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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동선스님의 편지

[스크랩] 종군 성직자

수송선 도체스터함이 북대서양에 침몰한 것은 1943년 2월 3일. 한겨울 강추위로 바닷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날 막 자정을 넘겼을 무렵 불기둥이 치솟았다.

독일군 잠수함 U보트가 쏜 어뢰 세 발 중 한 발이 배를 두동강냈다. 당시 배에 타고 있던 병력은 900여명. 대부분 갓 신병훈련을 마친 앳된 젊은이들이었다. 최종 기착지는 영국. 노먼디 상륙작전에 투입될 병사들이었다.

갑작스런 어뢰공격으로 수송선의 전원은 모두 꺼졌다. 칠흑같은 어둠에 신병들은 공포에 떨었다. 구명조끼를 챙겨입을 여유마저 없었다.

배에는 종군 성직자 넷이 타고 있었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도 네 명은 침착했다. 즉각 창고문을 부수고 구명조끼를 꺼내 하나씩 나눠주며 탈출을 다그쳤다.

조끼는 그러나 턱없이 부족했다. 배 앞머리가 바닷물에 빨려들어가기 직전 넷은 약속이나 한 듯 입고 있던 조끼를 벗었다.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줄 생명줄을 스스로 놓은 것이다. 병사들에게 입혀주곤 웃으며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넷은 배와 함께 치열했던 삶을 마감했다. 미국역사에 '네 명의 종군성직자(Four Chaplains)'로 기록된 사건이다. 네 명 중 둘은 개신교 목사(조지 팍스와 클락 폴링) 한 명은 가톨릭 신부(존 워싱턴) 나머지 한 명은 유대교 랍비(알렉산더 구드)다.

이들의 최후를 목격한 생존자의 증언은 처절했다. "넷은 서로 팔을 꼭잡고 있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기도를 올렸다. 랍비는 히브리어로 신부는 라틴말로 목사는 영어로… 이어 성가를 불렀으나 곧 어둠 속에 묻혔다. 죽음을 맞는 순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있던 시간은 고작 27분. 넷은 이 짧은 순간에 실로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트루먼 대통령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채플 건립을 지시했다. 템플대학 캠퍼스에 자리잡은 이 채플은 요즘도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988년 연방의회는 2월 3일을 '네 종군성직자의 날'로 선포했다. 일부 주에서는 지금도 이날 조기를 게양하며 이들의 희생정신을 기린다.

이들 넷은 존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에도 큰몫을 했다. 당초 가톨릭 신자인 케네디가 대권을 잡을 것으로 예측했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케네디는 종교 간의 일치와 화합을 얘기하며 2차세계대전 때의 종군성직자 네명을 떠올렸다.

케네디는 신부가 가톨릭 신자들만 골라 조끼를 입히지 않았다며 성직자 네 명의 희생을 '이 플러러버스 유넘(E pluribus unum)'의 건국이념에 빗댔다. '여럿이 모여 하나'라는 뜻으로 미국의 문장(seal)에 독수리와 함께 새겨져 있는 문구다. 이민자는 물론 여러 인종 여러 종교가 어우러져 하나의 미국을 이룬다는 국가관이다.

4년 전 인종의 벽을 깬 미국이 올해 대선에서 케네디 이후 또 하나의 '종교실험'을 하게 된다. 공화당의 선두주자 미트 롬니는 모르몬교 신자다. 롬니가 플로리다주 예비선거에서 뉴트 깅리치에 압승을 거두며 바람몰이에 나섰다. 이변이 없는 한 그는 11월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맞붙는다.

오늘 3일은 종군성직자 4명의 희생을 애도하는 날이다. 69년 전 오늘 각자 종파는 다르지만 하나가 돼 죽음을 함께 맞이했다. 롬니가 기적을 펼쳐보일지 올해 대선은 자못 흥미롭다.
                                                                                                        LA중앙일보 박용필 논설고문

출처 : 청연사
글쓴이 : 文正堂 香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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