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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293

293. 보리방편문 설법(6)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

 

心은 虛空과 等할새, 片雲隻影이 無한 廣大無邊한 虛空的 心界를 觀하면서 淸淨法身인달하여 毘盧遮那佛을 念하고, 此 虛空的 心界에 超日月의 金色光明을 帶한 無垢의 淨水가 充滿한 海象的 性海를 觀하면서 圓滿報身인달하여 盧舍那佛을 念하고, 內로 念起念滅의 無色衆生과 外로 日月星宿 山河大地 森羅萬象의 無情衆生과 人畜乃至 蠢動含靈의 有情衆生과의 一切衆生을 性海無風 金波自涌인 海中漚로 觀하면서 千百億化身인달하여 釋迦牟尼佛을 念하고, 다시 彼 無量無邊의 淸空心界와 淨滿性海와 漚相衆生을 空. 性. 相 一如의 一合相으로 通觀하면서 三身一佛인달하여 阿(化), 彌(報), 陀(法)佛을 常念하고, 內外生滅相인 無數衆生의 無常諸行을 心隨萬境轉인달하여 彌陀의 一大行相으로 思惟觀察할 지니라.”

 

“심心은 허공虛空과 등等할새” 우리 마음은 허공과 같습니다. 허공은 어느 제한도 없고, 어느 장애도 없듯이 우리 마음은 사실은 장애가 없는 것인데 우리 중생은 나라는 장애, 너라는 장애 그런 상에 지금 걸려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걸려있는 것을 우리가 ‘마음은 허공과 등할새“라는 실존 그대로 말하는 법문으로 해서 딱 털어버려야 합니다.

 

마음은 허공과 등할 새 “편운척영片雲隻影이 무無한” 조각구름이라든가 조그마한 그림자도 없는 편운척영片雲隻影이 무無한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넓고 크고 또는 갓이 없는 ‘허공적심계虛空的心界를 관觀하면서“ 허공 같은 그런 마음의 세계를 관찰하면서, 우리 마음의 본바탕은 이와 같이 끝도 갓도 없는 광대무변한 허공 같은 세계입니다.

 

이러한 세계인데 다만 텅비어 있는 생명도 없는 그런 허무한 공간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끝도 갓도 없는 그런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청정법신淸淨法身입니다. 오염도 없고 그야말로 청정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입니다. 끝도 갓도 없이 훤히 비어있는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비로자나불은 생명인 것입니다. 끝도 갓도 없이 훤히 트여 있는 광대무변한 하나의 생명체 이것이 이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는 것입니다. “청정법신淸淨法身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염念하고”

 

“차此 허공적심계虛空的心界에” 이와 같이 끝도 갓도 없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인 마음세계에, 마음의 세계가 허무하게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초일월超日月의” 달이나 해보다도 훨씬 더 찬란스런 초월적인 그런 “금색광명金色光明을 대帶한” 금색광명을 띠고 있단 말입니다. 그냥 우리가 물리적으로 보는 금색광명이 아니라 ‘초 일월의’ 그런 물체가 아닌 물질이 아닌 질료가 아닌 순수한 적광寂光, 정광淨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광명을 띠고 있는 “무구無垢의 정수淨水가 충만充滿한” 티끌이 없는, 조금도 때 묻지 않은 정수가 청정한 하나의 생명수가 충만한 “해상적성해海象的性海를 관觀하면서” 마치 바다 같은 그런 성해를 그야말로 끝도 갓도 없는 바다 같은 하나의 광명의 바다를 우리가 관찰 한단 말입니다. 끝도 갓도 없는 광명의 바다를 관찰하면서, 이것 역시 끝도 갓도 없는 광명의 바다도 하나의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것도 생명이기 때문에 그때는 부처님 이름을 붙이지요. 원만보신 노사나불입니다.

 

그래서 “원만보신圓滿報身 인달하여 노사나불盧舍那佛을 염念하고” 그런 모든 가능성 모든 생명을 생성하고 또는 섭리하는, 모든 가능성의 생명이 거기에 원만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원만보신 노사나불입니다. 부처님은 신비부사의하고 전지전능하신 살아계시는 실존實存의 초월적 생명체生命體입니다.

 

여기 “인달하여”는 접촉사의 고어古語에 불과합니다. “원만보신 인달하여” 이것은 “원만보신인” 것과 같습니다. 원만보신인 노사나불을 생각하고,

“내內로 염기염멸念起念滅의” 자기 마음 안으로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없어지는 “무색중생無色衆生과” 우리 관념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좋다, 궂다, 밉다. 예쁘다 하는 추상관념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무색중생인 것입니다. 우리 관념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무색중생과,

 

“외外로 일월성수日月星宿 산하대지山河大地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밖으로 보는 해, 달, 별, 산, 냇, 등과 대지大地 기타 모든 만상의 “무정중생無情衆生과” 아직 의식이 발달되지 못한 그런 중생들과 “인축人畜 내지乃至 준동함령蠢動含靈의” 그런 의식 활동이 있는, 물론 아직은 의식이 완전히 발달은 못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오관五官은 있습니다. “인축내지 준동함령의” 사람이나 축생이나 또는 꾸물거리는 식이 있는 “유정중생有情衆生과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일체중생 그러면 그때는 앞서 말씀과 같이 우리 관념의 무색중생, 일반 동물이 아닌 무정중생, 동물인 유정중생, 이들을 합해서 일체중생 그럽니다.

 

일체중생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면, 일체중생이 무엇인가 하면, 일체중생은 모두가 다 “성해무풍性海無風 금파자용金波自涌인” 그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는 그야말로 광명의 생명의 그런 바다, 초 일월의 금색광명이 충만해 있는 생명의 바다 위에서 바람도 없지만 금파자용이라, 스스로 자自자, 뛸 용涌자 금색파도가 스스로 뛴단 말입니다.

