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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당 청화(淸華)큰스님/1. 청화 큰스님의 행화

5. [元曉의 念佛觀과 淸華의 念佛禪]에 대한 토론문

[元曉의 念佛觀과 淸華의 念佛禪]에 대한 토론문

 

 

 

김호귀 / 불교학술원

 

 

 

1.

 

불교에서 내세우는 가장 이상적인 파라다이스는 정토라는 개념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만큼 정토는 불교의 전반에 걸쳐서 가장 보편적인 개념으로 전개되어 온 사상이고 신앙이다. 때문에 정토를 구가하는 모습은 어느 시대니 어느 지역에서나 누구에게나 참으로 다양하게 발전되고 전승되었다. 이에 그러한 정토에 왕생 내지 상생하려는 노력은 갖가지 수행법을 출현시켰다. 칭명염불, 觀想法, 觀象法, 實相念佛 등 정토에 태어나려는 정토의 수행법은 물론이고, 그 밖의 예배와 좌선과 주력과 참회 등을 통한 여타의 수행법을 통하여 널리 전개되었다.

 

그러나 정토라 해도 禪淨土 내지 淨土禪이라는 말로 표현되듯이 선종에서 논의하는 선과 정토의 관계는 주로 자성미타이고 유심정토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제대로 깨친 사람이어야 반드시 왕생할 수 있고 왕생하는 사람은 제대로 깨친 사람이라는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왕생은 진정한 無生임을 말하고 있다. 반면 정토종의 교학에서는 주로 염불행자의 노력이 수반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철저하게 타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여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서만 왕생이 가능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기타 천태의 정토라든가 화엄의 정토 등등 정토에 대한 개념은 각각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나 정토의 속성을 나누자면 대략 유심정토와 타방정토로 나누어볼 수가 있다. 이 가운데 유심정토는 대표적으로 선종에서 주장되는 정토로서 거기에 자력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그것은 선종에서 사조도신을 비롯하여 조계혜능, 정중무상, 영명연수, 진헐청료, 천여유칙, 운서주굉 등의 어록과 저술 등에 잘 드러나 있다. 그 밖의 타력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정토에 왕생하려는 수행의 행상은 유심정토와 타방정토를 막론하고 염불과 좌선 등에까지 걸쳐서 다양한 사람에게 폭넓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2.

 

본 논문에서 논자는 이 가운데 우선 원효에 주목하고 있다. 원효는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거하여 중하근기의 중생은 타방정토에 이른다는 교리를 그의 다양한 저술을 통하여 전개하였다는 점을 고찰하였고, 또한 유심정토의 입장에서 청화선사는 참선과 염불의 관계를 실상염불선을 통하여 회통하였음을 고찰하고 있다. 곧 청화는 염불과 선을 염불선과 선염불의 관계로 설정하여 염불선을 최상승선으로까지 간주하였다. 이 경우 청화가 보여준 최상승선은 중국선종에서 전개되어 온 조사선으로서 본래성불의 가풍을 벗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여기에서 청화는 염불과 선의 접점을 실상염불선으로 제시하여 원통불법의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이와 같은 원효와 청화의 입장에 대하여 논자는 염불을 선정의 일환으로 간주했음을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서 논자는 선종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대승불교 이래로 염불 곧 붇다수념이 선정의 수행과 별개의 수행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어왔지만, 선종이 발전하면서 선과 염불의 수행이 별도로 간주되어 왔음을 논하고 있다. 원효의 경우에는 일심의 측면에서는 서방정토가 아닌 차방정토이고 타방정토가 아닌 유심정토를 지향하였다.

 

그러나 중하근기의 중생에게 있어서 정토왕생은 至心에 근거한 중생의 十念 뿐만이 아니라 철저하게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하여 왕생이 가능하다고 보고, 그 근거는 여래장을 통한 일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곧 왕생은 자신의 업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오직 여래의 대비원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며 타력에 의한 往生因을 제시하였다. 말하자면 선근은 緣이 작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자신이 닦는 것이 아니며, 중생은 여래의 선근을 이어받기 위해 발보리심하고 지성심으로 염불함으로써 부처의 본원력으로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상근기의 중생을 위해서는 정토와 예토의 동일성을 말하여 유심정토와 차방정토설을 주장한 근거가 된다고 말한다.

 

반면 청화선사의 경우에는 ‘염불이란 바로 자기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며 마음을 구하는 것은 바로 부처를 구하는 것이다’는 점을 들어서 부처를 추구하는 그것이 바로 실상염불선임을 말하고, 이런 점에서 실상염불선이야말로 觀想과 觀象과 칭명염불을 포함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에 청화는 일상삼매와 일행삼매의 실천을 통하여 安心을 터득하는 것이 바로 실상염불선임을 제시해 준 선사로서 선과 염불의 관계 및 선과 염불이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3.

 

청화선사의 경우 실상염불선은 선정에 근거한 염불이고 염불에 근거한 선정의 입장으로서 선정과 염불의 동일함을 말하고 있다. 이에 논자는 청화선사가 정토를 구현하기 위해 순선시대 선사들, 가령 도신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에 보이는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활용한 까닭에 그 실상염불선이야말로 혜능의 最尊·最上乘<乘-?>·最第一의 수행법임을 확신하였다고 말한다.

 

물론 논자의 이와 같은 주장은 청화선사의 저술에 근거하여 제시한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혜능의 最尊·最上乘<乘-?>·最第一의 수행법이란 {단경}에 의하면 본래자성에 근거한 돈교법문으로서 현재도 없고[無住] 과거도 없으며[無往] 미래도 없는[無來] 摩訶般若波羅蜜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청화의 실상염불선이 혜능의 마하반야바라밀의 돈교법문과 상통한다는 의미로 이해되는데, 어떤 점에서 상통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