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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동선스님의 편지

[스크랩] 7〉출가, 그 아름다운 이름

교리&법문
만인의 행복을 위해 역대 스님들 출가
〈7〉출가, 그 아름다운 이름
데스크승인 2013.03.20 14:40:06 정운스님 | 조계종 교수아사리.동국대 선학과 강사

 

허운선사 출가사연이 선종의 상징

가족출가엔 같은장소 머물기 금지

 

 

Hi   중국 청나라 말기에서 공산혁명이 된 이후까지 중국 선종의 기둥 역할을 한 분이 바로 허운(虛雲, 1840~1959) 선사다. 현재 중국과 대만의 승려들은 대부분 허운선사의 법맥으로, 한국의 선객들도 허운을 존경한다. 선사는 불심이 돈독했던 양무제(502~549재위)의 후손이다. 선사의 아버지 소옥당(蕭玉堂)은 40세가 넘어도 자식이 없어 인근 사찰에서 관음기도를 하여 겨우 얻은 자식이 허운이다.

 

허운은 어릴 때부터 육식을 금했고,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오로지 책 읽는 일에만 몰두했다. 17세 무렵, 허운은 사촌동생과 호남성 남악산으로 몰래 출가를 하였다. 허운은 아버지의 간곡한 청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부친은 아들이 불교에 심취해 있는 모습이 염려되어 도교 서적을 읽게 하고 도사를 만나게 했으나, 허운은 도교에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출가하지 못하도록 두 여인과 결혼을 시켰다. 얼마 후, 허운은 두 부인에게 “더 이상은 그대들과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소. 나는 더 이상 집에 머물고 싶지 않아 출가할 것이오. 우리 열심히 수행해서 훗날 용화회(龍華會)에서 만나도록 합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출가했다.

 

아버지 소옥당은 아들을 찾아 전국을 헤매다 찾지 못하고, 결국 화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양모는 혹시나 아들이 집에 오려나 싶어 주야로 마을 어귀에 나가 기다렸으나 아들은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다. 이후 양모는 두 며느리와 함께 출가하였다. 허운은 여러 곳을 행각하던 중, 고향 호남성 부근을 몇 번이고 지나쳤지만 한 번도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으며, 입적할 때까지 가족 누구와도 상봉하지 않았다.

 

파이팅‘출가’, 자신이 살던 습을 버리고 집을 나온 승려들에게는 고대로부터 즉금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나 출가 사연을 가지고 있다.

부처님 재세시 두타제일 가섭 존자와 욱가세나 등 부부가 동시에 출가한 경우도 있다.

또 부모와 아들이 동시에 출가했지만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가족이 한곳에 거주하는 수행자들이 있었는데,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가정을 버리고 비구와 비구니가 되었으면 더 이상 같은 장소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염려해 이들이 뿔뿔이 흩어진 경우도 있다.

한편 독특한 경우인데, 결혼한 부인이 남편에게 출가를 간곡히 청해 비구니가 된 경우이다. 담마딘나 비구니는 깨달음을 얻은 뒤 전 남편을 수행 지도하였다.

또 한 여인은 임신한 줄 모르고 출가해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까싸빠 존자)가 7세 무렵 출가해 훗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당연히 여인도 비구니 생활을 지속하였고, 훗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여러 형태의 출가 가운데, 고금을 막론하고 남편이 출가하고 부인은 집에 남아 시부모를 부양하거나 가족을 돌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처님도 그러했고, 한국의 성철스님과 청담스님 등 근현대 선지식들의 출가가 그러하다.

 

성철스님은 가족에게 3년만 참선하러 가겠다고 집을 나와 출가해 버렸다. 스님의 모친은 아들이 보고파 금강산 선방까지 찾아가 자식에 대한 애틋함을 풀었지만, 유학자였던 스님의 아버지는 내색도 못하고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러나 누구보다도 힘들었을 분은 스님의 부인이었을 것이다. 큰딸은 죽고, 작은 딸(불필스님)까지 절에 들어가자, 스님에게 대판 따지러 갔다가 뵙지도 못하고 시자에 의해 쫓겨나왔다고 한다. 결국 훗날 부인도 석남사로 출가해 비구니로 열반했으니 한 가족이 모두 출가한 셈이다.

 

출가는 한 가족에게는 잠시나마 슬픔을 안긴 일이었지만, 만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부처님을 비롯해 역대 승려들의 출가가 진정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하면서도 무언지 모를 아련한 시림, 나의 부모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한다.

 

                                                                                                       [불교신문 2897호/2013년 3월 20일자]

 

 

출처 : 니련선하원
글쓴이 : 니련선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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