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타행자의 편지/동선스님의 편지

[스크랩] 선문에서 정토수행도 아울러 하다-원조 종본(圓照宗本)선사

                         선문에서 정토수행도 아울러 하다-원조 종본(圓照宗本)선사

 

 원조 종본(圓照宗本 : 1022-1099))선사는 상주 사람인데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여 겉치레를 일삼지 않았다. 천의의회(天衣義懷 : 936-1064, 운문종)선사에게 귀의하여 헤진 옷에 때 묻은 얼굴을 하고, 물긷고 방아찧고 밥짓는 일을 맡아 보았다. 낮에는 스님네들 뒷바라지에 쫓아다니고 밤이면 새벽까지 좌선하며 고생을 무릎쓰고 정진하였는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수행하면서 대중의 일도 맡고 있으니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하니 선사는 한 법이라도 버리면 원만한 공부라 할 수 없다. 결단코 이 생에서 이 몸으로 깨치려는데 감히 고단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하였다.

 서광사(瑞光寺)에 주지 자리가 비어서 선사에게 주지하도록 명하였다. 그 곳에 이르러 북을 치니 대중이 모였는데 갑자기 북이 땅에 떨어져 떼굴떼굴 구르면서 크게 울렸다. 한 스님이 선사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것은 화상의 우레 같은 법음이 땅을 진동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어느덧 그는 온데간데가 없었다. 이때부터 선사의 법석은 큰 성황을 이루었다. 그 후에 여러 절에서 다투어 선사를 맞이해 갔고 만년에는 정자사(淨慈寺)에 주지하였다. 영지사(靈芝寺)의 원조(元照)율사와 가까운 친구가 되었는데, 조율사가 법의를 주었더니 선사는 종신토록 법좌에 오를 때면 언제나 그 법의를 입었다.

 동도사(東都寺)의 희법사(曦法師)가 정()에 들었을 때 정토를 본 일이 있었다. 그 곳 연꽃에 금으로 된 글자로 항주 영명사 비구 종본의 자리라고 크게 씌어 있었다. 희법사가 그 일을 이상하게 여겨 각별히 찾아가 예를 올리고 물었다.

 “선사께서는 교외별전의 종()인데 어찌하여 정토에 자리가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내가 비록 선문(禪門)에 있지만 늘 정토수행도 아울러 했기 때문이다

                                                                                                 (행업등기行業等記)

                                                                         (출처: 인천보감/선림고경총서/장경각)

 

 

출처 : 청연사
글쓴이 : 文正堂 香象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