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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동선스님의 편지

[스크랩] "불교의 합리적 사유에 서구인들도 감동"(제주불교신문 인터뷰)

 "불교의 합리적 사유에 서구인들도 감동"

 

미국인들 불교를 통해 인간관계의

개선과 마음의 휴식을 얻고자 해

젊은이들 한국에서 참선하길 원해



▶ 사진설명 : 청화 스님을 시봉하면서부터 미국서 포교활동을 해온 동선 스님을 무주선원에서 만났다.
1990년 청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동선 스님이 최근의 미국불교와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제주불자들을 위해 풀어놓았다. 무주선원에서 지난달 31일 동선 스님과 만난 이야기를 이번 호에 간추려 실었다.



△1990년대 청화 스님시봉하면서 오랫동안 미국서 포교활동에 전념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선 스님이 생각하는 미국불교는 어떤 것 같은지 이야기해 주시지요.



미국사회는 법률이 엄해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거기서 벗어나고파 한다. 예를 들어 부부싸움으로 경찰이 출동하면 벌금뿐만 아니라 교육도 받아야 하고 엄청 돈이 많이 든다. 미국에선 남자는 세 번 이혼하면 부자가 거지가 되고 여자는 세 번 이혼하면 거지도 부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미국의 뉴욕을 비롯해 동부 사람들은 불심이 센 편인데 비해 LA 사람들은 다소 느슨한 감이 있다. 그만큼 문화적 차이가 지역별로 심하다는 의미다. 뉴욕과 하와이의 거리가 비행기로 6시간을 가야한다. 그런데 미국 등 서구인들에게 불교가 신선하게 다가서는 이유는 불교가 신이 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운명을 결정한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선불교가 서구사회에서 점점 더 퍼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한 예를 든다면 티베트 불교에서는 만트라를 많이 하는데 직접 만트라를 하는 티베트 스님들의 뇌파를 검사한 결과 뇌의 변화가 눈으로 확인되는 등 과학적으로 판명이 나면서 서구인들에게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손바닥을 들여다보면 10제곱 그 이상 100제곱으로 확대해 세포를 들여다 볼 때 세포가 분자에서 양성자, 중성자 등 점점 더 작은 단위로 작아지더니 결국엔 공이 상태가 된다는 것과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지구를 볼 때 그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데 이 또한 공이 돼버린 다는 것, 이와 같은 색즉시공의 원리가 미국 초등학교 과학교재에 실리고 있다. 그만큼 불교의 과학적 사유가 미국인들의 정신세계와 맞아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현재 가라앉고 있다고 생각된다. 점점 심화되는 교육의 불평등과 재정 적자의 증가, 그 뿐만 아니라 국민의 국가의존도 크게 늘면서 모든 면에서 많이 힘들어지고 있다. 대단히 합리적일 것 같은 미국에서도 예를 들어 건물들이 타자마할 신드롬에 걸려 실속 보다는 겉치레부분이 늘고 있는 것 등 불합리한 부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물질적으로 빠져 사회가 불안정하고 재정이 안 좋아지고 있으며 제조업이 사라지면서 무역적자가 늘면서 개선여지가 안 보인다.



최근 미국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에 코넬대학에서는 신입생들에게 대학에서 배워야 할 것은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는 능력을 배워야 한다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윌리엄스 대학은 좋은 관계가 어려울 때 가장 소중하다는 것임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무신불립이라는 말이 있는데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세울 수 없다는 의미다. 그 만큼 관계가 소중하다는 의미인데 미국에서 지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하는 소통이 문제가 되고있다.



그래서 미국 젊은이들이 더욱 불교를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인간관계를 맺고 마음을 쉬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그래서 불교가 여기서는 카운슬러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불교의 명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불교를 배우는 미국 젊은이들 가운데는 한국의 산을 무척 보고 싶어한다. 한국의 산이 그려주는 능선을 미국인들은 정말 감탄한다. 그리고 그 산에 있는 절에서 참선을 하는 것을 정말 원하고 있다.



△요즈음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다들 힘들다고 합니다. 불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 혼란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불자들을 위해 한 말씀 해주시다면



업에 대해선 누구도 자신할 수 없다. 불교를 아무리 많이 알아도 소용이 없다. 부지런히 참회하고 부처님 탁자 밑에서 살아야 업이 녹아진다. 인이란 지금 뿌린 씨앗이고 연이란 전생에 뿌린 씨앗이다. 이생만 보면 불평등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생, 미래생을 함께 보면 평등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도서관에 “닫힌 문을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열려있는 문을 볼 기회를 놓친다.”는 말이 있다. 참으로 불교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 글귀다. 절에는 가지 않아도 불교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조그만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조금만 것이라도 해봐라.



스님들 세계에는 수행자의 잠이란 것이 있다. 새벽부터 수행을 하다 저녁에는 또다시 경전공부 등을 하면서 잠을 잔다. 그리고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잠이 들고 새벽에 눈을 뜨면 첫 생각이 ‘아미타불’이 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행자의 잠이다.

제주불자들도 이와 같이 날마다 수행하는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 남의 가진 부를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부러워해야 한다. 수행의 나날이 되길 빈다.

2013-09-07 오전 9:32:31
/김은희 기자

출처 : 아미타불과 함께하는 마음의 고향 무주선원
글쓴이 : 미타행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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