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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제주불교 미타행자의 편지

20. 수월스님 이야기


도를 닦는다는 것이 무엇인고 허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아녀.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혀서든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 겨. 하늘 천 따지를 하든지, 하나둘을 세든지, 주문을 외든지 워쩌튼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 겨. 나는 순전히 ‘천수대비주’로 달통한 사람이여. 꼭 ‘천수대비주’가 아니더라도 ‘옴 마니반메훔’을 혀서라도 마음 모으기를, 워찌깨나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혀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맨큼 혀야 되는 겨.


옛 세상에는 참선을 혀서 깨친 도인네가 많았는디, 요즘에는 참드물어. 까닭이 무엇이여? 내가 그 까닭을 말할 것인게 잘  들어봐. 옛날 스님들은 스스로 도를 통하지 못했으면 누가 와서 화두참선 법을 물어도 “나는 모른다”며 끝까지 가르쳐주들 않았어. 꼭 도를 통한 스님만이 가르쳐주었는디, 이 도통한 스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신단 말여. ‘저 사람이 지난 생에 참선하던 습관이 있어서 이 생에도 저렇게 참선을 하려고 하는구나. 그러면 저 사람이 전생에 공부하던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도를 통했으니께 환히 다 아실 거 아니여. 혀서, ‘옳다. 이 화두였구나’하고 바로 찾아주시거든. 그러니 그 화두를 받은 사람은 지난 생부터 지가 공부하던 화두니께 잘 안하고 배길 수가 있남. 요즘은 다 글렀어. 게다가 말세고 말이야! 모두가 이름과 위치에 얽매이다보니, 누가 와서 화두를 물을 짝이면 아무렇게나 일러주고 만단 말이지. 안 일러주면 자신의 이름과 자리값이 떨어지니께 말이여. 그래서 화두를 아홉 번 받았느니, 여덟 번 받았느니 하는디, 이래 가지고서야 워찌게 도통을 한다고 할 것인겨!


지가 꼭 공부하던 화두를 일러주니께 틀림없이 공부를 이루고 바로 도를 통하는 겨. 자신 만만하니께 도통하는 겨. 옛날 사람들은 화두 공부가 잘 되지 않더라도 화두를 바꾸지 않고 ‘나는 열심이 모자라니께 열심히만 정진하면 꼭 성취할 것이다’라는 한 생각으로 마음을 몰아붙여 오로지 한 길로만 애쓰다가 도를 통하기도 혔어.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게 아니여. 쓰잘데기 없는 몸과 마음에 끄달려, 조금 하다가 안되면 그만 팽개치고 ‘소용없다’고 하거든. 이게다 아상이 많아서 그런겨.


무엇이든지 한 가지만 가지고 끝까지 공부혀야 하는디, 이것이 꼭 밥 먹기와 매한가지여. 똑같은 반찬이라도 어떤 사람은 배불리 맛있게 먹지만 어떤 사람은 먹기 싫고, 또 어거지로 먹으면 배탈이 나는 뱁이거든. 공부도 마찬가지여. 염불을 열심히 혀야 할 사람이 딴 공부를 하니 잘 안되는 겨. 중이 되려면 처자권속을 죄다 버려야 혀. 모두 다 버리고 뛰쳐나와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곳에서 열심히 닦아야 혀. 아버질 생각한다든지 어머닐 생각 한다는지 가족을 생각할 것 같으면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가 않거든. 무슨 공부든지 일념으로 해야 혀. 워찌케든 일념을 이뤄야 되지, 일념이 안되면 이것저것 다 쓸데없는 겨.


그래서 옛날 도통한 도인네들은 부모 형제 모두 내버리고 중이 되어 홀로 공부했던 거여. 도를 깨치지 못하면 두 집에 죄를 짓게 되는 거 아녀. 두 집안에 죄 짓지 말고 ‘워쩌튼 죽어라 혀보자’해서 부모 형제 모다 버리고 이렇게 산단 말이지.


“한 집안에 천자가 네 명 나는 것 보다 도를 깨친 참 스님 한 명 나는 게 낫다.”


예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들었자. 만일 중이 되어 도를 통할 것 같으면 그 공덕으로 모든 조상영령들과 시방삼세의 중생들이 다 이고득락할 것이니 이 얼마나 좋으냐 말여. 이 세상이라는 게 중이 되면, 머리가 있고 없고 글이 있고 없고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여. 차라리 그런 것들은 없는 게 훨씬 나아. 참으로 사람 되기가 어렵고, 천상천하에 그 광명이 넘치는 불법만나기가 어려운데 말이지, 사람 몸 받아가지고도 참 나를 알지 못하고 참 나를 깨치지 못하면 이보다 더 큰 죄가 워디 있을 겨. 사람 몸 받고도 성불 못하면 이보다 더 큰 한이 워디 있을 겨.


부처님께서도 “나도 너를 못 건져준다. 니가 니 몸 건져야 한다”하셨어. 그러니 참 그야말로 마음 닦아가지고 니가 니 몸을 건지지 못하고 그냥 죽어봐라, 이렇게 사람 몸 받고도 공부를 이루지 못하고 그냥 죽어봐라, 다 쓸데없다. 어느 날에 다시 이 몸을 기약할 것인가.


 * 수월스님은 일생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된 법상에 오른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 실은 수월스님의 말씀은 스님께서 얼마 동안 머물다 열반에 든 중국 간도에 있던 화엄사에서, 몸을 다쳐 며칠 머문 어느 독립군 연설단원에게 들려준 법문입니다. 수월스님께 큰 감화를 받은 이 독립군 연설단원은 그 뒤 몽골에서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귀국하여 대전 대흥사 등지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다 2000년 입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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