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무슨 일이래?”
나는 수화기를 놓으면서 아무래도 미심쩍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엊그제 다녀가실 때만 해도 멀쩡하셨던 친정아버지가
몸져누우셨다는 새어머니 말씀이 잘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시는 새어머니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래 서둘러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외출차비를 하여 기차를 타고 친정아버지 계신 서울로 향했다.
친정아버지는 맏딸이 어렵게 사는 것을 가엾이 여겨 자주 예산에 들르셨지만, 나는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참으로 오랜만에 친정집을 찾아간 것이었다. 급히 현관문을 열고 안방에 들어서자 누워계시는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친정아버지 이마 한 가운데가 흡사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붉게 부풀어 올라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이마에는 주먹만한 종기가 불끈 솟아 터질 듯이 부풀어있었고, 이마 주변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는지를 여쭤보니, 거의 일주일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해마다 두 아들이 번갈아 가며 아버지 생신상을 차려드리는데, 이번엔 작은 동생이 모실 차례였다고 한다.
그래서 며칠 전 생신상을 받으러, 작은 아들이 있는 삼천포까지 두 분이 함께 내려가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침상 드시기 전에 평소 좋아하시는 장어육수를 한 모금 들이킨 것이 그만 화근이 되어, 밥 한 술도 못 드신 채 그냥 올라오셨다고 한다.
서울의 유명한 K병원 피부과의사를 찾아가 오만가지 검사를 다 했으나, 그런데도 이마의 상처 부위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성해질 따름이었다.
의사조차도 병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치료할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끙끙 앓고만 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속이 많이 타서인지 다소 격앙된 어조로 말씀하시는
새어머니의 설명을 듣고 나서, 내가 한눈에 보아도
아버지의 상처부분은 쉽사리 가라앉을 기미가 엿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설명을 들었어도 도대체 납득하기가 어려워서,
나는 수건으로 아버지 이마 위의 땀방울을 닦아드리며 속엣 말로 물어보았다.
“아니 어디에다 크게 이마를 부딪치기라도 하신 걸까?
아니면 펄펄 끓는 물을 누가 모르고,
아버지 이마에다 휙 끼얹어버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런 말을 나직이 주절대다가 나도 몰래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늘 아침 꿈속에서 본 그 이상한 사내의 이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맞어, 그 남자 이마도 아버지처럼 붉게 부풀어올라있었어.”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아버지의 난데없는 발병이 꿈속의 그 남자와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어림잡아 조금 짐작이 갔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서류작업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대답을 하자 진초록 국방색의 당꼬바지를 입은 어느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낯선 사내가 말없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나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서 우두커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서로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사이였지만, 그런 것쯤이야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그는 거칠 것 없이 당당해 보였다.
하지만 그 남자의 이마 한 가운데가 마치 뜨거운 무엇에 덴 것처럼 붉게 부풀어 올라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꿈속에서도 참 생뚱맞은 광경이어서,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다가 그냥 잠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깨어나서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한 남자가 이마에 화상을 입고 크게 부풀어 오른 모습이 뭣 땜에 내게 보였을까?
나로서는 그 이유를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꿈이 의미하는 바를 몰라 속이 좀 답답했었는데,
서울에 와서 보니 글쎄 아버지 이마가
꿈속의 그 남자 이마와 똑같은 것이 아닌가
나는 차마 오늘 아침 꿈 얘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채, 우선 새어머니께 자초지종을 좀 더 자세히 여쭈어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사연이었다.
친정아버지 생신이 대략 양력으로 5월 무렵이니,
장어가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모처럼 생신을 맞아 새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것을 해드리고 싶어,
장어를 사러 시장에 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장어 구경하기가 힘이 들었는데, 마침 시장 한쪽 구석에서 어느 할머니가 커다란 장어 한 마리를 내놓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반 장어보다 너무 커서 속으로 조금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장어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사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어머니가 살아있는 장어를 사오시고, 아버지는 그 시각에 맞추어서 마당에 연탄불을 내어놓고는 큰 양은솥에 물을 끓이며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꿈틀거리는 장어를 사오자마자 아버지는 양은솥 뚜껑을 열어 펄펄 끓는 물속에 처넣고는 얼른 뚜껑을 덮으셨다.
그리고는 뚜껑이 들리지 않도록 솥뚜껑을 꾹 누르고 계셨고,
이윽고 얼마간 지나자 들썩이던 뚜껑이 조용해졌다.
늘 해오던 방식대로 오랜 시간을 푸욱 고아서 베보자기에 장어를 걸러 뼈만 추슬러낸 뒤에, 곰국처럼 뽀얗게 우러난 국물 속에 인삼을 넣고 또 다시 푸욱 다려서 음료수처럼 수시로 마시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이다.
누군가의 권유로 몇 차례 만들어 마시고 난 뒤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져서,
또래의 다른 노인들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평판을 더 좋아하셨던 것 같았다.
그런데 하필 생일날 삼천포까지 내려가 기분 좋게 생일상을 받을 준비로 먼저 장어육수를 따라 마시자마자, 갑작스럽게 열이 치솟아 얼굴이 벌겋고 머리까지 여기저기 쑤셔대니 그만 한 시도 더 지체 못한 채 곧바로 되돌아오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세히 전후 사정을 듣고 나니까 그제서야 아침에 꾸었던 꿈의 의미가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다.
