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수행으로 극락정토에 왕생합시다
* 우리가 믿고 있는 불교는 바로 우주의 종교입니다. 따라서 단지 우리 인간의 행복만을 위하는 그런 종교는 아닙니다. 물론 기독교나 이슬람교나 힌두교나 다 마찬가지입니다만, 불교는 특히 어느 종파의 진리도 부처님 가르침 속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 우리는 보통 몸이 아픈 데가 없으면 무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몸이 아프지 않다고 해서 병자가 아닌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중생의 번뇌 망상을 벗어나지 못하면 모두가 다 번뇌 병자입니다. 우리는 지금 번뇌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선 나와 너를 구분하는, 자기라는 이기적인 관념 자체가 무명병입니다. 무지의 병입니다. 무명 때문에 탐욕심과 분노하는 진동이 많이 생기고, 어리석은 마음은 더욱 더 치성해져 우리를 괴롭힙니다.
* 우리는 무슨 법회에서나 삼보에 귀의하는데, 삼보라는 뜻만 확실히 알아도, 우리는 범부심인 무명을 상당히 벗어나게 됩니다. 같은 불법도 초기에는 ‘부처님’ 하면 모양으로 나투신(化身)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부처님으로 숭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참 뜻은, 이른바 대승붉의 법신法身 부처님입니다. 법신 부처님이라는 사상을 모르면, 우리 부처님 가르침이 우주적 종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화신 부처님은 모양으로 나투신 석가모니 부처님에 국한되기 때문에, 우주 전체를 포섭하지 못합니다.
* 법신 부처님은 화신 부처님뿐만 아니라, 다른 성자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다 법신 부처님의 개념 속에 포함됩니다. 단지 모양이나 이름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이른바 명부득名不得 상부득相不得이라, 모습도 없고 이름도 없는 그런 존재까지도 법신 부처님의 개념 가운데 다 포섭됩니다. 이렇게 되어야 불교가 참으로 세계적인 우주의 종교가 됩니다. 우리는 지금 국제간의 단결을 도모하지 않으면 참다운 한 국가의 안녕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세계 모두가 다 국제적이고 우주적인 쪽으로 지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류 문화가 발전될수록, 모든 현상은 갈수록 부처님 가르침에 가까워집니다.
* 부처님은 그냥 우주의 본질, 우주의 생명 위에서 가만히 계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 그 우주의 생명 자리인 법신 부처님은 본래 다 원력이 있습니다. 우리도 나름대로 자기 수양에 따라 여러 가지 서원이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의 본질인 법신 부처님도 원력이 있습니다. 목적 의식이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주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우리 신앙도 더 깊어지고, 또 그런 것을 알아야 아까 말한 근본적인 번뇌의 병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 법신 부처님, 우주의 참다운 생명인 그 부처님 자리는, 이름이야 어떻게 불러도 좋습니다. 하느님이라고 불러도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그 개념이 무엇이든, 그 가운데 우주의 유정有情과 무정無情, 유상有相과 무상無相 모두가 포함되면 좋습니다. 그런 것이 바로 부처님이고 하느님의 참 뜻입니다.
* 우리는 나와 더불어 남도 온전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뿌리나 그대 뿌리나, 동양 사람 뿌리나 서양 사람 뿌리나, 모두 다 하나의 생명에서 보아야 합니다.
* 철학적인 용어로 이른바 유출설流出說(eman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고대 모든 철학에서 말씀한 것이고, 힌두교나 다른 세계적인 종교도 대체로 그와 유사한 말씀을 했습니다. 흐를 류流자 날 출出자 유출인데, 그 뜻은 우주의 모든 존재와 생명이 우주의 본질로부터 흘러나온다는 말입니다. 마치 바위 틈새에서 물이 솟아 흘러나오듯이, 우주의 본래 생명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부터 모든 종교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위대한 철인도 유출설을 부인하는 분은 별로 없습니다.
* 불교의 우주관은 맨 처음도 끝도 없이 항시 영겁으로 순환합니다. 모든 것이 다 파괴되고 텅텅 비어서 물질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세계, 즉 공겁空劫이 된다고 하더라도,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라는 형상만 없는 것이지, 생명은 그 가운데 충만해 있습니다.
따라서 그 가운데 생명의 작용으로 해서, 다시 우주가 차근차근 형성되어 나옵니다. 이게 아까 말한 유출流出입니다. 샘물 솟듯이, 태양계가 나오고 금성 토성 지구가 나옵니다. 어떠한 존재나 근본 진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종말에는 다시 모두 진리로 돌아갑니다.
* 종교는 우주의 근본 진리와 항시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은 자기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하나의 기본 철학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그 모든 정보ㆍ종교ㆍ학문 체계가 얽히고 설켜 작동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정말로 진리를 소중히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의 번뇌를 녹여서 마음의 병자가 안 되기 위해서라도, 꼭 진리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 모든 갈등이 무명 무지에서 오는데, 무지에 대한 상식이 없으면 다른 것이 해결이 안됩니다. 그냥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은 항시 불안합니다.
* 우주의 목적 의식은 근본 서원입니다. 원래 우주는 생명 자체입니다. 우리는 자칫 산이나 냇물이나 산 위에 있는 절이나, 이런 것은 생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인간 정도의 업장을 가진 중생들이 가진 견해애지, 진리의 견해가 못됩니다.
