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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당 청화(淸華)큰스님/1. 청화 큰스님의 행화

4. 元曉의 念佛觀과 淸華의 念佛禪

 

5.원효의 염불관과 청화의 염불선-청화사상연구회 2015년 학술대회.hwp

 

元曉의 念佛觀과 淸華의 念佛禪

 

高 榮 燮 (동국대)

 

 

 

1. 문제와 구상

2. 염불 즉 선정

3. 원효의 염불관

4. 청화의 염불선

5. 원효와 청화의 통로

6. 정리와 맺음

 

 

 

 

1. 문제와 구상

 

우리는 종종 이론에 상응하는 ‘철학’과 실천에 상응하는 ‘종교’를 분리해 보려고 한다. 이를테면 불교가 철학이냐 종교이냐는 질문처럼 말이다. 그런데 철학이기도 하고 종교이기도 한 불교 내에서도 관법에서의 ‘관’(觀)과 선법에서의 ‘선’(禪)의 결이 있다. ‘관’은 일체를 관찰하는 법이고, ‘선’은 일체를 관조하는 행이다. 일체를 관찰하는 ‘체계화된 견해’가 ‘관’이라면, 마음을 가다듬어 ‘직관하는 수행’이 ‘선’이다. 그리고 불보살의 명호 명자를 생각하는 체계적인 관법이 염불관이라면, 자성불의 지혜 광명을 관조하며 닦아가는 선법이 염불선이다. 이렇게 수행상에서 본다면 염불과 선정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염불 즉 선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분황 원효(芬皇元曉, 617~686)는 일심(一心)-화회(和會)-무애(無碍)의 기호로 자신의 생평을 펼쳤다. 그는 ‘일심(一心)의 몸체를 본각(本覺)으로 규정하고 무명에 따라서 움직여 생멸을 일으키기 때문에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한다’면서 일심을 여래장과 연결시키고 있다. 원효는 일심지원(一心之源)인 본각의 결정성(決定性)과 일심(一心)인 여래장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일심에 ‘영묘하게 이해함’ 혹은 ‘신령스레 알아차림’이란 뜻을 지닌 신해(神解)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일심에 ‘신해’ 혹은 ‘신해성’(神解性)의 의미를 끌어들여 일심의 이해에 탄력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원효가 일심을 진망화합식인 여래장이라고 하면서도 또한 망식인 아뢰야식이라고 한 지점에서도 그의 정토관 혹은 염불관을 엿볼 수 있다.

 

무주 청화(無住淸華, 1923~2003)는 원통불법과 정통선을 아우르는 실상염불선을 통해 순선(純禪)과 안심(安心)의 법문을 역설하였다. 그는 시방삼세에 두루한 자성불의 지혜광명을 관조하면서 닦는 선을 염불선이라 하였다. 청화는 칭명(稱名), 관상(觀像), 관상(觀想), 실상(實相)의 네 가지 염불중에서도 실상 즉 진리를 관조하는 염불을 특히 강조하였다. 그에 따르면 염불선은 실상을 생각하면서 하는 염불이며, 가상을 떠나 실상인 붓다를 생각하면서 염불을 하는 선이다. 즉 청화는 우리 마음을 천지 우주로 해방시켜서 그 가운데 가득 차있는 그 무엇, 찬란한 그 광명, 이것을 생각하면서 하는 수행을 실상염불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신라시대의 원효는 염불관을 통해 일심과 지관의 화회(和會)의 살림살이와 사고방식을 보여준 반면 대한시대(1897~ )의 청화는 염불선을 통해 원통불법과 정통선법의 회통(會通)의 살림살이와 사고방식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은 1,300년의 간격을 넘어 살았지만 이 두사람이 각기 보여준 염불관과 염불선을 통해 염불 인식과 염불 이해의 접점을 확인할 수 있다. 선행연구에서는 각 시대별 경론별 염불과 선법의 접점과 통로, 순선시대의 염불선의 지형, 원효의 정토관, 무상의 인성염불선, 청화의 염불선 등에 대해서 주로 논구해 왔다. 이 글에서는 원효의 염불관과 청화의 염불선의 동처와 부동처 및 연속과 불연속의 지점을 찾아 오늘 한국불교의 염불사상과 염불수행의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환기하여 보고자 한다.

 

2. 염불 즉 선정

 

염불 즉 ‘붓다 아누사띠’(Buddha-anussati, Buddha-anusmŗti)는 붓다를 생각하는 선정 수행이다. 이 수행은 붓다의 모습을 나타내는 32상 80종호와 붓다의 덕성을 가리키는 아홉 가지 혹은 열 가지의 성질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행법이다. 선정 수행의 주요개념인 ‘아누사띠’는 ‘념’(念) 또는 ‘수념’(隨念)으로 번역해 왔다. 특히 초기불교에서는 ‘사띠’(sati)와 ‘아누사띠’를 구분하지 않고 ‘념’(念)으로 옮겼다. 하지만 일부 경론들에서는 염불을 ‘붓다 수념’ 혹은 ‘불타 수념’(佛陀隨念)으로 옮기기도 하였다. 여기서 수념이란 ‘붓다에 대한 선정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모습’ 또는 ‘붓다의 모습과 상호 및 성질 또는 덕성을 끊임없이[無間斷] 생각생각[念念]하면서 서로 이어서[相續] 비춰보는[照見]상태’를 가리킨다.

