 네의 명구를 적은 책을 다 불태우고 남양 혜충(南陽慧忠 ?~775) 국사가 계시던 절에 갔습니다.

 

혜충 국사는 40년 동안이나 산중에서 안 나온 분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본을 따르기 위해서 그곳에 가서 공부할 때에 하루는 풀도 뽑고 마당을 치우다가 던진 돌멩이가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문득 활연대오 했습니다. 이를 향엄대사 격죽擊竹의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역시 향엄 대사가 경도 많이 보고 공부를 애쓰고 했으니까 문득 깨달은 것이지 아무것도 않고 컴컴하니 있다가 갑자기 깨칠 수는 없는 문제 아닙니까?

 

 

祖師禪名조사선명始初시초

傅燈錄전등록 十一仰山章십일앙산장, 師問曰사문왈 香嚴師弟향엄제자 近日見근일견 處如何처여하 嚴曰엄왈 某甲모갑 卒說不得졸설부득 乃有渴曰내유갈왈 去年貧未是貧거년빈미시빈 今年貧始是貧금년빈시시빈 去年貧無卓錐之地거년빈무탁추지지 今年貧錐也無금년빈추야무 師曰사왈 師弟只得如來禪사제지득여래선 未得祖師禪미득조사선

 

앙산 대사께서 묻기를 향엄 사제 근자에 그대가 깨달은 바가 어떠한가?” 그러니까 향엄 대사가 모갑某甲 졸설부득卒說不得이니라자기를 겸사할 때에 모갑이라 합니다. 제가 졸지에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게송으로서 거년去年의 가난한 것은 아직 가난하다고 할 것이 없으나 금년에 가난한 것은 비로소 참으로 가난한 것이고, 거년의 가난한 것은 송곳을 세울 만한 땅이 없었으나 금년의 가난한 것은 송곳마저도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주관도 객관도 아무것도 다 없다는 뜻으로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향엄 스님의 이런 대답에 앙산 스님이 사제는 다만 여래선만 얻고 아직 조사선은 얻지를 못했네 그려하고 말씀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사선과 여래선을 비교하여 헤아린 최초의 근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사연은 다시 이어져서 위산 대사의 어록에 보면 앙산 스님의 평을 들은 향엄 스님은 나에게도 대기大機가 있어 눈을 껌벅이고 그를 보았는데 알아차리지 못할까 하여 달리 사미를 부른 셈[我有一機아유일기 瞬目觀伊순목관이 若人不會약인불회 別喚沙彌별환사미]이라 하니 이에 앙산 스님이 스승인 위산 스님에게 말씀드리기를 이렇듯 향엄지한 사제도 조사선을 깨달았습니다.[且喜閑師弟차희한사제 會祖師禪也회조사선야]하였습니다. 그러니 여래선과 조사선의 우열을 상량商量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부처님 당시부터서 조사선이란 말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마는 그렇지 않고 조사선의 명의名義는 이때부터 있어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우리 선가禪家에서도 어록을 보면 여래선보다 조사선을 위라고 하는 망발도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부처가 깨달은 여래선이 아래라고 하면 말씀이 될 수가 없겠지요. 여래선이란 바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만덕을 원만히 갖춘 무루無漏 청정선淸淨禪인 것입니다. 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나 같은 것이지 그 자체가 바로 불성은 아닌 것이니, 참선 공부하는 분들은 너무 경론의 표현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 향엄 스님 같은 분도 글 잘하는 분이라서 글은 잘 풀이하였겠지만, 자기가 참말로 깨달았으면 깨달은 대기대용大機大用을 주저 없이 바로 내보여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하고서 졸설부득이라, 졸지에 말할 수 없습니다.’ 하고서 게송으로 말하였으니 앙산 스님 생각에 이 사람이 문자에 집착해 있구나이렇게 생각이 되었겠지요. 그래서 그대는 아직은 여래선만 득했지 조사선은 미처 얻지 못했다고 했으나, 앙산 스님의 근본 뜻은 부처가 깨달은 여래선을 폄하한 뜻은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다만 그대같이 경의 연구에 너무나 집착해서 바로 심지心地를 닦는 실참실수實參實修를 소홀히 말라는 경책의 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세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 여래선보다 조사선이 위라고 잘못 생각하는 분이 많았고 그런 폐단이 지금까지도 흘러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몇 백 년, 몇 천 년 뒤에 선사들의 어록을 볼 때는 굉장히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단경壇經가운데도 사실은 이상한 대문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 당시 단경이 상당히 유포될 때, 6조 대사의 제자 가운데 한 분인 혜충 국사도 단경가운데 범부의 소견이 들어 있다고 비판을 했습니다. 범부들이 조작해서 성자의 뜻을 함부로 왜곡시켰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어록이라고 하는 것은 도인들 본인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 제자들이 받아쓰기도 했고, 그것도 몇 십 년 몇 백 년 지나는 동안 책을 다시 쓰고 개작하고 다시 펴낼 때마다 바꿔 쓰기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근래에 선지식들의 비문을 참고합니다마는, 비명碑銘을 금석학金石學에서는 권위 있는 증거로 존중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비문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꼭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옛날 분이야 우리가 그 분을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사실을 모르긴 하지만 근래에 우리가 아는 분 가운데 별로 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분도 그 비문에는 대도를 성취하였고 공덕이 하늘에 닿는다고 정도 이상으로 과찬을 많이 합니다. 이렇게 볼 때에 과거에도 그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비문을 보고 권위 있는 증거로 삼기가 어렵습니다.

 

조사 스님들의 어록도 마찬가지로 몇 백 년 세월이 흐르게 되면 많이 바뀌는 것입니다. 육조 단경에서도 5조 홍인弘忍 대사의 오백 제자 가운데 상수 제자인 신수神秀 대사와 혜능慧能 대사가 마치 법을 받기 위해 경쟁을 하는 것처럼 되어 있고 또 신수 대사는 돈오는 전혀 모르고 점수만 알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도인들이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역사적으로 밝혀졌습니다만 6조 스님의 제자인 하택신회荷澤神會6조의 법을 받아 자기가 정통 7조라고 내세우기 위해서 혜능 대사는 높이고 신수 대사를 굉장히 폄하시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과거에는 그대로 곧이듣고서 신수 대사는 부족하고 6조 대사만 위대하다고 했는데 근래에 돈황문서敦煌文書가 발견되면서 이른바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등 여러 가지 문헌으로 신수 대사도 결국은 똑같이 위대한 분이요, 또 신수 대사에게도 분명히 돈오가 있고 돈수도 있다고 알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록이나 그런 문제에 대해서 그대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근본 자성自性에 비추어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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