* 진리는 우리 인간적인 견해, 탐욕심과 분노하는 마음과 어리석으느 마음, 이런 독스러운 마음이 가셔 버린 성자의 경지에서만 참다운 진리가 보입니다. 이것을 견성오도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견성’은 우주의 본래 성품을 본다는 뜻이고, ‘오도’는 진리를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 진리를 깨달으면, 불교 말로 참된 사람, 진인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 유명한 임제 선사가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고 했는데, 무위진인은 모양이나 이름에 걸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배에 걸리고 무슨 감투에 걸리고 재산에 걸리면, 참다운 진인이 못됩니다.
* 불교의 목적은 무위진인이 되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금생에 재산 많이 모으고 감투가 올라가는 것으로 인간의 목적을 생각하면, 정말로 안타까운 속물입니다. 소중한 자기 생명을 갖고서 속물에 바쳐서 일생을 마치면 되겠습니까? 불자님들, 목전에 가족들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문제가 얽히고 설켜서 먹고 살기도 어렵고, 정말로 고난에 처해 있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그런 문제까지도 근본적인 해결은 꼭 진리와 더불어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해결이 빨라지고, 또 어떠한 고민에도 우리 마음이 불안하지 않습니다.
* 유출설은 철학자 플라톤이 맨 처음에 제창했습니다. 물론 더 앞선 분들이 다 알고는 있었지만, 한 체계를 세운 것은 플라톤입니다. 우주는 모두가 하나의 진리에서 왔기 때문에, 종국에는 모두가 그 역으로 하나의 진리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진리로 돌아가는 나그네 길입니다. 하나의 진리로 돌아간다는 테오리아theoria라는 말은,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또 한 체계를 세웠습니다.
* 우주는 인간이 좋다고 생각하고 궂다고 생각하고, 남을 좋아도 하고 미워도 하고 욕심도 내고 하지만, 그런 것도 인간이 잘 몰라서 그렇지, 알고 보면 그런 모든 시행 착오를 거쳐서 드디어 모든 것이 다 하나의 진리로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 우주는 하나의 생명에서 왔다가, 나중에는 하나의 생명으로 귀환歸還합니다. 즉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내 아내나 내 남편이나 내 자식이나, 빠르고 더디고 차이만 있을 뿐이지, 결국은 다 근본 고향지라, 진리로 돌아갑니다. 진리에서 왔으니 다른 데로 갈 수가 없습니다.
* 우리가 어떻게 공부를 해야 빨리 근본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런 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본래로 부처이지만, 우리 마음은 지금 여러 가지 못된 생각도 하고, 또 금생에 태어나서 진리에 맞는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진리가 뭣인지 모르고 생활해 왔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 마음의 본성은 진리 그대로인 부처님과 똑같습니다.
* 우리 마음은 시간성이나 공간성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인해서 더럽혀지지 않고 오염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쁜 생각을 하더라도, 나쁜 생각이 형체 없이 그림자같이 좀 머물다가 나중에 없어져 버리는 것이지, 우리의 그 청정한 마음을 오염시킬 수 없습니다. 극악 무도한 사람도 마음의 본성은 청정 무구한 불심과 똑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본래로 부처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 부처님 당시로부터 삼백 년 후에 음광부陰光部라는 근본 불교 종파가 있습니다. 어째서 음광부라고 했냐면, 음광부를 개설한 위대한 성자가 하도 빛나기 때문에, 그 성자가 나타나면 다른 빛은 다 들이마신 것처럼 감추어져 버린다는 말입니다.
음광부를 개설한 분은 선세善世라는 분인데, 인도 말로 하면 가섭유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한문투로 풀이하면 성자라는 분인데, 그분은 십세도 채 못된 일곱 살 때 성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믿기지가 않으실 것입니다. 아직도 재롱부릴 나이인 일곱 살 때 성자가 되었다니!
우리 인간은 충분히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다. 다라표라는 비구는 십사세 때 승려가 되어, 이년 만인 십육 세에 팔만장경을 통달하고 아라한과를 성취했습니다. 이것도 믿기 어려운 것 아닙니까?
* 우리 마음이 순수하면 교학적으로 아무 것도 안 배우더라도, 우리 마음이 본래로 법신불이기 때문에, 그 자리는 만민이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이 소중한 것입니다. 믿으면 우리 공부는 순풍에 돛단 배가 됩니다.
*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源功德母라, 믿음이라는 것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입니다. 바른 믿음이 있어야, 우리 공부도 빠르고 성불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믿음은 뭘 믿는 것인가? 밖에 있는 부처님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이 부처인 것을 믿어야 참다운 바른 믿음이 됩니다.
* “모든 공덕을 갖추고 있는 것이 본래로 내 마음이다”라고 믿을 때는, 우리가 설사 무슨 좌절을 당해서 비관에 처해 있고, 나같은 하찮은 목숨 차라리 끊어 버려야겠다고 생각이 들 때라도, 자기 목숨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무슨 수로 끊습니까? 가장 소중한 능력이 무한히 자기 마음에 원래 갖추어져 있는데 말입니다.
따라서 그 마음은 무한한 가능성인지라, 우리 믿음과 생각에 따라서는 아까 선세 동자와 같이 일곱 살에도 성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때도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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