 

‘사띠’와 달리 ‘아누사띠’는 붓다의 아홉 가지 혹은 열 가지 덕성(德性)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었다. 또 사선(四禪)이나 사무색정(四無色淨) 이후에 숙명통(宿命通)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사용되었다. ?디그하 니카야?와 ?앙굿따라 니카야? 등에서는 ‘아누사띠 타나’(anussatiţţhāna), 즉 ‘아누사띠가 이어지는 장(場)’에 대해 여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① 전생기억으로 한 생, 두 생 등의 여러 생에 걸친 전생의 갖가지 모습을 기억하는 장, ② 행복감이 유지되는 제삼선(第三禪)까지의 장, ③ 낮과 밤이 구별될 수 없을 정도로 명철한 지각상태 즉 지견(知見)을 증득할 수 있는 광명상(光明想, ālokasasaññam)의 장, ④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왕복하면서 부정관과 백골관을 닦는 염신(念身) 수행의 장, ⑤ 계분별(界分別)이 가능한 제사선(第四禪)의 장, ⑥ 그대가 가고, 오고, 서고, 앉고, 눕고, 일하는 등의 일련의 행위를 염하여 정념(正念) 정지(正知를) 성취할 수 있는 장이다. 이 경전에서는 이들 여섯 장을 모르는 것은 탁월한 마음인 선정[增上心學, adhicitta)을 모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앙굿따라 니카야?에서는 ‘붓다 수념’의 목적을 염리(厭離, nibbidā), 이욕(離欲, virāga), 지멸(止滅, nirodhā), 평정(平靜, upasama), 신통지(神通知, abhiññā) 정등각(正等覺, sambodhi), 열반(涅槃, nibbāņa)을 성취할 수 있는 수행의 과정으로서 ‘일법’(一法, ekadhamma) 즉 붓다를 수념하는 불수념(佛隨念)을 제시하고 있다. 붓다 수념의 내용과 선정 차제는 ① 환열(pāmojja, pāmujja, 歡悅)→ ② 큰 희열(pamudita)→ ③ 환희로움(pīti)→ ④ 몸의 경안(passaddhikāyo, 輕安)→ ⑤ 행복(sukha, 樂)→ ⑥ 삼매(samādhi)→ ⑦ 여실지견(yathābhūtañāņadassana, 如實知見)→ ⑧ 염리(nibbidā, 厭離)→ ⑨ 무욕(virāga, 離貪)→ ⑩ 해탈(vimutti, 解脫)→ ⑪ 멸진지(kyayañāņa, 滅盡智)로 이어진다. 여기서 ‘환열’에서 ‘삼매’까지의 선정 단계는 대부분 ‘큰 환열’을 제외한 순서로 제시되고 있다. 또 삼매 이후의 선정은 여실지견에서 멸진지의 선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삼매의 성취로 이어지는 위빠사나의 여실지견은 해탈과 열반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증일아함경?「십념품」에서 ‘불수념’은 “마땅히 이 일법을 닦아 행하고 일법을 널리 펴면 곧 신통을 이루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며, 사문과를 체득하고 스스로 열반을 이룰 것”이라고 하였다. 이 경전에서는 마땅히 수행해야 할 일법’이자 ‘마땅히 널리 펴야할 일법’으로서 열 가지의 대상을 제시한다. 즉 경전에서는 ‘염불’(念佛), ‘염법’(念法), ‘염중’(念衆), ‘염계’(念戒), ‘염시’(念施), ‘염천’(念天), ‘염휴식’(念休息), ‘염안반’(念安般), ‘염신비상’(念身非常), ‘염사’(念死) 등 열 가지 염에 대해 설하고 있다. 일법으로서 강조되는 염의 대상을 크게 분류해 보면 불보, 법보, 중보의 삼보(三寶)와 계론, 시론, 생천론의 삼론(三論) 및 휴식(休息), 안반(安般), 신비상(身非常), 사(死)이다.

 

이들 열 가지 일법을 수행하고[修行一法] 널리 일법을 펼쳐내면[廣布一法] 곧 신통을 이루고[便成神通] 온갖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며[去衆亂想] 사문과를 체득하고[逮沙門果] 스스로 열반에 이를 것[自致涅槃]이라고 하였다. 이 경전에서는 ‘붓다 수념’을 통해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의 사문과(沙門果)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붓다 수념 즉 염불은 성자의 경지에 들어서서 완성하기까지의 단계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붓다 수념의 위상과 그 수행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염불이 선정 수행의 다른 이름이라고 볼 때, 선정 수행은 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ā, vipaśyanā) 즉 지관(止觀) 수행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염불은 붓다의 32상 80종호를 ‘붓다에 대한 선정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모습’ 또는 ‘붓다의 모습이나 성질 또는 덕성을 끊임없이[無間斷] 생각생각[念念]하면서 서로 이어서[相續] 비춰보는[照見]상태’라는 점에서 사마타 수행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서 수행의 예비단계로 제시한 오정심관(五停心觀) 또는 오도관문(五度觀門) 혹은 오문선(五門禪)에는 부정관, 자비관, 인연관(계분별관), 수식관과 함께 염불관(觀佛觀)이 들어있다. 이때의 염불관 즉 관불관은 아직 붓다의 명호를 거듭거듭 반복해 부르는 염불은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신구의(身口意) 삼업 가운데 칭불 혹은 칭명불은 구행(口行)의 범주인 반면 염불은 의행(意行)의 범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시에는 붓다를 상호나 덕성을 수념(隨念)하는 선정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논사인 용수는 칭명불을 ‘겁약(怯弱) 하열(下劣)한 중생을 위한 신(信)방편의 이행도(易行道)로 보았다. 또 그는 ① 32상 80종호를 염하는 색신(色身)염불, ② 40 불공법(不共法)을 염하는 법신(法身)염불, ③ 색신과 법신에도 집착하지 않고 공관(空觀)염불인 실상(實相)염불, ④ 여래의 십호를 염하는 최고의 염불인 십호(十號)염불의 네 가지로 제시하였다. 대승불교의 또 다른 논사인 세친은 신구의(身口意)의 삼업 중 몸으로 여래의 형상에 예배하는 예배문과 입으로 여래의 이름을 부르는 찬탄문은 오념문 가운데 도입부로 보고 있다.그 대신 세친(世親)은 신업의 예배문과 구업의 찬탄문을 넘어 의업에다 지관의 단계로서 염불문을 배대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용수를 계승한 중관학통 뿐만 아니라 세친을 계승한 유식학통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염불을 선정과 지관의 차원에서 해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좌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불교는 이들 논사들의 문하들이 구축한 중관학과 유식학을 삼론학과 법상학의 체계로서 염불과 선정을 받아들였다. 때문에 종래 동아시아 불교사상사에서는 염불과 선정의 관계를 병립 또는 양립의 쌍수(雙修) 혹은 겸수(兼修)로 보거나 통합 또는 일치를 통한 오염(汚染) 혹은 발전(發展)으로 보기보다는 ‘붓다 수염’ 즉 ‘염불’이 곧 사문과를 성취하는 ‘선정’이라고 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불교에서 염불 수행보다 선법 수행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가장 후발 주자였던 선종의 독자성 강조와 우월감에 따른 배타성 때문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우리는 불교의 여러 경전과 논서를 통해 염불과 선정이 둘이 아니라 ‘염불이 곧 선정’이라는 근거를 확인할 수 있으며 원효의 염불관과 청화의 염불선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 원효의 염불관

