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 보리방편문설법(7)
우주는 하나의 생명체
이 보리방편문은 우주의 모든 역사를 하나의 체계로 딱 묶은 것입니다. 하기 때문에 읽어보시고 읽어보시면 더욱 더 깊이 생각해 보시면 하나의 아미타 부처님으로 통일 돼 갑니다. 우리 마음이 산란스러운 것은 이렇게 저렇게 자꾸만 시비분별 하니까, 즉 우주의 도리가 하나의 진리로 통일이 안 될 때는 산란스러운 것입니다. 중생은 미처 못 보아도 공자, 석가, 예수 그런 성자는 분명히 보듯이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딱 통일 되어 갑니다. 즉 부처님으로 통일 되어 갑니다.
따라서 우주라는 것은 하나님뿐인 것이고 부처님뿐인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그걸 못보고 성자는 항시 하나님하고 같이 살고 있으므로, 예수도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바이블을 보면 그렇게 항시 말씀해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판단할 때도 정말로 부처님 차원에서는 어떻게 볼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우리가 말도 하고 행동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대중 가운데는 철학박사님도 계십니다. 제가 철학을 말하면 우스울 것입니다. 그러나 파스칼(Blaise Pascal,1623~1662 같은 분은 우리 불교 철학과 굉장히 가까운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 가운데 ‘영원의 상像 위에서 현실을 관찰하라’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순간순간 영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영원의 차원에서 현실을 보란 말입니다.
우리가 산기슭에서 보면 시야가 좁지요. 산 중턱에 올라가면 시야가 더 넓습니다. 산봉우리에 올라가면 사방을 다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영원의 차원, 부처님의 차원, 하나님의 차원에서 모두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파스칼의 철학서를 보면 마치 불경佛經을 보는 기분입니다. 영원의 차원에서 현실을 관찰하여라. 그러면 결국 너, 나의 구분이 없고, 또 이와 같이 공해가 심할 때 함부로 휴지를 버릴 수 없는 것이고, 우리가 오염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다 살아 있습니다. 산도 살아 있고, 물도 살아 있고, 나무도 살아 있고, 다 살아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중생들이 그 겉만 봅니다. 나무가 있으면 목신木神이 있고, 산이 있으면 산신山神이 있고, 물이 있으면 용왕龍王이 있는 것인데, 우리 중생은 겉만 보니까 내면의 이러한 생명은 못 봅니다.
풍수지리학을 하시는 분들은 산을 보고 용龍이 이렇게 꿈틀꿈틀 살아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희랍 때라든지 로마 때라든지 또는 동양의 고대古代라던가 바라문교婆羅門敎, Brahmanism나 그 하나의 일체 만사가 모두가 다 신이 들어있다. 일체만유가 다 하나의 생명체生命體다. 이러한 교훈들이 약간의 표현만 다를 뿐이지 사실은 하나의 생명체를 말씀 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마음을 확 열고 보면 공자, 예수, 노자, 석가, 소크라테스 등은 다 같은 내용을 말했습니다. 또 과거에는 서로 문호를 세우고 벽을 높이고 싸워왔지만 우리 현대는 그렇게 하면 우리 민족도 못살고 우리 마음도 항시 괴롭습니다.
우주를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이 시간에 다른 것은 잘 못 외우서도 ‘타성일편’이라는 말씀은 꼭 외워 두십시오. 때릴 타打자, 이룰 성成자, 한 일一자, 조각 편片자. 우주를 하나의 도리로 딱 통일 시켜버린다는 말입니다. 하나의 체계로 통일 시키면 굉장히 마음이 편한 것입니다.
화두話頭에도 무無자가 있고 이뭣고가 있고 많이 있지만 결국 모두를 하나의 체계로 묶어버리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의 체계로 묶어버리면 우리 마음은 텅 비어서 마음이 시원스럽습니다. 하나의 체계로 묶은 다음에 하나가 되기 위해서 정작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 보리방편문을 잘 외우십시오. 한 번 암송하면 한 번 외이신 만큼 이상하게 정말로 내 마음이 부처구나! 내 마음 속에는 이와 같이 무량의 공덕이 있구나! 이렇게 생각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시면 조그마한 자기라는 것에 옹색하고 폐쇄된 마음이 해방됩니다.