펄펄 끓는 이마의 종기 때문에 요를 깔고 누워 진땀만 흘리시는 아버지 곁에는 평소 즐겨 사경하시던 『금강경』책과 함께 지필묵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어머니 설명과 꿈을 통해서 갑작스럽게 병이 난 이유를 알아차린 나는 모른 결에 핀잔 섞인 말을 아프신 분께 한 마디 하게 되었다.
“아니, 부처님 경전을 사경하시는 분이 웬 살생을 그리도 좋아하신 대유?”
나도 모르게 불쑥 내뱉어진 말에 눈을 감고 계시던 아버지 이마가 움찔하는 것이 눈에 비쳤다. 아무리 옳은 소리라도 누워있는 환자에게 부담을 주는가 싶어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별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잠시 동안 병문안만 하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저녁때쯤에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집에 돌아와 나는 나대로 직장을 다니며 아이들 학비를 조달해야 했기에, 이런 저런 생활이 바빠서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주일이 훨씬 지나서야 간신히 틈을 내어 한 번 더 찾아뵈었다.
그런데 두 번째 병문안 갔을 때는 아버지께서 아랫목을 비워두시고 윗목에 누워계셨다. 그동안 음식도 전혀 못 드시고 앓는 바람에, 며칠 새 볼이 훌쩍해지신 아버지 얼굴과 손을 잡으며 내가 궁금해 여쭈어 보았다.
“요즘 아침저녁으론 그래도 쌀쌀하실 텐데, 왜 윗목에 누우셨어요?”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아이고, 말도 마라. 저 아랫목에 누워있는데 글쎄, 시커먼 구렁이 한 마리가 바로 내 요 밑에 서려있지 않겠냐.”
아버지는 당신이 며칠 전에 꾸셨던 꿈 이야기를 하시며, 지금도 그 광경이 생생하시다는 듯이 몸서리를 치셨다. 아버지 말씀을 듣고 나도 짐작 가는 바가 있어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아버지, 제 생각엔 장어를 산 채로 끓여 드셔서 문제가 된 거 같은데요.
혹시 아는 스님께 한 번 여쭤보면 어떻겠어요?”
아버지도 내 말을 완전히 부인할 수 없으셨던지, 그럼 며칠 후면 태고사의 기도하시는 스님께서 방문하신다 하니까 그때 여쭤보겠다고 받아들이셨다.
태고사에 다니는 신심 깊은 동생 덕에 태고사 스님께서 볼일이 있어 서울에 오실 때면, 약수를 떠가지고 곧잘 아버지 댁에 들러주시곤 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병문안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내려온 지 며칠인가 지나서 나는 아버지께서 스님께 상의를 드렸는지, 상의를 했으면 스님은 뭐라고 대답하셨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스님 말씀은 아무래도 장어 49재를 지내줘야겠다는구나.”
“장어 49재요?”
나는 한 동안 입을 못 다문 채 아버지 말씀을 듣고만 있었다. 전화 수화기를 내려 놓으며 나는 생각했다.
‘정말 스님 말씀대로 그렇게 해서라도 아버지가 쾌차하실 수만 있다면,
좀 괴상하고 남들이 희한하게 생각한들 그게 무어 그리 대수이겠는가.’
그렇게 해서 형제들이 십시일반 돈을 마련해 태고사에서 장어 49재를 지내게 되었다. 대둔산 태고사 높은 벼랑 위 법당에서 기도스님께서 장어 영가 위패를 모셔놓고 극락왕생을 축원해주셨다.
재를 지내는 동안 함께 같던 이웃보살님은
스님께서 ‘망亡 장어 영가시여’ 하고 염불하실 때마다,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와서 혼났다고 하였다.
하여간 그날 장어 49재를 잘 치르고 와서인지 몰라도,
붉게 성난 아버지 이마의 종기가 눈에 띄게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사나흘 지나서는 완전히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식사도 예전처럼 하시게 되었다. 그렇지만 상처 났던 부위가 이제 완전히 나은 것이냐고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아버지는 상처부위는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만지면 아직도 속이 뜨끔뜨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몇 해인가 지났다.
그리고 나서 언제인가 친정 부모님을 다시 찾아뵈었다.
아버지는 그 뒤로 살아있는 장어를 사다 끓여드시는 일은 아예 없었고,
또 어쩔 수 없이 생선을 구워드셔야 할 때에도 반드시 시장에서 죽은 고기를 사와서 요리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뒤늦게 왜 부처님께서 살아있는 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하셨는지를 아시겠다며, 그날 새벽녘에 꾼 꿈에 대해서도 조근 조근 이야기 해주셨다.
“웬 처음보는 사람들이 우리집 문 앞에 떼로 몰려와 있더라.
그래서 내가 나가보니, 나더러 ‘<약값 외상>을 내라’고 야단인 게야.
하지만 나는 평소에도 외상을 잘하지 않거든.
‘<약값 외상>이라니 무슨 말이냐? 나는 <약값 외상> 따윈 없다.’ 라고 말했지.
그랬더니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한꺼번에 소리치지 않겠니.
‘우리를 보약으로 먹었으니, 그 약값을 지불해야 될 거 아니요’ 라고 말이다.”
아버지는 아직도 그 꿈이 너무도 생생하여 부담스럽다는 듯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고 계셨다. 그리고는 나지막하지만 단호함이 묻어나오는 어투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살아있는 생물을 나를 위해 잡아서 요리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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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했삻님이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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