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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 나무아미타불

35. 백련결사에서 공부한 거사 / 유정지 (劉程之)

35. 백련결사에서 공부한 거사 / 유정지 (劉程之)


진 (秦) 나라 유민 (遺民) 인 유씨 (劉氏) 는 이름이 정지 (程之) 이며 팽성

(彭城) 사람이다. 한 (漢) 나라 초원왕 (楚元王) 의 후손으로 그의 조부는

진나라에서 높은 벼슬을 지냈다.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를 모신다는 소문이

퍼지자 승상 환현 (桓玄) 과 태위 사안 (謝安) 이 조정에 천거하려 하였으나

그는 사양하고 여산 (廬山) 의 혜원 (慧遠) 스님을 찾아뵈었다. 그 후 뇌차

종 (雷次宗) 과 주속지 (周續之) 가 함께 와서 혜원스님과 살게 되었다.


혜원스님은 여러분 모두는 아마도 정토에 노닐기 위해 여기에 왔을 것이

다" 하고는 마침내 그에게 결사문을 짓도록 명하여 이 일을 알리도록 하였

다. 이 결사 〔白蓮社〕 의 인원은 백여 명이나 되었고 그 중에 훌륭한 사람

이 18명이었는데, 그는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가 염불을 할 때면 언제나 자주색 금빛 몸을 한 아미타불이 그의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부끄럽고 행복하여 슬피 울면서 말하였다.


여래께서는 저의 이마를 어루만져 주시고 저에게 옷을 덮어주십시오."

그러자 갑자기 부처님께서 나타나 이마를 어루만져주고 가사를 끌어다 그의

몸을 덮어주었다.

뒷날 그는 또 꿈에 자기 몸이 칠보로 된 큰 못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못에는 백련화 청련화가 어우러져 피어 있었으며 물은 맑고 맑아서 끝간

데가 보이지 않았다. 못 가운데 한 사람이 있어서 못물을 가리키며, 8공덕수

(八功德水) 이니 마셔보라하기에 물을 마셔보니 맛이 감미로왔다. 이윽고 꿈

을 깨고 나서도 털구멍에서 신비한 향기가 나는 듯하였다. 그는 말했다. 

이는 나에게 정토의 인연이 다가온 것이다. 누가 육화중 (六和衆:스님들을

가리킴) 을 위해 나를 증명해줄 수 있겠는가?" 조금 있으니 대중들이 모두

모여 들었다. 그는 불상 앞에서 향을 사루고 재배한 뒤 축원하였다.

제가 석가모니불께서 남기신 가르침으로 아미타불이 계심을 알게 되었으

니 이 향은 마땅히 먼저 석가모니부처님께 공양하고 다음에 아미타불께 공

양하고 아울러 시방의 불보살님들께 공양하옵니다. 모든 중생들이 다 함께

정토에 가서 나게 하여 주십시오."

축원을 마치고 이 부딪치는 소리를 세번 내더니 장궤 합장한 채 죽었다.

「여산집(廬山集)」


36. 정토수행을 한 거사 / 왕일휴 (王日休)

왕일휴 (王日休) 거사는 용서 (龍舒) 사람인데 품행이 단정하여 젊어서 국

학 (國學) 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문득 서방정토에 귀의함이 최고의 일이

로다" 하고 탄식하였다. 이때부터 베옷에 채소밥을 먹으며 매일 천배 (千拜)

하는 것을 일과로 삼아 정토에 날 과업을 장엄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

를, 그대는 이미 마음이 순일한데 더 고행을 할 것까지야 없지 않습니까?"

하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경에 말하기를 적은 복덕을 닦은 인연으로는 정토에 왕생할 수 없다 하였

으니 한 마음으로 고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왕생한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

가?"

거사는 집에 있을 때에도 매우 엄격하게 계율을 지켰으며 앉아서는 반드시

좌선을 하고 누울 때는 의관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얼굴과 눈에서는 빛이

났으므로 보는 사람들은 그를 도인이라고 믿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려 할 때

두루 친지들과 작별하면서 정토수행을 힘써 닦으라고 부탁하였다. 밤이 되자

소리를 가다듬어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다가, 부처님께서 나를 맞으러 오신

다!"고 외치며 우뚝 선 채로 세상을 떠났다.

「이운병섭윤적기 (怡雲幷聶允迪記)」


67. 정토에 오고감 / 양차공 (楊次公)

양차공 (楊次公:楊傑) 이 말하였다.

원력 크신 아미타불은 정토에서 오지만 와도 실제 오는 것이 아니며, 신심

깊은 범부는 정토로 가지만 가도 실제 가는 것이 아니다. 저쪽에서 이곳으로

오지 않고 이쪽에서 저곳으로 가지도 않으나 그들 성인과 범부는 만나서 양

쪽이 교제할 수 있다.

