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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2. 진리의 길

진리의 길 2권 2. 사바세계가 극락정토입니다.(13)

 

 

 

* 지금은 마음을 열고 공부할 때입니다. 또 참선 공부는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내 공부, 네 공부, 내 종파, 네 종파, 내 문중, 네 문중 그럴 때가 아닙니다. 마음을 열어서 오직 하나의 진리, 조금도 흠축이 없는 진여불성 자리, 우주의 참다운 생명자리, 거기에다 죽으나 사나 우리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이것을 일상삼매라 하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서 지속시키는 것을 일행삼매라 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염념상속(念念相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부처가 되어 갑니다. 그런 것을 조사어록에 보면 진여삼매라 하며, 공부함에 따라서 무량의 부처님[無量諸佛]을 다 보실 수 있습니다. 또 무량한 공덕을 다 성취할 수 가 있습니다.

 

* 주문(呪文)을 공부하나, 또 기독교식이 좋아서 그 쪽 인연을 갖는 사람들은 “오, 주여” “하느님”해도 무방한 것입니다. 부르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 마음의 내용이 진여불성에다 우리 마음을 딱 머물게 하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역시 충분한, 조금도 빗나가지 않는 일상삼매입니다.

 

* 부처님 가르침은 우리가 감격할 정도로 체계적입니다. 따라서 정견, 바른 견해로, 즉 일상삼매로 모두가 하나의 진리를 보아야 합니다. 이 자리를 견지해서, 누워서나 앉아서나, 남하고 말할 때도 상대방이 모두 진여불성인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 몸도 마음도 찌꺼기가 다 떨어져서, 금생을 극락세계로 이끄시기 바랍니다.

 

* 오랫동안 앉아 정진하고 염불하고 참선하고 기도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집니다. 나중에는 우리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어디에 있는가 모를 정도로 텅 비어버립니다. 여기까지 가 버려야, 부처님 무량공덕도 신통도 느껴보는 것입니다.

 

* 사선근(四善根)은 어떤 것인가 하면, 우리가 공부할 때 맨 처음에 우리 마음과 몸이 점차로 가벼워져서 시원합니다. 몸도 시원하고 가슴도 시원하여 별로 피로를 모릅니다. 이것을 난법(煖法)이라 합니다. 사실은 사오년 공부 했다 하더라도, 난법상도 못 나온 분도 있습니다. 이것이 저마다 곧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십 년 공부해도 선방에 들어가면 그냥 꾸벅꾸벅 혼침에 들어가는 사람은, 제일 밑의 선근인 난법상의 경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바른 견해를 지니고 계행을 지키고 바르게 닦을 때는, 자기 몸도 마음도 시원해집니다. 그래서 웬만한 피곤은 모르는 정도가 되어야, 사선근의 맨 밑에 있는 난법상(煖法相)이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 난법상이 나올 때는, 마치 자기 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이 찌릿찌릿하기도 하고, 머리 뒤통수가 시원스럽기도 하고 자기 눈도 시원스러워서, 혼침이 붙어 있지를 못합니다. 안 쉬고 공부를 할 때는,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그러한 기운이 더해집니다. 기분이 좋아 얼마든지 앉아 있을 기분입니다. 다리가 저리다가도, 이런 난법상이 나오면 사르르 풀려 갑니다.

 

* 공부를 안 쉬고 더욱 나아가면, 자기 눈앞에 달 같은 것이 나옵니다. 나오기도 하고 안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마는, 분명히 우리 업장이 녹아지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달 같은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더 공부를 해 나가면, 그 달이 커졌다 줄어졌다 합니다. 이것을 광협자재(廣狹自在)라 합니다.

 

* 우리 몸과 마음의 시원스러운 정도가 더욱 더해집니다. 이 경계를 정법(頂法)이라 합니다. 이 정법 단계만 되어도, 별로 후퇴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법상을 얻은 사람들은, 금생에 몸을 마친다 하더라도, 삼악도(三惡道-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 정법상(頂法相)을 경험한 사람이 더욱 용맹 정진해 간다면, 그 달 같은 것이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인법상(忍法想)이라 합니다. 인법상을 얻으면, 인법상에서 그만두더라도, 금생에 자기가 나쁜 짓을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선근이 자기 몸에 딱 박혀 버리면, 그 마음에 선근의 종자가 많이 심어져, 나쁜 짓을 하려야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 이 단계에서 공부를 안 쉬고 더욱 정진해 간다면, 그 다음에는 세제일법(世第一法)이라, 세상에서 제일 높은 단계란 뜻인데, 우리 범부 단계에서는 가장 높은 단계입니다. 성자는 미처 못 되었지만, 범부단계에서는 벌써 시원스러운 난법상·정법상·인법상을 지나, 마침내 세제일법 즉 금색광명(金色光明)으로 바뀌는 가장 높은 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 물론 이런 단계에서 바로 견성오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 근기에 따라서 빨리 되는 분도 있겠지마는, 세제일법이 되었다 하더라도, 업장이 무거운 사람은 몇 년도 걸립니다. 따라서 그 자리에서 공부를 안 쉬고 들어가야 합니다. 공부를 어렵게 생각도 말으시고, 쉽게 생각도 말아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 범부가 과거 숙세에 지어 내려온 구생기 번뇌와 금생에 잘못 배우고 잘못 느끼고 잘못 버릇을 붙인 분별기 번뇌가, 굉장히 무겁습니다.

