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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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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하게 염불하라

 

 

오늘은 인광 노스님 왕생 12주년 기념일로서 여러분 모두 그분의 제자입니다. 이곳에 모여 근본을 잊지 않고 스님을 추모하게 되었습니다. 불법의 도리에 따라 스님은 법신法身의 부모이며, 스님을 추모하는 것은 곧 법신의 부모에 대한 효이며, 세간의 작은 효와 비교하여 더욱 의의가 있습니다.

 

 

회상해보니, 내가 처음 인광 노스님과 만나게 된 것은 광서光緖 20년(1894)보타산에서였습니다. 그 당시 화문化聞 스님이 인광 노스님을 청하여 『아미타경』을 강의하였습니다. 경을 다 강의하신 후 노스님은 곧 절에서 20여 년 경장을 열람하시면서 그 동안 절을 한 발짝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문을 닫고 비밀리에 수행하였습니다. 노스님은 교의敎義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으며, 비록 교의를 깊이 통달하였지만, 도리어 한 구의 ‘아미타불’ 염불을 매일의 수행으로 삼았습니다. 당신이 경교에 깊이 통달하였다고 하여 염불법문을 절대로 경시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 가운데 어느 하나 중생의 병고를 치료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염불법문은 아가타약(阿伽陀藥:모든 병을 잘 고치는 약)이라고 불리는데, 모든 병을 치료합니다. 그러나 무슨 법문을 닦든지 간에 모두 신심이 견고해야 하며, 꽉 잡고 깊이 행해야 비로소 원만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신심이 견고하면 다라니를 지송하여도 성취하고, 참선을 해도 성취하고, 염불을 해도 이룰 수 있습니다.

 

만약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하고 단지 자기의 작은 선근과 옅은 지혜에 의지하거나, 혹은 몇 개의 명상名相이나 공안公案을 기억하여 곧 함부로 말하고 시비를 담론하면, 단지 업습業習을 증장할 뿐 생사에 임박하여 묵은 업에 따라 생사를 돌고 도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인광 노스님의 제자로서 오늘 노스님을 기념하는 것은 곧 노스님의 진실한 수행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인광대사는 착실하게 참된 수행을 하셨으니, 실로 고덕高德을 추종할 만합니다. 인광 대사는 (『능엄경』)「대세지보살염불원통장大勢至菩薩念佛圓通章」의 깊은 이치를 체득하여 그에 따라 수행하여 염불삼매를 얻었습니다. 그에 의지하여 정토법문을 널리 펼쳐 중생을 이롭게 하였으며, 수십 년을 하루 같이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진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은 나와 남의 분별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명호를 집지하여 아침에도 염하고 저녁에도 염하고, 다니면서도 염하고 앉아서도 염하며, 하루 12시 가운데 생각마다 잊지 않습니다. 면밀하게 공부가 익으면, 아미타불의 청정한 경계가 현전하게 됩니다. 그러면 무변한 이익을 스스로 직접 얻게 되는데, 이는 오로지 신심이 견고해야 합니다.

 

신심이 견고하지 않으면 만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만약 오늘은 장 씨의 이야기를 따르고 내일은 이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사람이 참선이 좋다고 하면 곧 염불공부를 버리고 참선을 하러 가고, 교학이 좋다고 하면 또 참선을 그만두고 교학을 배우러 가면, 교학도 이루지 못하고, 또 다라니를 지송하거나 하면 하는 일마다 마치지 못하고 장부마다 빚을 청산하지 못하는데, 자신의 신심이 정해지지 못한 것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부처님과 조사가 중생을 기만했다고 말하면서 불법을 비방하고 무간지옥의 업을 짓습니다.

 

그래서 나는 대중들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정토법문의 이익을 깊이 믿고 인광 노스님의 “착실하게 염불하라”는 가르침을 배워야 할 것이며, 견고한 뜻을 세우고 용맹한 마음을 발하여 서방정토 왕생을 평생의 큰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참선과 염불은 초발심初發心의 사람이 볼 때는 두 가지의 일이지만, 오래 수행한 사람이 보면 하나의 일입니다.

 

 

참선은 하나의 화두를 들고 횡으로 생사의 흐름을 자르는 것으로서 또한 견고한 신심信心에서 나옵니다. 만약 화두를 잘 잡지 못하면 참선도 이루어질 수 없으며, 만약 신심이 확고하면 화두 하나를 죽기 살기로 참구해가면 곧바로 차를 마셔도 차를 알지 못하고, 밥을 먹어도 먹는 줄 모르며, 공부가 익은 곳에서 육근과 육진이 탈락하고(떨어져 나가고)큰 쓰임[大用]이 현전하게 됩니다. 염불하는 사람이 공부가 익은 곳에서 청정한 경계가 현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에 이르게 되면 이치와 현상이 원융하고[理事圓融] 마음과 부처가 둘이 아니게 됩니다. 부처와 중생도 같으며, 일여一如하며 이여二如함이 없으니 차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염불을 하는 분이니, 나는 모두가 부처님 명호 하나를 자기 일생의 의지처로 삼고 착실하게 염불하기를 바랍니다.

 

1952년 12월 인광印光대사 왕생 12주년 추도사

허운虛雲대사

 

* 불광출판사 발행 인광대사의 법문집 “내 이름을 부르는 이 누구나 건너리”

책에 있는 내용입니다. 짧은 법문 속에 어떻게

공부지여가야 하는지 간결하게 말씀하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