 

원효가 지은 103(105)부 202(208) 내지 208(214)권의 저술중 정토관련 저술은 13종에 이른다. 우리는 이들 ?정토삼부경?(?無量壽經? ?觀無量壽經? ?阿彌陀經?) 소석(疏釋) 중에서 오직 하나 남은 완본의 저술인 ?불설아미타경소?와 미완본인 『무량수경종요』 및 「미타증성게」를 기초로 하여 그의 정토관과 염불관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원효는 ?아미타경소?와 ?무량수경종요?를 통해 일심의 증득을 통한 정토의 구현을 역설하였다. 그는 후대의 가탁으로 평가받는 ?유심안락도? 이외에 이들 두 정토계통 전적에서 일심(一心)의 증득을 통해 정토의 왕생(往生)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원효는 이들 주 저술에서 “예토와 정토는 본래 일심”이며 “생사와 열반은 끝내 둘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일심이 곧 붓다의 지혜 정토임을 역설한 것이었다. 이처럼 원효의 사상적 기호인 일심과 일심의 증득은 원효의 전 교학에서 강조되고 있다. 때문에 그는 일심의 증득으로 서방정토가 아닌 차방정토, 타심정토가 아닌 유심정토를 신라에 구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의 일심에 기초하여 지관(止觀)에 의한 신심(信心)의 수습(修習)을 역설하였다. 즉 그는 시문(施門), 계문(戒門), 인문(忍門), 진문(進門), 지관문(止觀門)이라는 오행(五行)의 수행(修行)을 닦음으로써 믿음을 성취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곧 믿음을 성취함으로써 발보리심하여 위로는 불도를 펼치고[上弘佛法]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下化衆生]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체계는 원효의 정토왕생의 논리와 정토수행의 체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원효는 “아미타불의 이름을 염하는 염불의 힘으로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깨달음에 들게 하겠다”는 아미타불의 본원의 성취를 통하여 정토왕생의 논리와 근거를 마련하였다. 그는 ?무량수경?의 종치(宗致)를 ‘정토의 과덕’과 ‘정토의 인행’으로 구분한다. 원효는 ‘정토의 과덕’에서 ?무량수경?에서 설하는 네 가지 정토의 과덕을 정(淨)/부정(不淨)문, 일향(一向)/불일향(不一向)상대문, 순(順)/잡(雜)상대문, 정정(正定)/비정정(非正定)상대문의 네 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여기에 경증과 논증을 덧붙이고 있다.

즉 ① ?인왕경?에서 설한 것처럼 붓다가 거주하는 곳만을 정토라 하고 금강지 이하의 보살이 머무는 곳은 정토라고 부르지 않고 과보토라 부르고, ② 8지 즉 부동지 이상의 보살이 머무는 곳만을 정토로 하며, ③ 대지(大地) 즉 십지의 높은 지위에 들어간 보살이 태어난 곳만을 정토라 하고, ④ 정정취만이 사는 곳을 정토라 하며 이승이 섞여 사는 곳은 청정세계라 하지 않는다.

 

효는 ?인왕경(仁王經)?․?섭대승론(攝大乘論)?․?유가론(瑜伽論)?․?무량수경(無量壽經)?을 인용해서 이 네 가지 정토를 각각 금강지(金剛地) 이상 → 팔지(八地) 이상 → 환희지(歡喜地) 이상 → 정정취(正定聚)로 단계를 낮추어서 결국은 이승정위(二乘頂位) 이상과 보살초발심주(菩薩初發心住) 이상이면 정정취이고, 이 정정취가 머무르는 곳이면 아비발치(阿毘跋致, Avinivartanīya)의 극락정토라 했다. ‘정토의 인행’에서는 본래 갖춘 인과 왕생의 인연 그리고 왕생의 행상에서 왕생의 정인(隨事발심/順理발심)과 조인(隱密십념/顯了십념/오역죄의 회통)으로 해명하고 있다.

 

한편 ?무량수경?에서는 정토 즉 무량수국을 네 번째인 정정(正定)/비정정(非正定)상대문을 기준으로 하여 정토로 설한 것이라고 하였다. 즉 대승과 소승을 널리 포용하고, 범부와 성인을 함께 인도하여, 더불어 수승한 곳에 태어나, 다 함께 대도에 나아가고자 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하지만 원효는 ?무량수경종요?에서 “위의 4문에서 설한 정토는 모두 여래의 원행(願行)으로 성취된 곳이며 저 곳에 태어난 중생의 자력(自力)으로 성취된 곳이 아니다. 예토의 바깥 기세계가 중생의 공업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같지 않다”고 하였다. 이것은 원효가 정토를 현존하는 세계로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가 ‘정토와 예토가 하나’라고 한 것은 근기가 높은 이를 위한 설이고, ‘정토가 서방에 있다’고 한 것은 근기가 낮은 이를 위한 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전자는 유심정토설 또는 차방정토설의 근거이며 후자는 서방정토설 혹은 타방정토설의 근간이 될 것이다. 즉 구원겁 전에 법장보살이 48원을 세워 오랜 세월동안 수행을 하여 십겁 전에 성불하여 서방 극락세계에 설법하고 있는 아미타불의 근본서원(根本誓願)인 본원(本願) 역시 근기가 낮은 이를 위한 별원(別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미타불의 48원 중 제18원인 염불왕생원은 염불왕생에 의한 중생의 구제를 보여준다.

 

설사 내가 부처님이 되어 시방의 중생이 지극한 마음[至心]으로 믿고 즐겨[信樂] 내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하여 (나의 이름을) 열 번까지 부르고서도[十念] 태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정각(正覺)을 성취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오역(五逆)죄를 지은 자나 정법을 비방하는 자는 제외한다.