결국 불교는 자성自性 해탈解脫이라. 해탈은 자기 마음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물질에 얽매이고 자기에게 얽매이고 어느 관념에 얽매이고 그러한 것을 우리가 다 파헤치고서 이제 이렇게 풀어버리는 이것이 해탈 아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진리만이 참다운 해방이 있습니다. 지금 물질의 해방, 그 빵 좀 많이 있으면 좋고, 그러한 해방은 참다운 해방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리어 물질에 얽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결국 물질에 칭칭 얽혀서 그걸 못 풀므로 사람들이 경직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다 털어버리면 물질도 관념도 마음도 결국 다 털어버려야 만이 참다운 행복幸福과 해탈解脫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앞서 말한 타성일편이라, 천지우주는 오직 마음뿐이다. 부처뿐이다. 하나의 진리로 다 되어 있다. 이렇게 관념을 딱 붙혀 두셔야 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제 말씀 같으면 모르려니와 무수 도인들이 다 증명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실상은 안 보인다 하더라도 불교는 진실불허眞實不虛라, 성자의 말씀에는 거짓말이 있을 리가 만무하고 또 무수한 성자들이 증명했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그렇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해서 우리 마음이 그만큼 승화昇華가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부처님뿐이다. 이 마음을 갖는 순간 사실은 우리 머리는 쭈뼛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내 본생명은 한도 끝도 없다. 내 본생명은 모든 가능을 갖춘다. 이렇게 한번 정말로 믿는 그 마음이 우리를 굉장히 정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이치로는 알았다 하더라도 - 이치로만 알면 실감이 덜 합니다. - 차근차근 실존적으로 우주의 생명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체험하는 것이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인데, 체험을 하려면 역시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서 저희 같은 출가 수행자가 있겠지요. 그런 점은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냥 부처가 딱 되어버리면 좋겠지만 금생에 나와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잘 못 듣고 잘 못 배우고 잘 못 생각한 것들이 잠재의식에 꽉 차 있습니다. 모두는 물질뿐이고 그것들은 물리적으로 풀이할 수가 있고 현상적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믿을 수 있다. 보통은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처님 말씀으로 해서는 모두가 하나의 진리다 하지만 자기가 배운 지식 자기의 기성관념 때문에 성자의 말이나 글이 많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납득이 잘 안 가는 것이고 확실히 잘 못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꾸만 읽어보고 읽어보면 자기 기성관념이 하나씩 깨집니다. 그렇게 차근차근 다 때려 부셔서 완전히 법문 내용하고 하나가 되어버리면 깨달아 그때는 확 트여서 진실하게 공부해 가면 인후개통咽喉開通 획감로미獲甘露味라. 목구멍이 툭 트여서 말입니다. 처음에 공부하면 답답하고 옹색합니다만 공부가 진전 되면 머리카락부터서 발끝까지 툭 트여 옵니다. 어디에 막힌 데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상쾌한 맛이-물론 도통까지는 아직 천리만리이지만 - 우선 자기 몸이나 마음이나 툭 트여서 어디에 막힘도 얽힘도 없습니다.
그런 관념만 가져도 굉장히 소중합니다. 그런 관념만 가져도 가슴도 시원하고 머리도 시원하고 눈도 시원한 것입니다. 그때는 혼침도 없고 밤새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이 피로하지를 않습니다. 인간의 관념은 그렇게 쓰면 쓸수록 더욱 무시무시한 힘을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 쓰면 차근차근 무디어져서 물질에 딱 얽매여 버립니다.
물질에 얽매이면 얽매일수록 이 몸뚱이는 무겁습니다. 천근만근 무거워져서 그렇게들 소중히 아끼고 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닦아서 마음이 맑아지면 몸도 차근차근 가벼워 옵니다. 나중에는 이 몸뚱이가 어디가 있는가 없는가 분간할 수 없습니다. 마치 공중에 둥둥 뜬 기분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번뇌의 뿌리가 뽑히면 몸이 하늘을 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나 위대한 도인들이 비행자재飛行自在라, 그런 말씀을 우리는 신화神話로만 들을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별 것도 아닌 원자력 가지고서 별별 재주와 위력을 다 부리는 것을 보십시오. 그런데 원자력보다도 더 고성능의 무한성능이 불성인데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비약적으로는 잘 안됩니다. 금생에 나와서 잘 못 배우고 잘 못 듣고 잘 못 생각한 것들이 다닥다닥 끼어 있으니까 대부분 그런 기성관념으로 꽉꽉 막혀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가닥을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 제주에 흔한 하늘수박. 하늘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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