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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자유게시판

[스크랩] □ 우주의 근본 성질은 진여불성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4  
    *아래법문은 청화(淸華)큰스님께서 성륜사(聖輪寺) 
     정기법회(2003년 5월 4일)에 제방스님과 재가불자들에게 설하신 법문입니다.
    진여불성 이것은 우주의 참 생명입니다. 
    우주의 참 생명이 진여불성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가 다 그때그때 변화무상한 것이지만 진여불성은 
    바로 여래(如來) 부처 또는 법성(法性), 법계(法界) 다 같은 뜻입니다. 
    모두가 다. 그래서 이 진여불성은 그때는 불생불멸(不生不滅)하여 
    나지 않고 죽지 않고 더하지 않고 덜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우리 생명의 본바탕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우주란 것은 진여불성이 근본 성질입니다. 
    우리가 가령 참선(參禪)을 한다하더라도 그냥 이것이 무엇인가 
    저것이 무엇인가 덮어놓고 의심한다고 참선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염불(念佛)한다하더라도 부처님은 우리가 애쓰고 
    부처님을 외면 우리한테 가피(加被)를 주시겠지, 
    이러면 참다운 염불이 되시겠습니까.
    우주의 실체가 우주의 실상이 바로 진여불성인지라. 
    우리가 염불을 하든, 화두공안을 참구하든 또는 잠자코 명상을 하든, 
    우리 마음자리가 항시 진여불성이라는 본래의 자리를 안 떠나야 됩니다.
    본래면목(本來面目)자리가 진여불성인데, 
    진여불성을 떠나서 아주 의심한다고 그래서 참선이 되겠습니까?
    참선이란 것은 우리 본래면목을 찾는 것인데 말입니다. 
    염불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란 것은 무엇인가. 
    부처란 말이나 본래면목이란 말이나 똑같은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본래면목을 안 떠나야 
    그래야 참다운 참선이 되고 참다운 염불이 됩니다.
    가령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우리가 한다 하더라도 
    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면 아미타불의 가피가 나한테 와서 
    나한테 무량복덕(無量福德)을 주겠지, 이것은 방편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다운 염불은 아미타불이 바로 내 본래면목이고, 우주가 
    아미타불 아닌 것은 하나도 없이 모두가 다 부처님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미타불을 왼다고 생각할 때는 자성미타(自性彌陀) 유심정토(唯心淨土)라!
    그렇게 되면 바로 참다운 염불인 동시에 염불참선(念佛參禪)이란 말입니다. 
    불자님들은 기왕이면 
    단순한 염불뿐만 아니라 염불참선을 하시고 싶겠지요. 
    염불참선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우리 본래면목자리, 
    우리 생명의 당체, 생명의 본질자리인 진여불성자리, 불성자리를 
    놓치지 않고 하면 그것이 바로 참다운 염불인 동시에 염불참선이 됩니다.
    우리가 화두공안(話頭公案)을 의심한다하더라도 덮어놓고 
    무슨 문제를 의심만 죽자고 한다고 해서 참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면목자리, 본래 진여불성자리.......
    일체존재의 근본자리를 놓치지 않고서 그 자리에다 항시 마음을 두고 
    우리가 화두를 의심하고 그래야 이제 참다운 참선이 됩니다.
    묵조선(黙照禪)에서 명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공부나 다 그렇습니다.우리가 경을 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우리 마음을 생명의 실상인 그 자리에다 우리 마음을 두고서 
    공부한다고 생각할 때는 참다운 간경(看經)인 동시에 참선이고 
    모두가 그 가운데 다 포섭이 됩니다. 
    이렇게 하셔서 아까 제가 말씀드린바와 같이 
    우선은 우리가 철학적으로 범신론을, 사상으로  투철하게 
    이른바 우리 사색을 그쪽으로 포괄을 다 시켜야 됩니다.
    모두가 다 부처 아님이 없고 모두가 다 하나님 아님이 없다. 
    이렇게 돼 가면 그때는, 기독교나 불교나 이슬람교나 사실은 
    원래 진리가 둘이 아니고 셋이 아닌지라 모두가 똑같은 진리, 
    하나의 그야말로 참 아름다운 진리의 전당이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지금 제일 두려운 것이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념적인 대립, 이념적인 대립이 제일 무서운 것인데, 
    이념적인 대립은 사실은 대립할 건더기도 없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잘못 봐서 우리 중생의 분별시비로 해서 이렇게 저렇게 
    억지로 대립을 하는 것이지 본래 진리의 자리는 대립이 없습니다.
    본래가 다 하나고 또 위대한 선각자들은 다 그런 도리를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3세기 때 나온 이집트 태생의 
    로마의 철학자 플로티노스(Plotinos)는 아주 모범적인 분이고, 
    서양철학의 어떠한 위대한 신학자들은 대체로 
    플로티노스의 사상을 섭렵하고 연구하지 않은 분이 없습니다.
    우리 불자들, 우리 불교가운데는 그런 저런 모든 교설이 다 들어있고, 
    그보다도 플로티노스가 말한 일자(一者)보다도 훨썩 더 근원적인 
    즉 말하자면 본래 불성자리, 본래 불성자리는 이것은 
    꼭 불교만의 불성이 아니라, 불교에서 보면 불성(佛性)이고 
    기독교에서 보면 그때는 신성(神聖)이고 말입니다. 
    이슬람교에서 보면 그때는 알라의 그런 하나의 근원적인 생명체가 되겠지요. 
    이렇게 하셔서 우리가 사상적으로 조금도 마음에 갈등이 없이 
    부처님의 결정설을 공부하셔서 우리 마음이 항시 안심입명(安心立命)과 
    평화스러운 기분으로 행복스럽게 공부해 나아가시도록 하십시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글쓴이 : 여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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