 

원효는 이 십념을 은밀의(隱密義)의 십념과 현료의(顯了義)의 십념으로 나누어 해명하고 있다. 그는 ?아미타경?의 하품하생에서의 십념과 ?무량수경?의 제18원에 나타나는 십념에 대하여 특별히 주목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정토왕생을 위한 보조적인 수행법으로서 십념(十念)의 염불(念佛)을 ?미륵발문경?에 설해진 범부와 이승이 들어가지 않는 초지 이상의 보살만이 순정토(純淨土)를 구족할 수 있는 은밀(隱密)의 십념을 제안하였다.

 

반면 ?관무량수경?의 하품하생에게 설한 임종 이후의 왕생보다는 임종 이전의 지심(至心) 염불을 강조하는 현료(顯了)의 십념을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은밀문의 십념과 현료문의 십념의 구분 아래 초지 이상의 보살만이 아니라 임종 이전의 지심 염불을 강조하는 하품하생의 중생들까지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하여 그의 화회논자적 풍모를 엿볼 수 있다.

 

알다시피 정토왕생은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범부와 이승의 정토왕생을 위해서는 이들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원효는 ?무량수경종요?에서 정토왕생을 위한 보조적인 수행법으로서 십념(十念) 염불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 저술에서 ?무량수경?의 상배, 중배, 하배에 대한 왕생인을 수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십념에 대한 하배인의 왕생수행법에 대해 배려하고 있다. 원효는 하배인을 부정성인과 보살정성으로 분류하여 해명하고 있다. 이 점은 중국의 정토가와 다른 그의 독자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원효는 부정성인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첫째, 가령 여러 가지 공덕을 짓지 못하더라도 마땅히 위없는 보리심을 일으킨다. 이것은 정인(正因)을 밝힌 것이다.

둘째, 십념(十念)에 이르기까지 오직 저 부처님을 오로지 생각한다. 이것이 만업(滿業)을 돕는다.

셋째, 저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한다. 여기의 원(願)과 앞의 행(行)이 화합하여 정토에 왕생하는 인(因)이 된다.

 

이어서 원효는 보살종성의 왕생인에 대해서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첫째, 매우 깊은 법을 듣고 환희하며 믿고 즐거워한다. 이 구절은 발심의 정인(正因)을 함께 나타낸 것이며, 단지 앞의 사람과 다른 것은 그 깊은 믿음[深心]을 들어 보인 것이다.

둘째, 일념(一念)에 이르기까지 저 부처님을 생각한다. 이것이 만업(滿業)을 돕는다. 앞의 사람은 깊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십념(十念)을 모두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셋째, 지성심(至誠心)으로 저 국토에 태어나고자 원한다. 이 원(願)과 앞의 행(行)이 화합하여 정토에 왕생하는 인(因)이 된다.

이처럼 원효는 부정성인과 보살종성을 ‘깊은 믿음’[深心]의 소유 여부로 구분하고 있다. 깊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십념을 갖추지 않아도 되며 오직 일념만으로도 부처를 생각하면 된다. 원효는 매우 깊은 법을 깨닫지 못한 하배중생들을 배려하기 위해 십념 염불의 공덕을 시설하였다. 그는 이 십념 염불의 공덕이 깊은 믿음이 없는 부정성인에게 특히 중요한 왕생요인이 됨을 역설하고 있다. 이어서 원효는 먼저 은밀문의 십념에 대해 해명한다.

 

그때 미륵보살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아미타불의 공덕 이익은 만일 능히 십념(十念) 상속(相續)해서 부처를 끊임없이 생각하면 즉시 왕생을 얻는다. 어찌하여 생각[念]이라고 하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범부(凡夫)의 생각이 아니고, 불선(不善)의 생각이 아니고, 결사(結使)가 섞인 생각이 아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구족하면 즉시 안락국토(安樂國土)에 왕생한다.

 

대강 십념(十念)이 있는데 무엇으로 열 가지로 삼는가? 첫째는 일체 중생에게 항상 자심(慈心)을 갖는다. 둘째는 일체 중생에게 비심(悲心)을 일으키고, 남은 해로운 생각을 없앤다. 셋째는 호법심(護法心)을 일으키며 일체법에 대해서 신명을 아끼지 않고 비방하지 않는다. 넷째는 인욕 중에서 결정심(決定心)을 일으킨다. 다섯째는 심심(深心)이 청정해서 이양에 물들지 않는다.

 

여섯째는 일체종지심(一切種智心)을 일으키며 나날이 항상 생각하고 폐하거나 잊어버림이 없다. 일곱째는 일체중생에게 존중심(尊重心)을 일으킨다. 여덟째는 세속의 이야기에 대한 미착(味著心)을 일으키지 않는다. 아홉째는 깨침에 대한 생각 가까이 하여 여러 선근의 인연을 깊이 일으키고 시끄럽게 산란심(散亂心)을 멀리 여읜다. 열째는 바른 생각으로 부처님을 관하고 모든 감각의 충동을 없앤다..

 

원효는 이 십념에 대하여 범부와 이승이 들어가지 않는 초지(환희지) 이상의 보살만이 사는 순정토(純淨土)라고 해명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은밀문의 십념은 범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행이 아니다. 초지 이상의 보살만이 갖출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현료문의 십념을 닦아 물러나지 않는 믿음이 생기게 되면 그 결과로서 가지게 되는 열 가지 마음자세로 이해할 수 있다. 원효는 현료문의 십념에 대해 이렇게 해명한다.

 

현료의(顯了義)의 십념(十念)이란, 네 번째의 정토에 기대어 설하면, 하품하생(下品下生)이란, 어떤 중생이 선하지 않은 업인 오역죄와 십악업과 여러 선하지 않은 업을 짓다가 목숨이 다할 때에 이르러 선지식을 만나 묘한 법을 듣고 염불의 가르침을 받고도 마음으로 능히 염불하지 못하면 마땅히 무량수불(無量壽佛)을 부르라. 이렇게 지극한 마음[至心]으로 그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여 십념(十念)을 갖추어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부른다면, 무량수불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생각 생각 가운데에 팔십 억겁에 지은 생사의 죄가 제거되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곧 왕생하게 될 것이다.

