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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2. 진리의 길

진리의 길 2권 2. 사바세계가 극락정토입니다.(12)

 

 

* 불성을 생각하면, 죽어도 죽지 않고, 어디가 아파도 아프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불교인은 불성자리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 염불도 결국 부처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 항시 부처님을 염합니다. 본래부터 부처니까,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위를 보나 아래를 보나, 결국 부처님뿐인 것이니까, 부처를 안 떠나기 위해서 우리가 염불을 하는 것입니다.

 

* 조주(趙州)스님한테 가서, 어떤 스님이 “여하시불(如何是佛)잇고?” 하고 물었습니다. 조주스님께서는 “뜰 앞의 잣나무니라” 대답했습니다. 애쓰고 부처를 찾고자 부처가 무엇인가 물으니까, 뜰 앞의 잣나무라 했단 말입니다. 부처를 묻는 사람은, 부처는 그냥 신통해서 저 밖에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부처를 밖에서 구하는 마음가지고 물었겠지요. 깨달은 도인 조주스님은 뜰 앞의 잣나무라 했습니다.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뜰 앞의 잣나무나 이 컵이나, 모두가 바로 보면 부처 아닌 것이 없단 말입니다. 모든 것을 부처로 수용해서, 부처가 보는 안목을 내 안목으로 해서 하는 공부가, 이것이 참선공부입니다.

 

* ‘옴마니반메흠’을 하든, 또는 염주를 헤아리든, 그 모양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마음이, 너나 나나, 천지우주가 다 본래 부처구나, 부처 아님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은 다 참선입니다.

 

*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지장보살을 외운다고 할지라도, 역시 지장보살이나 아미타불을 밖에서 구하거나, 복 받기 위해서 구하는 것은 방편염불입니다.

방편염불은 선이 못 되는 것입니다. 복을 받아도 그런 복은 제한된 복 밖에 못 받습니다. 그러나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다. 부처란 많은 공덕을 갖추고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모든 지혜를 갖추고 있다. 그런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런 마음은 위대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마음을 부처님한테 머물게 하고, 일진불사(一塵不捨)라, 먼지 하나도 버릴 수가 없이 “다 부처구나” 하고 느끼면, 우리 공부는 방편을 떠나서 진실한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 참다운 복은 부처님의 부사의(不思議)한 공덕을 생각하면서 구하면 부사의 한 것입니다. 나와 부처님이 둘이 아니고, 나한테 내 본심에 무한 공덕이 갖추어져 있다, 이렇게 믿고 염불할 때는 우리 마음이 비약적으로 정화(淨化)됩니다.

 

* 죽는 순간에, 정말로 내 본심이 바로 부처구나, 석가모니와 아미타부처님과 내가 둘이 아니구나, 또 우리 마음이 정화되면 이 자리가 바로 극락세계구나를 느낀다면, 찰나에 성불이 됩니다.

 

* 마음의 본체는 법신인 것이고, 법신 자리에 들어 있는 일체공덕은 보신인 것이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체존재는 화신입니다. 이것을 다 합한 것이 아미타불이기 때문에, 나도 아미타불, 너도 아미타불입니다.

 

*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법문을 거듭 읽으면, 과연 우리 마음이 부처임을, 마음의 근본이 법신임을 조금씩 납득하실 것입니다. 보리방편문은 천 번 만 번, 몇 십만 번 외우십시오.

이렇게 닦으면, 임종 때는 정말로 비약적으로 이른바 돈오해서, 우리가 부처님자리를 꼭 깨달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또 아들한테나 손자한테나 누구한테나, 내 마음 자리를 가장 철저히 알게 하는, 이 보리방편문을 가장 큰 선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외면하고는 참다운 민주·평등·자유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든 지간에, 진리를 염두에 두시고, 본체 부처님을 여의지 않는 행동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영생불멸한 진여 자성을 한 순간 여의지 않는 생활이, 바로 순수한 참선이요, 진정한 염불생활입니다.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고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지혜와, 헤아림이 없는 공덕을 두루 갖춘, 영원히 변치 않는 중도실상이 부처님지혜입니다.

 

* 염불선과 염불은 구별을 해야 합니다. 어느 큰 스님은 염불은 하근기 중생이 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또는 염불이 무슨 선(禪)이냐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일반 염불과 염불선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보통 염불은 부처님을 자기 밖에서 구하고, 또 극락세계를 자기 밖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참다운 염불이 바로 염불선인데, 이것은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다, 또는 우주가 바로 부처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하는 염불이 바로 염불선입니다.

 

* 참선은 바로 내 부처를 구합니다. 천지우주만유가 바로 부처인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내가 부처가 되는 것을 선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천지우주가 부처고, 내 마음이 이대로 부처인 것을 느끼며 하는 염불은 바로 선이므로 염불선이라 합니다.