아미타불의 밝은 빛은 크고 둥근 달과 같아서 법계를 두루 비춘다. 염불하는

중생이 이를 간직해서 버리지 않으면 모든 부처의 마음속에 있는 중생은 티

끌같이 무수한 극락을 얻게 되고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정토는 생각 생각이

아미타불이 될 것이다. 만약 발심하여 저 명호를 염 (念) 할 수 있으면 그대

로 왕생하여 강가의 모래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이 입을 모아 칭찬하고 시방

의 보살들이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 말

씀을 믿지 못한다면 무슨 말을 믿을 것이며 정토가 가서 날만한 곳이 아니

라면 어느 땅이 가서 날만한 곳인가. 스스로 자기의 신령함을 버린다면 그것

은 누구의 허물이겠는가."

공은 임종 때 금으로 된 자리〔金臺] 가 공중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게

송을 짓고 돌아가셨다.

삶이라 해서 연연할 것도 아니고

죽음이라 해서 버릴 것도 아니니

크나큰 허공 속에

오고 가는 것일 뿐인데

잘못에 잘못을 더하여

서방극락이 되었구나.

生赤無可戀 死赤無可捨

太虛空中 之乎者也

將錯就錯 西方極樂 「보도집 등 (輔道集等)」


71. 정토를 눈앞에 보다 / 우법사 (愚法師)

우법사 (法鑑恭愚法師) 는 가화 (圈禾) 사람으로 유학 (儒學) 을 버리고 불

법에 귀의하였다. 각고의 노력으로 정진하기 30년에 더욱더 수행에 힘써 하

루도 그만둔 적이 없었다. 일찍이 도잠 (道潛) , 칙장 (則章) 두 스님과 도

반이 되었는데 도잠스님은 시를 잘해서 명예를 가까이 했으나 칙장스님과

법사는 빛을 감추고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으며 오직 자기 일에만

힘썼다. 그런던 중에 칙장스님이 먼저 죽고 우법사도 입적할 때가 되자 대중

에게 말하였다.

내 꿈에 신선이 나타나 알려주기를 「그대 도반인 칙장스님은 보현보살의

원행삼매 (願行三昧) 를 얻어 이미 정토에 가서 났다. 그곳에서 그대를 기다

린 지 오래되는데 어찌 머뭇거리는가'라고 하였다. 이어서 정토의 거룩한 모

습과 여러 가지 꽃이며 음악이 모조리 눈앞에 나타나더라."

그리고는 게송을 지어놓고 돌아가셨다.

허공 속에 온갖 꽃이 그물처럼 피었고

꿈속에 칠보연못이 보이네

서방정토 돌아가는 길 편안히 밟으니

다시는 한 점의 의심도 없구나.

空裏千花羅網 夢中七寶蓮池


78. 돌배나무 무위 (無爲) 를 본받다 / 사암 엄 (摣T庵嚴) 법사

사암 엄 (摣T庵嚴:1020~1101) 법사는 경시 (脛試) 를 거쳐서 출가하여 동

산 신조 (東山神照) 선사에게 귀의하였다. 신조선사는 큰그릇이라고 여겨 

우리 종문에 사람을 얻었으니 앞으로 종문이 실추되지 않겠구나" 하면서 그

를 윗자리에 앉혔다.

법사는 단지 경을 강하는 것만을 제일로 치지 않고, 말을 하거나 묵묵히 있

거나, 모든 처신을 반드시 법도에 맞게 하였다. 당시 법진 (法眞:법진 처함)

스님이 지관 (缺觀) 의 부사의경 (不思議境) 을 물으니 법사는 이렇게 말하

였다.

만법은 오직 한 마음일 뿐이어서 마음 밖에 별다른 법이 없는데 이 마음

법 〔心法〕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을 묘삼천 (妙三千) 이라 합니다."

얼마 있다가 법진스님이 동액 (東:궁궐 안에 있는 절) 으로 거처를 옮기며

주지를 사임하게 되자, 법사에게 명하여 뒤를 잇게 하니 법사가 말하였다.

옛날 지자 (智者) 대사는 나이 50이 되기 전에 문도대중을 흩어버렸고, 사

명 (四明) 대사는 40이 되자 장좌불와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사람이

기에 이렇게 늙어서 한가하게 주지를 맡겠습니까."

그리하여 끝내 받지 않고 영취산 동쪽 봉우리에 은거하였는데, 그곳에 아기

위나무가 한그루 있어 그 옆에 암자를 짓고 「사암 (摣T庵) '이라 이름하였

다. 암자의 기록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내 나이 60에 산에 돌아와 암자터를 잡았다. 암자가 다 되어 그 속에서

요양이나 하고 지내면서, 그렇다고 세상살이를 지나치게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았다. 암자 서쪽에 아가위나무 한그루가 있어 그 이름을 따서 암자 이름을

지었는데, 아가위란 맛이 좋다고 이름난 과실도 아니고 배나 밤에 비하면 부

끄럽게 생겼다. 그러나 배는 그 시원한 맛 때문에 칼에 베어지고 밤은 그 단

맛 때문에 입에 씹히게 되니, 설혹 배와 밤에게 식성 (識性) 을 부여해서 그

들 스스로 쓸모없는 곳에 있게 해달라고 해도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저 아가위는 돌배의 종류에 속하는 것이어서 비록 향기는 있어도 맛

이 떫다. 억지로 씹으려해도 향기로는 배를 채울 수 없고 떫은 맛은 입을 상

쾌하게 할 수 없으니, 삼척동자라도 이것을 찾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주렁

주렁 가지에 매달려 스스로 만족하는 그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 사람은 지혜 때문에 자기 뼈를 고단하게 하고 아가위는 떫은 맛 때문에

그 몸이 편안하니, 지혜와 떫은 맛 중에 어느 것이 참된가? 나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아가위와 이웃이 되었다."