원효는 마음이 겁이 많고[怯] 행이 약한[弱] 사람을 위해 여래의 승(承)방편(方便)으로써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성불할 수 있는 근거로서 제시한 여래장을 통하여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십념 즉 10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들의 손가락이 열 개이듯이, 지상(地上)보살의 단계가 열 개이듯이 10의 의미는 원만성, 완전성, 구족성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10번이라는 숫자보다는 ‘지심’(至心) 즉 ‘지극한 마음’으로 부르는 ‘끊어짐이 없는 염불’의 십념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구마라집(鳩摩羅什)의 설에서 말하였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광야에 있다가 나쁜 도적을 만났는데, 창을 휘두르고 칼을 빼들고 쫓아와서 곧 죽이려 할 때, 그 사람이 급히 달아나는데 강이 앞에 있음을 보고 그 강을 건너지 못하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운 것을 직감한 나머지 그는 오로지 일념(一念)으로 이 강을 건널 방편만 생각하게 된다. 만일 옷을 입고 건넌다면 몸이 헤엄치기가 힘들어 건너지 못할까 걱정이 되고, 만일 옷을 벗고 건너려 해도 옷을 벗을 겨를이 없지 않은가? 오직 마음에 이 생각만 있고 다른 생각은 없으리니, 이는 곧 저 강을 건너려는 한 생각뿐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십념(十念)에 조금도 다른 생각이 섞일 수가 없다. 수행자도 또한 이와 같아서 부처님의 명호를 생각하거나 끊임없이 부처님을 생각하여 십념에 이르러야 하나니 이와 같은 지극한 마음[至心]을 십념이라 한다.

 

경전에서처럼 법장보살은 여러 중생들이 모두 자기와 함께 깨침을 얻기 전에는 기필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법장보살은 이미 깨침을 얻었기 때문에 그의 근본서원 즉 본원에 의거하여 중생들은 아미타불의 도움으로 구제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법장보살의 본원은 중생들의 근기에 대한 철저한 긍정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십념은 ‘아미타불’이라는 붓다의 이름을 끊어짐이 없이 칭명하는 선정 수행을 의미한다. 마치 광야에서 어떤 사람이 창을 휘두르고 칼을 빼들고 쫓아와서 죽이려는 나쁜 도적을 만나 달아나다가 맞닥뜨린 강을 일념으로 헤엄쳐 건너가듯이 말이다.

 

지성심 즉 지심은 ?관무량수경?의 ‘상품상생’에서 설한 지성심(至誠心), 심심(深心), 회향발원심(廻向發願心)의 세 가지 마음 중 하나이다. 이 세 가지 마음 중 중국인 정토가인 담란, 선도 등은 ‘지성심’을 언급할 때 ‘진실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반면 원효가 말하는 ‘지성심’은 ‘간절함’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는 지성심의 상태를 방법적인 측면에서 매우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하배인에게 더욱 쉽게 정토왕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원효는 하배인은 지관(止觀)수행을 못하므로 목숨을 내건 절실한 마음으로 십념 상속하는 가운데 불명(佛名)을 염(念)하고 불상(佛相)을 염(念)해서 불(佛의 본원력의 작용을 받고 승연력에 힙입어 왕생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 때문에 십념은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열 번 부르면”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의 이름을 열 번 부르면 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미타불에 대한 전적인 신뢰 즉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의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면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십념관(十念觀)은 중국의 정토가인 담란, 도작, 선도에게서도 확인된다. 원효는 이들의 십념관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다시 원용하여 주체적으로 변용하였다. 그의 십념관은 주요 특징은 중국 정토사상가들의 칭명염불에 지성심(至誠心)을 더한 것이다.

 

원효는 정토의 인에서 “본래 무루법인 종자를 삼무수겁 동안 닦아 증대시키면 이것이 정토로 변화하여 나타나 정토에 태어나는 원인이 된다”는 성변인(成辨因)과 달리 상중하배의 변별을 통해 왕생인(往生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는 하배인이 갖춰야 할 지성심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지성심’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나쁜 도적을 피하기 위해 강을 헤엄쳐 건너가려는 지극한 마음과 믿음으로 하는 십념(十念)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원효는 왕생은 자신의 업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오직 여래의 대비원력(大悲願力)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며 타력(他力)에 의한 왕생인(往生因)을 제시하였다. 그는 선근은 연(緣)이 작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자신이 닦는 것이 아니며, 중생은 여래의 선근을 이어받기 위해 발보리심하고 지성심으로 염불함으로써 부처의 본원력으로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일심(一心)의 증득이 곧 정토왕생이라는 믿음 위에서 발보리심과 십념염불의 ‘자력적 수행’이 여래장사상에 기반한 아미타불의 대비원력이라는 ‘타력적 염불’과 융합하여 비로소 왕생의 원인이 됨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청화의 염불선

청화는 자신이 지은 저술과 강론한 법어를 채록한 ?정통선의 향훈?, ?순선안심법문?, ?원통불법의 요체?, ?마음의 고향?(1~5권), ?실상염불선? 및 ?육조단경역주? 및 ?정토삼부경편역?을 통해 자신의 살림살이와 사고방식을 보여주었다. 그가 염불선을 펼친 것을 고려하면 ?정통선의 향훈?과 ?원통불법의 요체? 및 ?실상염불선?은 그를 이해하는 대표적 논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청화는 이들 저술을 통해 그의 살림살이와 사고방식을 보여주었다.

청화는 붓다 “법문의 대요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안심법문(安心法門)이자 마음을 즐겁게 하는 안락법문(安樂法門)”이며, “불법은 안심법문이라 공부를 편안하게 해야 할 것”으로 본다.또 그는 “불법의 대요는 참선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청화는 참선을 염불을 통해 설명하였다. 그에게 염불은 선정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선정은 염불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처럼 청화는 불교 수행의 과녁이 안심(安心)에 있으며 안심을 위한 수행은 선(禪)이라고 보았다.

 

청화의 ‘안심’은 담연(湛然)의 ?지관대의?에서 “마음의 산란을 그치고 지혜를 밝게 하여 마음을 법성에 편안히 머물게 함”과 ?속고승전? 제16 「보리달마전」의 “모든 중생이 동일한 진성임을 깊이 믿고 벽관에 머물기를 꾀하여 도와 그윽히 부합함”에서 기원을 삼고 있다.

