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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연종집요

三. 대우선사(大佑禪師)의 설(設)

三. 대우선사(大佑禪師)의 설(設)

 

 

어떤 이가 묻기를 관경(觀經)에는 「이 마음이 불을 짓고 이 마음이 곧 불이라」 하였는데 어찌하여 다른 불을 염불하는가. 하고 답하기를 「마음이 본래 부처이므로 저 부처를 염불하게 하는 것이다.」 범망경(梵網經)에는 「나는 앞으로 될 부처요, 여러 부처는 이미 이룬 부처인줄 알라」하였으니, 너의 마음의 부처는 앞으로 될 부처이고 아미타불은 이미 이룬 부처이다.

 

앞으로 될 부처는 오랫동안 욕해(欲海)에 잠겨서 번뇌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어 출리(出離)할 때를 정하여 약속함이 까마득하나 이미 이룬 부처는 이미 보리(菩提)를 발하고 위신(威神)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어 중생을 도와서 보호하시므로 여러 부처님이 염불을 권하신 것이니, 즉 나의 앞으로 될 부처로써 다른 이미 이룬 부처를 구(求)하여 도와서 보호를 얻는 것이다 .

 

그러므로 중생이 만약 염불하지 아니하면 성인과 범부가 영원히 사이가 떨어지고 부자(父子)가 항상 괴리(乖離)하며 오래도록 윤회(輪廻)에 처(處)하여 서로 떨어진 거리가 먼 것이니라.

 

 

: 욕해(慾海) 탐욕이 많은 유정(有情)이 머물고 있는 세계를 바다에 비겨 한 말이다.

 

    출리(出離) 세속(世俗)의 인연을 떠나 잡념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위신(威神) 위엄(威嚴)있고 존귀(尊貴)하다는 뜻이다.

 

    괴리(乖離) 서로 등져서 떨어짐을 말한다.

 

 

 

 

중국 楹ざ� 때의 조백(棗栢) 이통현장자(李通玄長者)가 화엄합론(華嚴合論)을 짓고, 그 중에 십종정토(十種淨土)의 육권사실(六權四實) 즉 열 가지 정토 중에 여섯은 권(權)이요, 넷은 실(實)이라는 것을 열거 하면서 그 중의 아미타불 정토를 권이라 하고 실이 아니라 하였으나, 이 장자는『사십화엄경(四十華嚴經)』이 당나라에 들어오기 이전이어서「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을 보지 못한 까닭으로 아미타불 정토를 실이 아니고 권이라고 그릇 인정한 것이다.

 

누가 묻기를「서방 정토는 성인(聖人)이 권방편(權方便)으로 둔근(鈍根)을 접인(接引)하여 평범한 이를 화(化)하는 것인데, 한 번 뛰어 곧 여래지(如來地)에 들어가게 되면 무엇 타력(他力)을 빌리리오.」 하였더니 답하기를「부처님이 계신 때의 문수(文殊) 보현(普賢)보살과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마명(馬鳴) 용수(龍樹)보살과 중국의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와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禪師)가 모두 왕생을 발원하였으니, 이네들이 모두 둔근이겠는가.

 

『보적경(寶積경)』에는 석가모니 세존께서 부왕(父王)께 정토왕생을 권하여 六萬 석종족(釋種族)이 모두 정토에 왕생하였으니 이네들은 모두 평범한 이들이라 하랴. 또 이 성현(聖賢)들이 모두 지금의 소위 재능이 예리하고 뛰어난 이에 미치지 못하겠는가. 만일 서방 정토를 권이라 하면 어떠한 것을 실이라 하겠는가.

중국의 손신로학사(孫莘老學士)가 처음에 정토를 의심하다가 양차공(楊次公)과 왕민중시랑(王敏仲恃郞)을 만나서 논(論)하는 도(道)가 꼭 들어맞아 드디어 의심을 풀었다. 양차공 왕민중시랑 두 사람은 선(禪)을 배우다가 모두 정토 귀의(歸依)에 쉬지 않고 노력하였으니 정토는 성인(聖人)의 권설(權設)이 아니고 진실로 선려(禪侶)의 서지(棲止)할 곳이다.

 

 

: (權) 방편의 별명이다. 곧 수단을 말함이니 그때의 근기에 알맞도록 가설(假說)한 방편이다.

 

    실(實) 수단(手段)이 아니고 가설(假說)이 아닌 구경불변(究竟不變)하는 진실을 말한다.

 

    타력(他力) 자기의 작용에 대하여 다른 이의 작용을 타력이라 한다. 널리는 불보살의 작용을 말한다. 이 타력에 의하여 구제되고 성불함을 말하는 교를 타력교(他力敎) 또는 타력종(他力宗)이라 하는데 특히 아미타불을 믿고 염불함으로써 극락정토에 날 수 있다는 정토교를 타력교라고 한다.

 

    권설(權設) 임시로 베푸는 것이란 뜻이다.

 

    선려(禪侶) 선종의 승려(僧侶)의 뜻이다.

 

    서지(捿止) 쉼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