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선이야기48-시주금
해마다 연말이 되면 기부금 영수증 때문에 절집마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곤 한다. 절에 나오는 보살님들은 이맘때쯤이면 아들이며 딸, 사위 명의의 기부금 영수증 발급을 부탁하곤 한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인지 조건이 달린 부탁을 한다. 천도재나 기도비 명목이 아닌 기부금이나 불사시주금 명목으로 영수증을 발급해달라는 요청을 해오는 것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세무서에서 기도비나 천도재비는 순수한 기부금이 아니라 무형(無形)의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보기 때문에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순수한 기부금 명목으로 영수증을 발급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얼마 전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부처님 오신 날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어느 날, 법당의 1년 등을 신청했던 사람이 환불을 요청해온 것이었다. 처음 겪는 일이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지라 순간 당황하긴 했지만 원하는 대로 환불해주라고 종무원에게 지시하고 내방으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절집의 거의 모든 수입은 불전함을 제외하고는 대개는 조건이 붙는 시주금이 대부분이다. 기도, 천도재, 인등, 생일불공 등등 사실 거의 모든 시주금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사실 이 같은 풍습도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산업화되기 이전 농경사회였을 때는 신도들이 그때그때 자기가 수확한 쌀이며 과일 같은 농산물을 절에 이고 와 불전에 공양하며 부처님께 발원하거나, 제사 같은 것을 부탁할 때도 제사에 쓰일 음식은 본인이 마련하고 스님들은 염불만 해주면 되고, 스님들 입장에서는 전기요금이나 전화요금 같은 공과금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 신도들이 올리는 공양물로 생활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우리사회가 산업화되고 난 뒤에는 신도들의 시주가 현물이 아닌 화폐로 주로 이루어지게 되고, 절집도 전기가 들어오고 전화가 생기고 난방도 장작에서 기름이나 전기보일러로 바뀌고 차가 생기고 보니 세속의 살림살이처럼 한 달이면 일정한 수준의 유지비용이 필요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세상이 바뀜에 따라 절집의 풍습도 바뀌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안타까운 것은 신도들도 스님들도 어느 순간부터 절집에서 행해지는 모든 기도나 불사에 가격이 고시되고 우리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식당에서 밥을 사먹는 것처럼 어떤 서비스의 대가로 비용을 지불하듯이 시주금에 조건이 붙는 것에 대해 익숙해져 시주의 근본적인 의미를 망각하고 사는 것 같다.
굳이 경전에 나오는 ‘빈자의 일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스님들은 생산적인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므로 신도들의 시주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고, 신도들은 부처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따르는 집단인 승가(僧伽)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시주를 하며 복덕을 쌓는다. 세상이 바뀌어짐에 따라 시대에 순응하고 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항상 원칙은 잊지 않고 살아야,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우리가 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는 일이 좀 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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