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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화두 놓고 염불하세(35)

 

 

印光大師 嘉言錄(인광대사 가언록)

옮긴이 김지수(寶積)

 

3. 마음 닦고 염불하는 수행의 요령(8)

 

2) 업습의 기운(習氣)을 다스리는 방법

 

흔히들 세속 잡무에 뒤얽혀 벗어날 도리가 없다고 말하오. 바로 잡무가 뒤얽혀 있을 때 거기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얽힘은 저절로 벗어나게 된다오. 마치 거울이 사물의 모습을 비출 때, 모습이 와도 막지 아니하고, 떠나도 붙잡지 아니하는 것과 같소.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설령 세속 잡무를 완전히 떠나버려 한 가지 일도 없게 될지라도 여전히 마음이 산만하고 잡념 망상에 단단히 뒤얽혀 벗어나지 못한다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평소 처지에서 수행하며 본분을 다해야 하오. 그러면 온종일 세속 잡무에 뒤얽혀 있어도, 온종일 만물 바깥에 유유자적 노닐게 되오. 보통 한마음 머묾이 업으면 온갖 경계가 모두 한가롭고, 육진이 약하지 않으면 올바른 깨달음과 같게 된다.” 고 말하는데, 바로 이러한 뜻이라오.

 

미혹된 마음이 사물의 경계를 좇아 바깥으로 치달리기 때문에, 온전한 지혜와 복덕의 형상이 곧 망상과 집착으로 변해 버린다오. 그래서 정말로 오직 정성과 일념으로 아미타불 성호를 붙잡아 지니면서,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으로 서방극락 왕생을 꾀해야 하오. 명호를 오래도록 지송하다 보면, 마음과 부처가 하나로 되고, 바로 그 한 염두를 떠나지 않고서도, 오온이 텅 비어 있음을 철저히 깨우칠 수 있소.

 

망상과 집착이 사라지면 지혜와 복덕의 형상도 스러지고, 마음이 청정해짐에 따라 불국토도 청정해진다오. 자신이 존재하는 바로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서도, 고요한 광명(寂光)에 그윽히 부합하게 되오. 오직 이 한자리만이 우리들이 궁극에 몸을 평안히 두고 운명을 세울 수 있는 곳이라오.

 

우리 인생은 허깨비처럼 세간에 고작 수십 년 머물 따름이오. 분별 지식을 알게 된 이후로 밤낮 쉬지 않고 바쁘게 경영하고 도모하는 일들은, 모두 자신과 집안의 체면을 세우거나 자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것이오.

 

병폐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단지 나()가 있다고 집착하여 놓으려고 하지 않는데에 있소. 그 생각의 뿌리가 너무도 깊숙하고 단단히 박혀 있어, 비록 부처님이 몸소 설법해 주어도 풀어질 수가 없을 정도라오. 그러면서도 자기의 주인공인 본래 진면목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이 내팽개치기 보통이오. 그래서 업장에 따라 영겁토록 들락날락 윤회하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수행의 요체는 번뇌와 업습(業習)을 다스려 나가는 데 있소. 업습이 한 푼 적어지는 만큼, 공부가 한 푼 진보하는 것이오. 수행에 더욱 힘쓸수록 업습이 더욱 드러나는 까닭은, 단지 구체적인 모습에 따라서만 수행할 줄 알았지, 지혜의 빛을 되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허망한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오.

 

평상시에 미리 막을 준비를 해두면, 바깥 경계와 인연을 만날 때, 업습이 더 이상 재발하지 않을 수 있소. 가령 평소에 나의 이 몸과 마음은 완전히 허망한 것이어서, 나라는 실체와 실성(實性)은 전혀 찾을 수 없음을 인식해 둔다고 합시다. ‘가 있지 아니한데, 어떻게 바깥 경계나 다른 사람들로 말미암아 번뇌가 생길 수 있겠소? 이것이 바로 가장 절실하고 요긴한 근본상의 해결 방법이라오.

 

만약 가 텅 비었음을 깨달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여래께서 설하신 다섯 가지 마음을 멈추는 관찰법(五停心觀)’에 따라 다스려야 할 것이오. 마음이 바깥 경계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평안히 머물 수 있도록 다스리는 법문이오.

 

탐욕이 많은 중생은 부정관(不淨觀)을 수행하고, 성냄이 많은 중생은 자비관(慈悲觀)을 수행하고, 어리석은 중생은 인연관(因緣觀)을 수행하며, 업장이 두터운 중생은 염불관(念佛觀)을 수행하는 것이오.

 

탐욕이란, 사물을 보고 마음에 사랑과 즐거움이 일어나는 것을 일컫소. 욕계의 중생은 모두 음욕으로부터 생겨나는데, 음욕은 사랑에서 생기오. 만약 자기 몸과 남의 몸을 바깥부터 안으로 하나하나 자세히 관찰한다면, 더러운 땀과 침, 터럭, 손톱, , , , 고름, 똥오줌 따위로 가득 차, 비린내는 시체나 다름없고, 더러움은 측간과 같음을 보게 될 것이오. 누가 이런 물건에 탐욕과 애착을 내겠소? 탐욕과 애착이 식어버린다면, 마음 바탕이 청정해질 것이오. 그렇게 청정해진 마음으로 부처님 명호를 염송하면, 마치 맑은 물에 다섯 가지 맛을 풀어 간을 맞추고, 흰 바탕에 오색 물감을 칠해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진다오. 원인 자리(因地)의 마음으로 과보 자리(果地)의 깨달음에 들어 맞추게 되니, 힘은 절반밖에 안 들어도 공덕은 배가 되어, 그 이익이 헤아릴 수 없이 크오.

 

성냄()이란, 바깥 경계를 보고 마음에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생각이 불끈 일어나는 것을 일컫소. 부귀(富貴)한 사람들이 자주 성내기 쉬운데, 만사가 뜻대로 순조롭고, 아래에 부릴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오. 조금이라도 자기 비위에 거슬리면, 가볍게는 폭언과 욕설을 퍼붓고, 심하게는 채찍이나 매질을 해대기 일쑤요. 오직 자기 기분만 시원하길 바라고, 남의 마음이 얼마나 상할지는 전혀 돌아보지도 않기 때문에, 화를 버럭 내는 것이오.

 

마음에 성화가 한번 치밀면, 상대방에게 무익할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큰 손해가 되오. 성냄이 가벼우면, 마음과 뜻이 번잡하고 조급해지며; 분노가 크게 치솟으면, 간과 눈이 바로 손상되오. 모름지기 마음속에 항상 한 덩어리 큰 온화한 원기(元氣)를 간직하여야만, 질병이 소멸되고 복록과 수명이 늘어나게 된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