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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2. 진리의 길

진리의 길. 20(1)

 

영생 해탈의 길

 

* 부처님 오신 날은 천상천하의 모든 어두운 무명을 밝히는 진리의 날이요, 우리 중생들이 인생고를 벗어나서 진정한 해탈과 자유를 누리는 영원한 생명의 축제입니다.

 

* 오늘날 우리 인간 사회가 겪고 있는 불행한 모든 병폐는, 우리 인간 존재가 허망하고 무상한 형상에 집착한 무명 번뇌와 그에 따른 그릇된 행위로 말미암은 업보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인간의 번뇌 망상을 밝히는 바른 지혜와 그에 입각한 도덕적 행위를 떠나서는 달리 찾을 길이 없음은, 인과 필연의 자명한 도리입니다.

 

* 여기에 생명의 실상을 밝히고 만중생의 해탈과 복락을 성취하는 불타의 가르침이, 현대 사회의 질곡을 벗어나는 최상 유일의 묘방이 되는 역사적 당위성이 있습니다.

 

* 인생과 우주 만유의 근본 성품은 무한 공덕을 원만히 갖춘 동일 평등한 진여불성입니다. 그리고 일체 만유는 진여불성의 인연으로 이루어진 연기적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 모든 존재는 시간적으로 제행이 무상하고, 공간적으로는 제법이 무아이기 때문에, 일체 만유는 바로 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공의 당체가 그대로 중도실상의 진여불성입니다.

다행히 현대 물리학도 불교의 천지동근天地同根과 만물 일체의 원리와 아울러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의 도리를 극명하게 밝혀나가고 있습니다.

 

* 우리들이 우주의 자연법칙인 연기법으로 통찰할 때, 본래로 나(我)가 없는 무아요, 내 소유가 있을 수 없는 무소유인 것이며, 그에 입각한 명名 상相을 떠난 무주상無住相 행위가 바로 가장 완벽한 도덕적 행위인 보살행이 되는 것입니다.

 

* 오늘날 고도 산업 사회는 지식과 정보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처절한 무한 경쟁을 치르지 않을 수 없는 숙명적인 수라장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인류의 파멸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일체 생명의 동일률同一律과 동체대자비同體大慈悲를 밝힌 불타를 비롯한, 모든 성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명정대한 길밖에 없습니다.

 

* 이러한 절박한 역사적 전환기에 있어서, 우리는 초연한 반야바라밀의 조명 아래, 종파적 이익이나 독선적인 근본주의를 번연飜然히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력 위주의 선정과 타력적인 정토 염불과 계율 등을 원융하게 회통하는 데 노력 정진하여, 본래로 원통 무애한 불타의 가르침을 천명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 우리 인간과 모든 존재가 본래로 진여불성과 둘이 아님을 확신하고, 생명의 실상인 자성불 곧 아미타불을 순간 찰나도 여의지 않고 찰나 찰나에 부처를 성취하는 수행이, 바로 참다운 선정이요 염불임을 재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화두공안선이나 묵조선도, 이와 같이 중도실상인 진여불성을 여의지 않고 참구해야, 비로소 진정한 선정이 될 수가 있습니다.

 

* 해탈성불의 길은 지혜 해탈과 선정 해탈을 갖추어야 하는데, 오늘날 불교계나 세계종교 일반에 있어서 가장 결핍된 분야가 선정 해탈입니다. 불교의 원통무애한 반야 지혜와 아울러 선정 해탈에 대하여 각별히 유념하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 우리 모두 부처님의 무량 광명의 은혜 가운데 성불제중成佛濟衆의 서원을 한껏 다짐하도록 하십시다.

* 우리는 불교 가르침에서 구분해야 할 것은, 해석한다는 ‘풀 해解’자와 ‘깨달을 오悟’라 하는 해오解悟 단계의 법문과, 또는 우리 몸으로 마음으로 이 가르침을 증명한다 하는 증오證悟의 법문입니다. 우리 마음도 바꿔지고 우리 생리도 바꿔져서, 오염된 자기가 전환되어 청정무비淸淨無比한 참다운 자기로 정화되어 버리는 단계 아니면, “부처님의 법을 증명한다” 또는 “우리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증명한다” 하는 증오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 대승열반 자리는, 몸이 사라지고 또는 우리가 사고하는 의식 활동도 사라진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영생불멸의 자리입니다. 생사가 없는 도리입니다. 우리 중생의 안목에서는 분명히 내가 있고 너도 있고 또는 죽음도 있지마는, ‘대승열반의 경계’에서는 그러한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 우리가 부처님 공부할 때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굴심自屈心’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굴심은 ‘자기 비하심’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든가, “석가모니는 성불하셨지만 나는 그렇게 못된다”든가 하는 자굴심을 여의지 못하면, 이것은 참다운 불교 신앙이 못되는 것입니다.

 

*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달마 대사, 그리고 내가 갖추고 있는 생명 자체는 조금의 흠도 차이도 없습니다. 아난존자도 이러한 가르침 정도는 아셨을 것이며, 여기 계시는 사부 대중, 우리 불자님도 충분히 아실 것입니다. 화엄경ㆍ법화경ㆍ능엄경ㆍ열반경 등을 읽으셔서,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구나” 하는 법문은 다 아실 것입니다.

 

* 그러나 어느 경계에 부딪치면, “아! 나 같은 것이 어떻게 알 것인가?” 이렇게 자굴심을 품는단 말입니다. 이는 우리의 업장이 아직 정화되지 않아서 그러한 것입니다.

 

* 인연 따라서 잠시간 이루어진 것은 분명히 공입니다. 다만 한 순간도, 고유한 존재가 못되는 것입니다.

 

* 순간순간 변화해 마지않는 것은 공간성도 없는 것이고, 공간성이 없기 때문에 시간성도 없습니다. 우주의 실상이 이러한데도, 우리의 욕탐慾貪과 중생의 무명으로 인해서 잘못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대승법문으로 볼 때는, 천지 우주가 조금도 흠축이 없는 원만한 진여불성 자리인데도, 우리 중생들이 잘못 보기 때문에, 물질이 있고 현상계가 벌어져 있는 듯이 보이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현대 물리학은 이러한 것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삼천대천 세계의 모든 은하계의 각 성수星宿나, 또는 태양계에 있는 화성이나 목성이나 우리 지구나, 모두가 다 산소나 또는 수소나 더 미세한 전자나 양성자나 중성자나 이런 것이 합해서 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일체 존재의 근원인 미세한 알맹이, 이런 것을 전자나 양자나 중성자라 하는데, 이런 것은 어떠한 것인가? 이것들은 알 수 없는 ‘우주의 장 에너지’ 이른바 ‘전자기장電磁氣場’입니다.

 

* 알 수 없는 우주의 장 에너지에서, 그때그때 적당히 물리적 원칙이라든가 또는 화학적 법칙에 따라서 진동하고 있는 조그마한 상태를, 전자요 또는 중성자요, 양자요 하는 것입니다.

 

*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고유한 전자, 고유한 양성자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과정적으로 존재하는 에너지의 진동이나 운동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태양이 되고, 또는 달이 되고 지구가 되고, 우리 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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