 

* 지혜[正見]란 무엇인가? 흠축 없이 모두 부처뿐이라고 믿는 것이 정견입니다. 주의할 것은 본 성품이 비었다는 것이지, 존재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생이 보는 것 같은 그런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 빈자리를 꼭 채운 것이 생명이요, 부처입니다. 이렇게 느껴야 중도실상(中道實相)입니다.

 

* 참선 공부를 해서, 정말로 우리 마음의 본 성품 자리, 이른바 불성 자리를 깨달으면, 그때는 참다운 지혜가 나옵니다. 이 지혜는 때 묻지 않은 무루지(無漏智)입니다. 참선에 의한 깨달음의 지혜가 아니면 간혜지(乾慧智)라, 상대적이고 유한적인 개념의 마른 지혜입니다.

 

* 참선하실 때에는 도방하(都放下)라, 다 놔 버리고, 심지어 자기 몸뚱이까지도 다 놓아 버려야 합니다. 공부할 때는 오직 한 가지 문제에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여야 합니다. 첫째로 부처님 법의 바른 인식을 철학적 종교적으로 해야 하는 문제이고, 둘째는 수행문제, 셋째는 부처님 가르침을 꼭 증명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즉 인식론·수행론·증명론입니다.

 

* 부처님 법을 닦을 때는, 먼저 꼭 바른 이해를 통해서 닦아야 합니다. 모든 존재가 오직 하나의 생명임을 증명할 때는, 구구순숙(久久純熟)이라, 오랫동안 공부하는 경계를 익히다 보면, 자연내외타성일편(自然內外打成一片)이라, 저절로 안팎이 하나로 딱 뭉쳐 버리는 것입니다. 이 경계를 가리켜서 부처님 말씀으로 심신탈락(心身脫落)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내 몸과 마음이 어디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텅 비어 버립니다. 여기까지 가야 정말로 신통도 있겠구나, 이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 참선 공부는 우리한테 갖추어져 있는 자성공덕(自性功德)에 대한 투철한 인식입니다. 즉 모든 것이 본래로 오직 하나의 생명이다는 것을, 천 번 만 번 되뇌면서 확신을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이른바 반야바라밀 지혜입니다.

 

* 우리가 닦고 닦아서 마음의 근본자리를 깨닫게 되면, 과거를 훤히 다 아는 숙명통(宿命通), 미래를 다 보는 천안통(天眼通), 남의 마음을 다 믿는 타심통(他心通),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신여의통(神如意通), 우주의 음성을 다 알고 다 해석할 수 있는 천이통(天耳通), 모든 번뇌를 다 끊어 버리고 영생해탈(永生解脫)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누진통(漏盡通), 이른바 삼명육통(三命六通)등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자성공덕(自性功德)을 마침내 성취할 수 가 있습니다.

 

* 우리 마음은위대합니다. 그냥 이치로 끝나지 않고 닦아서 증명하면, 우리 마음은 위대한 것입니다. 위대한 것이 무슨 병인들 못 고치겠습니까? 암세포 역시 파고 들어가면, 끄트머리는 광명입니다. 우리 마음이 우주의 가장 근본자리인 진여불성, 그 부처님자리를 생각하면 병균이 어찌 소멸되지 않겠습니까?

 

* 어떤 경우에도 진여불성 차원에서 보면, 우리한테는 손해가 없습니다. 불성자리는 그대로 여여(如如)합니다. 나옹(懶翁)대사의 게송을 보면, “하루아침에 우리 망정을 문득 끊어 버리니[一朝忽得情塵落], 누워서 잡으나 옆으로 잡으나 부처님의 광명이 항상 떠나지 않는다[到用橫拈常不離]”는 말씀이 있습니다. 한번 우리 망정이 끊어지면, 부처님을 어떻게 해도[자빠지나 엎어지나] 부처님 광명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 진여불성 자리에 마음을 두고 화두하면 화두선, 염불하면 염불선, 주문하면 주문선이 됩니다.

 

* 지금은 자기 종파만이 옳다, 내 하는 것만이 옳다, 이렇게 할 때가 아닙니다. 오직 부처님 가르침인 진여불성으로 해서, 우주가 하나의 진리로 통합할 때입니다. 이것이 추세입니다.

 

* 현재의 국제정치적 상황도 냉전의 시대가 가고 하나의 지구촌으로 되어 가는데, 하물며 진리의 큰 집인 종교가 이렇게 저렇게 내 것이 옳다 그르다, 네 것이 옳다 그르다, 내 방법이 옳다 그르다, 네 방법이 옳다 그르다 하고 서로 다툰다면, 어리석은 생명의 낭비요 소모입니다.

 

* 바이블을 한번 보십시오. 요한복음에 “나는 생명이요 진리요 빛이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그래도 진리를 말했으니까, 이천년 동안 지속을 하고 십팔억 인구가 믿는 것이지, 진리가 아니면 그렇게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벽하지 못한 것은, 부처님 가르침으로 완벽하게 유도하면 됩니다. 그냥 덮어놓고 자기 것이 아니라고 배제하면,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진리는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