법사는 몸에 필요한 물건이라고는 오직 작은 발우 하나 뿐이었고, 아침 점

심의 밥은 오직 세가지 흰것 〔三白:밥과 무우와 소금〕 뿐이었다. 이렇게

혼자 살기를 20년, 문을 닫고 좌선하니 세상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계율의 조목들은 경중을 막론하고 똑같이 지켰으며, 생활용구는 문빗장 같은

자질구레한 것에 이르기까지 깨끗하게 하였다. 그리고 적막함에 자족하며 오

로지 정토에 왕생할 것을 기약하였다.

하루 저녁은 꿈에 못에서 큰 연꽃이 피어나고 하늘 음악이 사방에서 줄지어

들려왔다. 법사는 이것이 내가 왕생할 정토의 모습이다" 하였는데, 그후 7

일만에 과연 돌아가셨다.

「행업기 (行業記)」


99. 밤마다 관 (棺) 에 들어갔다가 / 오자재 (吳子才)

소흥 13 (紹興:1143) 년 좌수직랑 (左修職郞) 인 첨숙의 (詹叔義) 가 재부

(財賦:세금 등 국고수입) 에 의견서를 올려 주지가 되려는 이에게 도첩을 팔

자고 하였다. 조정에서는 소흥 32년까지 이 의견대로 도첩을 팔아 왔는데,

시랑 (侍郞) 오자재 (吳子才) 가 진정서를 올려 도첩을 나누어 팔도록 허가

받자 그것은 부처를 팔아 복을 받으려는 짓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오자재는

관직을 그만두고 바위산으로 돌아가 선상에 앉아 경과 선을 음미하며 자족

하였고 구름과 물을 감상하며 스스로 즐거워하였다.

그리고는 관을 하나 만들어서 밤이면 그 속에 누워 자다가 날이 밝으려 하

면 두어명의 동자를 시켜 관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오자재는 돌

아가라! 삼계는 어디고 불안하여 살 만한 곳이 없으나 서방정토에는 연화대

가 있다." 오자재는 듣자마자 일어나 참선과 독송을 하였다. 이렇게 몇 년을

계속 정진하였다. 임종 때 집안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들었느냐?"

하니 집안사람들은 아무것도 못들었다고 하였다. 오자재가 너희들은 생각

을 거두고 들어보라" 하니 이때 모든 사람들은 공중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하늘음악을 들었다. 이에 오자재가 말하였다. 나는 청정세계에 살다가 생

각 〔念〕을 잃어버려서 이곳에 왔었는데 금으로 된 좌대가 도착했으니 이

제 가겠다."

그리고는 말이 끝나자 임종하였다. 「설총기 (雪記)」


108. 장경보시 발원문 / 풍제천 (馮濟川) 거사

풍제천 (馮濟川:~1153) 거사가 장경 (藏脛) 보시를 하면서 발원문을 지었

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제가 장경을 시주한 것은 한 가지로 두 가지 시주를 한 것입니다.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장경에다가 돈을 낸 것은 재물보시가 되고, 그 경으로 법을

전하는 것은 법보시가 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살펴보건대, 재물보시로는

다음 생에 하늘이나 인간 세상에 태어날 복된 과보를 받고, 법보시로는 세상

에서 가장 지혜롭고 말솜씨가 좋은 사람이 되는 과보를 받게 된다고 하였습

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과보가 모두 윤회의 씨앗이며 괴로운 과보의 근본

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제 발원하오니, 이 두 가지 과보를 회향하여 임종할 때 극락에 왕생

하여 그곳을 장엄하게 하여지이다. 연꽃 태 (胎)에서 나와 부처님을 뵙고 그

법문을 들어 무생법인 (無生法忍)을 깨닫고 물러남이 없는 자리에 올라 보살

지위에 들어가게 하여지이다. 그리하여 시방세계의 5탁악세에 다시 돌아와

어디든 내 몸을 나타내 불사를 하게 하여지이다. 오늘 재물과 법, 이 두 가

지를 보시한 인연으로 관세음보살같이 대자비를 갖추고서 5도 (五道:지옥․아

귀․축생․사람․하늘)에 노닐되, 그 중생의 모습대로 몸을 바꾸어 갖가지 묘한

법문 설하게 하여지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고통의 길을 멀리 여의고 지혜

를 얻게 하며, 모든 중생과 더불어 성불하게 되어지이다. 이것이 제가 장경

불사를 하면서 발원하는 것입니다." 「사경비 (舍脛碑)」

* 출처 : 인천보감(人天寶鑑)/장경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