 

청화의 ‘안심’은 ‘순선’(純禪)과 만나 ‘순선안심’(純禪安心)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순선’은 달마 때부터 육조 혜능 때까지의 순수한 선을 가리킨다. 그는 종파적 색채가 없는 초기 선종 즉 보리 달마로부터 마조 도일의 제자들의 활동기까지 선종의 성립기에 주목하였다. 그러면서도 청화는 달마에서 혜능까지의 순선(純禪)시대의 ‘안심’에 집중하였다.

그는 순선시대를 명명하면서도 혜능 이후의 선법을 배제한 것은 혜능의 제자였던 하택 신회(荷澤 神會, 684~732)가 활대(滑臺)의 대운사(大雲寺)에서 시설한 무차대회(無遮大會)에서 제기한 ?보리달마남종정시비론?과 규봉 종밀이 기록한 ?선문사자승습도?, 그리고 그 이후 당송 시기에 발달했던 선종의 ‘5가 7종’의 분화와 대립에 대한 그의 부정적 인식에 근거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은 청화가 살았던 일제 강점기, 해방공간, 6. 25, 4. 19, 근대화와 민주화과정의 대립과 갈등을 원만하게 통섭[圓通]하기 위해 순선에 기반한 안심을 강조한 것으로 짐작된다. 동시에 이것은 청화 선사가 시대적 소명으로서 당시에 겪은 여러 대립과 갈등을 지양하는 ‘원통불법’을 주창에서부터 ‘순선’ 채택의 근거를 찾아야 할 것이다.

청화는 “염불이란 바로 자기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며 마음을 구하는 것은 바로 부처를 구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고 하면 식(識)이란 형체가 없고 부처란 무슨 모양이나 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같은 도리를 안다면 바로 안심이다”고 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안심이 곧 ‘자기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며, 이 ‘마음을 구하는 것’이 곧 ‘부처를 구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청화는 염불을 붓다의 명호를 외우는 칭명(稱名)염불, 붓다의 원만한 상호 즉 32상과 80종호를 관찰하는 관상(觀像)염불, 붓다의 자비공덕이나 지혜광명 등을 상상하는 관상(觀想)염불, 중도실상인 법신을 생각하는 실상(實相)염불의 넷으로 나눈다. 이중에서도 그는 실상염불을 참다운 본질적인 염불이라고 파악하였다.그러면서도 칭명, 관상, 관상염불의 공능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실상염불을 중심으로 나머지 염불을 ‘원만히 통섭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청화는 염불에서 “‘염’(念)이란 사람 사람마다 마음에 나타나는 생각이며, ‘불’(佛)은 사람마다 갖추고 있는 근본 성품”으로 보았다. 또 “생각 생각에 부처를 여의지 않고서 염하는 것이 참다운 상근인(上根人)의 염불인 것”이라고 하였다. “염불 공부란 우리 눈앞에 좋다 궂다 시비분별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우리 본각(本覺)의 참 성품을 각오(覺悟)하는 것이요, 부처와 내가 본래 하나임을 재확인하는 공부 이것이 곧 참다운 염불”이라고 보았다.

 

또 청화는 “염불은 부처와 더불어서 둘이 아니고, 부처를 떠나지 않는 것”이며, “그러나 우리 중생들은 업장 때문에 자꾸만 떠나 버리니까 우리가 떠나지 않기 위해서, 내가 부처임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염불을 하는 것”이며 또 “미운 사람이나 고운 사람이나 다 부처란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염불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청화는 “염불선도 원래 최상승선 도리”라고 파악하여 여타의 선사들과 달리 염불선을 최상승선으로 보았다. 이러한 그의 인식은 염불선에서 염불이 수행의 대명사인 ‘선’(禪)과 결합한 것이기보다는 초기불교 이래의 ‘붓다 수념’ 즉 ‘불수념’이 본디 염불선이었음에 대한 환기와 복원으로 이해된다. 그리하여 그는 붓다 수념 즉 불수념을 순선(純禪)과 안심(安心)으로 연결시킨다.

청화는 염불선에 대해 “염불은 따지고 보면 참 나를 생각하는 것”이며, “본래부처가 부처를 생각하기 때문에 역시 선이 된다”고 보았다. 동시에 “우리가 불명(佛名)을 외운다 하더라도 꼭 법신자리를 믿어야 참다운 염불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이른바 닦아갈 때 염불인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이처럼 청화는 실상염불이 궁극적인 염불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방편의 염불과 하근인의 염불이 지니는 의미를 간과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초심일 때는 역시 뭐라 해도 화두면 화두, 염불이면 염불, 이름을 자꾸만 외우고 하나만 생각해야 마음이 모아진다”고 하였다. 청화는 염불삼매를 관상(觀像), 인(因)과 과(果)의 두 경계로 나누어 해명하고 있다. 즉 청화는 “일심으로 불(佛)의 상호를 관하거나 또는 일심으로 법신의 실상을 관하거나 혹은 일심으로 불명을 칭하는 행법”인 인행(因行)의 염불삼매와 이것이 성숙되면 마음이 선정에 들어가고 혹은 시방불이 현전하며 혹은 법신의 실상에 계합되는 행법인 과성(果成)의 염불삼매로 구분한다.

 

이러한 청화의 인식은 선에 대한 그의 이해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여래선과 조사선의 논쟁에 대해 “괜히 부질없이 싸우는 것”이며 “부처가 말한 것이 옳은가? 조사가 말한 것이 옳은가? 다 옳다. 다만 부처나 조사나 때에 따라 너무 집착하면 집착하지 말라, 또 너무 집착을 안해서 허무감에 빠져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무기에 떨어지면 곤란하기 때문에 이럴 때는 이것 저것 점차로 닦아야 한다고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청화는 돈오점수와 돈오점수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회통하고 있다. 즉 “?육조단경을 보더라도 돈오돈수란 대목이 있고, 돈오점수라고 문자로 표현은 안했지만 그 의미로는 벌써 돈오점수가 나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개념적인 해석을 잘 해버리면 부질없는 갈등을 할 필요가 없고, 갈등될 필요도 없다”고 하면서 “돈오돈수를 무슨 뜻으로 말했던가? 뜻으로 생각할 때는 같은 뜻이 되어 버린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청화 자신이 원통불법 즉 염불선에 입각한 회통론자였음을 알 수 있다.