 

* 성자가 못된 단계에서는, 진여불성 자리를 온전히 현관(現觀)하지 못했을 때는, 정도만 좀 적은 것이지, 분별시비가 안 될 수가 없습니다. 나쁜 버릇에 젖어 있어서, 버릇을 좀처럼 떼어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 부처님 근본 도리에서 이루어지는 연기법은, 진여연기 또는 법계연기라, 눈에는 안 보여도 삼천대천세계 우주에는 진여불성이라 하는 우주의 참다운 생명이 충만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부처님 법에 대해서 믿음을 갖지 못하면, 부처님 법을 닦을 수가 없습니다.

 

* 진여불성자리는 다른 말로 하면, 진여불성에서 인연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산하대지이고 인간이며, 삼천대천세계의 별이고 달이고 해이며, 이들 모두가 우주에 본래로 충만한 진여불성으로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모두다 진여불성에서 왔으니, 진여불성은 무엇인가? 내 생명의 근본 자리고, 우주만유의 근본생명이 진여불성입니다. 이 자리를 한사코 떠나지 않는 것이 참선이고 염불입니다. 곧 수행입니다.

 

* 공안선이나 의지력을 중시하는 묵조선을 모두 긍정해야 합니다. 또 본질만 떠나지 않는다면, 하느님을 부르나 알라신을 부르나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염불선은, 내 마음이 부처고, 천지우주 역시 부처라 하는 생각을, 어미 닭이 계란을 품듯 하면서, 참선하고 공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知)·정(情)·의(意) 모두를 갖춘 염불선은, 결코 근기 낮은 중생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 무상(無相)대사는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에게 귀감이 됩니다. 무상대사는 우리에게 문파와 종파를 초월했으며, 불문(佛門)과 종교일반의 고질인 “내 법문만이 옳다”는 법집(法執)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진리란 우주를 포함하는 것이어서, 모두를 수용해야 합니다. 원만하게 깨닫지 못한 무리들이, 진리 아닌 종파에 매달립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통불교, 통종교론자(通宗敎論者)입니다.

네가 선배의 한 분으로 존경해 온 무상대사는, 또한 철저한 무소유의 청빈한 삶을 실천했듯이, 모든 종교인들이 거지가 돼야 함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 진여불성 자리, 법성 자리에서 볼 때는, 우주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 조금도 차이가 없는 하나의 생명으로 모두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함부로 하면 우리가 보복을 받습니다. 다른 것은 모른다 하더라도, 방편설이 아닌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 진여 연기법의 도리를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참다운 기도가 되고, 참다운 참선이 됩니다.

 

* 부처님 가르침은 지혜의 가르침입니다. 반야바라밀을 전제로 하셔야 됩니다. 부처님이 나오신 뒤에는, 생명의 낭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믿으면 됩니다. 신시보장제일법(信是寶藏第一法)이라, 그러기에 믿음이란 모든 보배 가운데 제일이라 합니다.

 

* 우리가 염불을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나무아미타불이 저 십만 억 국토 밖에 계신다, 우리가 애쓰고 부르고 외면 나한테 도움을 주시겠지, 이런 식의 염불은 참다운 염불이 못됩니다. 내가 바로 부처고,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인데, 그 부처를 다시 확인하여, 미운 사람이나 고운 사람이나 본래 부처인 것을 재확인 하는 공부가, 바로 참다운 염불입니다.

 

* 우리가 무자 화두(無字話頭)를 하나, ‘이뭣고’ 화두를 하나, 어떤 화두를 하나, 모두가 다 본래면목 자리 진여불성 자리를 안 여의어야 참다운 참선입니다. 인류문화의 수행법 가운데서 가장 궁극적인 수행법이 이른바 참선입니다.

 

* 세계가 지금 지구촌 시대, 세계 일가 시대에 와서, 자기 종교만이 옳다, 자기 민족만 제일이라 해서는 존재할 수 가 없습니다. 이런 것을 올바르게 느끼게 하는 가르침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꼭 내 방식만 좋다는 이런 식이 아닙니다. 천지우주를 하나로 보고, 모두를 동일불성, 어느 것이나 다 부처님 아님이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 불자님들께서는 아미타불 장엄염불을 해 보셨습니까? 아미타불이 어디 계시는가 하면, 도마죽위 무한극수(稻麻竹葦 無限極數) 삼백육십만 억 일십일만 구천오백(三百六十萬億一十一萬九千五百) 동명동호 대자대비(同名同號 大慈大悲), 아등도사 금색여래 아미타불(我等導師 金色如來 阿彌陀佛)이라, 빽빽한 삼밭 대밭같이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이것저것 천사람 억 사람 모두가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든 존재가 다 동명동호라, 같은 이름, 같은 호의 아미타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