 

해와 달과 별, 사람과 동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다 무엇인가 하면, 무량무변한 천지우주에 금색광명이 가득한 가운데서 인연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생성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치 금색바다에서 뛰노는 물거품 같다는 것입니다. 금파자용인 일체존재는 모두가 다 끝도 갓도 없는 금색광명의 바다에서 스스로 뛰는 “해중구海中漚로 관觀하면서” 거품 구漚자, 바다 가운데 있는 거품으로 우리가 관찰한단 말입니다. 사실은 거품인 것입니다.

 

나도 끝도 갓도 없는 창해일속滄海一粟이라! 그야말로 한도 끝도 없는 바다에 있는 거품이요, 산이요, 냇이요, 사실은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다 저 성좌星座라든지 은하계銀河系라든지 보다 더 큰 성운星雲, 그런 것에 비교하면 하나의 점도 못되는 것입니다. 창해일속이라, 그야말로 망망대해茫茫大海에 좁쌀 한 알만도 못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마음으로 해서는 파스칼의 말과 같이 천지를 다 감싸있지만 존재적인 의미로는 먼지하나 만큼도 못합니다. 바다 가운데 거품으로 관찰하면서 이것이 숫자가 너무나 많으니까 사람 수, 동물 수, 무생물들의 수, 두두물물 산이요, 냇이요, 들이요, 별이요, 수없이 많으므로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이라. 이런 것이 모두가 원래 부처님한테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모양은 천차만별로 구분된다 하더라도 전부가 부처한테서 나왔으므로 근본 부처님 성품은 조금도 변질이 없습니다. 다만 중생이 잘 못 본단 말입니다. 바로 보면 아무리 산이 되고 사람이 되고 하여도 조금도 변질이 없는 것입니다.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인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념念하고” 석가모니불을 좁게 생각할 때는 저 인도印度에서 나오신 역사적인 석존이시고, 광범위하게 생각할 때는 천지우주의 모든 존재가 다 석가모니불입니다. 이렇게 관찰하고,

 

“다시 피彼 무량무변無量無邊의 청공심계淸空心界와” 즉 맨 처음의 비로자나불을 말한 청공심계와 끝도 갓도 없는 텅 빈 마음의 세계와 “정만성해淨滿性海와” 천지우주의 그런 모든 역량, 모든 가능을 갖춘 금색의 바다와 “구상중생漚相衆生을” 금색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중생, 즉 말하자면 거품같이 일어나는 일체중생을, 거품 같은 중생을 “공空, 성性, 상相 일여一如의” 청공심계의 공, 정만성해의 성, 구상중생의 상, 이것이 결국 셋이 아니란 말입니다. 일여란 결국 하나란 말입니다.

 

“일여一如의 일합상一合相으로 통관通觀하면서” 하나의 일합상으로 통합해서 종합적으로 관찰하면서 “삼신일불三身一佛인” 청정법신淸淨法身, 원만보신圓滿報身,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인 삼신三身이 결국은 하나의 부처님입니다. 하나의 부처인 “아阿(化), 미彌(報), 타陀(法) 불佛을 상념常念하고, 아는 화신을 의미하고, 미는 보신을 의미하고, 타는 법신을 의미합니다. 아미타불을 항상 생각하고 내내야 그러니까 아미타불은 자기가 자기를 생각하고 우주가 우주를 생각하는 셈입니다.

 

“내외內外 생멸상生滅相인” 자기 마음으로 생각하는 자기 관념이라든지, 또는 밖에 보이는 여러 가지 현상적인 것이라든지, 이러한 내외의 생하고 멸하는, 자기도 죽고, 자기도 없어지는 또는 일체 존재라는 것은 모두가 다 생하고 멸하고 생사를 거듭합니다. 생하고 멸하는 “무수중생無數衆生의” 수 없는 중생들의 “무상제행無常諸行을” 조금도 고유하게 머물지 않는 행行이란 말입니다.

 

무상無常이라. 우리가 무상이라는 말을 굉장히 깊이 새겨야 합니다. 무상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어떤 것이나 고유한 존재가 없단 말입니다. 어떠한 존재나 어느 순간도 머물지가 않습니다.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나, 내 관념이나, 부처님 불성 이 외는 모두가 움직이고 경망輕妄하기 짝이 없는 원숭이 같습니다.

 

무상제행을, 덧이 없는 허망한 행위를 어떻게 보는가 하면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인” 마음 심心자, 따를 수隨자, ‘마음이 만경에 따라서 궁굴다’ 마음이 만 가지 경계로 뒹군다는 것입니다. 사람이요, 별이요, 산이요, 냇이요 모든 것이 무엇인가 하면은 마음이라 하는 우리들의 생명체生命體가 인과율因果律 따라서 만 가지 경계境界로 굴러 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시국이 나쁘게 흘러가는 것도 생각해 보면 참 밉살스럽기도 하고 혼란스럽고 딱하지만 그러나 모두가 마음이라고 하는 우리들의 불성기운이 인과법因果法 따라서 흘러갑니다. 우리 모두가 혼란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래서 다 같이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타彌陀의 일대행상一大行相으로 사유관찰思惟觀察할지니라” 미타의 미彌는 원만보신 노사나불, 타陀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입니다. 미타의 즉, 법신과 보신이지요. 현상적으로 제아무리 잘되고 못되고 천지가 모다 파괴돼서 텅텅 비어 버리고 또 생성되고 하는 모든 것이 미타의 일대행위一大行爲입니다. 일대 행상으로 생각하고 관찰할지니라.

 

* 무주선원 노랑게 익어가는 감귤 농약을 안쳐서 껍질은 볼품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