 

청화는 안심으로 나아가기 위해 순선에 기초한 ‘원통’ 즉 원융의 논리와 회통의 논법을 원용하였다. 이것은 원효가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쟁(和諍)의 논리와 회통(會通)의 논법에 상응하는 것이다. 그는 정토를 구현하기 위해 순선(純禪) 조사들의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청화는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사조 도신의 지(止)와 관(觀), 정(定)과 혜(慧)에 배대하여 안심으로 귀결시켰다.

?돈황본단경?에는 일행삼매만을 역설하여 행주좌와와 일체처 일체시에 순일직심함을 일행삼매라 하였다. 반면 ?덕이본단경?과 ?종보본단경?의 정종분에는 일행삼매를 언급하고 다시 「부촉품」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재차 강조하였다.청화는 사조 도신의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에方便法門)에 근거하여 “우주법계가 진여실상이기 때문에 일행삼매라 하고, 생각 생각에 일상삼매를 여의지 않고 참구 수행함을 일행삼매라 한다”는 대목에 의해 정토구현을 위한 삼매수행을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선남자 선여인이 오로지 한 부처의 명호를 상속하여 외우면 즉시 염중(念中)에 능히 과거 미래 현재의 제불(諸佛)을 볼 수 있으니 그것은 일불공덕과 무량제불의 공덕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는 대목에 근거하여 실상염불선을 육조 혜능의 ‘최존최상승최제일(最尊最上乘最第一)의 수행법’임을 확신하였다.

 

이처럼 청화는 안심(安心)-원통(圓通)-정토(淨土)의 기호로 자신의 생평을 펼쳤다. 그에게 ‘안심’ 즉 편안한 마음은 ‘깨침’에 상응하는 개념이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정토의 구현이며 이것은 대중들이 안심에 이르게 됨으로써 가능하다고 하였다. 또 그는 ?문수설반야경?에 입각하여 “부처를 염하는 염불하는 마음이 바로 불이요, 망상하는 마음이 중생이며, 염불(念佛)은 곧 염심(念心)이고 구심(求心)은 곧 구불(求佛)”이라고 하였다. 나아가 “마음은 본래 모양이 없고, 부처 또한 모양이 없기 때문에 마음과 부처가 둘이 아닌 도리를 알면 바로 이것이 안심이니라”고 하는 지점에서 안심의 개념을 확고하게 구축하였다. 그의 실상염불선은 ‘안심’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었다.

5. 원효와 청화의 통로

 

원효와 청화 모두 염불을 선정의 일환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원효는 상중배인의 선정 수행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하배인의 왕생에 대한 깊은 배려가 있었다. 청화 역시 천태교관의 상좌삼매와 상행삼매와의 접목을 통해 염불선을 대중화시키고자 하였다. 때문에 ‘우리 마음의 뿌리인 부처’로 돌아가게 하고자 한 원효의 하배인에 대한 배려와 청화의 실상염불의 주창은 단순한 접점을 넘어 일정한 통로를 형성하였다.

원효는 염불을 통한 정토 왕생은 자신의 업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오직 여래의 대비원력(大悲願力)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며 타력(他力)에 의한 왕생인(往生因)을 제시하였다. 그러면서도 선근은 연(緣)으로서 작용되는 것이지 자신이 닦는 것이 아니며, 중생은 여래의 선근을 이어받기 위해 발보리심하고 지성심으로 염불함으로써 부처의 본원력으로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반면 청화는 일상삼매와 일행삼매의 실천을 통해 안심 즉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비록 원효와 청화는 1,300여년이나 떨어진 시대를 살았지만 발보리심과 십념염불 및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통하여 일심 즉 유심(唯心)의 정토와 안심 즉 순선(純禪)의 정토를 이 땅에 구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상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순선의 정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깊고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 만나 편안한 마음을 내올 수 있는 지혜를 모색해야만 한다.

 

원효는 중생들로 하여금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歸一心源] 궁극적으로 그들 스스로를 풍요롭게 이익되게 하고자[饒益衆生] 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화쟁의 논법과 회통의 논리를 원용하여 ‘문’(門)과 ‘논’(論)을 시설하여 해소시켰다. 반면 청화는 원통과 정통의 논리와 논법을 통해 염불과 선정의 관계를 환기 복원시켜 실상염불선(實相念佛禪)을 새롭게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전 불교를 원융무애하게 회통시키고자 원통불법을 역설하였으며, 석존과 조사들의 정통적인 선으로써 정통불법을 중흥시키려는 간절한 비원을 지녔다.

 

원효는 ‘우리 마음의 뿌리인 부처’로 돌아가는 지름길인 십념을 은밀의(隱密義)의 십념과 현료의(顯了義)의 십념으로 나누어 해명하고 있다. 그는 ?아미타경?의 하품하생에서의 십념과 ?무량수경?의 제18원에 나타나는 십념에 대하여 특별히 주목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정토왕생을 위한 보조적인 수행법으로서 십념(十念)의 염불(念佛)을 ?미륵발문경?에 설해진 범부와 이승이 들어가지 않는 초지 이상의 보살만이 순정토(純淨土)를 구족할 수 있는 은밀(隱密)의 십념으로 제안하였다.

 

반면 ?관무량수경?의 하품하생에게 설한 임종 이후의 왕생보다는 임종 이전의 지심(至心) 염불을 강조하는 현료(顯了)의 십념으로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은밀문의 십념과 현료문의 십념의 구분 아래 초지 이상의 보살만이 아니라 임종 이전의 지심 염불을 강조하는 하품하생의 중생들까지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하여 그의 통합사상가로서의 풍모를 엿볼 수 있다.

 

정토왕생은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범부와 이승의 정토왕생을 위해서는 이들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해서 원효는 ?무량수경종요?에서 정토왕생을 위한 보조적인 수행법으로서 십념(十念) 염불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 저술에서 ?무량수경?의 상배, 중배, 하배에 대한 왕생인을 수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십념에 대한 하배인의 왕생수행법에 대해 배려하고 있다. 원효는 하배인을 ‘깊은 마음’[深心]의 소유 여부에 의해 부정성인과 보살정성으로 분류하여 두 존재를 모두 배려하고 있다. 이 점은 중국의 정토가와 다른 그의 독자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청화는 실상염불은 어렵기는 제일 어려우나 부처의 이름에 가장 합당한 이름이고 염불이라고 하였다. 해서 아미타불이란 이름과 실상과는 거의 계합하고 거의 합당하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가 실상염불을 할 때는 우리 마음을 천지우주로 해방시켜서 그 가운데 가득 차 있는 그 무엇, 찬란한 그 광명, 이것을 생각하면서 하는 염불이 실상염불이라고 하였다.또 염불선이 되려면 자기가 부처의 실상 곧 진리를 상상하면서 해야 된다고 하였다. 나아가 이 염불이 가장 어렵지만 이와 같이 실상을 생각하면서 하는 염불이라야 염불선이 된다고 하였다. 때문에 실상염불은 칭명, 관상, 관상염불과 다른 염불이면서도 동시에 나머지 세 염불을 다 회통하는 염불임을 보여주고 있다.

 

원효가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중생들을 풍요롭게 이익되게 하려고 했다면, 청화는 원통불법의 요체로서 실상염불선을 주창함으로써 정통 불법을 바로 세우고 이를 대중화하고자 하였다. 두 사람은 모두 염불을 통해 ‘우리 마음의 뿌리인 부처’로 돌아가게 하고자 점, 보다 쉽게 불교를 전하기 위해 적지 않은 저술과 강론을 남긴 점, 나아가 이들이 역설하고 저술한 사상체계가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점에서 우리는 이들 두 사람이 머금고 있었던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

 

살펴본 것처럼 원효는 상중배인 뿐만 아니라 하배인에 대한 배려가 적지 않았다. 청화도 참선 수행을 염불선으로 주창함으로써 염불 수행의 대중화를 확산시켰다. 이들이 염불관과 염불선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것은 ‘우리 마음의 뿌리인 부처’로 돌아가게 하고자 하는 자비심이었다. 이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뿌리로 돌아가게 하고자 ‘염불이 곧 선정’임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원효의 염불관과 청화의 염불선이 보여준 ‘우리 마음의 뿌리인 부처’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노력을 명료하게 일거내야만 한다. 그리하여 오늘 한국불교의 염불사상과 염불수행의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환기해 가는 자량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6. 정리와 맺음

 

신라시대의 분황 원효(芬皇元曉, 617~686)는 염불관을 통해 일심과 지관의 화회(和會)의 살림살이와 사고방식을 보여주었다. 반면 대한시대(1897~ )의 무주 청화(無住淸華, 1923~2003)는 실상염불선을 통해 원통불법과 정통선법의 회통(會通)의 살림살이와 사고방식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은 1,300년의 간격을 넘어 살았지만 각기 염불관과 염불선을 통해 염불 인식과 이해의 접점을 보여주고 있다. 종래 동아시아에서는 염불과 선정의 관계를 병립 또는 양립의 쌍수(雙修) 혹은 겸수(兼修)로 보거나 통합 또는 일치를 통한 오염(汚染) 혹은 발전(發展)으로 보기보다는 ‘붓다 수염’ 즉 ‘염불’이 곧 사문과를 성취하는 ‘선정’이라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불교에서 염불 수행보다 선법 수행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가장 후발 주자였던 선종의 독자성의 강조와 우월감에 따른 배타성 때문으로 이해된다.

원효는 ?아미타경소?와 ?무량수경종요?에서 정토왕생을 위한 보조적인 수행법으로서 십념(十念)의 염불(念佛) 즉 ?미륵발문경?에 설해진 범부와 이승이 들어가지 않는 초지 이상의 보살만이 순정토(純淨土)를 구족할 수 있는 은밀(隱密)의 십념과 ?관무량수경?의 하품하생에 설한 임종 이후의 왕생보다는 임종 이전의 지심 염불을 강조하는 현료(顯了)의 십념을 주장하였다.

 

그의 십념관은 중국 정토사상가들의 칭명 염불에 지성심(至誠心)을 더한 것이다. 원효는 왕생은 자신의 업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오직 여래의 대비원력(大悲願力)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며 타력(他力)에 의한 왕생인(往生因)을 제시하였다. 그는 선근은 연(緣)이 작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자신이 닦는 것이 아니며, 중생은 여래의 선근을 이어받기 위해 발보리심하고 지성심으로 염불함으로써 부처의 본원력으로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청화의 ‘안심’ 즉 편안한 마음은 ‘깨침’에 상응하는 개념이다. 그의 ‘안심’(安心)은 ‘순선’(純禪)과 만나 ‘순선안심’(純禪安心)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순선’은 달마 때부터 육조 혜능 때까지의 순수한 선을 가리킨다. 청화는 종파적 색채가 없는 초기 선종 즉 보리 달마로부터 마조 도일의 제자들의 활동기까지 선종의 성립기에 주목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달마에서 혜능까지의 순선(純禪)시대의 ‘안심’에 집중하였다. 청화의 궁극적 목표는 정토의 구현이었으며 이것은 대중들이 안심에 이르게 됨으로써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는 일상(一相)삼매와 일행(一行)삼매의 실천을 통해 안심 즉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원효가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歸一心源] 중생들을 풍요롭게 이익되게 하려[饒益衆生]고 했다면, 청화는 원통불법의 요체로서 실상염불선(實相念佛禪)을 주창함으로써 정통 불법을 바로 세우고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 헌신하였다.

 

두 사람 모두 염불을 통해 ‘우리 마음의 뿌리인 부처’로 돌아가게 하고자 하였고, 보다 쉽게 불교를 전하기 위해 적지 않은 저술과 강론을 남겼으며, 나아가 이들이 역설하고 저술한 사상체계가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점에서 우리는 이들 두 사람이 머금고 있었던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 따라서 원효와 청화는 시대를 달리 살았지만 발보리심과 십념염불 및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통하여 일심 즉 유심(唯心)의 정토와 안심 즉 순선(純禪)의 정토를 이 땅에 구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상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원효의 염불관과 청화의 염불선-청화사상연구회 2015년 학술대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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